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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샤갈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저 화집에 실린 그의 그림을 보면서 "흐음~~" 하는 정도랄까?? 그런 내게 이 책이 도착했다.. 평소처럼 '머리말'을 읽으면서.. 나는 샤갈이 라퐁텐 우화와 관련된 판화를 만들게 된 배경을 알 수 있었다..
본문으로 들어가자, 내가 어릴적 만났던 라퐁텐 우화가 있었다.. 이솝우화보다는 상대적으로 내용이 짧고, 덜 알려진 이야기들이 나타났다.. 단순한 듯하지만.. 할말을 분명히 한달까? 욕심내지 않고 한가지만 전달하는 모양새가 맘에 들었다^^
이야기와 함께 소개된 샤갈의 작품은 무척이나 화려한 느낌이다.. 모두 43점의 판화와 과슈작품.. 실은 난 이들의 차이를 모른다.. 과슈가 '불투명 수채물감'으로 간단히 말할 수 있음을 검색을 통해 알았고.. 다시 그림들을 보지만.. 역시나 어떤 작품이 판화인지? 과슈인지? 구분이 안된다-_-... 이왕이면 그러한 설명도 곁들였더라면 좋았으리란 트집을 잡으면서..^^
라퐁텐 우화.. '당나귀 팔러가는 부자이야기'의 경우처럼.. 내가 알고있던 내용과 다소 틀린 부분도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속시원했달까?? 기존의 라퐁텐 우화를 기억하는 이들.. 그동안 이솝우화만 읽어본 이들이라면 한번쯤 만나봐도 좋을 책이란 생각이다.. 또한, 샤갈의 작품을 보면서 흔히 보지 못한 새로움을 느껴보는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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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개의 라 퐁텐의 우화와 샤갈의 그림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그 우화이야기가 라 퐁텐 이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것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너무나 유명한 사람을 말이다. 그리고 잘 알고 있는 화가 샤갈. 마찬가지로 우화와 함께 43점의 그림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샤갈에 대하여 볼라르가 우화 출판문에 삽화를 그리는 것을 마르크 샤갈에게 맡길 것을 결정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샤갈에 의해 만들어진 삽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 마르크 샤갈은 러시아를 떠나 아내와 하나 뿐인 딸과 함께 프랑스로 이사를 한다. 샤갈에 있어서 라 퐁텐 우화가 차지하는 위치는 그가 이 작업을 하면서 프랑스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샤갈은 총 19개월동안 1백 20점의 삽화를 만들어 냈다. 천재라고 밖에 할수 없는 그의 실력이었다...
라 퐁텐 우화.. 아주 단순한 내용일수도 있겠지만 우화의 이야기 하나하나에는 교훈들이 담겨져 있다. 어린 꼬마애들이 읽으면 너무도 좋은 책이 될것 같다. 물론 어른들도^^ 이 책은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 읽어 주고 싶다. 샤갈이 그린 삽화도 함께 있으니 너무 좋을것 같으다 ^^ 함께 수록된 샤갈이 그린 사진들은 얼핏 보면 아주 단순하게 그린 아이의 그림일지도 모르겠으나.. 가만히 계속 들여다 보면 어떠한 힘이 느껴지는 삽화들이었다. 색색의 그 표현들은 열정이라도 감추고 있는듯하다.
가끔씩 이런 동심을 가져다 주는 책들을 읽어보는것도 좋을 듯하다. 마음이 뭔가 따뜻한것들로 가득차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
"서로 안 보는 것은 사랑을 치유하는 데도 명약이지만,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최선의 약이 되기도 한답니다."
천성이란 무서운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천성은 점점 강해져 모든 것을 비웃기도 한다. 술항아리에도 술냄새가 스며들고 천에는 주름이 잡히듯이 사람이 살면서 제 습성을 버리려고 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갈퀴로 긁어내고 몸둥이로 위협한다고 해도 천성을 지배할 수는 없다. 문밖으로 쫒아 버려도 창문으로 다시 돌아 들어오는 것이 바로 천성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꿈을 현실인 양 여긴다. 요컨대 진실에 대해서 무관심하지만, 환상에 대해서는 열정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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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로서 우화가 실린 책이라 한다면 정말 환영을 하고 받을 정도이다. 어느날 샤갈이 그린 라퐁텐 우화가 내 소유가 되었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무엇을 그렸다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한 번 쓰윽하고 훑어보기 시작했는데 그림들을 보는 순간 그림만 보아도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려주는 듯 하였다. 결국 끝까지 다 보았을 땐 내용이 궁금해졌다. 옆에 있던 몇 페이지가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샤갈은 유명한 화가였다. 마르크 샤갈이라는 그 사람은 유화와 판화를 그리면서 유명해졌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할 정도로 유명하다. 해마다 그의 전시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릴 정도였으니… 관심이 없던 나만 몰랐던 소식일 것이다. 라퐁텐은 내가 알고 있는 옛날 이야기의 대부분을 지은 사람이었다. 전래되어서 내려왔겠거니 했던 내용들이 이 책들 안에 있어서 너무나도 놀랐었다. 특히 ‘솜을 진 나귀와 소금을 진 나귀’는 어렸을 때 책으로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재미나게 봤던 우화였다. 그런 그 글이 라퐁텐이 쓴 글이 었다니.. 20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어 왠지 창피하기도 하다. ‘샤갈이 그린 라퐁텐의 우화’는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까지 여러 연령에 걸쳐서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물론 샤갈이 그린 것 뿐만 아니라 ‘라퐁텐의 우화’에 관련된 책들은 많이 있다. 유명한 글들이기에… 하지만 샤갈이 그림을 그려서 이 책이 더 특별나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일까… 많은 우화가 많은 교훈과 주의점을 안겨주기에 이 책을 몇 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사는 데에는 교훈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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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책읽기에 빠지게 되었던 계기가 되기도 한 책인 라퐁텐 우화를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느꼈던 기분은 기쁨과 설래임이었다. 게다가 이 책의 삽화는 샤갈이 그렸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책의 내용은 짧은 단편으로 여러 우화가 들어있었고 어릴 적에 읽었던 라퐁텐 우화와 비슷한 이야기도 있어 읽는 내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던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서 생각한 사실이지만 라퐁텐 우화는 동물들이 주인공이 되어 여러 재미있는 사건들이 읽어나지만 이야기의 뒷부분에서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도 하는 책이다. 이런 점 때문에 라퐁텐 우화를 읽고 있으면 갑자기 탈무드가 생각나기도 한다. 무조건 착하게 행동하고 남을 도와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것 보다 라퐁텐 우화나 탈무드 이야기를 들으면 우선 재미있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부분에서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우화 형식의 글이 우리에게 빨리 다가 오는 것 같다. 이 책의 처음은 백조와 요리사라는 단편에서부터 시작한다. 백조가 연못에서 헤엄을 치고 있을 때 요리사가 백조를 잡아 음식을 만들려고 하는데 백조는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 그 상황 속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았고 요리사에게 노래로 애원한다. 그 노래에 감동한 요리사는 그 백조를 잡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위험한 상황이라도 백조처럼 말을 부드럽게 하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었고 앉은 자리에서 이 책을 금방 다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재미와 더불어서 한 가지 즐거웠던 것은 샤갈이 그린 라퐁텐 우화의 삽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동화책에서 보던 그림과 달리 한 장면만 연상 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체가 한 그림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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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동화책 삽화를 그려 전시회를 연다고 해서 가본적이 있다. 교과서 삽화를 그리는 활동도 하는 그녀의 전시회에서 그림의 다양한 모습에 놀랬었다.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일기를 그림으로 그리면서 일기장대신 작은 양장본 다이어리를 들고 다녔다. 그림일기라는 특성때문에 가끔 그 그림일기를 우리가 꺼내어 보도록 허락했는데, 어찌나 일기 내용이 함축적이고 잘 나타나있는지,,, 그녀의 생활을 아는 우리는 대충 내용을 해석하며 읽고는 했다.
라 퐁텐 우화를 샤갈이 그렸다고 해서 나는 그런 그림을 상상했다. 전문 화가가 그린 삽화이지만 단순하고 눈에 잘 띄는 그런 삽화. 어느 정도는 내 생각과 들어맞았다. 장식이 심한 라 퐁텐의 우화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는 삽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갈 답게 색감이 화려했고, 한번에 알아보기 힘든 몇 개의 그림도 있었다. 책 뒤에 해설한 글을 보니, 더더욱 내가 보지 못 한 그림의 내용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한 예로 '여우와 포도'에서 일반적인 삽화는 포도와 여우 그리고 벽을 그려놓는데, 샤갈의 삽화는 포도와 여우 사이에 하늘을 그려넣음으로써 그의 그림의 다양성을 느끼게 하였다.
이 책에 소개된 43점의 그림이 샤갈의 명작으로 알려진 그림처럼 감동적이지는 않다. 라 퐁텐 우화의 내용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우화의 내용들이어서 조금은 식상하다. 하지만, 샤갈의 그림 화집인양 그림과 우화가 번갈아가면 있는 이 책을 보면 샤갈의 그림을 자세히 설면해놓은듯한 느낌을 받는다. 우화를 보고 샤갈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닌, 샤갈의 그림을 보고 라 퐁텐이 우화를 그린 것 아닐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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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라는 다소 짧은 글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도 하고, 천근만근 무거워지기도 한다. 글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나에 대한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의 관대함을 기대해보며 읽기 시작했다. 아! 하고 탄식을 만들게 되는 이야기가 있었다면 도무지 읽어도 이해할 수 없다기보다 무슨 말인지를 파악할 수 없어서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이야기들 또한 있었다. 하지만 우화라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나를 끊임없이 자극하기에. 가볍게 보고 들어갔다가 뒤돌아나오며 한바탕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가볍게 여길만한 글이 절대 아니다. 언제나 저질렀던 실수를 이번 또한 저질렀다. 너무나 유명한 샤갈, 지속적으로 들어왔던 라 퐁텐 우화의 만남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위대해보여 기대했던 책이지만 그 속에서 얻은 교훈은 언제나처럼 이야기의 마지막 두 줄이었다.
<여자가 된 암고양이> p.37-39 그만큼 천성이란 것은 무서운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천성은 점점 강해져 모든 것을 비웃기도 한다. 술항아리에는 술냄색 스며들고 천에는 주름이 잡히듯이 사람이 살면서 제 습성을 버리려고 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갈퀴로 긁어내고 채찍으로 때린다고 해도 몸에 밴 습관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고, 몽둥이로 위협한다고 해도 천성을 지배할 수는 없다. 문밖으로 내쫓아 버려도 창문으로 다시 돌아 들어오는 것이 바로 천성이다.
<새끼 물고기와 낚시꾼> p.62-64 손 안에 있는 하나가 나중에 들어오게 될 둘보다 낫다. 지금 하나는 확실한 것이지만 나중의 둘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여우와 칠면조> p.78-80 확실하지도 않은 위험에 대해 너무 걱정을 하다 보면 그 때문에 도리어 위험해 질 수도 있는 법이다.
<사자와 모기> p.110-112 하나는 가장 두려워해야 할 적은 때로는 아주 하찮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큰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아주 작은 것 때문에 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방앗간 주인과 그의 아들과 당나귀> p.125-129 언제나 선택은 나의 몫이다. 내가 전쟁의 신을 따르든, 사랑의 신을 따르든 아니면 왕을 따르든 그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며, 가든지 오든지 혹은 달리든지 내 하기 나름이다. 시골에서 살지, 도시에서 살지도 마찬가지... 내가 결혼을 하든지, 수도사가 되든지 결국 그 책임은 모두 나의 것이니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는 것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몇구절들이다. 굳이 이것들을 발췌해 낼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자세하게 알 수는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에나 읽었을 법한, 탈무드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 <여우와 포도> 따위의 이야기들도 있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여러 이야기들이 이렇듯 나의 감정과 지금까지의 생각을 뒤흔든다. 더불어 지금의 내 상황과 맞물려 고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듯 하다. 힘에 부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직접 나서서 그 일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일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며 스스로 해보라 채찍질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후자가 우위에 있다. 직접 해주는 친구는 그 당시 상당한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겠지만 결국에는 후자의 친구에게 두고두고 고마워할 일이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살라는 말, 고민을 너무 하기 보다는 지금의 일이 나중에는 하찮은 게 될 수 있다면서 나를 타이르고 있는 구절들을 읽으며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격언과 명언을 듣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글들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말들을 마음 깊이 새기고는 있지만 어느 순간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라 퐁텐 우화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고민이 생겼을 때 어떠한 도움이 필요할 때 이 책은 나에게 간단하고도 깊은 해결책을 비춰줄 것이다. 보여주는 것이 아닌 아주 약간의 실마리만을 비춰주는 빛과 같은 존재,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렇다. 더불어,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른쪽에 그려진 샤갈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은 황홀했다. 유명한 작품을 남기고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화가 샤갈의 그림을 이렇게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때로는 이야기와 그림과의 연관성을 찾지 못해 아쉬웠지만 여러번 반복해서 보다보면 글과 그림의 합의점을 찾아내게 되고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꽤나 컸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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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짧지만 깊은 이야기들] 부끄럽지만, '샤갈'하면 학교 앞에 자리잡고 있었던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카페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입 안에서 굴러다니는 그 발음이 어쩐지 좋아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약속이 있을 때 가끔 찾아갔었다. 처음에는 '샤갈'이 화가라는 것도 몰랐지만, 그가 그린 그림의 제목이 '눈 내리는 마을'이라는 것을 귀동냥으로 알게 되었을 때, 그 카페가 사라졌다. 그리고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샤갈'이라는 이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났다. 사실 '샤갈'때문에 눈에 띈 책이지만, 그 안에 든 이야기도 무시할 수 없다.
어렸을 때 이솝우화를 즐겨 읽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17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우화작가인 라퐁텐이 이솝풍으로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니, 어쩌면 같은 우화작가였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들을 다루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글자를 떼던 시절에 어린이용으로 가장 먼저 접했을 이야기들을 이렇게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게다가 샤갈의 43점의 그림과 함께하니, 마치 작은 미술관이 내 품안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다. 그림들이 이해하기 쉽다거나 단순한 것은 아니다. 라퐁텐의 우화들이 아니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렸을지도 모를만한 그림도 몇 점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 걸까.
어렸을 때는 단순히 동물들의 이야기로 지나쳐버렸던 이야기들이 우리 삶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기발하면서도 재미있다. 권선징악의 교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 우화들이, 이 책에서는 하나하나가 각각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끝에 설명이 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예를들어, 몸집이 커다란 소를 부러워한 개구리가 그 소 같은 몸집을 갖기 위해 자신의 배를 부풀리다가 결국에는 배가 뻥 터져 죽는다는 -소만큼 커지고 싶어한 개구리-라는 우화가 있다. 그 우화 마지막 부분에는 라퐁텐이 써놓은 듯, "세상은 바보 개구리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부자들은 성주처럼 큰 집을 짓고 싶어하고, 성주들은 왕만큼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싶어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약간은 냉소적이면서도, 어쩐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의 마무리같이 정겨움도 느껴지고, 그러나 그냥 흘려 들을 수 없는 진리가 숨어있는 것 같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에이, 어렸을 때 다 읽은 건데 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책에 어느 순간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솝우화집이나 라퐁텐의 이야기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여전히 읽히고 있는 것은, 동물들로 묘사되어 있어 우리의 삶을 차갑지만은 않게, 유머러스하게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화가 아닌, 샤갈의 그림에 좀 더 중점을 둔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좋은 그림과 교훈적인 내용을 한 번에 음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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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 우화라...
그러고 보면 나는 그 흔한 이솝우화라든가, 안델센 동화라든가, 뭐 그런 걸 읽었던 기억이 없다. 그런데 내용은 어찌 알지? 읽었는데 읽은 기억을 까먹은 건지, 안읽었는데 하도 들어서 아는 건지 뭐 그정도 일게다.
라 퐁텐이라는 작가는 300주년기념을 넘긴 상황을 보아,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 우화작가라고 하면 맞을까? 17세기 인물이 쓴 우화 소설에 샤갈이 삽화를 넣은 책이다. 솔직히 라 퐁텐이란 이름은 처음 듣는다. 그런데 그의 우화는 어째 들어 본적도 있는 것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그렇다. 그게 이솝의 우화를 패러디 한 건지, 본래 라 퐁텐의 우화인 건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비슷한 내용으로 시작했다가 내가 아는 결론과는 다르게 끝나는 우화가 적잖이 있으니 이게 뭔가 싶기도 하다.
샤갈은 그렇다. 샤갈은 이름은 참 많이 들어보았다. 샤갈, 샤갈하니 이름도 외우기 쉽다. 그러나 작품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 기억하는 것이라곤, 역대 미술사에 등장하는 [마을에 내리는 눈] 정도이다. 이후, 영화 [노팅힐]에서 줄리아로버츠와 휴 그랜트의 매개가 되어준 작품이 샤갈의 그림이라는 정도이다. 그의 그림이라는 게 뭐랄까, 몽환적이고 기기묘묘해서 나는 한때 그의 작품이 피카소의 작픔인줄 알았던 적도 있다. 오류는 그밖에도 많다. 이름만 들으면 어쩐지 프랑스 사람일 것 같지만 샤갈은 유대계 러시아 인이란다. 물론 말년에는 러시아를 버려버리지만 아무튼 그렇단다. 그렇듯, 샤갈은 몇 작품 보지 못했음에도 어떤 그림을 보여주면 '이거 혹시 샤갈의 작품아냐?' 라고 물어볼 만큼 자기만의 색채가 강렬한 작가인듯 싶다. 내가 구별해내니 강렬한 거 맞다. 비록 과거에는 피카소랑 헷갈리기는 했다 하더라도...쩝...
샤갈이 그린 라 퐁텐의 우화는 꽤나 유명한가 보다. 나는 몰랐다. 그러니 달리 말하면 내가 무식했던 거다. 그런데 이 책을 보았으니 이제 유식해졌나? 그건 아니다. 그냥 샤갈의 그림을 몇 점 더 보았을 뿐이다. 제목이 [샤갈이 그린 라퐁텐 우화]라서 샤갈이 우선인지, 라 퐁텐 우화가 우선인지는 잘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샤갈이 눈에 더 들어 온다. 글과 그림이니 그림이 더 잘 들어왔겠지라는 견지도 있겠지만 라 퐁텐 우화는 왠지 허술하다. 그점에 대해 니가 순진하거나 순수하지 못해서 그런거야라고 한다면 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겠다. 사실 그런 면도 있으니까. 나는 어렸을때 잭이 콩나무를 올라갔다는 얘기를 듣고도 '구라 치고 있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물며 성인이 된 지금에 와서 우화가 재미있어졌다면 내가 미친 걸거다. 그러니 솔직히 말해 라 퐁텐의 우화는 재미없었다. 누구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것 같지 않냐, 라고 물어보기도 하지만 내가 동심이 있었던지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돌아갈 동심따윈 없는 지경이다. 산타틀로스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얘기를 7세가 넘도록 믿고 있는 아이들에게 상당히 침착한 목소리로 "너 바보 아냐?" 라고 무참하게 꿈을 짓밟아 주는 터에 무슨 동심이 있었나 싶다.
샤갈의 그림은 음...샤갈의 그림 다왔다. 뭔가 상당히 대충 대충 그린 것 같으면서도 강한 인상이 남는다. 미술사에 자주 등장하는 얘기처럼 비례가 맞지 않는 원근감이라든지, 개인지 여우인지 고양이인지 구분이 안가는 설렁 설렁이라든지, 뭐 그런 것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인상이 남는 것은 아마 색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샤갈의 그림은 우화와 잘 맞는다. 초등학생이 마구 그림을 그렸는데 다소 컬러풀한 물감을 사용했다면 그게 곧 샤갈의 그림풍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컹! 이쯤에서 미술의 무지함이 드러나게 되는가!- 아무튼 [사자와 모기]에 등장하는 그림이 퍽이나 인상깊었는데 그저, 좀 아는 척하는 표현으로 하자면 힘있는 역동감과 눈에 꽂히는 듯한 색감! 아무튼 샤갈 아저씨의 엄청 컬러풀한 그림 나름대로 좋았다. 라 퐁텐 아저씨의 엄청 대충 쓴 것 같은 소설도 뭐...유명하다니 그런갑다. 애들은 이런 얘기에서 교훈을 받나보지?
아무튼 무척이나 색달랐고, 한 편으로 마음의 여유도 느끼게 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 썩 괜찮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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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이 그린 라퐁텐 우화]라... 처음엔 이 책의 제목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안에 담겨있는 그림과 글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친절하게 책의 서두에 실려 있는 소개 글들을 읽으며 내 손에 있는 이 책이 정말이지 소중하고도 귀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냥 휘리릭 넘겨가며 잠깐씩 살펴보았던 그림들이 하나하나 특별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 누구나 이솝우화를 읽어보았을 것이다. 우화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주지만 때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이 싱겁게 끝나버리는 짧은 이야기들도 많았다. 라퐁텐의 우화도 그리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이솝우화에서 읽었던 이야기로 기억되는 글들도 있었고 도대체 이 허무한 글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짧은 글들도 있었다. 하지만 우화의 특성상 재미나게 그리고 막힘없이 술술 읽어갈 수 있었다. 글의 재미를 더해 준 것은 역시나 샤갈이 그린 그림들이었다. 뭐라고 정확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몽환적 느낌과 힘, 그리고 따스함이 스며들어 있어 보는 동안 잠시 내 자신을 잊곤 했다.
흔들거리는 버스 속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엠피3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는 조금씩 그리고 가만히 라퐁텐과 샤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너무나 작고 예뻐서 가방에 굳이 한 권의 책을 넣어서 다니라면 꼭 선택하고 싶은 이 책을 통해 나는 즐거움을 느끼고 잠깐동안 세상사의 시름을 잊었던 것 같다. 출근길에 읽었기에 더 기억이 나는 걸까? 여하튼 꽤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인간이 자신의 생각이나 하고자 하는 말을 표현하는 방법은 각각 다르다. 그러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있고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도 있으며 혹 누군가는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영상물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글을 쓴다. 이러한 예술들은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각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우화 속에 멋지게 녹아들어 마치 글과 그림이 원래부터 하나였던 듯 보이던 샤갈의 작품들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굳이 가방을 싸서 멀리 떠나지 않았지만 잠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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