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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불안한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
결핍을 느끼지 않는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결핍은 채워지지 않으며 열정은 식어버리고 만다. 사랑의 비극은 여기서 발생한다. “한 달 후, 일 년 후”에도 당신은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미완으로 남는다. 지속성에 대한 회의와 불변에 대한 희구 사이에서 사랑은 언제나 불안하게 흔들린다.
프랑수와즈 사강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는 회의와 희구의 간극에 놓여 있는 사랑‘들’을 응시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랑은 결핍이 파생시키는 충동과 욕망들의 교차한다. 소설가 지망생 베르나르는 아내 니콜이 있음에도 조제라는 여인을 사랑하지만 조제는 자크라는 의대생과 동거 중이다. 한편 베르나르 부부와 가깝게 지내는 알랭과 파니 부부도 불안한 경계 위에 결혼을 유지하고 있다. 알랭은 젊은 연극배우 베아트리스를 욕망하지만 그녀는 알랭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베아트리스는 보란듯이 알랭의 젊은 조카 에두와르와 사랑에 빠진다. 베아트리스는 에두와르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구애가 즐겁지만 연극배우로서 성공하기 위해 연극연출가 졸리오에게 접근한다. 자크와 같이 지내면서도 시골에 은거한 베르나르를 찾아갔지만 다시 자크에게 돌아가는 조제, 베아트리스를 욕망하며 자신의 늙음을 한탄하는 알랭, 정직한 사랑이 배반 당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에두와르, 안정된 현실(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니콜과 파니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이들의 모습은 1950년대 프랑스 파리의 풍경에 머물지 않고 지금-여기에서 결핍에 시달리며 사랑하며 흔들리는 당신과 나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은가. 사랑의 언어는 사랑을 전달하지 못한 채 흩어지며 곁에 머무는 사람이 있음에도 욕망은 끊임없이 결핍감을 선사한다.
그렇게, 간다. 흔들리고 엇갈리면서 청춘의 문턱을 넘고, 세월과 함께 무뎌지다가 가는 것이, 결핍에 시달리는 인간의 운명 아닐까. “빗물에 젖은 담배”(155쪽)은 소설 속 인물들의 어긋난 관계를 은유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자신을 바쳐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의 결핍에 대한 은유로 확대된다. 사랑은 언제 시작되고 언제쯤 멈추는가. 대답할 수 없는 이 질문에 대한 탐구에서 사랑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비롯된다. 사랑은 완성되지 못하며, 결핍이 생성하는 에너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이 안타까움이 사랑을 아름답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어긋나거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랑을 한다. 어긋난 관계는 상처로 남고 상처는 개인의 기억과 결합하여 “대도시 한가운데에 만들어내는 조그마한 구역”(143쪽)들을 만들며, 맹목이 만들어낸 행복감은 그 사람의 삶을 정당화한다.
당신은 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주는 슬픔에 저항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던 적은 없는가. “이건 말이 안 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 (…)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186쪽) 라고 말하는 베르나르처럼. 삶은 조제의 목소리를 빌려 이 질문을 돌려준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187쪽) 사랑은, 완성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순간들의 의미를 형상화하고 정리하려는 노력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력할 뿐인가. “너무나 부조리하고 이상하리만큼 정직한”(124쪽) 소설 속 인물들의 엇갈림은 회의와 쓸쓸함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이 감정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리라. 부조리한 감정 속에서도 정직하게, 자신의 곁에 머무는 사랑하는 이를 돌아보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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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알게 된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그녀와 만난 첫 소설은 매우 강렬하게 다가왔고 이내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새로운 그녀의 책이 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얼마지 않아 그녀의 책을 다시 접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추리 혹은 스릴러 장르의 책이 아닌데도 책을 읽는 내내 불안하고 초초한 긴장감이 사그러들지 않았다. 각기 다른 개성의 주인공들이 각기 다른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주인공들의 특징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고심했다.
빠른 호흡의 글로 지루하지 않고 주인공들의 뒤엉킨 등장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눈길 가는대로 읽어도 좋았지만 같은 문장을 한번 더 읽어볼 때의 느낌이 또 달랐다.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그들 자신이 되어 몰입해 보기도 하고 혼란스런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며 놀라기도 했다. 특히 글 속에 뭍어난 조제란 여성의 모습, 그녀의 사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들이 신선해 활자를 따라 읽어내려가며 책갈피를 넘기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때론 한없이 연약하고 위태로워보이다가도 그녀가 드러내는 그녀만의 신념에는, 특히나 사랑에 관한 그녀만의 정의 혹은 생각에서는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조제란 주인공이 주는 매력에 한없이 빠져 들었다. 사강과 가장 닮은 주인공이 조제란 인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프랑수아즈 사강. 섬세한 그녀의 필치는 비평가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지만 그녀의 다른 작품으로부터 직접 읽고 느꼈기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작가로서 타고난 그녀의 능력에 시샘도 해보고 글에서 느껴지는 그녀만의 매력에 또 다시 빠져든 시간이었다. 그녀의 전작을 하나 둘 조금씩 음미하며 읽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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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에 민감해진다. 하지만 확실히 그 때에는 웃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별하면 사랑했던 사람의 표정 중에서, 그가 웃었을 때 보다 무표정하거나 차가워보였을 때의 얼굴이 더 뚜렷이 떠올라 가슴 한켠이 미어진다.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과 사랑이 끝나려하던 때, 그리고 이별 후의 미묘한 감정 하나하나를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이란 이렇듯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놀랍게도 프랑수와즈 사강, 그녀는 그 찰나의 감정들을 누구보다 뚜렷하게 표현해낸다. 드러내지 못하는 날카로운 아픔까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사강을 처음 느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늘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 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번 쯤 사강의 책에 관심을 두었을 것이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스틸 컷 만으로도 사강이라는 작가를 알고 싶어졌다. 생각보다 그녀의 책은 찾아 읽기가 쉽지 않다. 몇몇 소설이 시중에 돌고 있을 뿐, 많은 작품은 절판 된 상태였다. 영화의 장면 속에 등장했던 책은 읽을 수 없었지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찾아 읽고 '아, 사강은 이런 여자이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절반은 소설 속 분위기에 감동했었고 나머지 절반은 지극히 통속적인 소재에 실망했었다. 그 소설은 아름답게 잘 꾸며둔 고전영화를 보는 듯했다.
아주 감미롭게 사랑을 주네요. 오늘 밤 당신의 눈 속에서 사랑의 빛이 가득하네요. 그런데 그대는 내일도 나를 사랑해줄까요.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
베르나르는 조제를 사랑했고, 조제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베르나르를 사랑하지 않았다. 빗겨나가는 사랑에 가슴앓이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나조차 허망해졌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에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나도 알아요.” “조제, 이건 말이 안 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
한 편의 영화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이 한 권의 소설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직도 나는 먹먹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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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낯선 이름이었다.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슬픔이여 안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역시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의 제목은 귀익은데 반해 작가의 이름은 무척 생경했다. 표지에 사용된 사진이 그녀, 프랑수아즈 사강이란다. 왠지 무성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그녀. 참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작가다. 책을 읽기 전, 그리고 읽고난 후에는 더더욱.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4)> 이라는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너무나도 인상적인 영화였고 또한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다. 그 영화의 여주인공 '조제' 가 사랑하는 작가가 바로 프랑수아즈 사강이며 그녀의 '조제' 라는 이름도 이 <한 달 후 일 년 후>의 '조제' 에서 따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 책을 읽기로 했다. '조제, 그녀는 이 책을 왜 좋아했을까?' 그것이 궁금해서 말이다.
프랑스 예술은 그들만의 냄새가 있다. 영화나 문학이나.... 낯설고 난해하고 또 무척이나 따사롭고 몽환적으로 다가오는 그 무엇. 이렇게 말하면 마치 프랑스 작품들을 모조리 간파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이나 사실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영화들이 대개 그런 느낌들이었다. <베티블루 37.2> 나 <아멜리에>.... 그리고 <타임 투 리브> 등등.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굳이 프랑스아즈 사강이 프랑스 국적의 작가인지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프랑스 작품이구나' 하는 느낌이 분명하게 들었으니 말이다.
이 책 역시 한 마디로 뭐라 꼬집어 말하기 애매한 그런 느낌이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과 교류, 그리고 그들의 소통. 그러나 그들은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다. 조제를 사랑하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나르의 사랑을 받는 젊은 조제, 조제가 사랑하는 자크, 베르나르의 아내 니콜, 말리그라스 노부부 알랭과 파니, 야심찬 배우 베아트리스, 에두아르와 졸리오. 이 아홉사람들을 한 눈에 들여다 봐도 무척 복잡하다. 그들은 사랑은 죄다 빗나가고 어긋나 있다. 또 사랑했던 연인의 식은 열정 뒤에 남은 싸늘함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사랑이 무엇인지 헤어짐이 무엇인지 서로를 갈망하는 마음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인간과 인간의 관계 사이의 괴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시작은 뜨겁다. 설레는 감정들.... 그러나 그것들이 사라지고 났을 때 찾아오는 무미건조함. 그렇다면 그것은 사랑이 식은 것일까? 변한 것일까? 아니면 그런 그 자체도 사랑의 본질 그 자체일까? 역시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참으로 오묘하고 애매한 것인 듯 싶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가 이 책의 '조제'를 따 자신의 이름으로 삼기로 한 것처럼 조제는 매력적이었을까? 글쎄.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은 참 많은 의문을 던져주었지만 역시 그것들의 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영영히 답을 찾을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독특한 캐릭터들과 세대를 초월한 사랑, 불륜, 사랑을 이용하는 모습등....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들.... 솔직히 이 작품은 난해했다. 그러나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여자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게끔 하는 매력은 분명 있는 책이다. 그것은 왜일까? 당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만났을 때 이끌리는 지적인 결핍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더, 제대로 읽고픈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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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쓸데없이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조도 아니고 속된말로 쿨한 영화인데 보고 나서 한참 동안이나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영화의 여자주인공은 스스로를 조제라고 소개합니다. 몸이 불편한 그녀는 집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데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달후 일년후'의 조제를 좋아하여 본인도 조제라고 불러주길 원했던 것이지요.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슬픔이여 안녕'을 아주 오래 전에 읽은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녀의 다른 책들이 무척이나 읽고 싶어졌는데 이번에 재출간되어 드디어 두번째 만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한달 후, 일년 후는 사랑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이 아니라 서로 어긋나고 허무하며 왠지 슬퍼지는 사랑입니다. 베르나르는 아내 니콜에게 더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며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인 조제에게 푹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조제는 자신과 너무나 비슷한 베르나르보다는 의대에 다니고 있는 자크를 선택합니다. 니콜은 베르나르가 더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며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사랑은 깊어갑니다. 베르나르 부부와 친분이 있는 알랭과 파니 부부 역시 행복하지 않습니다. 알랭은 화려하고 도도한 여배우 베아트리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만 그녀는 알랭에게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열렬한 사랑의 마음을 표시하고 있는 알랭의 조카인 젊은 에두아르와 연극의 여주인공 역할을 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졸리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온통 얽혀버린 사랑의 실타래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들은 참으로 사실적이라서 마음이 더 불편해집니다. 베르나르는 조제가 젊은 청년과 사랑에 빠진 것을 알고 질투심으로 괴로워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 때문에 너무나 불행하게 살고 있지만 오히려 좀더 재치있고 똑똑한 배우자가 되지 못한 걸 미안해하는 아내에 대한 연민을 느낍니다. 조제는 자신과 많이 닮은 베르나르를 사랑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결국 이별을 선언합니다. 베아트리스도 사랑 대신 야망을 택하고 결국은 성공으로의 첫발자욱을 내딛게 됩니다. 상실감에 조금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선택에 따라 어떤 것은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에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소설의 마지막, 베르나르가 조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요. 사랑이라는 걸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 말에 공감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열정이 넘치는, 불타오르는 사랑만을 사랑이라고 정의한다면 어떤 사랑이든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사그라들어 결국에는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뜨거운 감정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열정이 사그라들고 찾아오는 편안함과 신뢰감, 이러한 것도 사랑이 한 형태가 아닐까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신감을 갖고 있던, 좀 더 어렸을 때 읽었으면 좀더 공감하면서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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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았을 때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멋진 책의 디자인뿐 아니라 띠지에 새겨져있는 사강의 젊은 모습까지도. 하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단지 너무나 유명한 작가였고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강한 매력과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 알 뿐 정작 그녀의 작품은 읽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책은 많이 읽어 본 적이 없었기에 사강 그녀의 작품을 읽기에 앞서 내가 과연 그녀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내 진심을 다해 받아들일 수가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한 달 후, 일 년 후]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파리의 눅눅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단 한 순간도 밝은 태양의 따스함을 느끼지 못했다. 왜일까? 읽는 동안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시달리며 나는 원인모를 걱정과 편치 않은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스물다섯이라는 매력적인 나이와 그에 걸맞지 않은 부를 가진 여주인공 조제. 작가인 사강이 너무나 사랑했다는 조제라는 인물을 이 한 권의 책으로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조제를 사랑하는 베르나르와 자크, 그런 베르나르를 사랑하는 착한 아내 니콜과 옛 여자 베아트리스, 아름다운 베아트리스를 사랑하여 너무나 괴롭고 불행한 남자 에두아루와 그의 삼촌 알랭 등 그들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감정과 심연의 슬픔을 담은 프랑스의 감수성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나는 가슴 한 구석이 아파왔고 그 사랑으로 인해 받은 상처 속에서 이름 모를 치유와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리는 내 자신이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어지러이 흘러가는 감정의 물결 속에서 나는 프랑스 감수성의 끝자락을 겨우 붙잡아 이야기의 끝까지 힘겹게 끌려 간 기분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차마 다 알 수 없었던 여러 주인공들에 대한 연민과 그리고 사강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의 작품을 제대로 음미 할 수 없었던 부족한 내 자신 때문에 마음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손끝까지 저려오는 미세함 떨림을 느끼며 나는 사강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한 주인공 조제에 대해서도. 한 달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면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고 사라져 모두가 고독해질 거라는 베르나르와 그렇게 생각하면 미쳐버린다며 그를 토닥이는 조제의 건조하고도 힘 있는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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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보다 작가가 더 유명하다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달 후, 일년 후'를 읽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를 통해 귀에 익힌 후 줄곧 읽으려 했던 소설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머지?)로 미뤄지다가 지난 이틀 푹 빠져서 읽었다.
첫 장을 넘기고 조제가 얼마나 매력적인 여인인지 알 수 있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누구나 낭만을 꿈꾸기에 부족함이 없는 도시, 파리를 배경으로 등장인문들의 사랑의 화살표는 거침없이 엇갈리며 날아다닌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사랑은 깊은 슬픔이 되고, 어떤 변명이나 비열함으로도 감출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어떻게 보면 엇갈린 사랑에 대한 조금은 뻔하고 통속적인 이야기지만 이 책이 지닌 감수성은, 아니 사강은 특별하다 무엇보다 모든 인물들이 각각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빛난다고 느껴진다. 작가는 한 두 인물을 돋보이게 하려고 주변 인물을 퇴색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상황에 대한 사강만의 섬세한 묘사 방식과 같은 감정에 대한 작가만의 새로운 접근 방식이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책장을 덮으며 갑자기 프랑스어를 할 수 있다면...하는 공상을 해본다. 왠지 원서로 읽는다면 소설 속 인물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체념에서 오는 일종의 행복이 그의 위에 내려앉았다. 마치 이방인을 대하듯 자기 자신을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녀는 나에게 맞는 여자가 아니야." 알랭이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맞는 일 같은 건 절대 없어." 졸리오가 되는대로 말했다.
'그녀는 쟈크를 찾아내야 했다. 비난받기 위해 혹은 냉대받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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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후, 일년후(서울: 소담, 2012) 사랑, 열정, 자유를 노래한 프랑수아즈 사강과의 만남
2004년 심장과 폐 질환으로 그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19살의 나이에 발표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프랑스 문학비평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천재소녀'로 불리며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프랑수아즈 쿠레와'라는 본명 보다는 필명 '프랑수아즈 사강'으로 알려진 그녀의 이름. 끊임없는 스캔들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그녀의 삶에서 짙은 멜랑콜리를 발견합니다. '올바른 삶의 가치를 좇아 살아가는 이들은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를 옥죄고 자유를 반납하는 삶을 살면서 스스로 만족하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구속에 대한 자유, 가식적인 사랑에 대한 열정의 사랑입니다. ![]()
<살아있을때는 신드롬으로 죽어서는 신화가 되어버린 그녀를 만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독특한 영화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내용전개와 엔딩이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작품을 기억하시나요? 대학생 츠네오와 다리가 불편한 소녀 조제의 사랑을 잔잔하고 섬세하게 그린 이 작품에서 감독은 '연애의 시작과 끝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이 작품은 판타지적인 요소는 없지만 그로 인해서 더욱 큰 감동을 사람들에게 전해 줍니다. 사랑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환상을 자극하여 감성을 일으키는 이들에게 작품은 환상을 제하고도 사랑은 충분히 설명되어질 수 있으며 모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달 후, 일년 후>에는 아홉명의 남녀가 등장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이 없는듯 싶지만 자신이 무익한 존재라는 갖고 있는 '조제'는 마음에 드는일과 자신을 열광하게 만드는 일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를 중심으로 8명의 남녀가 있습니다. 이들은 미움과 그리움 그리고 사랑으로 얼기설기 얽혀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진 이들에게 사랑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지만 작품 속 남녀들의 사랑은 어긋남에 이은 짙은 그리움을 가진 망가진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직 작품 속 조제만이 어긋난 관계와 반복되는 시간에서 자유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제의 '사랑'에 대한 이해와 감정을 좋아 합니다. 한때의 '사랑'의 감정도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고 기억에서 지워질 것입니다. 연인들의 사랑은 열정적이고 젊음은 푸르름을 자랑하지만 그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할 것입니다.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랑을 해본 사람들이 경험하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달후, 일년후>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배제한 남녀의 솔직함을 담고 있습니다. 솔직함은 때로는 차갑고 비극처럼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한 사랑에서 허상을 제거하고 바라본다면 '사랑'이란 그리고 '젊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프랑수와즈 사강'이 전하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차갑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시간을 경험되어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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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에게 사랑의 짧음에 대해 말했다. “일 년 후 혹은 두 달 후,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136
우선 제목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하는 궁금함을 안고 책장을 열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자면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사랑... 열병과 같은 사랑에 푹~ 빠진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보지 못하게 하는 사랑이야기가, 그로 인해서 깨닫고 느끼게되는 행복, 기쁨, 이별, 상처, 외로움, 성공과 엉키고 설킨 실타래처럼 엮여서 한 폭의 영상으로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두께는아주 얇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 사람과 사랑 이야기로 꽉 채워진 책이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자부했었는데,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은 처음이다. 저자의 화려한 이력도 눈길을 끌었지만 책을 덮은 후 그녀의 또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정말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시간이 있는 사람은 결코,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눈(目)을 찾는다. 그것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77
아주 영리하고 매력적인 여인 조제, 결혼을 해서 부인이 있음에도 조제를 사랑하는 베르나르, 사랑을 오로지 성공의 발판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여배우 베아트리스 등 남녀간의 각기 다른 사랑법과 인생관과 그들의 삶을 통해서 사랑과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서 덤덤하게 써내려간 책이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외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어느 광고처럼, TV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자주 보았듯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사람을 가슴에 품은 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그들의 가슴 시린 사랑의 열병, 또 한때는 뜨겁게 열렬히 사랑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 열정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은 오롯이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정작 그이는 또다른 사람을 향해 등을 지고 서 있는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들을. 내게도 풋풋하고 가슴 설레던 사랑, 잠시도 헤어져있지 못할만큼 뜨거운 열병을 앓던 그때가 분명히 있었다. 토닥거리고 울고 웃으며 지나온 세월따라 함께 흘러온 나의 사랑은 지금 그 어디쯤에 어떤 모습으로 서있는 걸까?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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