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많은 우리말과, 시대적 상황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명작. 1901년부터 1906년 일본으로 가기 전까지 중경의숙에서 학문을 공부하고 문학에 처음 접함. (부친은 법학을 하길 바랬으나 문학을 더 좋아함.) 그는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 일본의 다이세이 중학(大成中學)에서 수학하였다.[9]
그는 항일의식을 자결로 실천한 아버지가 남긴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하지 말고 저항하라'는 유언을 그대로 받들어 실천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괴산에서 충청북도 최초로 참여하였다.[12] 상하이로 건너가서는 이광수를 다시 만나기도 했다. 이때 그는 이광수와 친밀하게 지내며 그에게 톨스토이를 권했다고도 한다.[13] 홍명희는 조소앙, 이광수 등과 함께 상하이에서 궁핍한 생활을 계속하였는데, 이광수는 '도저히 상하이 생활을 못하겠다'고 선언하고는 귀국길에 오른다. 하지만 홍명희는 이광수를 버리지는 않았다.[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