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릭 게코스키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리뷰 수집의 본능, 그 고결한 지적 유희 “수집가들은 괴이쩍은 족속이다. 그들은 강박적이면서도 충동적으로, 은밀하면서도 끈질기게 움직인다. 그들은 애독하는 작가의 저작물을 수집하며, 순진하지만 제 나름으로 평가하는 것이 통례이다.” -P83 中 무엇인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물건을 보면 호기심이 동해 이리 저리 살펴본다. 호기심은 이내 소유욕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로 이 억제할 수 없는 거대한 본능, 소유하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엔 분야별로 너무나 다양한 수집대상물이 있다.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우표나 장난감, 전화카드, 엽서, 복권, 화폐뿐만 아니라 자신의 취미를 확대시켜가는 과정의 일환으로 일반인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금액을 지출하며 회화, 조각, 보석, 시계 심지어 억대의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실상 인간이 지구상에 만들어 놓은 모든 것들은 빠짐없이 수집의 대상이 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수집의 영역은 바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엄연하게 다른 수집대상물과는 차이가 있다. 다른 수집의 대상물보다 현저하게 많은 양이 만들어진다는 점, 따라서 책의 가치를 판별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와 수집가의 몫이며 또한 그 책을 읽고 즐기는 사람들의 주관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수집품들이 인간의 오감<즉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에 의존하는 형이하학적인 산물이라면 책은 시각을 통해 Text를 받아들인 뒤 사고와 이해를 통해 즐기는 형이상학적 가치를 가진다는 점이 아닐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해마다 쏟아지는 책의 양은 전 세계적인 통계를 합쳐보면 어마어마한 양이 될 것이다. 이런 출판물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즉, 수집의 대상이 될 만한 가치를 지닌 책을 찾아내는 능력은 수집가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데. 이 점이 바로 책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일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책’이라는 수집물은 수집가에게 끊임없이 공부를 요하는 괴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이나니 그것이 바로 책 수집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스무 권의 책, 그 독특한 이력서 이 책을 쓴 릭 게코스키는 서구 희귀본 거래시장에서는 꽤나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소개하고 있는 책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거의 예외 없이 거래의 이력까지 소개하고 있는데 문학을 전공한 학자에서 책 거래라는 영역으로 변신을 시도한 작가의 성공 뒤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첫째. 수집과 거래의 영역을 정확한 범위로 한정했다는 점. 바로 20세기 영문학이라는 범위 안에서 책들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평가했다는 점이다. 또한 20세기 영문학은 작가가 전공하고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야로서 그 작품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동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학문영역을 발판으로 삼아 거래에서 실패 보는<물론 “좀 더 받을 수 있었는데...” 라는 후회는 늘 남지만...>확률이 적었다. 둘째는 자신만의 정확하고 독특한 서지목록을 작성하여 관리하고 주문을 받았다는 점을 성공요인으로 들 수 있겠다. 금세기 최고의 문제작으로 들 수 있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시작으로 필립 라킨의 詩까지 이미 우리에게도 친숙하게 들릴 정도로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스무 권의 책에 얽힌 일화와 작가의 집필과정, 원고가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관여한 편집자, 출판인, 인쇄공 그리고 후원자와 작품창작의 모티브가 된 지인, 연인에 이르기까지 책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어 한 권 한 권에 얽힌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는 법이니까> 이 책은 말 그대로 스무 권에 대한 각각의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력서인 셈이다. 내용과 형식의 조화 형식적으로 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출판단계에서 기획한 책들이 있다. 다른 판본보다 화려하고 고가의 제본과 장정을 한다든지, 2절판 등으로 크기를 키우고 좋은 종이에 컬러도판을 많이 삽입하여 한정수량으로 제작하고 고가에 내 놓는 책들이 그러하다.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에서는 4번 챕터에 T. E 로렌스의 [지혜의 일곱기둥]이라는 책의 독특한 이력을 밝히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형식을 사용하여 한정판으로 찍은 책인데 저자역시 당대 수많은 평론가들의 평가에 동의하는 듯하다. 바로 “내용에 대한 형식의 승리” 라는 점 말이다. 이 책의 14번 챕터에서는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올라 작가를 일약 돈방석에 앉혀준 J. K 롤링의 [해리포터와 현자의 돌]에 대해 그 내용의 가치보다 비싸게 거래되면서 수집가들 사이에서 열풍처럼 번져나가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초판 1쇄본 수집열기를 냉철한 평론가의 눈으로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8번 챕터에서 저자는 잭 케루액의 [길 위에서]의 두루마리 원고가 크리스티 경매에서 243만 달러<2001년 당시>에 낙찰된 사건을 소개하며 거액을 지불하고 소유권을 가지게 된 낙찰자가 남긴 말을 우리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나는 이 원고를 관리하는 집사역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것을 소유할 수는 없다. 세상의 이치란, 티끌에서 온 것은 티끌로 돌아가기 마련이니까!” 잘 생긴 책 한 권 들춰보는 즐거움 이 책은 표지디자인이 무척 세련되다. 중앙에 세로로 정렬된 깔끔한 서체의 제목과 작가, 역자, 출판사 순으로 배열된 표지디자인은 간결하면서도 시선을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 이동시키는 힘이 있다. 제목 중 큰 활자의 손글씨체로 인쇄한 “책”활자의 바탕으로 갈색 가죽장정의 양장본 책이 배치되어 있어 바탕무늬의 산만함을 이겨내고 시선의 집중이라는 어려운 역할을 무리 없이 해 내고 있다. 갈색 톤으로 정리된 책등과 뒤표지 역시 앞표지와 동일한 바탕무늬를 사용하여 통일성을 지니고 있으며 저자의 사진과 이력, 옮긴이를 소개하고 있는 책날개 부분도 평범하지만 단정하다. 속표지 전에 삽입된 면지에는 본문의 내용 중 언급된 스무 권의 오리지널 책 표지가 모두 인쇄되어 있어 본문을 읽으며 한 번씩 들춰보는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본문의 편집체제 역시 훌륭하여 스무 권의 책을 01-20까지 각각 챕터로 구분하여 놓았고 특히 소개하는 책, 각 권의 시작표지에는 그 책을 쓴 저자의 사진과 책 표지, 소개 된 책에 쓰인 헌사와 저자의 서명도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책을 한 단계 더 돋보이게 한다. 오랜만에 보는 안정되고 아름다운 편집이다. 더 많은 도서수집가가 생겨나길 기대하며 작가는 11번 챕터에서 소개하고 있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관한 후일담에서 점점 책의 내용에 대한 평가에 기인한 수집보다 일관성 없이 경제적 가치로만 책을 대하며 이루어지는 즉, 책 내용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지 않고 투자수단으로서 책을 사들이는 몰지각한 졸부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건전한 의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저작을 한 권 한 권 수집하며 느끼는 즐거운 지적유희가 점점 사라지는 현상에 대한 아쉬움은 이 글을 쓰는 필자역시 느끼고 있는 바여서 작가의 생각에 깊이 동감하게 된다. 전작주의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이 작은 글의 말미에 옮겨 놓는 것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많은 예비 도서수집가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아쉬운 사실은, 요즈음에는 한 작가의 작품만을 수집하는 전작수집가(Single-author collectors)가 더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년 전부터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작가가 생산해낸 모든 문헌을 구하는 수집가는 엄청나게 많았다. 작가 이름으로 발행한 책은 물론 다른 책이나 정기간행물에 기고한 글, 그밖에 온갖 잡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수집욕을 지닌 소유자는 그가 선호하는 작가의 외국어 번역본이나 재발행 판본도 찾는다. 재력과 심미안을 아울러 갖춘 수집가는 작가의 원고나 편지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작가에 대하여 쓴 저작은 물론, 작가의 수택본도 수집품목에 추가한다. 이것은 유명세 높은 책의 완벽한 판본만 손쉽게 훑는 행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노고와 애정을 투여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수효가 적어서 희귀한 것이 아니라 가치가 높기에 희귀한 것, 물신숭배나 금전 가치 때문이 아니라 연구 가치가 높은 것을 찾아나서는 작업이다. 더 많은 돈을 쏟아 더 깨끗한 겉표지를 갖춘 판본으로 바꿔나가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전작 수집은 이보다 훨씬 더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전작 수집가 품속의 문헌은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원천이 된다. 책 수집이 소유와 투자의 울타리에만 갇혀 있을 까닭이 없다. 거기에는 특유의 감식 윤리(connoisseurship)가 요구된다. 수집가 자신과 타인 모두를 사로잡는 품목을 학자의 마음으로 창의적이고 실용적으로 모아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더 공부해야 하며, 감별 능력을 곱게 닦아야 한다. 가치의 희귀성, 오늘날 요구되는 바가 이것이다.“ P188-189 中 |
|
1. 책과의 인연
서재에 있는 책들을 쳐다보면 그 책들과 인연이 하나씩 떠오른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몇년전만 해도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을 들고 서점을 기웃거리며 책을 구입했다. 여러권으로 출간된 책이면 짝을 맞추려고 발품을 팔아 헌책방을 뒤지고 뒤졌던 기억이 난다. 초창기 모은 책 앞장에는 책을 사준 지인들의 글을 담아두었고, 책의 맨 뒷장에는 회독수와 날짜까지 적어 놓았다. 그렇게 내 서재에 꽂힌 책 한권 한권은 나와의 인연을 맺어왔다.
그런데 책과의 인연이 사랑으로 변질되고마니, 도통 책으로부터 헤어나올 줄 모르게 되는게 문제다. 서재에 꽂힌 책을 보고만 있어도 좋고, 새로 한권의 책을 구입할 양이면 설레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제 서재에는 헌책보다 새책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사실 내가 새책을 좋아했던 계기는 인터넷의 등장이다. 온라인상 서점간의 가격비교를 통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고싶은 책이 계속 늘어나고 책의 욕심은 더해만 가는 것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걱정이다. 2. 또 한권의 책과 인연을 만들며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저자가 그동안 희귀본거래업에서 맺어온 인연깊은 책들의 뒷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내고 있다. 스무권을 소개하고 있지만, 각 장마다 길지 않은 분량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서술되어 있어 독자로서는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한다. 물론 저자의 전공인 19~20세기 영미 문학작품에 한정되고 있지만, 문학적으로 유명한 책들이 잉태되기까지 작가들의 진솔한 모습들을 엿볼 수 있는 점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도덕적 시비로 출판사마다 거부당하며 '롤리타'의 원고를 들고 낙담해하는 나보코프의 모습, 고집세고 실랄한 '파리대왕'의 저자 윌리엄 골딩, 극도로 외부와 접촉을 피하는 은둔자 샐린저에게 소송을 당할뻔한 일.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돌킨이 새로운 작품구상을 위한 말년의 유유자적한 모습, 헤밍웨이의 아내 해들리가 원고를 분실한 사건, '악마의 시'의 살만 루슈디와 관련된 저자의 테러위협을 느낀 에피소드, 엘리엇의 작품을 섬세하고 세련된 책디자인과 제본을 맡아준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그레이엄 그린의 애정행각이나 로렌스의 위험한 사랑,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 남편의 사랑이 식어버리자 자살을 선택하는 실비아 플라스의 슬픈이야기까지..여기에 작고 앙증맞게 토끼그림을 표현한 비아트릭스의 '피터래빗'을 구입하고자 하는 충동마저 느낀다. (인터넷을 두드려보니, 피터래빗 그림책시리즈는 절판이라고..)
이뿐인가, 책속에는 다른 수집벽을 가진 사람들과 달리 책 수집가들이 새책과 다름없는 완벽한 책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순결한 상태로 획득해서 혼자만 희롱한다는 특별한 성적쾌락(p279)이라고 재미있는 해석을 붙이고 있으며, 눈에 들어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소유욕이 발산되어 강렬한 애착을 느끼는 힘, 유혹을 '책의 심리측량학'(p219)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희귀본의 매매과정속에서 흥정하는 모습도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고, 단순히 돈만을 위해 희귀본을 사고 파는 업을 넘어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모아 연구하는 전작주의를 강조하는 부분(p198)은 눈여겨 볼 필요 있다. 그리고 로렌스의 책에 대한 명언까지(p214)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소장가치 충분한 책이다...
3. 우리네 모습속으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도 고서부터 근대기 서적까지 26년간 10만권을 수집한 화봉문고의 여승구 대표나, 유럽출장중 고서점,벼룩시장을 돌아다니다 서양고서를 집중적으로 구입하며 이제는 서양고서관련 인터넷사이트를 운영하는 김준목씨를 존경한다. 그야말로 책에 미쳐 사는 사람들이다. 탐미주의자-표정훈, 전작주의자-조희봉씨의 책에 대한 애정행각은 부러울 뿐이다. 그들이 있어 책과 사람들이 아름답다.
다만, 요즘 가끔 출판사로 부터 신간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경우가 있다. 그 책들은 1쇄,초판본이지만 어떤 경우는 무식하게 책윗면에 증정용이라는 스템프까지 찍어오는 것도 있는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불쾌하다. 오히려 책에 저자의 정감있는 한마디의 말이라도 적어보내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신나는 일이 될런지 출판사측은 모르는 모양이다. 어떤 출판사의 앞서가는 마케팅을 기대하며, 독자들은 훗날 그 책을 잘 보전하면 희귀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유쾌한 상상을 해본다.
|
|
사실 스타가 처음부터 저 좋아 반짝반짝 빛났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알고 보면 무명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그가 좋아하는 스타라면 더 좋아하게 되고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가 좀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책을 좋아하지만 너무 잘나서 보기가 부담스럽거나 애증의 책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유명한 책을 낸 작가 역시 처음부터 어느 별에서 툭하고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나름 무명의 시절이 있었고 습작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지 않으면 나 같은 벽안의 독자는 알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잘난 책의 무명시절을 알게되면 '그들도 우리처럼'하며 끌어안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 릭 게코스키는 아마도 이 한 권의 책으로 그러한 분야에 있어서 탁월한 공로를 세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독서계의 빌 브라이슨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는 희귀본에 아주 관심이 많아 그것을 수집하고 그 과정을 취재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당연히 취재하다 보면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많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가치있게 빛나는 것 같다. 이토록이나 흥미롭게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유명 작가의 삶과 작품의 이면을 본다는 것이 왜 그리 즐거운 것인가? 그것은 마치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이었다. 노벨문학상은 어렵거나 지루하다는 그 편견에서 이 책 역시 조금도 비껴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 전 읽기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영화 보기엔 성공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이 책을 읽다보니 이런 문구에 눈이 멎었다.
"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손으로 쓴 원고인데도 수정한 흔적이 극히 드물었다. 나중에 그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그는 <파리대왕>을 집필할 때 줄거리가 머릿속에 워낙에 뚜렷이 새겨 있어서 글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냥 타자기를 두드리는 듯했다고 한다.(45p)"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질투가 나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신은 참 불공평하시다. 어떻게 여느 평범한 작가(또는 작가지망생)에겐 그토록 무지막지하게 자신의 원고를 고쳐야하는 천형을 주시면서 이런 사람에게는 타자기로 두드리듯이 한 번에 쓸 수 있는 은총을 주셨단 말인가? 그렇다면 윌리엄 골딩은 가히 문학계의 미켈란젤로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머리속에 이미 완벽한 조각상을 그려놓고 실제로 작업을 할 땐 그 나머지 필요없는 부분을 잘라낸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완성시켰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중요한 건 윌리엄 골딩이 그럴 수 있기까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그는 교직에 있었다고 한다)을 관찰했고 그것을 글로 옮겼다는 것이다.
" 인간이 엄청난 규모의 악을 행할 수도 있는 족속임을 깨달은 후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어떻게 변화한 것일까? 그의 학생들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인간의 비인간성에 공포를 느낀 그는 서서히 이와 관련된 새로운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것은 아이에 대한 아이의 비인간성이었다.(50p)"
그가 그렇게 타이프로 글을 찍어내듯 글을 쓸 수 있는 것엔 지난한 관찰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봐도 대단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문학에 이토록이나 잘 녹여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혜안에 탄복할 정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유명한 작품도 처음엔 푸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 스물두 군데 출판사에 보내봤지만 연속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어디 그 뿐인가? 나보코프의 <롤리타> 역시 그랬고, 우리가 그토록이나 추앙해 마지않는 저 유명한 롤링의<해리포터와 현자의 돌>도 12번이나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고 13번째에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헤밍웨이 역시 처음부터 잘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누구나 데뷔는 고단하다고 말한 바있다. 그밖에도 저자가 다루고 있는 작가들 역시 하나 같이 험난한 여정을 거쳐 세상에 빛을 보았음을 거듭 밖히고 있다. 그런 걸 접하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뭐 나름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세상의 한다하는 작가의 작품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쳤어.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지. 중요한 건 무슨 일에든지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않는 거야. 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론 그 반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도 그런 긴 무명시절이 있는데 나는 어느 세월에 뜻을 이룬단 말인가 하고 지레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뜻을 이루던 못 이루던 그것은 둘째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무엇인가를 해 보는 것과 안 하는 사람의 차이인 것 같다. 그래서 해 보는 것과 그래서 못하겠다는 사람. 그래도 세상은 뭔가를 안하는 사람 보다 하는 사람의 것이 아닐까? 물론 잘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쯤되면 당대의 출판사들 참 까막눈이라고 비아냥거리기라도 해야할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그렇게 유명한 작품에 퇴짜를 놓을 수가 있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들도 한마디씩은 다 했을 것이다. 누가 그렇게 될 줄 알았냐고. 아니할 말로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하나의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게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까 노벨문학상도 타고 명불허전이 될 수도 있었겠지. 그렇게 쉽게 예측이 가능한 작품이라면 그만한 명예를 안을 수 있었겠는가? 이 책은 그것 외에도 작가의 삶을 다루기도 하고, 희귀본을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들을 담백하게 전하기도 한다. 또한 유명 작가의 작품도 저자는 무작정 좋다고만 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잘 알지 못하고 지나갈 법한 면도 한마디씩 꾹 찔러주고 가는 날카로움도 지녔다. 그런 부분을 읽다보면 아, 정말?하며 작가와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기대를 갖게 만든다. 그러면서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어떤 생각과 정신을 가지고 읽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좀 더 깊은 안목을 가질 것을 주문하는 것 같다. 명작이니만큼 그 명성에 눌려 좋은 게 좋은 것이려니 안일한 자세로 책을 읽는 것처럼 안 좋은 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비판 정신을 가지고 읽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러고 저러고지간에 이 책에 소개된 작가의 작품을 언제 다 읽을까? 한숨이 나온다. 물론 꼭 다 읽을 필요야 없겠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보편적으로 소위 말하는 명작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읽지 않으면서 과연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마음이 무거워진다. 왜 책에 대한 채무의식만 늘어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안타까운 쳅터가 있다면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연합>인 것 같다. 그것은 작가 자신도 너무 아까운 삶을 살았으며 동시에 세상에 재대로 빛을 보지 못한 책인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엔 절판된 상태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소홀해지고 그래서 또 안타까움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책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으로 이런 좋은 책을 읽어 볼 수 있는 행복을 선사해 준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물론 알리 없겠지만.
![]() |
|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 <매드 하우스>에서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은 주인공의 자아가 투영된 곳이다. 글을 쓰고 싶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된 글이 써 쓰지지 않자, 점차 주인공의 정신세계는 분열되고 그와 동일선 상에 있는 그의 집도 주인을 따라 미쳐 간다. 주인공이 신경이 극에 달하자 집 또한 미쳐 괴물로 변하는데, 그와 집은 이제 동일한 자아가 아닌 각각 분리되어, 미친 집은 주인공을 살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단편 읽으면서, 유형의, 단순한 건물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집이라는 게 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리처드 매드슨의 집에 대한 극단적인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집은 주인을 닮아간다는 사실. 예로 깨끗하고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집은 주인의 의지대로 먼지 한 톨 없은 집이 되어가는 것이고 너저분하고 지저분한 소유의 주인이라면, 그 집 또한 쓰레기장과 같은 집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흔히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로 집이 주인을 닮는다고 하더니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표현일지도. 어쩜 집이 주인의 심리적 성격이나 행동을 여과없이 그래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마다, 그 집에서 뿜어내는 기운을 감지하고 그 느낌은 각기 다 다르니깐 말이다. 지랄 같은 성격의 소유자집에서 신경질적인 기운을 감지했다면, 취미 생활을 넘어 강박관념으로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수집광의 집은 어떨까. 수집대상이야 사람마다 천자만별이고 각양각색이지만, 그 수집 대상이 책이라면? 책에 미친 사람의 집을 방문하고, 방의 벽마다 차곡차곡 빼곡히 꽂혀 있거나 쌓여 있는 집을 방문하고 나서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미쳤군!
책이 좋아 책을 수집했다가 (단순히 책을 수집했다기보다는 읽고나서 그 책을 소유하고 싶다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희귀본 거래업자가 된 릭 게코스키의 집은 온통 책으로 도배가 된 매드 하우스 아닐까. 그는 분명 어린 시절 뛰놀기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조숙한 소년과 청소년시절을 보낸 후, 대학에 가서도 영문학을 선택해 번듯한 대학교수 자리를 꿰하고 앉아서 지루한 강의나 해대는 삶을 마무리할 듯 하다가, 우연히도 접하게 된 초판본의 신선한 매력과 설레임 그리고 짜릿함을 느꼈던 순간도 잠시, 초판본의 거래가 엄청난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는 미련없이 대학강사를 때려치우고 희귀본 거래라는 모험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다. 20세기 문학을 전공한 그는 주로 20세기에 출간된 영문학 소설가나 시인의 초판본을 다루고 있는데, 그의 책 <아주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영국의 BBC방송국에서 그가 진행했던 <희귀한 책, 기막힌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20세기를 산 소설가나 시인들, 나보코프, 조이스, 샐린져, 골딩, 케루액, 오스카 와일드, 조지 오웰, 로렌스, 실비아 플라스, 롤링, 베아트릭스 포토, 훼밍웨이, 이블린 워, 그레이엄 그린, 필립 라킨 그리고 존 케네디 툴등, 작가들의 숨겨진 개인적인 일화와 책에 얽힌 에피소드를 적절히 배치해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일단 한번 읽기 시작하면, 다른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각각의 챕터에서 다룬 인물들과 작품설명에 쏙 빠지는데, 개인적으로 톨킨, 그린, 툴, 롤링과 실비아 플라스의 책과 관련된 일화를 재밌게 읽었다. 제일 관심밖의 인물은 역시 덜 알려진 라킨.
나 같은 사람은 초판본이든 재판이든 그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해도 감지덕지한 사람이라서, 초판본을 소유하기 위하여 큰 금액을 덥석 지불하는 사람들이 좀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도 그 거래 금액이라는 것이 미술작품에 비하면 형편없다는 사실에 좀 놀랬다. 현재 초판본 거래는 그 작품이 좋아서 그 초판본을 소유하려고 한다기보다는 투기의, 금전적인 이윤을 목적으로 초판본 책이 팔리는 것 같아 씁쓸하기는 하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책이 관심을 갖는 다는 자체가 책에 관해서는 빠삭한 지식을 무장으로, 그 책에 대해 뭘 알아도 알아야 투기를 하는 것이라서 할 말은 없지만. 케루액의 자필원고는 200만달러에 스포츠 구단주에 팔렸지만 자신은 이 원고를 잠시 보관하는 집사일뿐이라고 한다는데, 그러면 다음에는 도대체 얼마에 팔려고!
난 초판본이라는 것에 관계없이 읽기 위하여 책을 모으는 사람이라 일단 내 수중에 책이 들어오면 왠만해서는 방출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릭 게코스키의 책을 읽으면서 책이라는 것도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한 권의 책이 불특정한 사람들과 만나 읽히고 나서, 무슨 운명의 장난으로 이 사람 저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되는 팔자의 책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적이니, 책에게도 팔자가 있다면 , 그런 책은 기구한 팔자라고 해야할지, 아님 팔자가 세다고 해야할지.
난 그림책에 관심이 있어 주로 그림책을 수집하고 있는데, 그 대상이 콜린 톰슨과 신데렐라 여러가지 여러 판본들이다. 때때로 영어권의 그림책 작가들의 놀라운 상상력이 동원된 알파벳 그림책도 모으고 있고. 간혹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정말이지 미쳤구나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물론 월급쟁이 아내다보니, 경매금액이 나의 경제사정과 맞으면 모으는 것이니깐, 단시간에 책을 수집한 것은 아니고 강박까지는 아니다. 최근에 나의 레이더에 걸려든 책은 코미네 유라의 <신데렐라> 이 책은 한 1년 남짓 일본아마존에서 품절이라서 구입할 수가 없었는데, 일본 경매시장에서 우연히 보게 되서 구입한 책이다. 일본 경매시장은 해외배송을 하지 않아 아예 들어가보지 않았는데, 작년 12월초에 일본야후경매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올라와 있길래 구매대행으로 구입한 책이다. 야후경매사이트에서 이 책 봤을 때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 책이 이사람 저사람을 만나 돌고 돌다가 결국에는 나란 사람과 만날 운명이었구나,하는 유치찬란한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원제가 <톨킨의 가운> 또는 <나보코프의 나비>이기도 한 이 <아주 특별한 책의 이력서>에서언급된 책은 어찌보면 기구한 생을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책 팔자 한번 더럽군 또는 기구하는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눈먼 애착심이나 투기심으로 한 책장에 정착되는 삶은 애시당초 포기해야 하겠지만 언젠가 탐서광에 책장에 안착하기를.
사람만이 운명적인 만남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나와 사물(책뿐만 아니더라도)이 각기 맺는 그 연이라는 것은 참. 어떤 식의 만남이든지 귀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길던 짧던 간에 그 동안의 인연이란 각자의 운명 속에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고.
|
|
이 책을 읽기전 책방에 얼마의 책을 넘기면서 책방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사장님께서 헌책방의 매력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한 이야기가 고인이 된 저자의 사인본의 가치 그리고 초판 인쇄본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 해 준 말들이 흥미로웠었다. 책이란 것은 나에게 아직도 그저 읽고 싶은 대상일 뿐 이었는데..그런 책을 찾아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런 가운데서 이 책을 만났으니 책 읽기의 기쁨은 배가 되어 있었던 상황이었다.
제목에서 이미 느낄 수 있는 바이지만 이 책은 하나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뒷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재미있었던 건 이 책이 단순히 책의 뒷이야기를 알려주어서가 아니었다. 저자의 책에 대한 수집에 대한 이력의 내용들이 재미를 더 하게 해 주었다는 생각이 들게되면서이다. 나는 헌책방을 주로 저렴한 책을 구입하기 위한 혹은 온라인상에선 이미 구입 할 수 없게 된 책을 찾아 보는 수단에 그쳐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책이란 것의 또 다른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절한 표현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책이란 그저 내가 읽어야 하는 대상의 그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책을 수집하는 과정의 다양한 이유가 책의 또 다른 매력으로 숨어 있었구나 란 생각을 이 책을 읽는 내내 하게 되었다.
아마도 헌책방을 찾아 다니는 이유가 더 늘어 날 거란 생각을 했다.
사실, 이 책은 책의 뒷이야기 그러니깐 세상에 이 책들이 얼마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오게 되었는지 혹은 어느작가의 독특한 성격에 대한 이야기들이 책의 중심에 있었는데 나는 책을 수집하는 그 과정의 매력에 더 빠 질 수 있었던 책으로 기억 하게 될 것 같다..
책이란 것이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 세상에 존재 하는 건 아니란 사실..그 것 만으로도 이 책은 흥미를 주게 되었고, 책들마다의 독특한 그 이력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책에게 다시 한 번 읽어 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한...책 이야기였다. |
|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오고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하지만 책장에 고이 보관하며, 애지중지하던 책들도 세월이 흘러 먼지를 먹고, 이사를 몇 번 하거나 친구 손에라도 한번 거쳐 왔다 하면 겉장이 떨어지고 처음의 하얗고 빳빳한 기백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누렇고 습기 먹어 종이가 부는 것이 처음에 가졌던 애정이 서서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소장하던 책이 새로이 교정보고 화려한 표지에 새로운 활자체로 재판이 되면 더욱더 기존책에 대한 애정의 급감은 심화되어, 버리기는 아깝기에 박스에 담겨 한쪽으로 치워지고 새로 산 신간들이 번쩍번쩍 빛을 내며 책장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데 여기 오래된 책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더구나 그 오래된 책으로 엄청난 수입까지 올린다니 정말 부러울 수 밖에..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의 저자인 릭 게코스키는 영문학 박사로 대학 강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 20세기 영미 문학작품의 희귀본을 수집.거래하는 직업을 선택한 이색적인 인물이다. 저자는 직업상 19~20세기 영미 문학사의 걸작들의 초판본이나 희귀본을 찾아내고 거래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책들의 이력이나 작가들의 일화를 이 책에서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솔직히 저자가 밝히는 헌정사가 담겨있는 초판본의 가격보다도 영문학 전공가로서의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대작가의 풋내기 시절모습 및 위대한 작품들의 출판에 얽힌 이야기들이 더욱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성애의 표현에 따른 음란논쟁으로 출판에 어려움을 겪었던 '롤리타'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율리시즈'의 제임스 조이스, 시대를 너무 앞섰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당시 연합국의 일원인 소련의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스탈린 묘사로 출판사들로부터 외면을 당한 사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비극적 삶, '파리대왕'의 윌리엄 골딩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J.D 샐린저의 괴팍한 성격, 작가뿐만 아니라 출판업자 및 번역자에게까지 사형선고가 내린 '악마의 시'의 살만 류슈디와 관련된 저자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 자살 이후 어머니의 노력으로 빛을 보게 된 '바보들의 연합'의 존 케네디 툴의 슬픈 이야기 등 저자 자신의 전공인 19~20세기 영미 문학작품 중 20권을 발췌하여 거래당시의 가격 및 에피소드 뿐만 아니라 작가와 출판에 관한 재미있는 뒷이야기까지 시종일관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필수적인 교양서인 것 같다.
책을 읽고나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에 파묻혀 살면서 금전적인 수입까지 올리는 저자가 마냥 부러웠다. 또한 남들이 알지 못하는 대문호들의 사생활에 근접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앞으로도 저자가 원하는 희귀본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아울러 2권의 출판을 기대해 본다.) |
|
사실, 희귀본 거래업자라는 직업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희귀한 판본이 경매 등에서 고가에 입찰되는 건 들은 적이 있지만, 전문적으로 거래목록까지 만들어 6개월마다 발행하며 책을 사고팔고 해서 차익을 남기는 직업이 있을 줄은... 참 타산적인 직업이면서도 책의 진가를 잘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오묘한 직업이다. 실제로, 저자인 릭 게코스키는 대학에서 영문학 강사였다. 평소에 책에 관심이 많고, 문학을 사랑하던 사람이다. 실제로 사진을 보니, 책벌레같이 생기셨다.ㅎ 전혀 상업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는, 흰 수염과 흰 머리카락의 인자한 할아버지 인상이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찰스 디킨스 전집을 샀다가 2배의 가격으로 되팔고 희귀본 거래업자의 길로 들어섰다.
20권 정도의 책에 관한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정말 아쉬운 점은, 내가 그 모든 책을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대부분 유명한 책이어서 롤리타, 호밀밭의 파수꾼,호빗,동물농장,해리포터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고 그 내용에 빠져드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지만, 그 책을 쓴 작가의 실제 사생활 얘기까지 엿들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재미있다. 나는 일종의 창작을 하는 작가가 인세나 수입, 그런 돈에 관련된 것을 어떻게 관리할까 궁금했었다. 작가와 돈. 참 안어울리는 단어인 것 같아서 말이다.(조앤 롤링을 보면 그렇지도 않지만) 다 저작권 대행인이 있고, 다 따로 변호사가 있더라. 정말 그들만의 세계가 있구나 싶다.
동물농장 편에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책 수집이 소유와 투자의 울타리에만 갇혀 있을 까닭이 없다. 거기에는 특유의 감식 윤리가 요구된다. 수집가 자신과 타인 모두를 사로잡는 품목을 학자의 마음으로 창의적이고 실용적으로 모아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더 공부해야 하며, 감별 능력을 곱게 닦아야 한다. 가치의 희귀성, 오늘날 요구되는 바가 이것이다.' 이 쪽 부분이 다른 작가들만의 얘기에서 벗어나 그가 유일하게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는 부분이다. 희귀본 거래업자라고....책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다고 해서 전혀 나쁘게 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원래 이 책은 BBC 라디오에서 기획한 <희귀한 책, 기막힌 사람들> 프로그램을 책으로 다시 엮은 것이란다. 내용도 재미있고, 구성도 깔끔해 읽기 편했다.
재밌는 사실도 여러 개 알았다. 조앤 롤링이 상을 휩쓸고 돈을 엄청 벌었지만, 정작 문학적인 가치는 별로 없다고 확신하는 비평가들이 많다는 것. 초판본이거나 작가의 헌사가 들어있는 책에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갖고자 하는 수집가들이 많다는 것. 흠, 오래되서 읽을 수나 있을까? 그냥 모셔두려고 사는 건가? 여하튼 희귀본 거래업자라. 일을 하면서도 가치있는 책들, 희귀성있는 책들을 실제로 볼 수 있고, 소유할 수 있으니 부러운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각각 작가들에 얽힌 에피소드들도 재밌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
|
희귀본 거래업자 릭 게코스키가 쓴 이 책의 원저는 '톨킨의 가운과 위대한 작가들과 희귀한 책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다(게코스키는 언젠가 톨킨이 처분한 낡은 가운을 판매한 적이 있다). 저자는 나보코프의 롤리타, 골딩의 파리대왕, 톨킨의 호빗 등과 같은 이십세기의 주요 영문학 작품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감칠맛나게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리고 이들에게 매혹되어 버린 희귀본 수집가들의 일화도 들을 수 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문소설 중의 하나로 꼽히는 '롤리타'가 선정성 때문에 출판업자를 찾지 못해 포르노 소설을 내던 곳에서 출판되었고, 이 출판사에서 출간된 저자의 자필 헌사가 있는 초판본은 26만 달러에 경매시장에서 거래되었다. 톨킨 책의 가격은 최근 10년간 나스닥 주가보다 상승률이 더 빨라, 게코스키는 젊은 시절 옥스퍼드에서 톨킨의 윗 방에 살던 당시 그의 서명을 얻지 못한 어릭석음에 한숨을 쉰다(톨킨의 이웃이었단다! 세상에!). 톨킨의 헌사를 얻은 책만 몇 권 있었어도 노후계획은 가뿐했을 것이라면서. 존 케네디 툴(일명 켄 툴)의 '바보들의 연합'은 작가 사후에야 어머니의 끈질긴 노력과 작품성을 알아본 어느 교수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출판되었다. 그래서 '바보들의 연합' 초판본에는 정작 저자인 툴의 서명이 있는 책이 한 권도 없다.
그 밖에도 이 책에서는 '동물농장', '율리시즈', '해리포터' 등의 유명한 책들과 오스카 와일드, 실비아 플라스, 헤밍웨이, 잭 케루액, 그레이엄 그린 등 저명한 작가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아내인 실비아 플라스의 애틋한 서명이 든 책을 별스럽지 않게 다루었던 계관시인 테드 휴즈나 너무 강박적이었던 샐린저와 관계되었던 일들을 저자가 이야기해줄 때는 솔직히 놀라기도 했다. 아니 전설 속 인물들과 그들의 변호사들과 통화를 하다니 이럴 수가....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었나보군.
학교에서 배울 때도 책으로 읽을 때도 작가들은 나와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다. 차라리 빌보 배긴스나 홀든 콜필드가 더 내게 가까이 있었지. 그런데 게코스키는 이들을 창조해 낸 작가들을 바로 우리 옆으로 불러낸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했던 주인공들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힘들게 태어났는지를 조곤조곤 말해준다.
아, 물론 게코스키의 본업에 관계된 초판본들의 가격(수십만에서 수백만 달러까지 가뿐이 간다)은 여전히 나와 가깝지는 않다. 솔직히 책과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거래'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은 불편했다.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책은 더 이상 일부 계급에게만 허용되는 사치품이 될 수 없었다. 초판본의 희귀성은 이런 상황에서 부를 증명해주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의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게 거액의 초판본 시장은 꽤 흥미로우면서도 상당히 속물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초판이건 10판이건 어때, 저자 서명이 있건 없건 뭐가 달라지지라고 생각하지만.... 뭐, 사람마다 몰두하는 분야는 다른 법이니까. (음...나도 미카엘 엔데의 'Die unednliche Gesichte' 나 헤세의'Narziss und Goldmund'를 저자 서명이 있는 초판본으로 구할 수 있다면 얼마되지는 않지만 기꺼이 내 통장을 다 털겠다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든 걸 보면 초판본에 대한 열정을 앞에서 속물로 단정한 건 성급했나보다.)
그리고 한 두어시간 정도 게코스키의 안내를 받으며 천상에 속해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작품들과 작가들의 세계와 철저히 지상의 세계인 희귀본 시장을 동시에 보며 느긋하게 쉬다보니 우리 나라의 초판본 시장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일어났다. 그래 다음에는 우리나라와 관련된 책들을 한번 찾아봐야겠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