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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러버] 새로운 인생을 위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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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느 날 주인공은 죽음과 맞닥뜨린다.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후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했던 평온했던 내 삶이 뒤흔들렸다.죽음에 대한 강렬한 인식과 서점에서 우연히 읽게 된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를 찾아 리스본으로 떠난다. 내 집, 내 직장, 익숙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책의 저자인 프라두를 만나기 위해 떠나게 된다. 이런 결심은 어떻게 가능할까?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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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느 날 주인공은 죽음과 맞닥뜨린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그 후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했던 평온했던 내 삶이 뒤흔들렸다.

죽음에 대한 강렬한 인식과 서점에서 우연히 읽게 된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를 찾아 리스본으로 떠난다. 내 집, 내 직장, 익숙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책의 저자인 프라두를 만나기 위해 떠나게 된다. 이런 결심은 어떻게 가능할까? 지금까지 평탄하고 평온한 일상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인식일까? 죽음 끝을 기점으로 삶을 되돌아 볼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지 않았다는 자각이었을까?

프라두는 명석한 지성의 소유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었으나 본인 자신은 불안하고 타인과 관계 맺기에 서툰 삶을 살았다. 뛰어난 재능이 오히려 재앙으로 인간을 고독하게 만들었다. 프라두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존재의 의미,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아버지의 바램으로 의사가 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통해 존경을 받게 된다.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을 프라두가 치료하면서 타인의 냉대와 멸시를 받게 되며 프라두는 독립운동에 나서게 된다. 독립 운동에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가 친구의 연인이라 고민과 번민을 하던 프라두는 결정적인 순간에 여자를 희생하며 다수의 생명을 보호하자는 움직임에 여자를 피난시키고 함께 도망갈 결심을 하지만 여자는 종속적인 삶을 프라두와 함께하는 삶을 거절한다.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경험한 프라두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병에 걸려 죽게된다.

“내 머리의 시한폭탄”은 프라두 뿐만 아니라 지금 나에게도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평온하고 안락한 삶에 만족하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나의 정체성과 의미와 보람있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한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은 진실해진다. 그동안 가면을 쓰고 좋은 포장지로 감싸였던 것이 벗겨지고 나의 맨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나의 내면의 본 모습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결국 인간은 죽게 되고 땅에 묻히게 된다. 책에서 공동묘지의 모습이 묘사된 부분에서 인간의 유한함과 나약함을 느끼게 된다. 내 삶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충실하고 성실히 임하고 싶다.

나의 마지막 때에 나의 본 모습과 대면할 때 후회없이 나는 내 인생을 나의 정체성과 의미를 갖고 살았노라 말하고 싶다.

주인공은 고전문헌 전공자로 나온다. 죽은 언어를 공부하는 모습에서 실제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영역 안에 머물러 있는 프라두가 떠오른다. 죽은 언어 고전 예전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의 유산을 탐구하는 것일까? 그 탐구가 지금 현재 내게 적용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과거의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일까? 과거의 삶에 머물렀던 프라두의 여동생을 현실로 끌고 나오는 주인공과 과거의 삶에서 벗어난 주인공이 겹쳐 보인다.

아무리 좋은 언어, 사상, 생각이라도 내 삶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과거에 머무는 죽은 언어와 같다. 아무리 작은 일이나 생각이라도 지금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내 생활에 밀접하게 적용될 때 살아있는 언어가 된다. 내 삶이 풍요롭게 되려면 생동감 있고 살아 있는 언어로 살아야한다. 나의 삶의 태도가 바뀌기를 바란다.

k****t 2024.11.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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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산문을 너무 많이 읽었나?--- [시집-리스본행 야간열차]
"그녀의 산문을 너무 많이 읽었나?--- [시집-리스본행 야간열차]" 내용보기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얼른 구입한 시집이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읽은 시집이었는데, 모처럼 긴 시간 여유잡고 넘겼다가 다시 돌려 넘겼다가 하며 읽었는데, 예전의 어떤 것처럼 몇 편 혹은 몇 줄은 옮겨 적고 싶어 볼펜과 노트도 옆에 두며 읽었는데.   작가가 바뀌진 않았을 것이고, 내가 바뀐 것인가? 공감대가 이렇게 떨어져서야 스르르 미안해졌다. 작가는 홀로 이 세상을 끌어안고
"그녀의 산문을 너무 많이 읽었나?--- [시집-리스본행 야간열차]" 내용보기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얼른 구입한 시집이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읽은 시집이었는데, 모처럼 긴 시간 여유잡고 넘겼다가 다시 돌려 넘겼다가 하며 읽었는데, 예전의 어떤 것처럼 몇 편 혹은 몇 줄은 옮겨 적고 싶어 볼펜과 노트도 옆에 두며 읽었는데.

 

작가가 바뀌진 않았을 것이고, 내가 바뀐 것인가? 공감대가 이렇게 떨어져서야 스르르 미안해졌다. 작가는 홀로 이 세상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음에 반해 나는 가족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데서 오는 차이일까? 그녀의 고양이도 예전의 그 고양이가 아니고 그녀의 권태도 내가 예전에 함께 누린 그 권태가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영락없이 생활에 찌든 아줌마가 된 탓인가 싶다.

 

홀로 이 겨울을 보내고 계시는 분들, 더러 쓸쓸하고 외롭지만 그만큼의 고독을 즐기고 계시는 분들, 적당히 세상을 비웃을 줄 알고 적당히 세상을 받아들일 줄 아는 분들, 따뜻하고 풍성한 꿈 따위 조금 멀리 내던져 놓고 시린 세상에 시달리면서도 오늘을 버티는 일에 삶의 가치를 담으시는 분들께, 이 시집이 위로가 되어 드리기를.

 

추위에 젖어 있으면서도 메마른 느낌을 주는 시들을 보고 잠깐이나마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YES마니아 : 로얄 j***6 2008.01.04. 신고 공감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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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의 기차에서 내릴 수 없는 이유
"우리가 인생의 기차에서 내릴 수 없는 이유" 내용보기
우리가 인생의 기차에서 내릴 수 없는 이유.     때때로 한 마리 쥐는 영웅 판거의 길로 빠져들고 때때로 나의 날카로운 사고는 그 그물속의 의미를 담는다. 아일랜드 수도사의 고양이에 대한 시다. 고양이가 쥐를 사냥하는 것을, 자신이 (시로써)언어를 사냥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고양이와 시를 생각하면, 늘 이 표현이 생각난다. 최근 신작 시집들에서 유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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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의 기차에서 내릴 수 없는 이유.

 

 


때때로 한 마리 쥐는

영웅 판거의 길로 빠져들고

때때로 나의 날카로운 사고는

그 그물속의 의미를 담는다.


아일랜드 수도사의 고양이에 대한 시다. 고양이가 쥐를 사냥하는 것을, 자신이 (시로써)언어를 사냥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고양이와 시를 생각하면, 늘 이 표현이 생각난다. 최근 신작 시집들에서 유난히 고양이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 감상과 좁은 관찰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결론이지만, 거의 여성시인의 시이거나, 모호와 미묘함 그리고 낯설음의 사이로 나를 데리고 간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시에서 만난 고양이를 정신없이 쫒아 가다 길을 잃는다. 낯설고 묘한 분위기의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두리번거리다가, 번뜩하는 고양이의 눈빛과 마주 하곤 섬뜩 놀라 뒷걸음친다. 정신을 차리면 고양이는 사라진 후이고,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손에서 시집을 놓지 못한다. 


황인숙보다 더 유명한 황인숙의 고양이가 있다. 고유명사처럼 된 ‘황인숙의 고양이’는 그녀의 시세계를 잘 대변해 준다.「리스본行 야간열차」또한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녀의 시가 고양이처럼 사뿐히 걸어 들어온다. 그 걸음걸이가 때로는 우아하고, 또 때로는 살금살금 얌체 같다. 따스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포근하고 나른한 낮잠에 빠져든 고양이처럼, 또 때로는 밤새도록 어둠을 헤집고 다니다가 지쳐버린 피곤한 고양이 같은.



기와 지붕, 슬레이트 지붕, 콘크리트 지붕, 천막으로 덮인 지붕,

굽이굽이 지붕들의 구릉과 평원을 굽어본다

지붕들이 품고 있을 크레바스 동굴들, 겹과 틈까지

샅샅이 굽어본다.

와우, 저 지붕을 쫘아악 펼치면

지상을 몇 번이나 덮을까? 견적을 뽑는데

은빛 천막 위에서

몸을 쭉 뻗고

일광욕을 즐기던 고양이가 예감이 이상한 듯

고개를 들어 둘러보다 나를 향해 얼굴을 멈춘다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걱정 마시라, 네 영역을 공유하기에

내 몸은 너무 무거우니까

저 空中空間의 활용자인 고양이를

고양이의 몸 안에서 뻗치는 기운이

고양이를 위로위로 올려 보내서

광활한 이 영토를 발견하게 했으리라

아드레날린 중독자인 고양이들이여

기울어진 지붕, 흔들거리는 처마,

말하자면 기우뚱함에, 그리고 지붕과 지붕 사이의 허공에

너희는 환장을 하지

그래서 마치 지붕들이 고양이를 낳는 듯

불쑥불쑥 고양이가 지붕 위로 솟는 것이다


뒤안길도 사라진 이 도시에서

지붕 위의 뒤안길, 발하자면 위안길에

살풋 호흡을 얹어본다.

                                   - 지붕 위에서 (p.20) -


혼동과 엉뚱함이 버무려진 시다. 고양이와 화자가 혼동된다. 시인이 바라본 지붕위의 고양이는 어쩌면 시인 자신이 될 수도 있겠다. 함께 영역을 공유할 수 없는 고양이와 화자는  존재의 불일치와 자아의 혼동을 보여준다. 일상의 시간과 가끔 삶의 순간을 파고드는 낯선 시간의 조우일 수도 있겠다. 묘하게도 혼동과 일치가 연결되고, 시인과 고양이가 겹쳐진다. 허공과 기우뚱함을 환장하는 고양이의 모습에서 혼동의 시간을 걸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보인다. 와우, 저 지붕위에 오르면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 나 역시 몸이 무거워 오를 수는 없겠지만, 지붕위에 올라 사색을 즐기는 ‘스누피’ 정도는 될 수 있겠다.



이렇게 피곤한데

깊은 밤이어서

집 앞 골목이어서

무뚝뚝이 걸어도 되는 혼자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죽을 것같이 피곤하다고

피곤하다고

걸음, 걸음, 중얼거리다

등줄기를 한껏 펴고 다리를 쭉 뻗었다

이렇게 피곤한 채 죽으면

영원히 피곤할 것만 같아서

그것이 문득 두려워서


죽고 싶도록 슬프다는 친구여

죽을 것같이 슬퍼하는 친구여

지금 해줄 얘기는 이뿐이다

내가 켜 든 이 옹색한 전지 불빛에

생은, 명료해지는 대신

윤기를 잃을까 또 두렵다

                     - 묵지룩히 눈이 올 듯한 밤(p.58) -



어스룩하게 어둠이 깔리는 밤, 눈이 올 듯한 밤하늘이 먹먹하다. 묵지룩한 밤하늘이 하루의 피곤이 쌓인 어깨 무게와 닮았다. 그 무게가 가늠되어 지니, 문득 서글퍼진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죽을 만큼 슬프고 힘들어도, 생에 대한 피곤함만으로 버무리는 삶을 아쉬워한다는 것은 아직 ‘삶에 대한 애착’이 남았다는 증거니까. 비록 옹색한 전지 불빛만 하더라도, 그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길을 잃지는 않을 수 있다. 비록 윤택하지는 못해도, 명료하진 못해도, 그 불빛이 희미하게나마 지켜준다면 말이다. 때론 모호하고 막막한 삶을지라도, 저 너머에 불빛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삶의 이유는 충분하다. 또 그렇게 무뚝뚝이 어둠 속에 발을 내 딛는다. 지겹도록 밟아온 특별할 것 없는 집 앞 골목길을, 끝이 보이지 않는 지겨운 비탈길을, ... 이제 그 길을 걸을 이유는 충분하다.


걷는게 고역일 때

길이란

해치워야 할

‘거리’일 뿐이다

사는 게 고역일 때 삶이

해치워야 할

‘시간’일 뿐이듯

                    - 세상의 모든 비탈 中 (p.70) -


어제도 오늘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그 사람들이나 지나다닌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골목쟁이

심심함이 바닥을 패고

시멘트벽을 금 내고

페인트칠을 벗긴다

낯선 강아지 한 마리가 흘러들거나

어느 집에 손님이라도 오면

골목쟁이는 두근두근

보안등을 밝히고 귀를 바짝 세운다


내가 몇 번도 천 번도 더 읽은

우리 집 앞 골목쟁이

골목쟁이도 날 훤히 외울 것이다

때로 골목쟁이도

다른 발걸음을 읽고 싶을 것이다.

                               - 골목쟁이 (p.34) -



시에 있어서 ‘고양이’의 역할은 무엇일까?  시인에 따라 ‘고양이’에 부여되는 상징적 의미는 다양하겠지만, 인간의 사고는 제법 유사한 면이 있으므로 동일 대상에 대한 유사 이미지가 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워스워드에서 보를레르 등 많은 시인들이 고양이의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 특이하게도 이탈리아의 타쏘와 영국의 스마트는 둘다 망상으로 인해 갇힌 정신병원 안에서 고양이에 관한 명시를 지어냈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함까지는 아니지만, 구지 싫어하다와 좋아하다의 사이에 넣어 본다면 ‘싫어하다’ 쪽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시에서 만난 고양이도 별로 반갑지 않다. 은연중에 고양이가 등장하는 시는 모호하고 난해하다는 편견이 자리 잡은 까닭이다. 잘못된 인식이고, 편견이다. 하지만 이번 ‘황인숙의 고양이’ 덕분에 나도 고양이들과 조금은 친해진 듯싶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말이다.


황인숙 시인은 ‘고양이가 사라진 동네는 사람의 영혼이 텅 빈 동네(고양이를부탁해 中)’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나의 영혼은 어디로?!

 

 

 

c******3 2008.01.25.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