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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道德經)의 원본은 81장 5,000자 정도 되는 분량이다. 한 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그 사상이 아주 깊고 넓은데, 표현은 너무 짧고 간단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략 1,500권의 주석서가 있었다는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350권 정도이다. 또한 <도덕경>은 동양 고전 중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었다. 비록 뜻은 어렵지만 그 뜻이 깊고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에도 모든 사람에게 큰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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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하면 날로 보태는 것이고, 도를 함은 날로 덜어 내는 것이다. 덜고 또 덜어서 함이 없음[無爲(무위)]에 이르면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爲學日益 爲道日損(위학일익 위도일손), 損之又損(손지우손), 以至於無爲(이지어무위), 無爲而無不爲(무위이무불위)]. 무위를 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爲無爲 則無不治(위무위 칙무불치)]."고 하였다. 이와 같이 무위는 인식의 오류로 말미암아 혼란해진 자기 자신을 정화함으로써 본래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하려는 방법이며, 동시에 세상을 다스리는 법술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위 [無爲] (Basic 고교생을 위한 윤리 용어사전, 2001. 12. 20., (주)신원문화사) 누가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고 했더라? 나에게는 유혹과 욕망과 격정의 시기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학군에 따른 욕망 지역이 생기고 그곳의 바싼 집값에 격정이 휘몰아치고 마음을 비우지 못함에 나날이 위태롭다. ' 그런데 이렇게 성경적인 노자의 말씀이라니, 노자가 말하는 도나 덕이 성경에서 말하는 비움, 솔로몬이 그렇게 외쳤던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다 헛되다 한 말씀 등등 과 너무 나도 맞아 떨어진다. 기원전이나 지금이나 마음을 비우는 것은 본연의 나로 돌아가는 것은 성인의 경지에 올라야 하나보다. 다이어트 해야 되는데 하면서 땡기는데로 먹고 있는 나의 모습, 운동해야지 하면서 누워서 책보고 있는 나의 모습, 집안 청소좀 해야 겠다 하면서 핸드폰으로 밀린 드라마 보고 있는 나의 모습, 비우고 비우고 덜어내고 덜어내야 하는데 음식도, 지식도, 물욕도 자꾸 채워 넣고만 있다. 아 오후 4시 어정쩡한 이 시간 배고픔이 몰려오네(음하하하) 노자는 지도자들이 꼭 한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비워지고 도를 알때 백성이 편해지는 것을 ... 보는 내내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보게된 내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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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은 예전에도 한번 읽어보려고 시도했다가 포기한 적이 있고 '동양철학에세이'란 책에서도 잠깐 읽었는데 개념 잡기가 쉽지 않았다.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란 책도 책장에서 낮잠 자고 있다.
이 책은 만화와 함께 내용면에서 과학이나 심리학, 역사를 조금씩 언급하면서 나름대로 쉽게 설명하고 비유를 들고 있어 한 두번쯤 읽으면 조금 이해는 될것 같다.
도덕경은 예로부터 '주석'이 무척 많다고 한다. 개념이 어려우니 그것을 풀어서 설명한 책이 다양해 질 수 밖에 없다. 이 책도 결국은 만화적 주석책인데 주석책이란 자고로 주석을 다는 사람의 시각이 조금씩은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개념은 내가 알고 있는 선불교의 개념과 많이 겹치는데 원래 선불교란 인도에서 들어 온 불교와 도교가 합쳐서서 완성되어졌다고는 하지만 저자가 선불교를 이용하여 도교를 설명한 것이 아닌지 약간 궁금하기도 하다.
이 책 한권 읽고 '도덕경'을 이해했다고 말하면 안되고 도덕경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문턱을 밟았다고 하면 될 것 같다.
Like the Flowing River Let it be Be surrender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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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도덕경>에서 여러가지 paradox를 이야기하였다. 예를 들면 그릇의 예를 들 수 있는 데, 그릇의 본질은 담는 것으로 그 가치가 그릇 안의 공간에 있지만, 사람들은 그 공간을 보지 못하고 그릇의 외형만 본다고 하였다. 나는 현대의 일상생활에서 이런 예를 여러가지 찾을 수 있었다.
- 사람들은 해야할 무엇을 하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보다, 하지말아야할 무엇을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 못 먹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보다,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 해야할 말을 하지 못해서 손해를 보기 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다. - 아이를 키울 때 적기에 무언가를 해주지 못하는 문제보다 관심은 갖고 있되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더 많다. 부모들은 자식을 키울 때 수도를 하게 되는 데, 대개 자식한테 원없이 해주는 힘듦보다는 아무 것도 해주지 않으면서 기다려보아야 하는 힘듦을 더 견디지 못한다. - 우리나라 평가단(?)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의 빈 공간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가 독서록을 쓰는 것은 생산적이라고 생각하나, 독서록 쓰기에 앞서 책을 읽는 것은 가끔 인식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책을 선택하기 위한 시간이나 책을 읽고 독서록을 쓰기 전에 생각하는 시간은 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러나 공부는 외부에서 주입되는 시간보다 내재화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외부 평가단은 그것을 그냥 소모적인 시간으로 본다. 현재 이런 국민성을 가진 사람들이 과거에는 어떻게 서양화와 달리 공간의 미학을 구현한 한국화를 발전시켰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 따라서, 노자의 철학과 사상은 우울하다면 가장 좋은 정신적 양분이 된다. 무언가 한다는 것은 결과의 표출이요,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은 생산적 시간이다. 그릇의 비유가 그것을 말해주는데, 공간이 그릇의 효용성이고, 그릇의 외형은 그 결과의 표출일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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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유난히 혼자 걸어갈 때,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다. "도를 아십니까?" 그러는 댁은 아시는지......^^ 사서삼경에는 속하지 않지만, 도덕경, 정말 중요하고 난해하다. 알듯 말듯, 어렵게만 느껴지던 도덕경을 만화로 만났다. <만화 노자 도덕경>으로 노장사상 도덕경에 한 단계 다가가본다. ’도와 덕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덕경>은 설교나 훈계만 늘어놓는 그런 지루한 책이 아닙니다.’ 저자의 이야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 ’도道’란 무엇일까? 도는 우주의 근본 원리이고, 덕은 그런 도가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용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도덕경에서의 유명한 문장, ’도가도 비상도 道可道 非常道’라고 했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참된 도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도대체 도는 무엇일까? 이 책은 도가와 유가를 잘 비교하며 이해하기 쉽게 구성하였고, 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다양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도덕경의 핵심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중국 역사의 흐름, 춘추전국 시대, 제자 백가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설명이 담겨 있어서 좋았다. 적절한 비유와 만화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이 책은 초등학생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지만,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유익한 책이라 생각된다. 어린이도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으면 여러 번 들춰보고 도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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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가장 신비한 인물이다. 공자나 맹자가 화려한 장미라면 노자는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다른 꽃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안개꽃으로 표현이 가능할까? 최근 공자의 유가사상 만큼이나 노자의 도덕경을 배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다. 모든 사상의 궁극의 목적이 치세안민(治世安民)에 중심을 두고 있으니 그 본(本)은 모두 같다고 봐도 되는 것이 아닐까? 도덕경이 난해하기 때문일까 사람들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책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들렀다 우연히 만화로 풀이된 도덕경을 집어 들고는 참 쉽게 풀이된 내용에 반해서 바로 끝까지 읽어 버린 책이 바로 이것이다.
책은 아이들이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만화 그려졌고 또 내용이나 예시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었지만 어른들이 읽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전체 내용은 도덕경이란 어떤 책인가로 시작해서 노자와 도덕경의 내용을 당시 시대 배경에 맞추어 하나씩 풀어나간다. 특히 공자, 맹자 사상에 더욱 친숙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문화에서 도덕경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노자가 정의한 도(道)는 무엇일까? 노자는 도를 ‘도덕경’ 25장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누어지지 않은 어떤 무엇이 하늘과 땅보다 먼저 있었네.
노자는 도를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으로 규정한다. 다만 형체도, 그 내용도 존재하지 않는 힘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한다. 도가 있으면 구태여 충,의,효,신등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노자의 말이다. 즉, 인간사에 도가 없어지면서 충,의,효,신등을 정의하고 규칙과 규범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것이다. 백성을 구속하려는 제약이 많다는 것은 그 사회가 더욱 불안정 하다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노자는 이러한 도를 깨우쳐 덕을 갖춘 사람의 모습을 45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크게 이룬 것은 모자란 것 같지만 그 쓰임에 있어 끝이 없고,
득도(得道)의 경지를 갓난아이와 같다고 표현한다. 나이가 들수록 갓난아기의 천진무구함을 잃고 온갖 욕심으로 마음을 어지럽힌다고 표현하고 있다. 무릇 세상 모든 것이 욕심에서 시작되며 자신의 욕망을 덜어낼 때 진정한 도를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노자의 도덕경의 참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한다. 특히 한 나라를 이끌러 가는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 아닐까 한다. 노자가 말하는 정치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노자의 정치는 도의 정치로 대변된다. 그의 정치론은 가장 이상적인 정치 즉 태상(太上)의 정치는 백성들이 임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무슨 의미인가 ? 바로 임금이 백성들의 삶에 간여하지 않는상태, 백성들이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상태, 무치의 상태를 이야기 한 것이다. - 노래하는 멘토르 블로그 -
노래하는 멘토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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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이 서양사상과 차이점이라면...
서양사상을 직설적인데 반해, 동양사상은 상대적으로 은유적인 것이 아닐까?
노자의 도가 좀 난해하긴 하지만...
그 난해한 사상을 한권의 책으로 담기엔...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너무 많은 고민을 해야 되지 않을까??
시리즈 중에서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던 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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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막연하게 노자를 흠모해 왔었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했는데 도덕경을 보고 나니 허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가 부족하여 '도'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걸까? 아니면 이 책에서 내용을 쉽게 설명하지 못한 걸까? 당췌 먼 소리인지 모르겠다.
세상을 크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는 정도의 사상이 어째서 수천년간 주요 사상으로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이런 사상의 가장 큰 약점... 모두가 '도'를 이루고자 노력하지 않는 사회에서 농사 짓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이 아닌 이상, 이런 나약한 사고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는 이전 회사에서 수십억을 해먹은 관리이사가 항상 메일 말미에 추가하던 구절이 이 책을 읽고 나니 도덕경 비슷한 내용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역시, '도'가 무슨 죄가 있나... 죄를 짓는 뭤 같은 사람들이 없어져야지... |
| 도덕경. 고등학교 문과 학생 중 윤리와 사상을 공부하였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노자'의 유일한 글이다. 동양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이다. 어떤 고전보다 많은 주석서가 나왔다는 도덕경을 쉽게 읽자. 왜 주석서가 그렇게 많이 나왔을까? 아마도 그만큼 깊고 깊은 뜻이 담겨져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도덕경에 나오는 '도'라는 심오한 개념을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선 아주 쉽게, 마치 이야기를 쓰듯이 쉽게 써놓았다.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라는 책에도 도덕경에 대한 글이 있는데 그 글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소 철학적이고 애매한 노자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나의 수준이 부족했나보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초,중학생들도 도덕경이라는 최고의 고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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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도덕경>은 81장, 5000자 남짓되는 한자로 짧은 분량이지만, 깊고 넓은 사상으로 인해 현재에도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도 전해 내려오는 주석서가 350여권이나 될 만큼, 원문에 비해 그 해석이 매우 다양하다. ![]() 노자에 대한 기록도 정확하지 않다. 주나라 말기 초나라 사람으로, 기원전 5-6세기 경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책에서 노자는 말단 관리였던 사서로 소개되고 있는데, 다른 선생님이 가져온 책에 의하면 왕립도서관의 관장이었다고도 한다. 어지러운 춘추시대에 통치자를 위한 정치와 예만 강조되는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관직도 버리고 떠나려고 하는데, 국경 경비대장 윤희의 부탁으로 이 짧은 글인 <도덕경>을 남기고 떠났다니 정치에 일침을 가하려는 의도로 쓰여졌던 것 같다.
<도덕경>은 도와 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책이다. 그러기에 앞서 먼저 '도를 도라고 부르면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는 말부터 시작한다. 도라고 규정지으면 그 말에 얽매이게 되고, 도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영원하여 형체도 없기 때문에 이름 붙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가 구체적으로 삶에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덕인데, 즉, 도는 드러나지 않은 '무', 덕은 형상으로 드러난 '유'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닮아 있고 떼어 생각할 수가 없다. 노자는 도에 합치된 사회는 인, 의, 예, 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하였고, 그것이 없기 때문에 인, 의, 예, 지를 강조한 규범과 정치를 하고는 있지만 인위적으로 형식과 규범을 유지시키려 할 경우 혼란만 가중될 뿐이라고 하고 있다. 그는 모든 기준은 상대적이어서 기준이 매번 달라지고 계속 비교하므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런 고정관념을 없애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는데, 지나침을 경계하며 무위의 태도로 세상일을 처리하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물'에 빗대어 많이 설명하고 있는데, 1) 만물을 키우면서 댓가를 바라지 않는 점 2) 낮은 곳으로 흐르는 점 3) 어떤 그릇에 담겨도 순응하는 점 4) 정화작용을 하는 점 5) 이보다 약한 것도 없지만 물을 이길 것이 없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를 이기고, 스스로 만족하고, 부지런히 나아간다면 이미 도를 얻었다고 말한다. 또한 자기반성을 통해 스스로를 비우고, 사욕을 없애라고 말한다. 이렇게 살펴보다 보니, 우리들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도가 뭐지??? 끙.... 도를 안다고 하면 도를 모른다고 하잖소. 우리는 그러면 아는가보다. 에잇 점점 혼미해진다. 그래서 생각했다. 우리도 무위하고 싶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고 싶지만 세상이 힘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고 내가 지면서 살아가면 마음의 병이 생길 때, 또는 상대방은 전혀 변화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이 무소유고, 어떤 신념도 버릴 줄 알아야한다는데 그러면 개인도 사회의 요구와 자기의 필요에 맞추어 조금 더 애를 쓰며 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유가사상이 통치자의 학문이 되어서 정치 이념으로 삼아진 반면, 도가사상은 민간신앙과 융합되거나 하여 일반 중국인의 정서로 자리잡았다고 하는 만큼, <도덕경>을 모두가 실천하기에는 사상적 합의가 되기 어렵고 개인적으로는 적용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정리를 했다.
이 시리즈가 모두 그렇듯이, 각 장 뒤에는 여러 설명이나 자료가 더해있다. 그런데 이번 책 <노자 도덕경>은, 설명도 중복되는 것이 많고 내용과의 연개성이 적게 느껴져 흥미가 덜했다. 또한 글쓴이도 이쪽 사상을 공부하신 정신과 의사라서 그런지, 중독이라든가 에고(ego)같은 이야기까지 곁들여 설명하고 있어서 오히려 몰입이 떨어지고 새롭게 이해해야 할 영역을 추가시키는 느낌을 받았다. 원본 자체가 짧은 만큼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설명이 덧붙여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우리들에게는 좀 혼란스러웠다. 참여하신 한 분은 <깐깐한 공자맹자 유유자적 노자장자>를 읽어 오셨는데, 이것은 흑백 만화이고 원문에 충실하게 되어 있어서, 이것도 참고했다. 그래도 전반적인 내용을 컬러풀한 만화로 쉽게 담았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먼저 만화로 접한 후 다른 원문을 참고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원서로 보자면 일단 이번 생 내에 보게 될런지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