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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바로 기존의 잘못한 오해, 즉 훈구와 사림은 전혀 다른 존재들처럼 나뉘어 있다, 하는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한 점이 아니겠는가. 사실 논란은 무성한데, 제대로 발언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김범은 공식적으로 이 부분을 거론하자고 하니, 반가우면서도 만시지탄의 아쉬움이 있도다.
훈구와 사림은 언제나 고정되어 변화불가한 것 X 훈구와 사림은 맡은 직책에 따라 변화가능한 것 O
이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왜 이제껏 논의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위에 사진에 나오는 책) 저명한 한국학자 제임스 팔레의 주장과 이 책 안에서 자주 나오는 와그너의 주장을 깊이 연구한 배경이 있다고 보여지는 바. 좌우당간 지금 세상에서도 여당과 야당이 뒤바뀌고, 국회에서도 찬반과 보수-진보의 입장이 혼재되는 걸 보면, 옛날에도 훈구와 사림이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식은 아니었을 것이라.
뒤에 대단한 규모의 주석은 일견 심도를 갖추었지만, 또 일견 본문 안에서 읽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蛇足을 슬그머니 달아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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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왕들에 대한 호기심이 책을 들게 하였다.
저자는 세조가 공신의 힘을 빌어 왕위을 얻었기에 상대적으로 대신의 세력이 큰 상황에서 최고의 훈구대신인 한명회의 사위였기에 왕위계승을 할 수 있었던 성종이 왕권 확립을 위해 삼사를 활용한 대신의 견재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여 폭군 연산과 함께 연상되는 무오사화를 연산군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삼사의 기능 견재로 종중때의 기묘사화 또한 새로운 시도에 대한 반향으로 풀어내면서 75년간 조선 왕조의 근간이 되는 정치적 정립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담담하게 설명해나간다.
왕.대신.삼사라는 성종대에 형성된 정치적 구도가 안정점을 찾기까지의 다양한 여정을 무조건적인 동지와 적의 이분법이 아닌 역할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입장을 가진 정치적 추체를 통해 가지고 풀어내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 역사적 교훈 개혁또한 그 시대적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배경과 본질을 고려하지 못한 개혁은 결국은 더 큰 반향을 가져올 수 밖에 없음.
- 익숙하지 않은 용어에 대한 별도 설명이 조금 아쉬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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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 연산군 · 중종은 뚜렷이 대비되는 왕들이다. 성종과 연산군은 아버지와 아들이지만 그토록 대비되는 부자관계도 조선 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다. 중종은 반정을 통하여 집권한 왕이지만 반정에 실질적 역할이 없었기에 통치기간 내내 별다른 왕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사화와 반정의 시대>는 조선 최초의 사화와 반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화두로 던졌다. 3대 75년간은 정치적으로 안정과 불안정이 서로 교차되면서 후대 사람들이 그 시대를 읽고 평가 인식하는데 많은 흥미를 가져다준 시대임을 역설한다.
성종은 13살 어린 나이에 조선 왕에 오른다. 할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과 장인 한명회의 세력을 등에 업고 어린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든든한 정치배경은 재위 7년만에 친정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정치적 안정을 보장받았을 수있었다.
성종은 친정을 시작하면서 강력한 대신-의정부와 육조- 정치세력을 축소시키는 작업을 했다. 왕권 회복을 위한 방안으로 승지원을 정비, 원상제-의정부와 승정원 기능을 합친기구-를 혁파했다.
성종이 특히 왕권 강화를 위하여 대신을 견제하기 위하여 대간-사간원, 사헌부-에 홍문관을 통하여 삼사제도를 적절하게 활용한 것은 매우 적절한 방법이었다. 대간은 대신들의 탄핵하고, 간쟁을 통하여 견제세력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대간이 대신견제세력뿐만 아니라 왕권을 침해하는 월권을 보이면서 왕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권에까지 간섭하자. 불편함을 피력한다.
"대간은 참으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간은 능력 있는 사람을 한 자급 올리라고 명령하면 반드시 부당하다고 논박하면서 작은 일까지 거론하면서 우길 뿐 어진 사람의 침체와 정칙의 문제점, 국가의 대계같은 것은 말하지 않으니 매우 한탄스럽다.(64쪽)
하지만 성종은 대간의 이런 간섭에 대한 반응을 비폭력적 유교정치의 수행으로 행사했음에 눈길을 가져야 한다. 그는 왕권 강화를 지향하면서도 폭력적인 방법이 아니라 비폭력적 방법을 통하여 정치력을 발휘했다. 이는 <경국대전>이라는 법체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성종이 <경국대전>에 규정된 각 관서의 기능을 최대한 보장하는 수준 높은 유교정치를 궁극적인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어떤 정치세력에 대한 심각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자제한 결과라고 판단된다.(99쪽)
하지만 연산군은 달랐다. 조선 어느 역대 왕보다 연산권은 왕권 강화에 힘을 드렸다. 연산군은 왕권 강화를 정치적인 방법으로 찾아야 했는데 비정치적인 사건을 통하여 왕권 강화를 시도함으로써 대간을 견제하려했던 무오사화에서 대신과 함께 그들은 견제, 제거했지만 결국은 대신들까지 자신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치세 9년 2월 양기를 돋우기 위해 백마 고기를 진상케 한 연산군은 넉달 뒤 정업원에서 여승들을 범했는데, 이것이 본격적으로 음행을 자행한 발단이 되었다. 관청의 어린 계집종이 양민의 딸을 선발했고, 해금 잘 타는 기생을 일반인과 구별되지 않도록 편복을 입혀 입궔키도 했다. 특히 일반 관원은 물론 승지와 재상, 대신들의 부인이나 딸들까지 들게 했는데 이런 조처들은 일반적인 정치적 사안들보다 신하들의 반감을 증폭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131)
우리는 일반적으로 연산군을 폭군으로 규정한다. 김범의 말대로면 연산군은 도덕적인 폭군의 면모도 있었지만 그가 국왕으로서 정치적 사안과 비정치적 사안을 구별 못함으로써 스스로 무너져 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연산군이 아버지 성종처럼 <경국대전>을 중심으로 엄격한 법 적용을 통하여 국왕과 대신, 삼사가 서로 견제, 비판하면서 정치력을 발휘했다면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치지도자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판단력이다.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사를 강화시키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연산군은 스스로 무너져버린 것이다.
세조 때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이 발단이 된 무오사화는 김종직 일파에 대한 처벌이 삼사에 대한 탄압으로 확대되었다고 본다. 삼사에 대한 능상을 행동을 멈출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목적으로 보았다.
특히 <사화와 반정의 시대>에서 김범은 지금까지 무오사화를 '사림세력'과 '훈구세력'에 일어난 사건으로 규정하는 일이 적절한지 반문한다.
"'사림세력'의 종장으로 평가되는 김종직의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면모가 훈구세력과 그리 다르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많은 친연성을 갖고 있었다는 지적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123)
김범이 주장한 이 내용을 깊이 논의해볼만한 사안이다. 비정치적 사안과 정치적 사안을 구별하지 못한 연산군은 결국 조선 최초의 반정에 의하여 파국에 이르게 된다. 정치적 중흥을 위하여 반정이 일아났고 중종이 등극한다.
하지만 진성대군이 반정에 처음부터 개입한 것이 아니라 추대된 형국이기에 중종은 왕권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성종 초반 정희왕후 수렴청정과 원상 제도처럼 중종조 초반은 정국공신들이 정국을 주도했다.
정국공신 중심 시대가 지나면서 기묘사림이 등장한다. 기묘사림은 개혁성과 급진성을 가졌지만 정치력은 부족했다. 하지만 기묘사림의 중심인 조광조는 대신 중심의 정치 운영을 원했다. 그는 성리학을 아는 사람을 등용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이런 주장은 현재 통설인 '훈구세력'과 '사림세력'이 서로 이질적인 존재라는 학설과는 조금 다른 견해다.
"기본적으로 그는 신진과 구신의 재주와 덕행이 비슷하면 구신을 써야 하고, 반드시 대신과 상의해 일을 결정해야 조정의 기강 설 것이며, 육조 판서 위에서 삼정승이 결정권을 행사함으로써 대신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조광조의 태도는 '훈구-사림세력'의 차별서을 강조하는 현재의 통설에 재고의 여지가 있음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190쪽)
반정으로 등극한 중종은 기묘사화와 김안로 권신정치를 거치면서 말년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신임하는 인물 중심으로 정치를 했다. 즉 제도화된 정치력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정치를 함으로써 왕권의 핵심적인 권능인 정치적 조정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종이 연산군과 다른 점은 왕권 강화를 위하여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연산군이 비정치적 사안과 정치적인 사안을 구별하지 못하고 왕권 강화에만 몰두하다가 결국 파멸을 겪은 것을 반면교사로 삼았을 것이다. 대신과 삼사 역시 서로 적절한 견제을 넘어서면 모두가 파국에 이르는 길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화와 반정의 시대>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정치에는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가 강력해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왕권 국가인 조선도 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았다. 국왕도 대간들의 간쟁과 간언을 받았으며, 대신들도 대간의 탄핵을 통하여 견제를 받았다. 국왕과 대간, 삼사는 적절한 방법으로 서로를 견제했다.
하지만 연산군은 이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고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지엽적인 문제에 함몰되어 결국 파멸되는 비운을 맞는다. 우리 시대 역시 모든 정치 세력이 적절한 견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조선이 국왕과 대신, 삼사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 군신정치를 이룩한 것은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조선은 전제왕권 시대였지만 대신과 대간이 함께 정치를 한 또 하나의 민주주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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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와 반정의 시대’를 보면서 얻은 최대의 수확은 그동안 ‘훈구-사림’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버릴 수 있다는 것. 더불어서 선과 악으로 나눠서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있고 ‘왕-사대부’로 볼 것이 아니라 ‘왕-대신-대간’의 삼각 트라이앵글로 접근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대간의 권력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조광조 세력이 등장한 것이 기존에는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 책에 의하면 대간을 견제하면서 등장했다.(증거 자료 있음)
역사란 이렇게 재밌구나. 볼수록 새로운 것들이 새로 생기는구나.
이 책에 아쉬운 점. 내용은 토실토실한데 작가가 전문적으로 글을 쓴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핵심 포인트를 지나치게 반복 강조한다. 한두번하면 알아들을 것을 다섯 번씩 하는 건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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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다른 역사서를 읽다가 무심코 소격서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싶어서 이런 저런 네이버 검색을 해봤는데 4대사화와 관련한 네이버캐스트의 장문의 글이 재미있어보여 클릭해서 읽게 되었다.
오우..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사화와 당시정국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접근이 시선을 끌었다. 글쓴이를 보니 '김범'? 사실 전혀 모르는 분이였는데 예스24에서 검색을 해보니 두 권의 책을 쓰신 걸로 나왔다. 아, 이 분이 쓴 글이라면 믿고 사서 읽어볼만하다는 판단하에 바로 주문해서 읽은 게 이 책이였다.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기존의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너무 좋다.
솔직히 네이버캐스트에서 읽은 글 보다는 흡입력이 떨어지고
뭐랄까, 친절한 학습서를 대하는 기분이 들지만 (너무 반복해서 말하면 지루하다;; 이런 글을 초중고등학생이 읽을리는 없는데 --;;) 어쨌건 돈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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