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깊은 구절친구여, 나는 너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다. 너는 나와 1데나리우스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너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라.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에게 준 것과 똑같이 주는 게 내 뜻이다.
신약 <마태복음> 제20장 제 13~14절 같이 읽으면 좋은 책
#01 하나의 책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하나의 우주가 다른 하나의 우주로 나아가는 것만큼 멀고 아득해서 그만큼 중요하다. 어느 누군가가 청년의 때에 이 책을 읽고 크게 감동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고, 또 다른 어느 누군가가 그 어느 누군가에 크게 감동하여 이 책을 읽게 되었다면 어떨까. 책은 그저 한 권의 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책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얻고 생각하게 된다. 놀랍고 사랑스러운 일이다. 우주만큼이나. 2008. 03.13 Pm. 9:40
#02 이 책의 저자 존 러스킨은 수많은 문학가 혹은 학자들에게 염감을 준 사람이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그는 예술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가난한 사람들 혹은 특혜 받지 못한 계층을 위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꽤나 특이한 일이다. 일찍이 간디는 "한번 읽기 시작하자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삶을 이 책의 이상에 따라 변경하기로 결심했다. 나의 가장 깊은 확신 중의 어떤 것들이 러스킨의 이 위대한 책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에 반영되어 있었고, 또 그랬기에 그것이 나를 사로잡았고 내 생애를 변화시켰을 것이다"라고 자신의 자서전에 기록했다. 간디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나는 다짐했다. 꼭 이 책을 읽으리라.
#03 성경의 한 구절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에게 준 것과 똑같이' 삯을 주겠다는 그 말은 어쩐지 불공평하게 들린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하나님의 본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그중 특히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이 이것이다. 일한 만큼 삯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 비유는 내게 적절하지 않게 여겨졌다. 그러나 존 러스킨은 다르게 생각했다. 우리 주변의 특혜 받지 못한 계층은, 게으름을 부리거나 악해서 일찍 일하러 나가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약하고 정보가 없어서 일찍 나가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삯은 처음 온 사람과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그 무엇보다 앞서 나간다. 일찍이 복지국가의 표본을 보여준 것이 바로 이 구절이니까.
존 러스킨은 이 책에서 사회 정의에 대해 논하고 있다. 1800년대의 사람이었던 그가 말한 것들은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그의 책은 표지를 달리 하여 우리에게 끊임 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의 책을 가만히 읽고 있으면, '맞아 맞아' 하면서 심장이 쿵쾅 치게 되고 내 삶을 반성하게 된다. 나는 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는 나보다 적게 주어야 합니다'를 주장했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발버둥쳤다. 그런 내가 이 책을 만났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04 꼭 다시 읽어야 한다.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조금 더 많은, 불편한 진실을 깨우쳐야 하며 삶을, 사람을, 세상을 더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이 책을 처음 열었을 때 그 놀라움을 간직하고 싶다. '경제학의 최대 변수가 애정'이라는 것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한다, 나는.
진실로 죽어야 할 때를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77
따라서 고용주가 고용인들을 정당하게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아들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고용인이 되었을 경우 그 아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생각해보고, 지금 고용인들을 그렇게 다루고 있는지 엄숙하게 자문해보는 것이다. p80 -> 이 책을 제일 우선으로 읽어야 할 사람은 고용인이 아니라 고용주다.
제대로 저장하지 않은 수확물이 때 아닌 비에 젖은 것처럼 어떤 보물은 인간의 눈물로 젖어 있고, 어떤 황금은 햇빛을 받아 실제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기도 합니다. p101 -> 보물의 가치란, 얼마나 무의미한가.
한 무더기의 돈은 그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열 배나 많은 것을 창조한 활동의 결과인 것도 있고, 그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열 배나 많은 것을 없애버린 활동의 결과인 것도 있다. p 101
인간의 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황금이 가득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휘두르거나 움켜쥐면, 실제 황금을 소나기처럼 뿌리는 사람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p 105
자기 재산을 늘리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가난해질 뿐이다. 가난한 자를 가난하다는 이유로 탈취하지 말고, 곤고한 자를 상업의 장소에서 억압하지 말라. 주께서 그들을 노략한 자의 목숨을 빼앗으시기 때문이다. p 113
그렇다! 따라서 어부가 작은 청어 한 마리를 잡고 사냥꾼이 커다란 사슴 한 마리를 잡았다 해도, 청어 한 마리와 사슴 한 마리의 가치는 같을 것이다. 하지만 어부는 청어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사냥꾼은 사슴을 두 마리 잡았다면, 청어 0마리의 가치는 사슴 두 마리와 같을까? p 158
노동은 그 가운데에 생명의 요소를 많이 포함하느냐 적게 포함하느냐에 따라 고급한 것과 저급한 것으로 분류된다. 어떤 부류의 노동이든 간에 양질의 노동에는 체력을 충분히 조화롭게 조정할 만한 지력과 감정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노동의 가치와 가격을 말할 때는 반드시 그 노동이 일정한 등급과 품질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p179
이것이 자본의 진정한 본질이기 때문에, 그 결과 활동적인 국가에는 언제나 두 종류의 진정한 생산이 행해지고 있으니, 그것은 종자 생산과 식량 생산이다. 바꿔 말하면 '땅'을 위한 생산과 '입'을 위한 생산이다.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모두 곡창만을 위한 생산이라고 생각하지만, 곡창은 곡식을 보관하고 중개하는 기능만 할 뿐이고, 곡식의 분배를 통해서만 그 기능을 완수하게 된다. p 191
전쟁의 진정한 원인은 전 국민의 탐욕이다. p195
먹고살 권리도 주장해야 하지만, 그보다 큰 소리로 주장해야 할 것은 거룩하고 완전하고 순수한 권리인 것이다. p201
by pEP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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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결코 내용이 쉽지만은 않았으나, 밑줄이 절로 그어졌고, 책을 덮을 땐 탄성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내용의 깊이, 품고있는 가치,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위대한 책이다.. 이 작지만 위대한 책을 좀더 젊을때, 좀더 일찍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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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로 읽어보는 경제학 서적.
관심도 안 가고 잘 읽혀지지도 않고, 또 어렵게만 느껴지는 경제관련 책들은 '읽고 싶은 나의 도서 리스트'엔 항상 빠져 있는 종류 중의 하나다. 하지만 '경제관련 서적은 딱딱하다'라는 나의 선입견을 깬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제목만 봤을때는 그냥 소설책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 여러 리뷰들을 보니 이 책은 존 러스킨이 쓴 논문을 번역해 놓은 경제 서적이였다. 제목만으로도 나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이 책을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던게 12월이었는데, 이제서야 겨우 다 읽고 서평을 쓰게 됐다.
19세기 초에 태어난 존 러스킨은 부유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생활하던 사람이었다. 어릴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유럽 여러 곳을 여행하며 문학, 미술에 대해 눈을 떴으나 1860년대 이후부터 그의 모든 관심사는 경제와 사회문제로 돌려졌다. 시대에 맞지 않은 그의 인도주의적 사상은 그 당시의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그는 인생에서 최고로 힘든 시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읽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이 논문도 역시 끝을 내지 못하고 그는 인생의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러스킨은 '경제학'과 '부'를 이렇게 정의했다. 1.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물건을 열망하고 그 때문에 일하도록, 그리고 파멸로 이끄는 물건을 경멸하고 파괴하도록 국민을 가르치는 학문. 2. 한 사람이 무언가를 소유하면 다른 사람은 그것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 어떤 종류의 물건이든 상용되거나 소비된 물건에는 꼭 그만큼의 인간의 생명이 소비되었다는 것, 그렇게 사람의 생명을 소비한 결과 현재의 생명을 구하거나 더 많은 생명을 얻게 되면 그것은 좋게 소비된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 만큼 생명을 방해했거나 죽인 결과가 된다는 사실이다.
p196) 생명을 제외하고는 어떤 부도 있을 수 없다. 이 생명에는 사람과 환희와 찬탄의 힘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가장 부유한 나라는 최대 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사람을 양성하는 나라이고, 가장 부유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의 기능을 최대한 완벽하게 하여 그 인격과 재산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 경제학을 추구하던 이였다. 그가 말하는 경제학은 인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부의 척도가 돈에 의해서가 아닌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만큼 가치있게 활용하는 지에 중점을 두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우리가 부를, 재능을 사회에서 어떻해 써야 효율적으로 잘 쓰는 지에 대해서 설명해 준 책이다. 아직도 경제학은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절대 어렵지 않다. 삶의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는 성경책을 읽은 느낌이 들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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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이 우리에게 성장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강박관념에라도 푹 빠진 것처럼 사람들은 현재의 침체기를 못마땅히 여기고 있다. 선거 때마다 일제히 경제성장을 부르짖는 정치인들과 그런 그들에게 표를 던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은 마치 한 가지 목소리만을 용납하는 전체주의의 표본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성공을 경험하는 이들은 극히 제한된 소수에 불과하다. 과거 같았으면 ‘개천에서 용 난다’는 표현이 성립할 수 있을 정도로 드물게나마 지독한 노력이 신화를 낳았지만, 현재는 그마저도 대가 끊긴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세력에 표를 던지는 것은 아마 우리 자신이 겪고 있는 소외의 성격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다시 마르크스의 이론을 들먹이는 것은 늙수그레한 방식으로 여겨질 것이다. 지난 사회주의의 시도가 칼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이상적인 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곤 하여도 여전히 많은 이들은 그의 이론을 비현실적이라 여긴다. 또한 수정된 형태의 자본주의라 할 수 있는 몇몇 국가들의 복지모형 역시 지난 70-80년대를 거치면서 해체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를 그리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일지도 모른다. 현 체제를 고수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식의 자포자기라고 해도 좋을지… 자본주의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다는 점만 놓고 보면 존 러스킨은 마르크스와 닮은 꼴이다. 아니, 자본주의를 비판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특히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현대에는 그러한 인물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자본의 힘에 기대하는 세력이 더욱 강성해질 확률 못지 않게 높다. 그런데 러스킨은 마르크스와는 닮았으되 결코 같다곤 볼 수 없는 인물이다. 마르크스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유물론이다. 모든 것은 물질로부터 비롯된다는 이 입장은 반박하기 꽤나 어렵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진리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이는 객관적인 수치를 중시하는 경제학의 범주에서 마르크스가 언급될 수 있는 일종의 토대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반면 러스킨의 사상은 정신적이다 못해 종교적인 색채마저도 살짝 풍긴다. 정의, 도덕적 동기 등 기존의 경제학에서는 거의 고려되지 않던 용어들을 그의 글에서는 만날 수가 있다. 하인이 증기나 자력이나 중력처럼 계산할 수 있는 힘을 동력으로 삼는 기관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하인은 그와는 반대로 영혼을 동력으로 삼는 기관이다. 영혼이라는 이 특수한 힘은 경제학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모든 방정식 속에 하나의 미지수로 들어와, 그들의 계산 결과를 모조리 그르쳐버린다. 영혼을 동력으로 삼는 이 기묘한 기관은 많은 보수나 강한 압력을 받는다고 해서, 또는 됫박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연료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최대한 많은 양의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 기관의 동력, 바꿔 말하면 인간의 의지나 정신이 그 고유의 연료, 즉 애정으로 최대의 힘을 발휘하게 될 때에만 비로소 최대한 많은 양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p58-59 중에서) 개개인의 뚜렷한 개성만큼이나 그들이 품은 생각 역시 다양하다. 그렇기에 대개의 ‘과학’이라 일컬어지는 학문에서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고려가 애초부터 배제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선택을 많은 이들은 간편(?)한 분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전제로서 해석하고 받아들인다. 헌데 러스킨은 아예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게다가 그는 말한다. 우리 대다수가 지금껏 배워온 경제 원칙을 단호히 거부하고 경멸할 때 비로소 우리는 국가적 파멸을 피할 수 있다고…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상아탑 속에서 생성된 이론이 언제나 현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러스킨의 이론이 오히려 현실을 설명하는 데는 더욱 탁월할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우리 자신이 겪고 있는 소외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러스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일 수도 있다. 톨스토이, 간디, 버나드 쇼. 이들의 공통점은 러스킨의 책으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러스킨을 통해 새로운 인생에 눈을 떴다고 한다. 모두가 수치에 목을 매는 요즘,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우리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더욱 적절한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부유하게 사느냐가 아닌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사는가일 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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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그야말로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이슈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경제를 연구하는 경제학이 생겨난 이후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경제학이 주장하는 이론들은 의심의 여지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진리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특히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있는 지금 자본주의는 거의 정의에 가깝게 여겨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 책은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사회개혁 사상가로 인정받고 있는 존 러스킨이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경제학과 자본주의에 대한 반론과 함께 '인간'으로서 세워나가야할 경제학이란 어떤 것인가를 주장하고 있는 논문을 엮은 책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대한 반론이라고 해서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내용은 결코 아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며 '공동재산'이라는 개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확실하게 피력한다.
이 책의 내용은 이익을 추구하고 그럼으로써 부를 축적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추구해야할 정신적인 가치와 자세를 세우기를 촉구하고 있다. 4장에 걸쳐서 각각의 주제별로 경제에 대한 사회과학 지식이 부족하다면 다소 이해하기 애매한(어렵다기 보다는 애매하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내용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은 바로 이것인 것 같다.(이해하기 애매한 내용들이 많았지만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인간으로서 경제와 관련하여 추구해야할 정신적인 가치와 자세는 기독교적인 정신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주장이 성경에서 인용된 것이다. 이 책의 제목도 성경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반감을 가질 주제는 아닐 것이다. 종교적인 주장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도덕에 대한 주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이 책은 사회주의를 지지하지 않으며 따라서 부자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강자(부자)가 약자(빈민)를 억압하는 것을 보고 '저 강자의 팔을 부러뜨려라'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센 팔을 더 좋은 목적에 사용하도록 가르쳐라'라고 외치는 것이다. 부를 얻는 것은 용기와 지성이며, 인간에게 용기와 지성을 준 신의 의도는 부를 낭비하거나 남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이 아니라 그 부를 사용해서 인류에게 봉사하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없이 부를 축적했다고 해서 빈민들의 처지에 대해서는 그저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며 그저 자신의 부만을 누리는 사치는 인간으로서 무지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참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내가 번 돈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어떠냐'라고 자기만을 위한 과소비를 일삼는 사람들은 분명 타인에 대한 배려, 사랑, 동정, 공감 같은 인간만의 고귀한 정신을 모르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무지하다고 하는 것이다. 더 과장해서 생각한다면 고귀한 정신이 없는 동물조차도 자신의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지는 않는다. 필요 이상의 것을 다른 동물에게서 착취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결국 동물만도 못하다고 볼 수도 있다.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마치 당연한 정의인 것 마냥 여겨지는 현대 사회...아무런 생각없이 그 속에서 살아갈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추구해야하는 부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꼭 놓치지 마시길~('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라'...정말 너무도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도 결국 욕심에 눈 먼 인간의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받아들이는 독자의 가치관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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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가 영국 유학 중 친구에게 선물로 받고 읽은 후 크게 감동받았다는 일화를 읽고 존 러스킨과 그의 사상이 많이 궁금했었다.
그 이름을 알고난 후 내가 좋아하는 오스카 와일드도 존 러스킨의 사상을 따랐다는 것을 알았고, 내 관심이 더욱 커졌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완성했을 당시, 그와는 전혀 다른 맥락의 경제를 내어놓은 존 러스킨, 그런 지식인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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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나라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키기도 한다. 일에 대한 댓가로서 돈을 주고 받는다. 물건을 사고 팔때도 경제적인 관점에서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거래가 이뤄진다. 노사간의 대립은 항상 존재하고, 노동을 제공하는 자와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는 자의 괴리는 항상 존재한다.
초기 자본주의는 지극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요소는 배제된 채 경제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그리하여 자본을 가진 자와 노동을 제공하는 자 사이의 간극은 점차 넓어지고, 갈등은 깊어만 갔다.
존 러스킨은 영국의 자본주의 사회가 지나친 경제학적 관점에 따라 노동자를 혹사시키던 19세기의 인물이다. 그는 작가요 시인이며 예술평론가인 동시에 사회개혁 사상가이기도 하다. 아마도 예술과 문학적인 소양이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하고, 그것이 사회문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근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당시 영국사회는 강도높은 근무시간과 노동자의 착취가 자행되고, 자본가의 비정상적인 탐욕으로 얼룩진 사회였다. 이런 모습의 바탕에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않고 공장의 부속품과 같이 여긴 당시의 경제학적 분위기에 기인한다. 그리하여 어린아이들마저 자본가의 착취대상이 되고 노동자들의 평균수명이 25세를 겨우 넘는 수준이 되었다.
보통 우리가 알기로는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자의 해방을 주장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당시의 경제학에 경종을 울리며, 자본주의의 수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존 러스킨은 마르크스 이전에 이미 경제학의 병폐를 꼬집고 인간중심의 사회를 주창하였으며, 이는 당시의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책 제목인 '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포도밭을 운영하는 주인이 아침부터 일한 노동자와 오후 늦게 일을 시작한 노동자에게 똑같은 보수를 지불하고, 이에 대해 아침부터 일한 노동자는 반발하며 왜 같은 임금을 받느냐며 항의한다. 이에 포도밭 주인은 계약대로 임금을 지불할 뿐이며 이는 자기 마음이다 라고 대답한다.
하루종일 일자리를 구했지만 오후까지 구하지 못해 쩔쩔메는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고, 일한 시간이 적음에도 같은 보수를 주는 불평등은, 넓은 안목에서 볼 때는 '조화로운 불평등'이다. 단지 노동의 댓가로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서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부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존 러스킨은 주장한다.
일을 하는 주체인 인간을 제외한 채 이론에만 치중하여 경제학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비인간성을 경고하고, 인간을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영혼을 생각하도록 한 존 러스킨의 사상은 당대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돈을 벌고, 이윤을 창출하고, 부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한가지를 잊고 있다고 알려준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이며 인간답게 살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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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조리의 무덤에서 돈이면 모든것 사람까지도 구속하고 사람도 살해하는 이런 사회에서 행복의 척도는 돈이 아니라, 여유라면서 스스로를 자위하는 나에게 인간에 대한 바라보기를 일깨우는 책이었다 행복의 척도는 돈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마주보며 사랑하는것이다. 경제학자와 모든 재벌, 자본가들이 꼭 보아야 할 이다. 그들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댓가를 자신의 영위와 기름진 음식을 위하여 오늘도 재촉한다 더 많은 부를 달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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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러스킨의 명저 '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는 인디고 서원 허아람 선생의 강력한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간디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는 이 책은 1860년대 발표된 몇 편의 논문들을 모아 놓은 책인데 간디는 이 책의 이상에 따라 자신의 삶을 바꾸기로 결심했으며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간디'가 되었다고 한다.
경제서인 이 책은 일반적인 경제서가 가지고 있는 내용의 책이 아니다. 책의 제목인 나중에 온 이사람은 사회 경제적 약자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정직의 회복과 유지를 위해 부가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입장의 나에게는 마음 불편하게 하는 내용이 듬뿍 담겨 있는 몹시도 급진적인 주장의 책이기도 하다.
부와 돈은 타인을 지배하기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단호한 주장과 정당함과 합법적이라는 잣대 그리고 소비는 생산의 극치이고, 한 나라의 부는 오직 국민의 소비로만 평가될 수 있다는 주장과 소비가 생산의 결과이자 목적인 것 처럼 생명은 소비의 결과이자 목적이라는 주장은 일상적인 우리의 사고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그의 주장 중 몇 가지를 옮긴다.
"가장 부유한 나라는 최대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사람을 양성하는 나라이고, 가장 부유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의 기능을 최대한 완벽하게 하여 그 인격과 재산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인류의 이 진정한 복지를 향해 효과적으로 나아가려면 공적인 노력이 아니라 각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물의 본보기는 세상에서 출세하고 안하고는 하능에 맡긴 채, 자기는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기로 작정하고, 더 많은 부보다는 더 소박한 쾌락을, 더 높은 지위보다는 더 깊은 행복을 추구하기로 마음먹고, 마음의 평정을 제일 중요한 재산으로 삼아 평화로운 생활에 대한 무해한 자부심과 평온한 추구에서 명에심을 느끼는 사람들인 것이다." "평화나 평온은 자기가 먼저 얻지 않으면 남에게 줄 수 없는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모으는데 신경쓰지 말고, 돈을 유용하게 쓰는데 마음을 써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