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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이달의 읽을만한 책'으로 선정된 바 있는 <세계화?>. 세계화에 대해 전혀 모르는 청소년과 일반인들이 접하기 딱 좋은 눈높이의 책이다. 독일연방의회의 개발정책행동그룹 산하 경제협력위원회 등에서 정책 개발에 참여한 바 있는 다름슈타트 전문대학 초빙교수 토머스 슈뢰터가 쓰고, 한국노동운동연구소, 통일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 등을 거치며 활동을 한 유동환이 번역했다.
이 책은 세계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출발한다. 근대 초기 상업의 중심지에서 후추를 실은 배가 재고를 빨리 처분하기 위해 어딘가로 가고 있다. 향신료와 비단, 설탕, 담배 등을 실은 배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정보만으로도 상인들은 엄청난 이윤을 남길 수도 쫄딱 망할 수도 있었다. 원거리 무역이 발달하자 해적과 노상강도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이 생겨났고, 이것이 금융업의 시작이었다. 상업의 발달과 화폐의 활발한 이동은 곡물량이 15000-1600년 사이에 네 배나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빈부의 격차는 훨씬 커졌다. 이 책이 제시하는 장을 순차적으로 따라오다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도달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동시에 아주 오래 전 세계화의 출발점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그 모습만 달리해 오늘날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엔 언급한 근대 초기의 모습들은 모두 지금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식량은 증가했지만 지구 한 쪽에선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지구 한 쪽에선 매 끼니마다 음식을 버리고 있다. 버리는 쪽의 음식을 굶어죽는 쪽에 전달하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내가 요구하는 것을 위해 정의로운 전쟁도 불사한다. 언제나 평화를 추구하고,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는 미국이 최근 수십년간 가장 많은 전쟁을 벌여온 국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 한국,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쿠바, 콩코, 페루,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그레나다, 리비아,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파나마, 이라크, 보스니아, 수단, 유고슬라비아, 아프가니스탄까지 미국이 전쟁을 벌인 국가는 놀라울 정도로 많다. 그 무엇을 위해, 자유와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인권을 위해 불가피한 전쟁을 했다고 말한다면 세계가 웃을 것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세계를 재편성한 미국의 다음 목표가 어디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자원을 최대한 안 가지고 있는 국가일수록 안전하다. 정의로운 전쟁은 꼭 무기를 들고 벌어지진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브로커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타국으로 가서 굳을 일을 해가며 본국으로 돈을 부칠 수밖에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근대 초기의 원주민 노예의 다른 얼굴이다. 원주민이 강제로, 이들이 자발적으로 대륙간 이동을 했다고 해서, 강제이주가 잘못이고, 자발적 이주가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들이 타국으로밖에 올 수 없었던 원인을 제공한, 구조를 만든 이들이 잘못이다. 자원을 착취하기 위해 정의와 평화를 외치며 타국을 침공하는 이들과 자발적으로 건너온 이주 노동자들을 부릴대로 부려먹고 내팽개치는 이들의 모습은 다르지 않다. 과거에 비해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은 없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부드러운 모습으로 더 악랄하게 침투하고 있다. 자본은 한곳으로 흡입되고, 가난한 국가는 착취 당하고, 사람들은 버려진다. 한편으로 세계화는 교류가 없던 사람들 간의 문화적, 인적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사물과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지구 전체가 하나의 마을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해주기도 했지만, 그건 세계화의 아주 작은 단면일 뿐이다. 문화가 교류된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결국 문화는 다른 문화를 침식하고 들어갔고, 뒤이어 자본이 들어왔다.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통합되는 흐름이 세계화의 본질적인 모습이라 할 것이다. 세계화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 길을 찾아야되지 않겠느냐고. 세계화를 거부하고 막는다면 결국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죽는 것보다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부당하지만 조금이나마 착취하며 우리가 취할 것은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알면서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을까. 이 책에선 세계화의 대안으로 몇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유엔의 권한을 강화하고 개혁하는 것이다. 유엔은 국제통화기금 IMF와는 달리 1국가 1표 라는 평등권이 주어지는 대표적인 국제기구 때문이라 한다. 둘째, 코스모폴리탄 민주주의를 제안하는데, 여기서 요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국제기구인 유엔의 민주화(제 3세계 발언권 강화 등), 강제적 사법권을 갖는 국제재판소, 국제인권법원의 설립, 유럽공동체와 같은 지역통합정부, 국제군대 창설, 글로벌 의회 수립, 권리와 의무에 관한 신헌장 제정, 글로벌 법 체계 정립 등이다. 셋째, IMF의 지배구조 개혁이다. 현재 IMF, 세계은행, WTO가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해 힘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이런 말을 한다. "유럽의 소는 하루 2달러의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 그리고 후발 산업국 주민의 절반 이상은 그보다 적은 소득으로 살고 있다." p.s. 이 책은 주의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역사적 실례를 하나하나 객관적으로 살펴보면서 오늘날의 세계화에 도달한다. 그리고 대안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큰 틀에서는 주장하고자 하는 방향이 설정되어 주관적이지만, 각각의 꼭지는 역사의 현장에 멈추어 살펴본다는 점에서 객관적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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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쯤으로 기억한다. 지금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그 양반 만큼이나 참 보기 싫었던 그의 발음과 모습...권력욕에 눈이 멀어 3당 야합으로 정권을 획득한 YS는 그 당시 한창 '세계화'를 부르짖었나 보다. 아직도 내 머리 속에 그 잔상이 남아있다. 그리고 각국 정상들이 모인 협의회장 밖에서 많은 이들이 '세계화'에 반대하며 극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을 TV를 통해 보았던 기억도 난다. 난 그 당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세계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그리 나쁜 말이 아닌데 그 안의 내용이 무엇이길래 저토록 반대시위를 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어차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각 국이 철저히 담을 높이고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는 구조이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화'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다면 단순히 그러한 측면만을 고려하여 무작정 따를 수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주요한 본질적인 접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 토마스 슈레터의 <세계화?> 에서는 바로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를 아주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그는 오늘날의 세계화의 출발점을 근대 초기 유럽과 아시아의 상업의 중심에서 후추를 싣고 떠나는 배로부터 시작하며 설명한다. 그 당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정보의 획득만으로 커다란 돈을 벌 수 있었고, 원거리 무역에 대한 해적과 강도에 대한 불안감은 보험의 개념을 탄생시켰으며, 금융업을 출발케 한 시초였다. 이러한 해상무역으로 부자가 된 나라들은 이른바 '정의로운 전쟁'이란 이름으로 타지역의 원주민에 대한 전쟁을 일으켰고 그들을 노예로 삼았으며, 식민지화를 통해 자원의 약탈을 진행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부자 나라들의 배는 불러오고, 가난한 나라들의 배는 점점 더 굶주렸으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 역시 이와 다른 형식과 현상일 뿐, 근본적으로 같은 내용의 행태가 국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화는 결코 세계의 빈곤 해결, 환경 개선, 세계 시장의 안정을 위해 작동하지 않으며, 국가 하나하나의 주권을 약화시키고 반면에 시장의 힘은 강화한다. 곧, 세계화는 자본주의 이외의 생산 양식과 교환 양식은 모두 폐지하고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적 가치와 헤게모니를 완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계화는 자본주의적 지배 양식을 정치와 사회적 영역에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세계화에 대한 대안으로 1) 유엔의 권한 강화, 2) 코스모폴리탄 민주주의, 3)IMF의 지배구조 개혁, 4) 국제청산은행 설립, 5) 국제 금융거래에 대한 '토빈세'부과 를 주장한다.
어차피 혼자 살 수 없다면, 이웃과 더불어 최소한 일방이 밥은 굶지 않도록 시작의 설계를 잘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의 탐욕은 끝없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 나머지, 극도로 비인간적인 사회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또 다시...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의 <세계화>라고 한다면, 그저 강대국의 논리에 순응만을 거듭할 것이 아니라, 그 거대한 힘에 지레 겁먹고 먼저 포기해 버릴 것이 아니라, 보다 인간적인, 이웃집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선을 주장하고, 강대국의 힘을 앞세운 강제적인 제도에 끝까지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어제 지방 출장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 버스에서 읽었다. 분량이 많지 않고, 또 알기 쉽게 풀어놓은 내용이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며 세계화의 과정 속에 나타난 현상을 토대로 미국의 정치학자 벤자민 바버의 말을 옮기며 졸필을 마치고자 한다. "자본가가 민주주의의 신봉자일 수는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민주주의가 필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꽃피우지도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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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이 바나나 껍질처럼 벗겨진 기분.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나처럼 배경지식 하나 없는 일자무식자도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표지만 봤을 땐 좀 어려울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오~ 술술 읽히는 매력!
분량 부담도 없고 고등학생부터 읽게 만든 책이어서 입문서 찾는 사람에게 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