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뢰즈에 대한 정밀한 이해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히 유행담론화된 들뢰즈의 이해를 가지고서는 제대로 된 '차이의 반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역자 한정헌의 말에 동의한다. 국내의 들뢰즈 열풍이 차이/생성의 공간론적 환원과 낭만적 유목주의의 늪에 빠져있다는 비판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중요한 개념에 대한 역자의 번역은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현동적', '다양체' , '탈기관체', '탈인간적', '잠세성' 등 너무 딱딱하고 인위적이고 뻑뻑하다. 들뢰즈의 철학이 망가진 로버트 태권 V는 아니지 않은가. 또한 '초월성'과 '초월론'을 구분하는 것은 눈이 어두워진 독자들을 위한 좋은 번역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들뢰즈의 개념에는 컴퓨터 은유보다는 불교의 은유가 더 강하다. 매번 이 책에 나오는 '접속(connection)'이라는 번역보다는 연계, 연대나 인연因緣이 더 낫지 않나 싶다.
"들뢰즈에게 개념이란 일반화 혹은 우리가 세계를 명명할 때 사용하는 이름표 따위가 아니다. 개념들은 사유함의 현동적 역능을 삶의 사건으로 입증하는 창조들이다. 우리는 삶을 변형하기 위해 개념들을 창안한다."
들뢰즈는 한 개념의 명확한 정의와 경계를 확정짓는 일보다는 문턱에 서서 이곳저곳 바라보며 느끼거나 생각한 표현들을 쏟아낸다. 그래서 그가 낳은 무수한 개념과 용어들은 서로 밀고 당기고 대립하고 합쳐지고 이리저리 표류하면서 각기 같은 대상을 지시하거나 서로 다른 의미를 지시하거나 한다.
영문학자 클레어 콜브록(Claire Colebrook)은 [들뢰즈 이해하기]에서 들뢰즈가 차이의 문제에 골몰한 생명철학자임을 강조한다. 들뢰즈의 철학은 반플라톤주의, 반인본주의, 반계몽주의다. 그의 목표는 차이/생성/다자多者에 대한 계보학적 접근을 통해 전통적 서구 철학의 주류인 동일성/존재/일자一者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다. 들뢰즈의 담론을 헤엄치다 보면 만나게 되는 개념의 암초들이 있다. 여기에는 부정적인 지표들로 존재, 기원, 수목적, 정신분석, 편집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다수, 자본주의, 영토화 등이 포함되고, 반대로 긍정적인 지표들로는 생성, 카오스, 리좀, 분열분석, 정신분열증, 소수, 기계적, 유목주의, 탈영토화 등이 있다. 이러한 철학적 개념들 가운데는 쓸데없이 어려운 수학적 정의나 공학적 기호들을 사용하는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지만 그렇다고 들뢰즈를 읽는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굵은 흐름을 이해한다면 작은 세류의 복잡다기한 변형들도 퍼즐처럼 맞추어가는 재미가 있다. 그런 가닥 중의 가닥으로 초월성과 내재성의 개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철학은 세계의 재현과 해석이 아니라 차이들을 창조하고 개념화하는 일이다. 철학의 목표는 상식적인 재현을 전복하고 새로운 사유방식을 생성해내는 일이다. 반상식과 반재현이 들뢰즈의 기본노선이다. 서양 사유의 오류는 이미 실존하는 사물, 초월성, 주어진 실재성의 지점(질료, 주체, 신, 존재)에서 출발했다는 데 있다. 들뢰즈는 실존주의와 현상학에 반대한다.
다음은 내가 정리한 자그마한 「들뢰즈 개념사전」 이다.
■생성(becoming) 생성은 존재(being)에 대립되는 인식론이다. 서양 사유의 문제점은 존재론에서 출발한다는 데 있다. 존재론은 데리다가 비판한 로고스중심주의나 페미니즘이 비판한 가부장제를 재생산하는 주류 이데올로기적 관점이다. 들뢰즈의 기본적인 논점은 생성이 존재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들뢰의 생성개념은 살아움직이며 무수한 개념들을 생산하는데, 「생성-동물」, 「생성-여성」, 「생성-남성」 등이 그러하다. 역자는 이를 「동물-되기」, 「여성-되기」, 「남성-되기」 등으로 번역한다.「생성-동물」은 「동물-되기」와는 그 어감부터 천양지차다. 역자의 번역은 들뢰즈에 대한 이해를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
"우리가 사유하고 말하고 욕망하고 세계를 보는 방식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어서, 관계들과 효과들을 생산하고 우리의 신체들을 조직화한다."
정말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콜브록의 이 말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들뢰즈의 독법은 번역의 질에 좌우된다는 점을 대단히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리좀(rhizome) 리좀과 수목은 들뢰즈가 사유의 형태를 특징지우는 시각적 이미지 개념이다. 리좀적 사유는 임의적이고 탈중심적이고 증식하는 연결점을 만든다. 반면에 수목적 사유는 기점이나 원천을 상정하고 위계적인 질서와 수직적인 방향성을 지닌다.
■잠재성 들뢰즈의 존유론적 개념은 현실, 잠재, 실재, 가상의 4개 면으로 구분된다. 현실은 주름과 마찬가지로 고정된 외부와 내부를 상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적(actual) 세계와 잠재적(virtual) 세계 모두가 실재계(the real)다. 잠재적인 것은 과거에 존재했으며 현재에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모든 것의 총체성이다. 잠재계는 실재계에 종속된 것이 아니고 현실화될 수 있다.다윈의 진화론과는 달리 들뢰즈의 진화론은 진화의 목적이 변화와 창조 그 자체이지 어떤 현실적 존재의 창조가 아님을 강조하고 창조성과 차이 자체의 분투에 주목한다.
■분열분석 분열분석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 대항하기 위한 들뢰즈와 가타리의 개념이다. 오이디푸스적 주체는 병든 주체다. 분열분석은 이런 현대의 편집증적 사회기계를 해체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한 것이다.
"분열분석은 정신분석과 달리 심리를 살펴보거나 발화하는 심리를 발견하기 위해 욕망들을 해석하지 않는다. 분열분석은 심리, 자아, 인물의 이미지가 어떻게 특정한 신체 부분들에서 특권화되고 투여되는 방식으로 배치되는지를 살펴본다. "(35쪽) 역자는 여기서 또 잘못을 범한다. 역자의 '탈기관체'라는 역어는 신체의 의미를 은닉한다. 중요한 사항은 기관없는 '신체'라는 점이다. 역자는 '탈기관체'는 기관 '없는' 신체가 아니며 이를 기원적인 것으로 보면 반들뢰즈적인 이해방식이 되고 만다고 한다. 기관없는 신체가 스피노자적 의미에서 내재적 실체임이 분명하므로 이는 기원과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후자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관 '없는' 신체가 '아니다'라는 말은 '기관과 유기체가 없다'는 들뢰즈의 강조점을 오히려 은폐하므로 그릇된 해석이다. 나는 여전히 기관없는 신체라는 역어를 더 선호한다.
■주름(fold) 주름은 생성과 차이의 특성을 쉽게 드러내기 위해 제시한 개념으로, 바로크 미술과 바로크식 사유와 맞닿아 있다. 주름 개념은 질료의 열림과 접힘을 복수화하며 세계를 창조한다. 주름에는 지각하는 자와 지각되는 것, 잠재성과 현실성, 내부와 외부, 주체와 대상, 질료와 양식, 질료와 형상간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은 바로 변화, 생성, 창조이며, 점차 더 복잡한 주름을 창조함으로써 더 많은 변화와 생성의 선들을 생산한다.
"주름은 표현의 형상, 게슈탈트, 발생적 요소 또는 변곡의 무한한 선, 독특한 변수를 가진 곡선을 만든다." ■탈주선(lines of flight) 모든 접속은 탈주선을 허용한다. 접속은 삶의 양식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다. 탈주의 궁극적 지점은 절대적 탈영토화로 이는 모든 접속과 조직화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