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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드 호세이니의 첫 번째 장편소설 [연을 쫓는 아이]를 책장에 꽂아 놓은 지는 한참이나 되었다. 외국인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그것도 부피가 만만치 않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한가지 주제에 관한 책들만 읽는 관계로 한번쯤 벗어나고 싶어서 잡았는데, 그냥 쭉 읽어 버렸다. 다 읽고 난 지금 그의 두 번째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마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소설 이라고 한다. 최초가 되었던, 최후가 되었던 그것이 중요한것이 아니고, 미국에 살고있는 저자가 어렸을적 살았던 아프가니스탄의 관습과 문화를 그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또한 미국의 시각이 아닌 아프가니스탄인의 시각에서 쓴 소설이었기에 더 마음속에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아프가니스탄의 굴절되고 왜곡된 현대사를 배경으로 어렸을때의 잘못에 가슴아파하며, 결국은 용서하고, 용서받는 따뜻한 성장소설이다. 소련군의 침입과 철수, 그리고 탈레반의 득세가 전체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말못할 고통을 주었지만 주인공 아미르와 하산의 믿음이 때로는 가슴훈훈하게, 때로는 가슴을에이게 만들고있다. 파쉬툰인 아미르와 하자라인 하산, 그들은 지배계급과 천민의 관계가 아니었고, 도련님과 하인의 관계도 아니었고, 그저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친구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전통대로 하늘에 색색의 연이 춤추는 연날리기 대회가 있던 날, 12살난 아미르는 자신을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 바바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산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그날 마지막까지 자신의 연을 지켜낸다. 환호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하산은 아미르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끊긴 연을 줍기 위해 쫓아간다. 늦게까지 하산이 돌아오지 않자, 하산을 찾아나선 아미르는 하산이 아세프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지만, 겁에 질려 나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다. 이후 아미르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하산은 아미르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천 번이라도 할 수가 있었지만, 아미르는 하산을 위해서 단 한번도 나서지를 못했다. 하산을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괴로워하던 아미르는 하산이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씌워 집에서 떠나 보낸다. 이후 아미르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더욱 괴로워한다. 그것은 그가 성인이 되어서도,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아픔이 된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후 바바는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아미르를 공부시키고, 아프가니스탄 장군의 딸과 결혼을 한 아미르는 소설가로 성공을 하게 된다. 바바도 죽고 몇 년이 지나 삶이 안정을 찾아갈 무렵 아미르는 파키스탄에 있는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친구 라힘 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파키스탄으로 온 아미르는 라힘 칸으로부터 하산과 자신이 이복형제라는 사실, 그리고 하산부부가 탈레반에 의해 죽고 그의 아들 소랍이 고아원에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라힘 칸은 이제 아미르가 속죄할 수 있는 길 이라며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소랍을 데려올 것을 말한다. 수많은 번민 끝에, 아미르는 소랍을 데리러 카블로 간다. 우여곡절 끝에, 거의 죽음 일보직전에서 아미르는 옛날 하산이 그러했던 것처럼 소랍의 고무줄 새총 덕에 목숨을 건지고, 소랍과 함께 파키스탄으로 돌아온다. 결국은 소랍을 양자로 맞이하지만, 소랍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다시 한번 준 아미르, 소랍에 대한 그의 정성이 눈물겹기만 하다. 자신의 죄의식을 씻어 가면서, 이제는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소랍을 위해 연을 띄워 올리고, 소랍을 위해 끊어진 연을 잡기 위해 달려간다. 하산이 그랬던 것처럼… 천 번이라도 할 수 있다고 다짐하며… 열두살 어렸을 때 자신의 저지른, 아니 용기 없어 나서지 못했던 그 죄의식을 성인이 되어서도 씻어내지 못하는 아미르의 아픔이 나에게도 와 닿는다. 열여섯 그때, 그리고 열아홉 그 시절에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가슴 아려하는 그 아픔이 비록 죄의식은 아니다 해도 가슴속에 회한을 남기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고백하지도 못하고, 그냥 가슴속에서 쌓여가는 회한이기에 아미르의 죄의식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또 성장하고, 용서라는 덕목을 배워 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할 수 있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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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의 두 번째 선정 도서. 아프간과 한 소년의 상처를 반추하며, 연을 통해 그것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그린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이다. 스테디 셀러로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한 한 권의 책. 독서가 '자신의 삶을 읽어나가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정의할 때, '연을 쫓는 아이'는 내내 나의 13살 소년의 기억을 헤집어 놓는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내겐 화인처럼 남아있는 유년의 상처를 어떻게든 조우하게 한 이 책. 작가의 말처럼 이 세상에는 상투적인 표현이 너무 쉽게 매도당한다. 가끔 상투적인 말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는데도 말이다. 이 책은 내게 상투적인 표현으로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독서모임의 토론 주제를 바탕으로 되짚어본다.
대략적인 줄거리 정리 및 감상평? 아프간의 부유한 집안의 아들인 아미르와 그의 집에 하인으로 사는 하자라인 하산은 유년시절 형제처럼 지낸다. 태어나서 처음 한 말이 '아미르'였을 만큼 그를 따랐던 하산은 항상 아미르를 따르며 그를 지켜주는 충실한 하인이자 친구였다. 아프간의 연례행사인 연날리기가 있던 날, 하산은 아세프란 '작은 히틀러' 소년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고, 그 장면을 지켜만 봤던 아미르는 평생 배신이란 상처를 입고 살아간다. 이후 하산과 그의 아버지 알리는 아미르의 거짓말에 집을 나가게 되고, 아미르는 그의 아버지 바바와 미국으로 망명을 한다. 이후 소설가가 된 아미르는 그의 어릴 적 정신적 지주인 라힘 칸으로부터 하산이 자신의 이복동생이었음을 듣게 된다. 이후 하산은 탈레반 정권의 인공청소에 의해 살해당하고, 그의 아들인 소랍은 고아원에 버려진다. 소랍을 구하기 위해 아프간을 찾은 38살의 아미르. 죽을 고비를 넘어 간신히 소랍을 미국으로 데리고 오지만, 소랍은 이미 삶을 체념해버린 아이처럼 6개월이 넘게 말을 잃어버렸다. 이후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고, 미국에서 아프간인들은 조금만 희망을 쏘는 집회를 갖는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연날리기. 소랍과 아미르에겐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이겨나갈 수 있으리란 작은 암시를 던진다. 13살 연을 날리던 아이는, 38살이 되어 연을 쫓는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다.
아미르는 어떻게 순수함을 회복하는가? 하산이 처절하게 당했던 그날 밤. 아미르는 평생 화인처럼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를 몰랐던 그다. 항상 아버지 바바는 물질적인 풍요는 아미르에게 주지만, 인간적인 애정은 하산에게 쏟는다. 후에 고아원을 세우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등의 행동으로 이어지지만, 그것은 아버지 바바 나름의 회개하는 방식이었다. 항상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작은 꼬마 아미르. 하산의 일을 모른 척 했던 일과 자신의 거짓말로 하산을 내쫓던 일이 그에겐 씻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남아있었다. 이후 미국에서 소라야(상처를 간직한)를 만나 결혼하고, 소설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일상의 파문처럼 불쑥 하산이란 돌멩이가 마음의 강에 던져진다. 하산이 이복동생이란 사실을 알고, 더욱이 그의 아들 소랍이 아버지와 똑같은 학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하여 탈레반의 고위직인 된 어릴 적 아세트를 다시 만났던 순간, 흠씬 얻어맞으면서도 마음은 편해진다. 마치 어릴 적 하산을 방기했던 그 깊은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된 듯. 이후 하산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소랍을 미국으로 데려오면서 그는 더이상 악몽을 꾸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미국땅에서 연날리기를 하게 된 아미르는 하산이 그랬던 것처럼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라며 소랍을 위해 자신이 끊은 연을 찾아 달린다. 아미르가 순수하지 않은 시절은 없었다. 다만 어릴 적 상흔처럼 간직한 하산과의 기억을 온전히 연날리기를 통해 날려버린 것이다. 하산만큼이나 아미르 또한 상처 많은 아이였음을,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당당히 두발로 맘껏 달리는 그가 된 것이다.
작품 속의 아프간은 어떤 나라인가?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다. 하지만 서문에서도 밝혔듯, 세계 최초의 아프가니스탄인이 영어로 쓴 소설이다. 그렇다면 아프가니스탄은 어떤 나라일까? 아미르의 성장만큼이나 아프가니스탄 또한 숨가쁜 역사적 굴곡을 지녔다. 사실 탈레반으로 대표되는 아프가니스탄은 테러와 폭력, 기아와 질병으로만 내게 다가온다. 하지만 천천히 살펴보니 우리나라 역사와 어쩌면 이리도 닮았는지, 일제 치하에서 고통 받다가 해방을 만끽하지만, 이내 남북한이 분단되고, 6.25 전쟁이 발발한다. 이후 기나긴 군사독재에 이르기까지 아프가니스탄은 우리네 역사와 너무나 닮아있다. 다만 이슬람 종파 간의 대립이 더해지긴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80%는 수니파 이슬람교도인 파쉬툰인, 나머지 20%는 시아파인 하자라인이다. 1995년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인종청소가 시작됐다. 그들의 학살과 만행은 이미 수많은 매체를 통해 익히 들어왔으나, 이 소설에서는 더욱 처참하게 재현된다. 여성 억압이나 인종 차별이란 알량한 탄압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삶 자체를 파괴하는 악마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9.11 테러에 대한 미국의 응징은 과연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여전히 탈레반은 건재한다. 마치 6.25전쟁 당시 남북을 오가며 수많은 민간인들이 살해당했던 것처럼,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떠나 그들은 여전히 희망을 잉태하기엔 너무나 아픈 시간을 살아가진 않을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프가니스탄인. '당신네 나라 사람들은 약간 경솔해요'라고 말하는 외부인들. 아프가니스탄은 규칙은 없으나 관습은 살아있는 나라다. 어쩌면 그렇기에 그 아픈 역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규칙이 없기에, 누구의 침공, 누구의 쿠데타에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연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살았던 나인지라, 연날리기에 대한 추억은 누구보다 많이 갖고 있다. 겨울이면 튼 손을 호호 불어가며 뒷산 언덕에 올라 연을 날리던 당시. 소설에 등장하는 연끊기 싸움은 많이 없었지만(간혹 있긴 했지만, 연을 끊으면 상대방 아이는 울며 집에 가서 엄마한테 이른다) 그 속에 담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은 100% 공감할 수 있었다. 연은 그 자체가 자유다. 그리고 연실패를 쥐고 있는 소년은 그 순간 자유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절대 자유인이 된다.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연날리기는 자유에의 비상, 아픈 현실로부터의 도피, 갈망을 담고 있는 오브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아미르에게 연은 유년시절 자신에게 안겼던 상흔이었으며, 나중에는 그 상처를 딛고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게 하는 '병주고 약주는' 매개였던 셈이다. 또한 하산의 아들 '소랍'과 인간적인 교감을 느끼며 희망을 잉태할 수 있게 한 소중한 존재이기도 했다.
나의 체험 중 주인공과 유사한 것이 있다면? 이 소설이 무엇보다 아프게 다가왔던 이유는, 13살 아미르가 간직했던 상처(그 상처는 38살이 되어서야 약간이나마 치유가 됐지만)가 나를 당혹스럽게 했기 때문이다. 아미르와 똑같은 나이 12살과 13살 사이(1987년, 초등학교 5학년)에 내가 겪었던, 지금도 상처가 되어 남아있는 그 때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던 때이기도 하다. 시골 초등학교의 풍경. 전교생이 500여 명이 채 되지 않는 조그만한 곳에서, 난 평생의 상처를 안게 되었다. 당시의 사건이 지금의 나를 만든 전부라 할 수 있다. 공부를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시골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나를 칭찬했고, 거기에 부응해 군 단위 백일장, 과학, 수학경진대회, 웅변대회, 모형비행기 날리기 대회, 라디오조립 대회, 미술대회 등 나갈 수 있는 모든 대회에 나가서 대부분 1등 혹은 장원을 했었다. 모두가 부러워했다. 덩달아 부모님도 어려운 생활 속에서 아들의 성장을 가장 큰 삶의 기쁨으로 여겼었다. 그런 일상 속에서 맞이한 5학년. 새로 부임한 선생님은 시인으로 등단했던 아동문학가였다. 반장을 맡으며 그 선생님과 1학기 정도 거의 붙어있으며 책과 동시짓기를 지도받았다. 그때만큼 글을 많이 쓴 기억도 없다. 덕분에 전국의 유명한 백일장, 조선일보, 한국일보(소년) 등의 글짓기 대회에서 대부분 1등을 했었다. 당시엔 너무 유명해서 전국에서 아이들의 펜팔 편지가 쉬지 않고 날아들었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우리 집에 찾아오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골 여자아이들의 대담함이라고 해야 할까? 그에 비해 난 항상 쭈삣쭈삣 말이 없던 아이였다. 그렇게 꿈같은 1학기가 지나가고, 내겐 악몽이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선생님이 무척 가난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래서 일정 부분 학부모들로부터 촌지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2학기 시작과 함께 전라도에서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무슨 연유인지 그 아이가 전학오면서부터 선생님은 나와 말하는 걸 귀찮아했다. 그 아이가 반장이 되고, 모든 글짓기대회엔 그 아이가 대표로 나가게 됐다. 몇 번은 함께 나간 적도 있는데, 그때마다 그 선생님이 글을 써서 주면, 그 아이가 원고지에 받아적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그 아이는 나만큼이나 참여하는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매일같이 그 아이 엄마가 찾아왔고, 그때마다 난 철저히 소외됐다. 마냥 미웠다. 그 아이는 글쓰는 걸 무척 싫어했고, 나쁜 짓을 서슴치 않고 했다. 아무도 말리지 않고, 같이 싸우더라도 상대편 아이만 죽도록 매를 맞았다. 그런 생활이 몇 달 지속되자 난 억울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이상한 것 같다며 흉을 봤고, 그 흉들이 고스란히 선생님의 귀에 들어갔다. 어느날 수업시간에 딴 짓(아마도 잡담)을 했다는 이유로 무지막지하게 뺨을 때렸다. 충격이었다. 1학기때만 하더라도 '정말 넌 훌륭한 시인이 될거야. 재능이 있어'라며 사랑과 격려를 아끼자 않았던 선생님이 달라졌다. 그의 옷차림 만큼이나. 그리고 알았다. 우리집에서 촌지 비슷한 게 끊겼다는 걸. 그리고 나와의 대화는 모두 선생님한테 들어간다는 걸. 그러던 어느날. 선생님은 나를 불러냈다. 마치 인민재판을 하듯, 1교시부터 4교시까지 나는 꿇어앉아 있었다. 눈물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선생님은 아이들을 한사람씩 호명해서 '저 새끼가 나쁜 짓 한 걸 하나씩 얘기해'라고 했다. 마치 엄석대가 그렇게 당했듯. 아마도 그 선생님은 이문열을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6학년때 그 소설을 읽으며 난 얼마나 치를 떨었던가. 아이들은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해가며 나를 욕했다. 그렇게 난 철저하게 부숴지고 있었다. 몇 일이 지나고 선생님이 아버지를 불러냈다. 분명 내 얘기를 했으리라. 새벽 2시가 다되어 술취해 들어온 아버지는 자고 있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시작된 폭력. 정확히 거의 내가 실신할 즈음, 새벽 6시가 된 시간이었다. 온몸이 멍으로 뒤덮이고, 난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아버지 또한 몸져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셨다. 한여름동안 난 반팔을 입지 못했다.
그 일이 있고부터 난 생의 한자락이 끊겼음을 알았다. 모든 게 지겨웠다. 그냥 살아지는대로 살았다. 공부하라고 하면 공부하고, 놀러가라고 하면 놀러가고. 철저히 세상의 무섬증을 앓으며 살았다. 그러면서 생긴 병이 있다. 바로 거짓말이다. 진실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 항상 의문을 하며 살았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진실의 진위가 의심스러웠다. 13살 나이의 그 아픔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 그렇게 내가 야만적인 상황에 처해야 했는지, 35살 딸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예전 그 선생님을 사이트로 검색해보았다. 역시 인터넷으로는 안되는게 없는 법. 울릉도의 한 초등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이메일을 알아냈다. 분명 그 선생님도 이유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내게 가한 그 폭력은 근 1년반 동안(6학년이 되어서도 그 선생은 옆반의 담임이었다) 계속 되었다. 리뷰를 쓰기 전에 그 선생님께 이메일을 쓰려고 했다. 정말 궁금하다고. 정말로 내가 그렇게 당할 정도로 나쁜 아이였냐고, 당시의 상처로 난 지금도 악몽에 시달린다고. 메일을 다 썼다. 이 리뷰보다 훨씬 긴 분량으로. 하지만 보내지 못했다. 아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선생님이 정년 퇴직을 하거나, 내가 그 상처로부터 좀더 자유로워져야 할 것 같다. 아미르는 연을 통해 상처를 치유했지만, 난 여전히 미로를 헤매듯, 책을 읽는다. 아직까지 답을 찾진 못했다.
만약 영화화한다면 압권으로 꼽을 만한 장면은? 2008년 3월. 연을 쫓는 아이가 영화화됐다. 아직 본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얻은 감동과 상처의 조우를 다시 한번 영화를 통해 만나보고 싶진 않다. 영화라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다. 잠시 동안이지만, 아프가니스탄에 찾아온 평화의 움직임 속에서 하산의 아들 소랍과 함께 연을 날리는 장면. 그리고 천번이라도 그렇게 할께.라며 숲을 향해 달려가는 아미르의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긴 분량만큼이나, 또 그 긴 행간에서 전해지는, 반추되는 내 유년의 기억때문에 책읽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래서 이틀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리뷰를 써내려가는 지금도, 하산의 입술에 남아있던 선홍빛 흉터처럼 내 마음은 온통 당시의 아픔으로 가득하다. 울릉도를 찾아갈까? 여행을 빙자해서 한번 찾아가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것이 어쩌면, 연을 쫓는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은서가 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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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카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책을 읽기 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내가 아프카니스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었던가? 고작해봐야 탈레반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이래서야 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소설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생소하고 낯선 환경에 떨어뜨려놓아도 어느 새 흡수되버린 나 자신을 발견한적이 있던터라 과감하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연을 쫓는 아이>. 원제는 The Kite Runner. 연을 날리면 날리는 것이지 쫓는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책을 읽다보니 아프카니스탄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그들의 풍습 중 연을 날리고 쫓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를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물론 줄거리는 명쾌하고 간단하다. 하지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읽게 만드는 매력은 이 책 전반에 걸쳐있는데다가 중간중간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의 근원에 대해 말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연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하늘을 거침없이 누비는 연은 자유를 의미한다. 파쉬툰인의 연이건 하자라인의 연이건 하늘에서는 평등하다. 또한 연은 아미르가 하산에게 저질렀던 죄를 생각나게 하는 사물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아미르가 소랍에게 내미는 화해와 용서의 매개체로도 사용된다. 소랍의 손과 하산의 굳은 살 박힌 손이 오버랩되면서 아미르는 그제야 20년동안 담고 있던 죄책감을 내려놓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죄의식을 품고 살아간다. 실제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정도로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적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 책의 화자인 아미르가 그랬다. 하인의 아들이었지만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라 형제나 다를 바 없는 하산을 위험에서 구하지 못하고 도망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더 큰 상처를 그에게 주고 만다. 평생 마음 속에 그 죄를 담고 살던 아미르는 결국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길을 타의반 자의반 찾아나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미르가 느끼게 되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게 되고 만다.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나라가 처한 특수 상황에 대한 작품 속 묘사는 바바와 아미르 그리고 하산과 소랍을 둘러싼 갈등을 독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고 있고 전체적인 작품의 맥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치우치거나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에 돌리지 않을 만큼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다. 아프카니스탄은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정권이 붕괴되면서 한동안 공산주의가 지배하다가 1988년 소련군이 철수를 시작하고 1992년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진 후 연립정부가 들어선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혼란기를 틈타 1995년 아프카니스탄인들이 구세주라고 생각했던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면서 무지막지하게 잔인한 정치가 시작된다. 바바와 아미르가 아프카니스탄을 떠난 시기는 바로 소련이 정권을 잡던 시기이며 아미르가 소랍을 구해내기 위해 다시 아프카니스탄을 찾던 시기는 바로 탈레반이 이슬람 소수 시아파 하자라인들에 대한 인종 청소가 끝난 다음이다. 그 인종 청소 시기에 바로 하산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아미르와 하산의 이야기에서 하산의 분신인 소랍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작가는 우리에게 용서와 화해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아미르의 배신에 분노하고 바바의 비밀에 또 한번 울컥한 마음이 하산과 똑같은 일을 당한 소랍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기어이 터져버리고 만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다시 한번 소랍에게 씻기 힘든 상처를 안겨 준 아미르에게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 것은 그가 이제는 문제를 회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다가가려는 그의 노력에서 희망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말 감동적인데다가 읽고 나면 뿌듯함까지 생기는 그런 작품이다. 특히 아미르가 소랍에게 "너를 위해서 천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라고 대답하면서 연을 쫓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엔딩과 같은 영상으로 각인되어지는 최고의 장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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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인간이 범한 죄에 대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그 대가를 요구한다. 그리고 대가를 치룬 인간을 용서한다. 그러므로 신은 냉정하고도 자비롭다.
이 소설의 주된 배경은 아프가니스탄이다.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해 대표되는 나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었을 때도 아프가니스탄은 나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그저 못살고 미개한 국가 정도로만 기억되었다. 그 굴곡 많은 역사의 이면에는 많은 민중의 개별적인 삶이 전개되고 있다는 단순한 명제를 나는 실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존경받는 판사였던 주인공 아미르의 할아버지는 교통사고로 고아가 된 하자라인 알리를 하인으로 받아들이고, 알리는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다. 소아마비 알리가 하자라인 어린 신부 사나우바르와 결혼하고, 바바는 왕족이었던 소피아 아크라미와 결혼한다. 불행히도 아미르가 태어나자 그의 어머니가 죽었고, 일 년 뒤 알리의 아들 하산이 태어난다. 하산의 어머니는 떠돌이 무용수를 따라 집을 나가고 아미르와 하산은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친구처럼 자란다.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의 아미르와 순수하고 아미르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하산은 늘 같이 어울려 지냈고, 그러던 어느 날 불량배 아세프 일당과 마주한다. 그러나 하산의 새총 덕에 두 사람은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던 아미르는 연싸움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마지막으로 잘려진 연을 쫓던 하산은 아세프 일당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골목에서 하산이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아미르는 두려움에 나서지 못하고 스스로의 비겁함을 자책한다. 하산에 대한 미안함에 점점 그를 피하던 아미르는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 알리와 하산을 쫓아내고, 소련군이 침공하자 아버지 바바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아미르는 미국에 도착하여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은 채 노호하며 흐르는 강과 같았다. 이 강물에 들어가서 내 죄를 바닥에 떨어뜨려 버리고 강물을 따라 먼 곳으로 실려갈 수 있었다. 유령도, 추억도, 죄도 없는 곳으로(P.207)
바바는 주중에 주유소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벼룩시장에서 골동품을 팔며 아미르의 학비와 생활비를 댄다. 아미르가 벼룩시장에서 만난 소라야와 결혼한 후 바바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미르는 소설가로 성공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바바의 사업 파트너였고, 아미르의 정신적 스승이며 친구였던 라힘 칸에게서 전화를 받은 아미르는 파키스탄에서 라힘 칸을 만난다. 아미르는 하산이 자신의 이복동생임을 라힘 칸으로부터 듣고는 바바가 자신과 하산을 속였던 것에 분개한다. 알리의 사망 경위와 하산의 결혼, 카불에서 라힘 칸과 하산 부부와의 동거, 하산 어머니와의 재회 및 사망 소식을 전하는 라힘 칸. 병으로 쇠약해진 라힘 칸은 하산과 그의 부인이 탈레반에게 총살당하였으니 하산의 아들 소랍을 그곳에서 구하라고 아미르에게 말하며, 하산의 편지와 사진을 전한다. 바바는 하산이 자신의 아들이었음을 숨긴 채 자신의 명예와 긍지를 지키려 했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많은 자선과 기부를 했었다. 자신의 아들임을 속였던 바바와 자신의 비겁함을 속죄하고자 아미르는 아프가니스탄에 잠입하고, 소랍을 성적 놀이개로 삼았던 아세프와 만난다. 아미르는 아세프에게 심한 폭행을 당하지만 소랍의 도움으로 탈출하게 되고, 자식이 없던 아미르는 소랍을 입양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소랍은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자살을 시도한다. 국세청에 근무하던 소라야의 외삼촌 도움으로 소랍과 아미르는 미국에 도착하지만, 소랍은 실어증 증세를 보이며 말을 하지 않는다. 어느 날 아미르는 공원에서 소랍과 연을 날리며 소랍의 미소를 발견한다.
라힘 칸은 양심이나 선이 없는 사람은 고통스러워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아미르는 미국에 돌아온 후 소랍을 보면서 용서란 요란한 깨달음의 팡파르와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소지품들을 모아서 짐을 꾸린 다음 한밤중에 예고 없이 조용히 빠져나갈 때 함께 싹트는 것이 아닐까?(P.538)라고 자문한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자신의 비겁함으로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던 아미르. 아세프와의 결투에서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감내함으로써 아미르는 비로소 자신을 용서하였다.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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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때마다 어떤스토리가 전개될지 고민하고 기대하게 만드는책이다.
주인공 아미르.. 친구를잃고.. 아버지를잃고.. 어머니를잃는 그의 삶에서.. "아.. 이게 진짜 우리들의 삶일수 있겠다"는 생각이들었다.. 하산의 끝없는 충성심과 아미르에대한 사랑..
그리고 절대 상상하지도못한 사실들.. 나또한 책을읽으면서 놀라움을 감출수가없었다...
이책을 어떻게표현해야할지..
이책은 나에게서 '바람'이고 때론'햇빛'이고 때론'비'같은 존재이다. 이책은 그냥 단순한책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가까울정도로 훌륭하다. 내생의 최고의책 '연을 쫓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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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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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 성장통을 우정을 통해 그려낸 「연을 쫓는 아이」. 내가 그동안 읽은 책 중에 최고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정도로 훌륭한 소설이었다. 내가 처음 할레드 호세이니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연을 쫓는 아이」라는 작품이 아닌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게 된 다음부터이다. 어느 작가나 그렇듯 처녀작보다는 그 다음작품에서 문체나 스토리가 제대로 자리가 잡히기 마련이다. 나 또한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고 「연을 쫓는 아이」를 읽기를 망설였다. 그러나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고 난 여운이 강해서 「연을 쫓는 아이」를 집어들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두 작품 모두 '최고다!' 라는 것이다. 오히려 「연을 쫓는 아이」가 그 감동이 더 깊다.
「연을 쫓는 아이」는 주인공인 아미르를 통해,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키는 친구 하산의 이야기이다.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아니 중동의 이슬람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몇이나 될까? 나 역시 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연날리기 대회. 두 사람의 우정이 전환점을 맞은 시기이기 때문일까?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아프가니스탄에 찾아온 비극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아미르가 아닌 하자라인인 하산에게 찾아온다. 하산은 여전히 아미르를 친구라고 부르는 모습에서 가슴 한구석이 울컥하는 것이 샘솟는것 같았다. 그런 하산의 아들 소랍. 소랍을 위해 아미르는 위험을 감수한다. 아마 아미르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용기였으리라.
순탄치는 않았지만 소랍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오는 아미르지만 소랍은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다. 소랍이 침묵을 지키는 상황은 계속 되었지만 아미르는 소랍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과연 두 사람간에 끈끈한 무언가가 생겼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 공원에서 옛날 하산과 함께 연을 날리던것처럼 소랍과 연을 날리면서 아미르가 한 말은 메아리처럼 내 가슴속에 빙글빙글 멤돈다. 「연을 쫓는 아이」속에 등장하는 모든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아픔이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어 오듯 소랍에게 건네는 그 한마디가 '파이팅' 이라고 외치는 응원 같아서 당장이라도 꽉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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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면서 느낀 점을 하나 말하라고 한다면, 미국 위주의 세게관에서 한 돋움 한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할 것 같다.
모처럼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다. 줄거리의 흐름도 그렇고 섬세한 묘사가 무척이나 돋보이는 책이었다. 매우 구체적인 상상을 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극 중 주인공 '아미르'는 과거 평화로웠던, 유복했던 세월을 보냈다. 그에게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온 하산이라는 하인이 있는데, 그와는 가장 친한 친구로 아버지의 사랑에 있어서는 무의식적으로 의식하는 라이벌로 존재한다.
사건은 아미르가 아프가니스탄의 연날리기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아미르가 최후에 물리친 파란 연을 하산이 잡으러 가는 데서 시작한다. 하산은 늘 충직했고 아미르를 응원했으며 사랑했고 지켜주고 이해해주었다. 이 날 역시 아미르가 무척이나 아버지의 사랑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파란연을 잡기위해 힘쓴다. 그러나 하산은 그 과정중에 아주 나쁜 아세프 일당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아미르는 이를 보고도 하산을 지켜줄 용기를 내지 못한다.
결국 파란연도 우승도 아미르의 차지가 되었고 아미르는 아버지의 사랑을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아버지와의 벽도 없앨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는데 오히려 하산이 그런 일을 당한 후, 우승도 잠깐의 것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우승을 하고 온갖 영예를 다 안으면 자신이 정말로 멋진 사람이고 큰 사람일 줄 알았는데 그 자리에 서니 비로소 자신의 나약함, 비겁함이 드러나 버린 것일까.
결국 하산은 아미르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소련이 침공하고 아미르와 바바(아버지)는 미국으로 떠난다.
아미르는 미국에서 소설가로 성공하고(하산의 말처럼), 평범한 삶을 영위해 나가던 중 어느날 자신을 어릴 적 독려해주던 라힘 칸의 연락을 받고 아프가니스탄으로 가게되고 거기서 하산의 소식을 듣는다. 하산의 편지, 사진...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던 하산이 자신의 이복동생임을 깨닫고 아버지가 하산을 챙기던 일, 하산이 떠나갈 때 아버지가 슬퍼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의 과오와 자신의 과거로부터 지켜온 상처를 안고 그는 하산이 남긴 '소랍'을 찾기 위해 카불로 떠난다. 카불 집 근처에 가서 하산과 어릴적 갔던 석류나무에 새겨진 '카불의 술탄인 아미르오 하산'이라는 닳아진 글자를 매만져보는 아미르...
그는 고아원에서 소랍이 탈레반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 탈레반을 찾아가 아이를 요구한다. 그런데 그 탈레반은 아세프였다! 어쩜 이런 악연이 있는지... 그는 아세프와 싸웠고 아미르가 밀리자 소랍은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 새총을 쏘아 아미르를 지켜준다. 그리고 아미르는 소랍을 입양하기로 하고 절대 다시는 고아원에 보내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그러나 절차상의 문제로 소랍이 고아원에 가 있어야 할 지도 모른다고 하자 소랍은 자살을 시도한다. 우여곡절끝에 소랍을 미국으로 데려오지만 소랍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들은 '연 날리기'를 통해 다시 희망을 찾아간다..
이 책이 매우 유명했던 것은 기억하지만 왜 읽을 생각을 안 했던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손에서 뗄 수 없는 책이었고 무척이나 슬펐다. 극적인 전개로 하산이 살아 있어서 아미르를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그러나 내 상상대로 되지 않아 너무 안타까웠다.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소외를 느낀 아미르는 언제나 바바의 사랑에 굶주려 있었고 그로 비롯된 정서적 불안정과 같은 것을 독서와 같은 것으로 해소하려 했다. 그는 이야기를 지어 하산에게 들려주기도 하고 책을 읽어주기도 했으며 함께 뛰어놀기도 했다.
그러나 연 날리기 사건 이후, 그는 하산을 받아들이기 힘겨워한다. 그렇게 이별을 하고 다시는 하산을 만나지 못한다. 하산의 웃는 모습을 단지 폴라로이드 사진만으로 접하게 되었을 때..... 하산과 다시는 이야기 하지 못함이, 하산이 그의 편지를 받아볼 수 없음이 슬펐다.. 그리고 하산을 죽인 탈레반이, 이들의 삶을 파괴시킨 소련군이 너무나도 미워진 순간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우리나라처럼 결속력이 강하고 인정을 바탕으로 생활을 하기 때문인지 읽을때 매우 공감했고, 소랍에 있어서는 하산같은 존재가 되어야만 했던 아미르의 입장을 보면서 하산의 사랑을 또한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의 안타까운 현실. 내가 미국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테러국의 실상과는 사뭇 달라서 그런지 이상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아무튼 아미르의 유년의 상처와 성장, 그리고 치유. 소랍이 겪는 일련의 과정 역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의 소설이었다. 뭐라 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나 성숙의 과정을 배워나가는 소년의 과정속에서 어떠한 내면의 치유와 회복을 느낀 아련한 소설이라고나 할까...
연날리기는 정말 큰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아미르도, 하산도, 소랍도, 바바도 다 연을 좇는 아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찾던 연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연을 찾으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했지만 결국 그 연을 찾아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 역시 연을 쫓는 아이는 아닐까? 내가 찾는 연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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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드 호세이니. 이 작가 너무 맘에 든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먼저 읽었었다. 전쟁 속에서 그 두 여자의 우정이 감동적이었고, 차별받고 억압받는 여자들이 안타까워 분노하면서 읽었더랜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그러나 이 작가의 첫 착품인 [연을 쫓는 아이]를 읽게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보통은 너무 재미있게 읽거나 감동적이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연달아 찾아보게 되건만, 그 두께의 압박으로 인해-출퇴근 시간에 읽으려면 가방에 넣어갖고 다녀야 하는데, 두꺼운 책은 부담이다. 여자는 갖고 다녀야할게 많잖은가..- 미루고 미루고 미뤘었다.
그러다 드디어 읽어나갔다.아~아미르의 배신. 아이었기에 두려움이 컸을걸 알기에 공감이 가면서도 용서되지 않았다. 배신을 덮기 위한 치졸한 배신. 그리고 너무나 충직한 하산. 억울할 법도 하건만 모든 걸 짊어지고 떠나는 하산. 그의 안타까운 삶들.
시간이 지나서 아미르의 아버지가 죽은 후 밝혀지는 진실은 너무 큰 반전이지만 화해를 위한 훌륭한 복선이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탈레반의 한마디 "궁금한 점이 있는데, 늙은 귀신은 어떻게 됐지?" 아~이 한마디로 얼마나 긴장감이 고조되던지... 그리고 어찌 이어질지 아직 모르는 상황에서 희망적인 결론과 불행한 결론 그냥 반반인 결론...작가가 대체 어디로 이끌지 초조해져 읽는 것을 멈추기 힘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미르가 소랍에게 해주는 말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이 한마디는 너무 식상하지만 이렇게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감동의 물결, 감동의 도가니" 라고... 그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면서 느껴지는 감동과 울컥함. 책을 덮기가 아쉬웠다는 느낌을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왜 내가 이 책을 이제서야 읽은 것일까? 이건 더욱 자신있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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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도 신문에서도 꽤나 유명한 책이라 꼭 읽어봐야겠다는 괜한 의무감이 들던 차에 다른 책을 구입하면서 곁가지로 함께 주문하였다 받고서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읽게 된 책.. 왜 이제서야 읽게 되었는지..
1964년 아프가니스탄. 놀랍게도 그곳엔 지금과 같은 전쟁도 테러도 없었다. 아이들은 미국영화와 인도영화를 보며 꿈을 키워나가고 겨울이 되면 온동네가 떠들썩하게 연날리기 대회를 하기도 하고 어른들은 아프가니스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간다.
주인공 아미르와 하산은 도련님과 충실한 하인의 관계지만 친구이자 형제처럼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하산에게 닥친 위기를 못 본척한 아미르는 그에 대한 미안함과 차마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것만 같은 죄책감에 그를 멀리하고 누명을 씌여 떠나보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프가니스탄에 소련공산주의가 들어오고 그는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한다. 모든게 새로운 미국에서 그는 미국과 아프간의 거리만큼이나 멀리 그의 죄책감도 날려버린듯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로서의 어느정도 사회적인 위치도 생긴 아미르.. 그 사이 아프간은 소련이 아닌 탈레반세력이 지배하고 있다.
어느날 아프간으로부터 연락이 오게되고 아미르는 하산이 탈레반으로부터 죽음을 당하고 그의 어린 아들이 아프간의 한 고아원에 남겨진것을 알게된다.
이제 아미르는 오랜세월 짓누르던 그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그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하산을 위해 아프간으로 돌아간다. 20년이 훨씬 넘은 시간동안 아프간은 많이 변해있다. 그들이 즐기던 극장도 , 거리도,시장도 이제는 폐허가 되어 알아볼 수가 없다. 길가엔 주검뿐이 그를 맞을 뿐이다. 길게 수염을 기르고 총대를 맨 살기등등한 탈레반들을 태운 지프차만 먼지를 일으키며 거리를 활보할 뿐이다.
'아미르와 하산이 세상이 왕'이라 새겨넣었던 언덕위의 석류나무도 이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진지 오래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탈레반세력의 극악무도한 행위가 분노하게하고
굶주림과 고통,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떨어야만 하는 이들이 눈물짓게한다.
아미르는 그 안에서 과거의 그를 만나고 하산을 지켜주지 못했음을 ,그의 비겁했음을 그의 아들 소랍을 지킴으로 해서 그의 고통을 끝내고 그 자신을 용서한다. 그렇게 아미르는 성장했다.
소설은 끝나지만 아프간의 비극과 고통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음을 잊지말자.
'삶은 계속된다'고 하는 그들의 말처럼 그들에게도 지금과 같은 죽음이 아닌 '삶'이 계속되기를 기도한다.
머지않아 아미르와 하산의 석류나무에도 탐스럽고 붉은 석류열매가 열릴 날이 오길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