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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인류의 영원한 고전>이다. 예전에 무슨 강의에선가 강사가 읽을만한 책을 권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면 무조건 고전이라 칭하는 것들을 권한다고 한 적이 있었다. 고전이란 예부터 내려오는 검증받은 책이기 때문에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이 책은?
성경책은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다. 인류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인 것이다. 작가는 머릿말에서 신약성서를 읽는 작업은 단순한 기독교 경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서양 문화를 탐색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종교에대해 무지한 내 입장에서 일단 기독교라 하면 천국 운운하며 전도하러 다니는 교인들이 떠오르고 타인의 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자신만의 종교만을 고집하는 이기적인 종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신약성서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들을 인정하고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읽기를 권한다는 작가의 말을 보니 본격적인 읽기에 앞서 저자에게 신뢰가 간다.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제목에서 받는 압박감. 그리고 익숙치 않은 어휘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읽기가 그리 순탄치는 않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신앙을 격려하고 올바른 가르침을 주기 위해 쓴 바울의 편지들을 읽으면서부터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기독교는 가장 겸손한 종교이다 라는 생각까지 해 보게 되었다. 처음 갖는 생각이다. 요즘 뉴스 사건 사고의 한 코너를 장식하는 기독교의 부패를 접하다 책을 보니 현시대에대한 답답증이 든다.
바울의 편지 뒤로 이어지는 4가지 복음서의 내용들을 보자. 길 위의 예수를 나타낸 마가복음,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복음서인 마태복음, 소외된 자들의 기쁜소식인 누가복음, 타인의 고난을 목마름으로 표현한 요한복음 별다른 지식이 없는 입장에서 책을 읽고도 이 복음서의 차이는 모르겠고, 다만 기독교란 가장 밑바닥에 있는 하찮은 목숨이라 여기는 것들까지 사랑하는 종교다 라는 공통점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을 보자니 한때 떠돌던 지구 종말설이 떠울라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정말 유행처럼 번졌고 그 종말에서 구원 받으려면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들 하였는데 ...
기독교에 관한 부정적인 세계관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문제가 아닌듯 싶다. 현대인 즉 이시대의 사회, 사람, 환경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순수하고 정통을 지켜야 할 것 같은 종교계까지 파고 들었다는 것이 슬플뿐이다.
읽는 동안 나에게 재미를 더 했던 것은 곳곳 소개되는 명화들이었다. 특히 부활한 예수가 엠마오 제자들과 동행하고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는 <엠마오의 만찬>에 그려진 예수를 한참 들여다 보았다. 보통의 예수는 대부분 수염이 덥수룩하고 피곤에 지친 여위 모습인데 여기에 표현된 모습은 너무나도 볼이 통통하셔서 말이다. 여기서 소개된 명화들을 따로 공부해도 꽤나 좋은 공부일 듯 싶다.
신약성서 읽기 ... 종교서뿐 아니라 역사서 문학서 또 철학서로서의 고전임에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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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에는 기독교인이 공부하는 전형적인 성경문구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과는 달리 신약성서가 만들어 진 배경과 그 당시의 유대와 로마의 문화와 생활상, 또 각 성서마다 작성한 제자들에 대한 배경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더 흥미로웠습니다. 마냥 신약성서를 읽었을 때에는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런 문구가 있었는지 이해가 쉽게 되었습니다.
오래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저는 예수님에 관한 책은 성경책이 전부이다라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관한 기록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았고 기독교의 정형화 작업을 거쳐 선별된 기록만 수록된 것이 신약 성서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습니다.
이 책의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은 사도 바울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수님 당시의 로마와 팔레스타인 지방에 대한 역사와 문화( 헬라니즘 문화와의 연계성에 관해)에 대해 잘 설명이 되어 있어서 역사적인 지식을 해박하게 해주었네요.
또한 율법을 중시하는 정통적인 바리새인 집안의 바울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외치게 되는 과정도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누구나 한 번 쯤 들어본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그 문구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는데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인 것 같습니다.
후반부에는 예수님의 제자인 마태와 마가, 누가, 요한의 서로 다른 시각에서 쓴 글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마직막으로 세간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요한 계시록의 이야기를 그 시대 배경에 맞는 설명으로 해석해 놓았는데 이 부분은 너무 흥미로와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인 성경을 아직 한 번도 읽지 않으셨다면 이 책을 통해 성서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참 사고에 빠질 청소년들이 읽으면 보다 깊은 사고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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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특정 종교의 경전을 살피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서양 문화의 기원을 탐색하는 일이라면서 신약성서를 특정 종교의 신념이나 교리로 이해하기보다는 누구나 동감할 수 있는 문, 사, 철의 입체적인 시각에서 독해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라 언급한다. 즉, 신약성서를 그레코-로만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작품으로 읽으며 당시의 시대 배경 속에서 신약성서의 형성과 등장인물들을 조명하겠다는 말이다. 일단 예수는 상상력이 풍부한 인물이며 그의 가르침은 전복적인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촌락 출신이기 때문에 예수는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익숙히 보아온 것들에서 자신의 가르침을 길어 낸다고 한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비유 속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곡식의 씨앗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양떼, 그물, 고깃배, 생선, 맷돌 등 소박한 농촌 생활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로마 황제의 궁전에서가 아니라, 랍비와 유대 사제들의 밀폐된 성전에서가 아니라, 가난한 갈릴리 민중들의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 나라가 동터 온다고 전했다는 말이다. 신약성서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당시 로마 제국 주변부 지역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어부와 세리, 천막 노동자와 같이 천대받는 직업에 종사했던 이들이라 한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 수탈과 이와 결탁한 예루살렘 성전체제라는 이중의 질곡 속에서도 갈릴리 방랑설교자 예수가 전하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 속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대안적 세계를 발견했고, 이러한 가혹한 삶을 신앙의 이름으로 견디고 미래를 소망했던 이들이 남긴 문서가 바로 신약성서라고 언급한다. 이런 점에서 신약성서는 예수의 꿈과 그의 꿈을 계승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2세기까지만 해도 교회의 공식 정경은 구약성서였으나 마르시온의 자극과 영지주의 문헌의 출현으로 4세기 무렵 초기 가톨릭 교회는 선택과 배제의 작업을 통해 27권 체제로 신약에 대한 정경화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러한 신약성서는 당시 국제적 문화 조류인 그레코-로만 문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예수 생존 당시 갈릴리 호수 주변 도시들은 그레코-로만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갈릴리 사람들의 헬라화 정도가 심했기에 예수가 헬라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으며, 예수의 행태와 가르침에 헬라적 요소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예수와 바울이 특정 장소에 머물러 있는 지도자가 아니라 순회설교자였다는 사실로부터, 이들의 선교방식이 당시 헬라의 견유철학파와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예수는 견유철학자들처럼 소박한 삶을 살았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동물의 세계에서 삶의 지혜를 찾았다면서 말이다. 또한 신앙의 언어는 입증 가능한 사실보다 주관적 신념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과학의 언어와는 다른 차원을 지닌다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동의될 수 있는 이야기가 신약성서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서가 묘사하고 있는 다채로운 예수의 기적이나 부활 이야기는 고백적 차원에서 그 의미가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고 언급하고 있다. 한편 신약의 언어들은 개인적이기보다 공동체적인데, 신약성서의 예수에 관한 증언과 고백들은 그의 삶과 죽음에 관한 담론들을 전승, 보존하고 발전시킨 초기 예수 공동체들의 정황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기에 복음서의 예수이야기는 이를 기록한 초기 예수 공동체의 사회 전기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어서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세계화한 교회의 건설자요 신약 문서에서 가장 많은 저서를 남긴 위대한 저술가이자 신학자로 호평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 단순 명쾌한 예수의 가르침을 비의적으로 왜곡시킨 음험한 사상가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 바울이 어린 시절에 목격한 다양한 그레코 로만 문화의 신비 제의들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의 신학적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이고, 바울이 나사렛 예수라는 유대 영웅의 죽음으로부터 신화적이고 원형적인 의미를 그려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한다. 바울의 위대성은 예수를 역사적 인물이 아닌 세례와 성만찬이라는 제의 속에서 영원히 기독교인과 함께 하는 종교적 실재로 만든 것이라면서 말이다. 갈릴리 촌락을 중심으로 유대교 갱신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예수운동을 로마의 대도시에 이식했던 바울은 당시의 문화적 조류를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것을 선교활동에 적극 활용했다고 하는데, 전문적인 수사학자로 훈련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편지에 등장하는 표현들은 그가 헬라 수사학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생존하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이라는 종말론적 대망을 가지고 활동했기에 그의 윤리적 가르침은 현존 질서를 바꾸는 것보다 더 큰, 즉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종말론적 사건이 도래할 때를 대비한 삶의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4대 복음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복음서 맨 앞이 마태복음인 이유는 마태가 구약성서와의 연관 속에서 예수의 삶을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한다. 마태는 예수가 이스라엘 영웅들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마가에 따르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길 위에서 만나, 길 위에서 대화하고, 결국 예수는 골고다의 길 위에서 고난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길을 강조했다고 한다. 다윗왕 이래로 예루살렘이라는 특정 장소에 하나님을 붙잡아 둠으로써 장소의 종교로 전락한 유대교를, 출애굽기의 전통이 보여주는 길의 종교로 복원시킨 의의가 있으며, 유대와 로마 전쟁의 참화 속에서 수난의 길을 걸었던 마가복음의 청중과 독자들은 예수의 수난과 자신들이 겪고 있는 수난을 일치시켰다고 한다. 누가는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단지 유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이방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인 사건으로 해석했으며, 요한은 끊임없이 예수의 신적인 정체성을 암시하는 상징과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러한 복음서의 예수이야기는 부활이라는 신앙체험을 통해 과거의 예수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인데, 부활한 예수는 오직 하나님 나라 운동에 헌신했던 제자들에게만 자신을 드러내 보였으며, 이것은 예수의 부활이 과학적으로 관찰 가능한 시공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예수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뜻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생각을 전해주고 있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는 허무에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무상한 현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참되고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갔다는 믿음이 부활 이야기의 요체라면서, 마가의 예수가 부활 장소로 갈릴리를 택한 것은 그곳에서 새롭게 시작될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제한 것이며, 누가의 예수가 선택한 예루살렘은 최초 교회가 시작된 장소로 세계 선교의 전초기지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신약성서에서 부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2개 인데, 모두 잠이나 병, 죽음이나 억압에 맞서 일어난다는 뜻이라 한다. 부활과 봉기는 같은 어간을 공유하고 있으며, 부활한 예수가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다시 만나자고 한 것은 그곳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제자들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함께 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부활과 관련하여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면서, 믿음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래를 낙관적으로 꿈꾸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한편 요한계시록은 현실에서 닥치는 엄혹한 박해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저항적 성격의 판타지 문학으로 정의한다. 로마는 사탄 세력이며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멸망할 짐승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특히 유명한 숫자인 666은 이 숫자와 관련된 로마 황제를 일컫는 것이라 한다. 64년 기독교인들을 로마 대화재의 주범으로 몰아 가혹하게 처형한 네로의 이름이 이 숫자와 관련 있는데, 요한계시록이 쓰일 당시 그는 죽었기에 되살아난 네로, 즉 그 당시 로마황제였던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전반적으로 신약성서를 좀 더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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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서양 세계의 문화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상호작용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리스로마신화를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과 기독교문화를 중심으로한 헤브라이즘이었고 그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영어 문학이므로 이 두가지 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했기에 늘 성서를 읽어야겠다고 벼르고만 있었다가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신약성서를 읽게 되리라고 생각을 했던 난, 책 장의 서문을 넘기자 마자 착각이었다고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신약성서를 다 읽은 사람이 읽으면 많은 공감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책 한권을 읽으며 그리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읽으면서 이해가 쉽게 가는 책도 아니었기에 읽는 일이 참 힘이 들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내용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깨달은 것은 성서라는 것이 그 내용 자체를 신성시 해서는 안되는 하나님에 관한 인간들의 글이라는 것이다. 기독교나 카톨릭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나로서는 아마도 이 책이 무리였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성서의 역사부터 성서 내용의 풀이에 충실한 한편의 논문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분리, 그리고 바울의 중요한 역할 등을 자세히 알 수 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성서의 구절 "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등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 큰 기쁨으로 남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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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아이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세계사를 시작했었고... 책속엔 바울의 전도요행과 지중해... 예수시대의 팔레스타인... 지도를 시작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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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착실한 기독교인으로 믿고 있고,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지고한 말씀’으로 읽을 뿐, 그것의 성립 배경이나 역사적 의미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기에 부끄러움을 좀 덜어볼 요량으로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우선 신약성경이 현재의 상태로 ‘정전canon’화 되기까지의 역사를 더듬어간다. 신약은 예수가 직접 기록한 것이 아니라, 1세대 제자들도 죽고 난 후인 예수 사후 70년 경 부터 구전되던 이야기를 채록한 것이다. 기독교가 박해받던 종교에서 교황의 인정을 받는 지배자의 종교로 변신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 이르러 통일된 신학 이론이 필요해졌고, 367년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27권의 신약이 정경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 정경화의 과정에서 여러 권의 외경들이 배제된 이야기는 마치 ‘다빈치 코드’를 읽는 듯 흥미롭다. 다음으로 저자는 신약성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바울 서신의 저자 바울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기독교를 핍박했던 그가 기독교의 열렬한 전파자로 변신한 과정이며, 바울 신학의 핵심교리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이 부분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읽기에는 너무 전문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 다음에는 4복음서의 저자와 각 복음서의 특징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들려주며 이어서 묵시문학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기록된 요한 계시록에 대해 설명한다. 어떤 부분은 좀 어렵다는 생각도 들지만 중간 중간 잘 알려진 영화 이야기, 중국의 고사성어가 등장해서 이해를 돕는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에 나오는 성경의 장면들을 묘사한 명화들을 보게 되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서양 명화집에 나오는 저 많은 그림들이 대체 뭔고 했던 사람으로서 눈앞이 환히 트이는 경험이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신약 성경이 열린 텍스트라고 말한다. 하여 먼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 무조건 믿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대 민중들의 삶을 반영한 이야기이며 현실 개혁의 선봉이 되었던, 또한 지금 이곳에서도 그렇게 읽혀야 하는 책이라고 말한다. 사소한 차이로 여러 종파로 나뉘어 있는 기독교인들이 읽고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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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에는 참 힘들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전에는 교회에 오랫동안 다니며 귀 동냥으로라도 성경을 꽤나 접했다고 하는 나에게도 진도 나가기가 좀 어려웠다. 책 중간에 인용된 성경구절들은 오히려 현대식 언어로 지은이가 풀어 너무 쉽게 와 닿았지만 본문 내용의 말들이 문학 작품이 아니어서인지, 그리고 히브리어로 된 지명과 이름들이 자주 등장해서인지 몇 번을 반복해 읽어야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읽어갈수록 처음 집중이 잘 안되고 산만했던 것은 사라지고 점점 몰입하게 만들었고 재미가 있었다. 신약성서지만 종교적인 관점에서 서술하지 않고 학자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신약성서가 씌어졌던 시대적 배경과 사건 그리고 지은이의 입장을 얘기했기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신약성서가 종교 경전이 아닌 역사서나 문학서로 받아들여졌고 이해가 잘 되었고 책 읽는 재미가 더해졌다. 정말 오랜만에 신약 내용을 접한 나로서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를 맞은 기분이었고 목마름의 갈증을 해갈시켜 준 모처럼만의 책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했던 것 같다. 특별히 뒷부분에 등장하는 스필버그의 영화[그리스도의 성배를 찾아서]와 또한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유명 화가들의 신약성서 내용을 담은 멋진 그림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솔솔했다. 책갈피를 따로 사용하지 않도록 끈을 달아 준 것이 옛날 책 읽는 기분도 느끼게 해 주며 편리해 좋았으나 책이 익숙해진 요즘의 책들과는 좀 다르게 좁아 확 펴지지 않고 자꾸 접히는 불편함도 약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나름대로 만원의 지하철 속에서 서서 한 손으로 들고 읽어도,작고 가벼워 손목에 부담이 가지 않아 좋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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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인 밀리언셀러를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 순위의 첫 번째를 차지할 책이 바로 성경이 아닌가 한다. 이처럼 성경은 종교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고는 하나, 실제로 내가 이러한 책을 접하거나 읽기란 쉽지 않았다. 일단 책을 펼쳐 읽어내려가도 알 수 없는 이야기와 말들로 빼곡한 이야기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졌던 까닭도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뭐든지 닥치는 대로 읽으려 하는 편이기는 하나, 역시나 내겐 너무 어렵다.ㅠㅠ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또다른 이유는 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거시적 시각을 가지는데도 한 몫을 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희망과 위로의 메세지를 느껴보고픈 마음이 작용하여 혹시 모를 종교에의 귀의에까지도 이를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ㅋㅋ 이것이(신약) 객관적이거나 비과학적이라 할지라도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신약성서는 예수를 통해 신의 실재를 체험한 인간들의 글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성인들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원본은 존재하지도 않고 본문의 내용과 길이가 다른 수천개의 사본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에서 같은 성서를 토대로 했지만 각기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기도 한게 아닌가 싶다. 마르시온이 유대교의 그림자에서 기독교를 분리하고자 구약과는 다른 새로운 신앙의 기준이 될 만한 문서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바울의 편지에 주목하게 되었고, 많은 부분이 이 편지들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과 당연히 반유대적 성향을 가진 마르시온의 입맛에 맞아 떨어져 바울의 서신과 누가복음 추가하여 신약 성서를 완성시켰다는 사실 등은 첨으로 알게 되었다.(뭐 이쪽으로는 아는게 전무하다시피 하지만~) 그리고 구약이 신약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유대교와 다른 독립성을 내세우고 있기도하다. 어쨌든, 성경이 가진 무한한 상상력과 민중의 삶의 터전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하나로 응집시키는데는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인류의 영원한 고전으로 신약성서의 가치를 생각해 보는데는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아직은 이 책을 다 이해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내가 종교를 가지지 않았기에 아직은 관심밖의 이야기이니깐^^ 선택은 여전히 독자의 몫이란 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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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느낌은 난감했다. 마음 다잡고가 아닌 건성으로라도 성경(구약성서든 신약성서든)을 끝까지 읽어 본 일이 없었기에...... 하지만 찬찬히 읽어가다 보니 작가의 머리말에서처럼 종교로서의 성경을 뛰어넘어 서양문화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행의 길잡이였다. 성경을 모르고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이나 고전문학을 감히 논할 수 없지 않은가! 사실 딱딱한 본문보다는 중간중간 인용한 성경구절이 더 친근하고 끌림을 주기도 했지만..... 로마황제가 지신의 정치적 목적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신약성서의 정경화 작업에도 자신의 이해와 맞는 부분인 반유대적 경향의 바울의 편지들을 선별한 마르시온의 힘이 작용했었다는 글을 읽으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성경의 색깔과 의미 그리고 해석도 조금씩 바뀌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2000 년 넘게 세계인의 믿음의 뿌리가 된 성경도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수많은 교파로 나뉘어진 형태의 기독교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데 있어 신약성서가 만들어진 배경과 그 이야기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중국의 고전에 얽힌 일화부터 스필버그의 영화와 벤허, 우리나라의 동학운동까지 성경의 이해를 돕는 구체적인 실례로 추상적인 부분을 구체화해서 보여준다. 신약성서의 탄생 배경부터 문학 장르 분류, 최초의 발로 뛴 선교사 바울에 대한 새로운 발견, 복음서마다 갖고 있는 예수이야기의 다른 색깔 등을 보여주는 신약성서에 관한 한 편의 논문을 보는 듯하다. 고린도후서에 씌어져있는 바울의 끝없는 고난 주파한 거리가 1만 마일이었다니…… 길 위를 예수 복음의 전파를 위하여 바친 바울의 열정과 믿음에 감탄하게 된다. 그 고난을 이겨낸 바울의 희생과 열정이 있었기에 기독교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진정한 신앙의 성숙은 세상을 넘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부단히 노력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신앙인의 진정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의학 선교활동으로 그 신앙을 실천한 슈바이처 박사님도 그런 열정과 자기희생으로 신앙을 실천하셨던 듯하다. 4개의 복음서에 있는 복음의 단어가 헬라어로는 '유양겔리온' 즉 좋은 소식이라 한다. 굳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더라도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책으로 세계사의 한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역사서로 생각의 뿌리를 찾아가는 철학서로 신약성서를 만나보면 좋을 듯하다. 돋보기를 통해 성경 외의 또 다른 이야기와 역사를 만나는 덤까지 읽을 수 있다. 읽을 수록 성경에 대한 관심과 세계사의 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 책을 읽고 2000년동안 세계인의 정신적 지주로 읽혀지는 고전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는다. 믿음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래를 낙관적으로 꿈꾸는 것에서 시작하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무조건적인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는 성경의 말씀은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담아두어야 할 좋은 구절이다. 마지막으로 참고문헌들과 함께 신약성서의 이해를 돕는 더 읽을거리를 소개시켜 준다. 나같은 성경 문맹인을 위해 좀 더 상세한 주석을 달아주기를 부탁드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