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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셀로나의 '성가족 성당'에 대한 설명으로 책은 시작된다. 제목처럼,'성가족 성당' 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저자는 거둬낸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단한 작품으로 칭송하는 것에 대한 나름의 딴지(?)를 거는 것에 대해 혹자는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그러나 모두가 찬양일색일 때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나는 고맙다.비록 나와 바라보는 시선이 일치하지 않더라도.다양한 시선은 언제나 필요한 법.하물며 예술이란 분야에서라면 말할 필요도 없겠다.완성되지 않은 채로 있는 가우디의 작품에는 저자의 말처럼 거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그러나 미완성인채로 두는 것도 나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깊은 속내야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성가족 성당'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서도 이미 알 수 있듯이 조금 다른 시선으로 유럽 건축에 대해 바라보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있다. 좋은 건물과 나쁜 건물을 구분하는 방법은? 당연히 취향에 따라 나쁜 건물이 좋은 건물일수도,그 반대일수도 있겠다.하지만 감성보다 이성으로 사물을 바라볼 필요도 있는 법.건축물의 역사 혹은 정치적 사회적인 이해관계를 통해 좋은 건축과 그렇지 못한 건축에 대한 이야기들이 퍽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런데 가장 인상적 이였던 것은 다이애나비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이 동상이 아닌 <다이애나 추모분수>였다는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불모지나 다름없던 빌바오에 세워진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에 대한 역사를 듣는 것 역시 무척 흥분되는 일이였다.사실 언제부터인가 미술관형식의 다양한 문화적인 컨텐츠가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가는 곳마다 만들지 않은 것 보다 못한 느낌이 들때가 많아서 안타까웠는데,행정요직에 계신 분들은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문화마케팅을 통한 도시재생에 꿈을 가지고 계시는 듯 하다.그렇다면 무조건 화려하고 큰 건물에만 집착하려는 것 부터 지워내야 하지 않을까? 도시가 가진 사이즈에 맞게,색깔에 맞게 맞추는 노력...서울시청을 세계의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었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더 멋졌을 것이다. 둥둥 떠있는 한강의 이상한 건물부터 아름답게 만들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겠구나 싶다. 비교하며 읽으려 한 것은 아니지만,단지 문화의 차이로 인해 유럽과 우리나라의 건축물에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조건 크고,화려하고,높고 새것에만 집착하는 경향부터 지양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를 재미있게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서 '유럽건축 뒤집어 보기'까지 찾아 읽게 되였다. 겹쳐지는 부분도 살짝 있었지만,건축에 대한 폭넓은(?)시선으로 점점 확장하고픈 욕심이 생겼다. 알게 되는 만큼 우리나라는 왜? 라는 답답함이 순간순간 일어난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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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 한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을 보았다. 왜 국가의 계획에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보금자리를 내 놓아야 하는 것이냐는 거였다. 그는, 보기드문 서울 속에 오래된 한옥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한옥이 주는 포근함과 정다움을 사랑하며, 그 역사에 애틋한 감정을 표현했다. 역사가 묻어나고, 대대손손 보존해야 할 한옥을 국가는 낡고 허름한 퇴물이라고 생각해 버리고, 새로운 건물을 지을 것이니 당장 나가라는 통보를 해 온 것이다. 그 외국인은 한국 정부의 이러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으며, 국민이 왜 국가의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천박한 자본에 밀려 개인의 행복과 문화와 역사적 가치가 있는 보존물을 가볍게 치부하는 행태라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그 뉴스를 보고, 남편과 나는 깊은 공감을 했고, 후진국스러운 국가의 의식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요즘,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는 이와 같다고 해야할 것이다. 쉽게 부시고, 쉽게 짓고, 쉽게 바꾼다. 사람의 편의와 행복한 생활의 영위가 아닌 '돈'이라는 가치를 좇아 국가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미래에 닥칠 사회에 끼칠 영향과 파장은 간과하는 것이다. 우선 국가는 '돈'과 '전시 행정'이 중요한 것이다. 요즘, 한강 둔치 곳곳에 퍼진 포크레인과 아무렇게나 파 올린 땅덩어리들을 보고 있자면, 아침 출근길마다 스트레스가 치솟는다. 영동대교 너머로 보이는 그 흉물스러운 모습은 누구를 위한 '르네상스'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고, 누구의 동의를 거친 것인지 알 수없는 무자비한 건설 현장에 서울 시민들의 따뜻했던 휴식처마저 빼앗겨버린 기분이다. 청계천 재건 또한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빼며, 만들어졌다.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데 용역깡패들에게 쫓겨난 사람들의 행복은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았다. 서울시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내쳐졌고, 힘에 의해 밀려나 어디선가 떠돌고 있다. 결국, 청계천은 썩어가는 '수로'일뿐이고, 한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 되었다. 21세기의 건축은 '재생'이 화두이다. 하지만, '재생'은 무분별한 '개발'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할 것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각기 다른 의도로 건축물을 만들고, 재건하고, 프로젝트를 완성시켰다. 하나만 보지 않고, 넓게 봤다는 점에서, 그들의 모습은 본받을만 하다. 아무리 화려한 건축물이라 하여도, 그 속에 '이야기'가 없다면 사람들은 찾지 않고,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로 '유럽 건축 뒤집어 보기'에 등장하는 건물들은 건물 자체의 '가치'도 있지만, 모두 '어떤 이야기'와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국가와 개인과 국민들의 결합으로 완성된 것들이었다. '건축물' 하나에도 정부의 의식과 시민 의식이 숨어 있으며, 도전과 창의적인 생각이 꽃을 피운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물에 담긴 복합적인 의미와 건축물이 갖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과 경제적 효과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영국의 <테이트 모던>, <다우닝가 10번지>, <다이애나 추모분수>, <세인트 폴 대성당> 등과 스코틀랜드의 <토버모리>, 웨일즈의 <헤이 온 와이> 이것들의 발상의 전환과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의 결합은 단기간에 발굴하고 개발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동의와 정책적인 결합이 잘 이루어져야 보여지는 형태가 아닌가 싶다. 특히 쇠락해 가는 지역의 활력을 불어넣고 경제적으로 활성화 시키는 것은 누군가의 작은 아이디어였다는 것. 그것은 삶의 터전을 모두 뜯어고치고,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존시키고 문화를 덧입혀 창출해낸 것이라는 것은 새로웠다. <토버모리>와 <헤이 온 와이>는 그렇게 탄생되었고, 넓게 보면 <테이트 모던>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벨기에의 <그랑플라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의 모습은 어떤가? 사람들이 그곳에 머무르는 자체로도 명소가 된다. 축제를 벌여 사람들의 발을 잡아 끌고, 광장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그곳이 빛나게 한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어떤가. 그 모습에 압도 당하기 충분하고, 건축물 형태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시민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미술관에 갈 수 있는 그 분위기와 곳곳의 배려가 더 매력적이다. 미술관으로 통하는 다리나, 지하철 입구 모두, 미술관으로 가는 통로이다. '사람'이 찾아가기에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고 편안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유럽의 건축물들은 화려한 플랜카드와 과대 광고의 부자연스러움이 아니라, 그들의 삶 안에 조용히 스며들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건축이 없음에도 머물고 싶고, 살고 싶은 곳에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취리히'는 화려한 멋 때문에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다. 옛 것을 보존하며,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기에 모두가 살고 싶은 그런 도시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도시들을 돌아보게 했다. 결국, 건축은 문화이고 예술이며, 사회적인 가치이다. 사람들이 찾고 싶어하는 도시와 건축물에는 결국 인간의 삶과 공존하며,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핵심이 있다. 인공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은 결국 '사람'이 알아본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뉴타운'이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넘어서, 수백년이 흘렀을 때 그만큼 가치있는 것인가 묻는다.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물의 '보존'보다는 새로운 건물의 '재건'에 열을 올린다. 예술가들이 손떼 묻히고 살았던 집들이 아무렇지 않게 헐린다. '개발'이라는 이익 때문에. 지키기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더 이상할 정도다. '남대문 화재사건'은 우리의 의식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한국적'인 것은 사라지고, '따라하기'만 있다. '문화'는 없고 '돈'이 먼저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그것을 실행해야 하는지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 지금 정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말이다. <유럽 건축 뒤집어 보기>는 유럽 건축에 담긴 의미는 물론, 우리나라의 위치와 문화적, 사회적 의식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한다. '사람'이 빠진 것은 어떤 의미도 갖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아야 할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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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다는 건. 지금 내가 처해있는 모든 상황들을 잠시 잊고 (비록 일백퍼센트는 아니라도!) 그들이 사는 법. 먹는 법. 즐기는 법을 보며 '아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를 느끼는 것 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거리, 시장 그리고 몇 몇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보내거나. 맛있는 집, 예쁜 것들을 찾아 헤매이게 되는 거다.
이런 행태는 가이드 북을 고르는 데에도 고심하게 만드는데, 홍콩갈 때 구입했던 아이러브 홍콩은 그런 점에서 에러.(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핫스팟이라고 하는. 꼭 봐야 하는 것들이 은행, 관공서. 기타등등이니 건축전공자도 아니고, 관계자도 아니며 아무리아무리 열심히 봐도 뭐가뭔지 잘 모르는 나로서는 "아...........은행이구나. 특이하게 생겼구나. 멋...있구나."가 다였던 거다.
달려라 메로스,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을 재치고. 먼저 읽기 시작한 유럽건축 뒤집어보기 선택한 이유는, 최근 탐독해보려고 구입한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의 카운트파트너.로서.
처음엔 대충 사진만 보고 읽던 책 마저 읽고 다시 봐야지 했는데. 한 장 두 장 넘기다보니. 이거 재밌는 거다. 그리하여 읽던 책 옆으로 치워놓고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이틀만에 쫑.
만약 이 책을 먼저 만났다면 나의 여행도 조금은 더 풍요로와졌을텐데.
건축 또한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라든지,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총체. 그네들이 과거에 추구해 왔던 것들과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심심한 고찰이었던 거다. 그때 왜 난 그걸 몰랐을까.
외국의 친구들이 한국에 오면 박물관 이외에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지 늘 난감했었는데. 한번 나만의 서울 탐방 루트를 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 나라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담긴 건축물들을 포함하여.
[개인적 베스트 챕터.]
1. 네덜란드의 상상력을 만나다... 슈뢰더 하우스 2.<다이애나 추모분수>에 다이애나는 없다. ... 하이드 파크의 다이애나 추모분수 이 두 곳은 10년 내에 눈으로 한 번 꼭 확인하리라. 가우디 성가족 대성당에 대한 다른 견해도 반복해 읽어볼 만큼 아하.싶었던.
[In to my mind]
문은 건물과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원론적으로 건축은 '건물'과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건축은 단순히 하나의 오브제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고 생활하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건축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공간을 만드는데 있다. ... 235P
흔희 '도시가 살아있다'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죽은 도시도 있다는 말이 된다. 산 도시와 죽은 도시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람이 얼마나 많이 머물고, 즐길 수 있느냐가 그 기준이다. 그럴듯한 건물 몇 개 지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은 큰 오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건물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건축하는 이들의 관심일 뿐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 건축이 그 역할을 해야한다. ... 2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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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고 하나 여느 때보다도 제 집이 없어 고생하는 인구가 많은 요즘이다. 좁은 땅에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데에 아파트만큼 효율적인 시설도 없다고는 하지만, 이러다가 머지 않아 전 국토가 높디 높은 빌딩으로 가득 차 삭막해지는 건 아닌지 살짝 불안감마저 든다. 물론 이것저것 고려해야 될 요소는 많으며, 유럽의 도시들과 우리의 도시가 동일한 모습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꽤 많은 이들이 매년 해외를 방문하고 그 곳에서 감탄사를 내뱉는 데는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나 역시 몇 해 전 짧은 기간이었지만 유럽의 몇몇 도시를 방문하며 가슴 설렜던 경험을 갖고 있다. 일단 유럽의 도시들엔 우리나라와 같은 높고도 거대한 건물이 거의 없다.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권이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관광지와 非관광지의 구분이 그리 크지도 않아 둘 사이의 엄연한 경계 따위는 존재치 않는 듯했던 것도 신기한 것들 중 하나였다. 건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나 유럽과 우리의 건축이 무언가 다른 것만은 확실하다. 유럽 여느 나라건 삶은 참으로 한가로워 보인다. 실제로 그들은 우리처럼 일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그렇다 하여 유럽의 도시들을 전적으로 긍정적이라 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열광(?)하는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것으로 이 책이 출발하고 있어서인지, 나는 저자의 시선으로부터 균형을 느꼈다. 유럽의 도시들이 매력적인 까닭은 그들이 과거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 날을 보존하는 데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공무원들이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자 해도 시민들이 동조치 않는다는 부분을 읽으며 나는 유럽인들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정서를 지닌 존재임을 깨닫는다. 몇 백 년이 된 건물들이 고스란히 서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그 안에서 평범한 일상이 꾸려지는, 우리나라에서 그와 같은 삶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니 가슴 한 켠이 답답해 온다. 어쩌다가 우리는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은 죄다 낡은 것으로 치부하게 된 것일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상당히 인위적이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은 건물들의 높이가 그러하며, 울타리에 둘러 쌓인 학교는 또 어떠한가? 공원 역시 유럽의 광장과는 다르게 삶의 영역으로부터 다소 떨어진 곳에 있거나 특정한 입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형태로 띠고 있을 때가 많다. 산을 깎아 집을 짓고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어디서 왔는지도 알 길 없는 나무를 심는… 하지만 그런다 하여 이미 깎이어 나간 산이 도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부수어 온 것은 우리 스스로 쌓아나간 시간이었으며 삶의 진정성이었음을 우리는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살기 좋은 도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해 보았다. 유럽의 도시들은 뉴욕처럼 화려하진 않다. 하지만 골치덩이었던 화력발전소 건물을 최고의 미술관으로 부활시키고 불과 6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오줌싸개 동상을 자국의 상징으로 만드는 그들에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가꾸어온 문화를 향한 존중이었다. 좀체 꺾이지 않을 자존심이 없었더라면 그들 역시 우리처럼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만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무언가를 부수는 일에 앞장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럼으로써 인위적인 무언가가 아닌 자신의 선조들이 머물던 공간을 음미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 그런 삶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조금 덜 삐까번쩍하면 어떤가. 그 안에 현재의 나를 가능케 한 시간이 살아 숨쉬고 있다면 그 도시는 결코 죽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