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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을 보면 아주 단순한 주제를 매우 세밀하고 깊이 있게 끝까지 밀고 간다. 요즘 모든 것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실에서 그와 정반대로 아주 느리게 깊이 있게 생각하고 느껴보라고 청하는 것 같다. 보통 영화라면 아주 사소한 애피소드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주제가 된다. 그리고 그것에 몰두하며 영화를 감상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고 정화된 듯한 느낌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선 순수하고 아름다운 동심을 통하여 우정을 보여준다. 경제가 발전되기 전 단계에서 아이들은 전혀 존중받지 못한다. 어른들은 권위적이고 아이들의 생각이나 감정은 무시해버린다. 하지만 그런 세계의 아이들은 오히려 발전한 사회에서 존중되고 배려 받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순종적이며 순수하다.
‘올리브나무사이로’에선 젊은이들의 사랑이 주제인데 신분차이가 있는 남녀의 사랑을 이루어주려는 감독의 따듯한 마음이 돋보였다.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배우들이 전문가가 아니라서 정말 답답한 실수를 하지만 전혀 성질부리지 않고 몇 번이라도 다시 하도록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체리향기’. 사실 향기가 아니라 맛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러면 그럴싸할 제목이 아닌 탓에 향기로 변한 것 같다. 이 영화는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죽음을 도와달라며 대가를 제안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 관찰해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에서 삶으로 생각을 변환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연히 전화통화를 엿듣고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일을 제안하지만 주제넘게 상관하지 말라는 듯 필요 없다며 당장 꺼지라고 한다. 다음으로는 귀대하려는 군인을 차에 태우고 그의 사정을 알아본 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일을 제안한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어디로 가는 지 묻는 그에게 마지막 까지 대답을 회피하며 답답하게 만든다. 막상 그 장소, 그가 죽으려고 파놓은 구덩이에 이르러 다음날 6시에 그곳에 와서 자신의 이름을 두 번 불러 죽었는지 확인한 후 삽으로 20번 흙을 덮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그는 마치 사람을 생매장하는 듯한 섬뜩한 생각에 도망쳐버린다. 다음엔 신학대학생. 죄에 대해서 그와 긴 토론을 한다. 불행하게 사는 것도 죄라고. 불행한 사람은 주위사람들을 괴롭히기 때문에. 하지만 신학생은 자살도 살인이라며 그를 말리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연사 박물관에서 일하는 노인을 태운다. 그는 빈혈을 앓는 아이의 치료비 때문에 도와주기로 하지만 그가 생각을 바꾸게 하려고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자살하려고 새벽에 밧줄을 가지고 나가, 나무에 밧줄을 매달려고 올라갔다가 통통한 체리를 만지게 되고 그것을 먹었을 때 달콤하고 부드러운 과육이 그를 변화시킨 이야기를. 그러면서 삶이 주는 멋진 경험들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그는 노인에게 약속을 받아내고 헤어진다. 노인의 설득이 전혀 효과가 없지는 않았는지 그는 되돌아와서 노인에게 한 가지 더 부탁한다. 돌멩이 두 개를 자신에게 던져서 혹시 잠들어있을 경우 깨워달라고. 노인은 세 개를 던지겠다고 한다. 마침내 자신을 묻어줄 사람을 구한 그는 저녁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구덩이에 들어가 눕는다. 비바람이 몰아치며 더욱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다가 영화를 찍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이 영화라고 보여주면서 어둡고 무거운 주제였던 죽음을 거두어들인다.
죽음을 도와달라는 부탁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죽으려는 주인공이 왜 그러는지 답하지 않는 사실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 답이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 부분은 질문에만 나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뉴스에서 흔히 듣는 인질범들이 생각난다. 사람을 납치하고 목숨에 대한 값으로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돈을 주겠다고 부탁을 해도 그런 일은 할 수 없다고 한사코 거절한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도 살인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그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리라.
이 영화에서 체리는 삶의 의욕을 일깨워주는 촉매작용을 한다. 죽음에서 삶으로 전환하는데 꼭 거창한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각자의 체리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도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되리라. 나에겐 생 떽쥐베리의 ‘인간의 대지’였다. 거기에 친구 기요메에게 바치는 글이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책임을 안다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대학시절에 그 글을 일고 정말 공감하게 되었고 내가 아이들을 이 세상에 내놓은 이상 그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한시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게 내 삶의 구실이든, 핑계이든 아이들은 나를 이 세상에 단단히 붙들어 매는 끈이었다. 영화의 제목이 ‘체리향기’인걸 보면 이 주제가 감독이 뜻하는 바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