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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셀러『완득이』『우아한 거짓말』로 유명한 김려령 작가의 소설집「샹들리에」는 2016년 출간된 소설집이다.「샹들리에」는 다른 장편 소설들과 달리 그녀의 미발표작과 발표작이 한데 어우러져 옴니버스 형식을 갖춘 도서다.
「샹들리에」에는 <고드름>, <그녀>, <미진이>, <아는 사람>, <만두>, <파란아이>, <이어폰> 이렇게 일곱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이 중 <그녀> 와 <미진이>는 연결 되어있고 그 이외의 이야기는 각각의 메시지를 갖는다.
<고드름>은 고등학교 1학년인 세 명이 뉴스에서 본 하나의 사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것이 발단이 되어 범죄 용의자로 몰리게 된 내용을 그리고 있는데, 흥미진진했던 전개와 달리 결말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들을 범죄자와 공범이라고 했던 남성에 대한 결말 때문에 뭔가 마무리가 되지 않은 느낌을 준다.
<그녀>는 한 소년이 자신의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돼지할머니의 손녀를 만난 과정을 그리며 <미진이>는 앞서 언급된 그녀가 갑자기 할머니와 살게 된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런데 필자는 <미진이>에서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아쉬움을 느낀 이유는 <그녀>의 끝맺음 때문이었다. <그녀>에서 소년은 장례 절차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왜 그렇게 됐을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그건 돼지할머니의 손녀 미진의 성격이 왜 그리 까칠하고, 어른들에게 버릇없는 사람으로 낙인 되었을까라는 질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쩌다 미진이 돼지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것인가에 대한 소년의 질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진이>에서 담고 있는 것은 '미진은 왜 그런 성격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사연을 그린다. <미진이>를 처름 읽을 때 엄마의 영향인가 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미진의 성격을 설명하려면 그 이전으로 넘어가야 했던 것 같았다.
<아는 사람>의 경우는 과외 게시판을 통해 만난 학생과 스승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선 스승과 남학생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어야 하지 않을까? 한 소녀가 성폭행을 당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스승과 남학생이 왜 한 팀이 되어 그러한 만행을 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 아쉬웠다.
<파란아이>는 딸이 죽은 지 3년 후 태어난 아들 선우를 죽은 딸 처럼 생각하며 키운 한 엄마와 선우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선우의 엄마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또 그녀를 비난할 수도 없었다. 애달픈 느낌이었다. 자신을 죽은 누나처럼 키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선우는 반항하지 않는다. 그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씁쓸함을 안겨주는 내용이다.
<만두>의 경우 저자 김려령의 소설『완득이』를 떠올리게 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미주의 모습이 어쩐지 완득이와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어쩐지 미주와 완득이는 만나면 안될 것 같다.
<이어폰>은 눈물 지을뻔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궁금증이 생기는 결말이었다. 시간이 흘러 중일은 이어폰을 낄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필자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중일이 여전히 이어폰을 귀에 꽂지 못하고 있을것만 같다. 끊겨져 버린 이어폰을 버리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고 새로운 이어폰을 다시 살 일도 없을 것만 같다.
소설집「샹들리에」의 저자 김려령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7년『완득이』로 제 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에는『우아한 거짓말』이 IBBY 아너리스트에 선정 되기도 하였다. 이 밖에 그녀의 작품으로는 『가시고백』,『너를 봤어』,『트렁크』등을 썼다. 필자는 김려령의 소설 중 『완득이』『우아한 거짓말』『트렁크』를 읽어 보았다. 앞으로 『가시고백』과 『너를 봤어』도 읽어볼 예정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김려령 작가의 글이 좋다. 욕이 좀 거칠게 나오는 부분은 좀 거부감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거침없고 솔직한 표현이 많은 생각을 하게하기도 하고 공감도 하게 한다. 공감가는 부분을 밑줄 긋다보면 포스트잇 플래그가 여러개가 앞으로 불쏙 고개를 내밀고 있게 된다. 필자가 김려령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표현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평등한 시선을 두고 글을 썼구나하는 느낌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약자의 편에 서서 대변하는 인물의 모습 중에는 소시민적인 사람이 없다. 톡 쏘는 콜라처럼 청량감이 있다. 그 청량감은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라도, 다시한번 '아!; 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하지만 「샹들리에」는 그녀의 다른 장편 소설들에 비하여 뭔가 헛헛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각각의 이야기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 있으나 뭔지 모를 헛헛함이 가시지 않아 조금은 실망감이 든 도서였다. 이 헛헛함을 추후에 『가시고백』과 『너를 봤어』에서 달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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