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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51 년 전 사람을 이제 와서 아니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였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다 읽고보니 보통 사람 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성인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군자라고 해야 하는지 헷갈리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까지는 막연하게 성인의 경지에 올라와 있는 누구나 존경의 대상이고 공경의 대상이여서 우리가 끝까지 따라가야 할 그런 대상으로서 우러러 보기만 하게 되었다. 너무 공자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사실은 사실로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이는 쪽에서 곡하게 들으면 그또한 사실이 사실로 되지 않을수가 있으니 공자의 말을 받아 적은 책이니 당연히 그 뜻과 좀 다르게 전달될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 해야하는데 절대적인 믿음으로써 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공자가 지금 있다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자신이 아는 만큼 판단하도록 강요아닌 강요를 하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체로 모든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다만 동물에 대한 생각이 그 시대 상황에서는 사람도 같이 재물로 되고 있는 흐름에서 한명의 사람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동물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이 좀더 많은 것은 사실인듯 하다.
공자도 정치가 어렵기는 어려웠나보다 지금도 지식인들이 너나 할것없이 정치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만족하려고 아니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참여하기는 하지만 기존세력들의 반대와 함께 정치가 정치적인지 않는 다는 이유에서 인지 아니면 정치싸움에 진저리 난 사람처럼 이야기 하고 있는 모습에서 공자도 역시 인간이다 생각하게 된다. 공자도 어쩌면 참으로 능력이 없을수도 있다 거의 자식벌 아니 손자벌 되는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그돈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하니 능력이 없을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누구의 밑에서 정치적 으로 이용되는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의 방법이엇을수 있으니 당연한 말이지만 보통사람은 아니다.
번지르한 언행을 삼가하고 자신의 말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을때 그 사람과 말다툼을 하지말고 자신의 그릇이 그런것을 탓하도록 놔 두는것이 현실 방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차피 설득하지 못할것을 알기 때문에 참으라는 말이었다.
공자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고 앞으로 이런 위해한 사람이 나올수있을지 고민이다. 나오면 지금도 같은 대접을받을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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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해석으로 서당에서 배우면서 뜻이 이해가지 못하는 부분과 논어에서 상호 충돌하는 의미들이 있어 배우면서 석연치 않는 말들이 이렇게 해석되고 의미가 상충되지 않고 이해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심지어는 누구나 알고 있는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의 '시습'을 제대로 해석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단에게 공격한다고 전통적으로 해석하는데 '성인'이라고 칭송받는 공자선생께서 공격하는 의미가 아니라 배우지않는다는 의미가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성리학의 주종인 주자선생님의 학설을 따르는 것이 전통적이지만 달리 해석할 수 있고 누가 더 공자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의미에 더 가까이갈 수 있는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대가가 해석한 것을 가지고 어떠한 의구심도 없이 따라 가는 것보다는 달리 여러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폭을 넓혀 준 책이라 생각한다. 도올선생님이 해석한 책이라든가, 어는 주부께서 나름대로 해석한 책이든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조선시대에 사문난적을 당하신 '윤휴'선생님, 중국의 주자선생님과 달리 해석하신 분들처럼 나름대로 그 시대에 맞게 그리고 공자선생님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는 책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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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아오면서 <논어>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었나. 일단 한자가 주는 부담감이 컸다. 모르는 한자가 많았으며, 그 뜻을 알기도 어려웠다. 직역된 의미만 가지고는 그 의미를 해석하기 힘들었다. 또한 주입식 교육의 영향 탓으로 <논어>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기도 전에 ~ 해야 한다, ~ 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적 어투가 <논어>를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으로 만들어왔다. 그런데 나도 나이를 먹은 것일까. 최근 들어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이 솔솔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전처럼 좋은 부분만 발췌해 놓은 것이 아닌 원문 모두를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서점에 가면 <논어>, <맹자>, <도덕경> 등을 들춰보며 어떤 주해가 잘 된 것인지 비교하곤 한다.
<논어는 진보다>는 이러한 때에 정말 잘 만난 친구같다. <논어>의 이 문장, 저 문장을 친절히 설명하며 새롭고 쉬운 해석을 들이댄다. 이 책을 읽으며 '아직 <논어>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검증되지도 않은 이 해석은 과연 옳은 것인지, 잘못되었다면 괜히 이 책으로 인해 <논어>의 본뜻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문득 들기도 했으나,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러한 의심은 전혀 필요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오히려 이 책으로 인해 <논어>를 좀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마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공자라는 인물, 공자의 정치학, 공자의 인간학, 공자의 철학으로 나누어 <논어>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원문을 소개하고 종래의 해석과 함께 저자 박민영의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저자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함에 있어 종래의 해석이 논리적으로 어떤 모순이 있는지 밝히고, 본인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그와 관련된 다양한 일화와 또다른 원문들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간 이어져내려온 이 해석을 과연 저자가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논어는 진보다'라는 명제를 확인시키기 위해 충분한 근거 없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의 설명은 명쾌했다. 그의 해석들을 보며 관점의 차이가 이렇게 커다란 의미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심지어 직역된 말은 같아도 그 의미는 다르게 볼 수 있음을 알았고, <논어>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은 말의 의미뿐만 아니라 공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대화의 정황, 말의 주체와 객체, 화자 등을 두루 살펴야 하는 어려운 작업임을 알게도 되었다.
"논어는 기본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텍스트이다. 제자들의 기억력에 의존하여 편찬된 논어는 전승되는 도안 재편집되고 첨삭되고, 유실된 것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편집자들의 의도나 정치적 필요서에 따라 왜곡되고 변형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선대 유교 주석가의 절대적인 권위까지 가세해 우리의 눈을 가로막는다. ‥‥‥ 어떻게 보면 유교적 권위에서 벗어난 현재가 오히려 공자의 진심에 가까운 해석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188면)
이 책을 읽으며 공자가 강조한 인과 예, 공자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는 저자의 새로운 해석 덕분이라고 과감히 말할 수 있다. 논어가 진보다라는 주장은 공자가 시대를 앞섰기 때문이 아니다. 논어가 진보라는 것은 일관된 관점에서 인과 예를 강조하고 덕치를 주장함으로써 군자를 칭송하고, 평화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논어>를 읽으면서 저자의 새로운 해석과 다시 한 번 비교해 보고 싶다.
by 꽃다지, 2008년 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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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500~ 3000년 거의 동일한 시기에 동, 서양에서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인간의 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구 문화의 근간이 되는 로마에서 예수는 사랑을 부르짖으며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전파했으며 황하 문명을 중심으로 한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은 공자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가들을 탄생시켰다. 이들이 전파한 사상은 구두로 전해지고 양피지에 기록되어 전 세계 인류의 정신적인 모태가 되고 있다. 특히 논어는 공자 사후 300년이 지나 중국의 국교가 되어 북동아시아의 소수 민족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부분의 인류 역사를 보면 통치자들은 이념과 명분을 앞세워 귀족이나 제후들을 모으고 백성들을 통치하였다. 특히 종교와 철학은 이러한 역사를 이끄는 큰 중심이 되는데 인간 존재 의미와 생존의 갈림길에서 항상 약자였던 대중은 이러한 명분에 항상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21세기를 무한 경쟁의 시대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역량보다는 글로벌 기업 중심으로 인간의 삶의 터전이 바뀌어가고 한시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치열한 경쟁 구도는 인간의 도덕적인 생활보다는 생존 전략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 있다. 공자 시대 서민이나 하층민들은 먹고 살기 위한 처절한 생존 경쟁을 해야만 했다. 제후들은 이러한 틈을 이용하여 경쟁 구도를 이끌어 낸다. 한마디로 그들은 먹을 꺼리를 찾아 목숨을 내 건 것이다. 그들에게 도덕은 먹고 살만 할 때 차후의 일이며 그래서 공자는 지도층에 인과 덕의 정치를 강조한다. 요즘의 세태를 보자면 대중들은 도덕보다는 경제를 살리라고 아우성이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지는 않는 세상인데 비교 우위의식과 비교 경쟁에 찌들 린 삶의 방식에 익숙한 탓에 나만 잘살면 되지 않냐는 극한 논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만 가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을 경제 발전의 현상이라고 하지만 인간 이기의 편리함에 대한 진전이지 결코 발전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헌데 지금 시대에 공자와 같이 권력자에게 인과 덕의 정치를 강조하는 현인과 대중을 이끄는 언론은 어디에도 없으며 대부분은 권력의 줄서기와 눈치 보기에 온 신경을 다 모은다. 논어는 저자의 말대로 실천적인 철학이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말 가운데 진보와 보수라는 말이 있다.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말로 미래로 나가고자 하는 진보와 과거의 유산을 지키고자 하는 보수는 근대에 생긴 개념이다. 고전의 대표격이랄 수 있는 논어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수주의의 원조라고 한다. 공자가 말한 溫古而知新 可以爲師矣 는 ‘옛 것을 익혀 새롭게 알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 라고 풀이 되어 공자가 태평성대를 일구어낸 문, 무왕의 정치를 흠모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설명하면서 논어가 정치지도자들이나 학자들의 편의에 의해 어떻게 변모되어갔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옛 것을 되살려 새롭게 깨닫는 것, 그것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 해석의 차이에 다라 공자는 진보주의자가 된다. 논어의 오해석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이 孝에 관한 내용이다. 孝는 忠과 더불어 동양의 대표적인 가치관이자 이념이다. 충이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라는 뜻이라면 효는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부모를 禮로서 대하라는 뜻이다. 예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 봉양으로 사후 제사에까지 예로서 부모를 섬김을 말한다. 논어의 중심 사상인 仁과 禮 그리고 지도자들의 이념인 德治는 모두 일맥 상통하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 그곳에는 인과 예가 있다. 갈수록 팽배해지는 사회적 상황은 인간의 마음을 정신적인 공황으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하고 자신에 맞는 수행법을 찾아 나선다. 공자가 주장하던 인의 사상은 이러한 인위적이고 신적인 이념과 사상이 아니다. 인은 이미 우리들의 마음 속에 존재해 왔으며 거부 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온다. 결국 인간은 본연의 자세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삶의 기쁨을 느끼지 않을까? 왜 우린 논어를 알아야 하는가? 논어의 역할론은 경쟁구도의 사회 속에서 진실로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지 깊이 있는 무게감과 사유를 던져 줄 것이다. ‘논어는 진보다.’ 논어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보기 드문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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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그 제자들과의 대화록인 논어,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혀 온 고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논어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논어를 읽는 재미는 여러가지가 있다. 논어 속 공자의 대답속에서 찾을 수 있는 어떤 문제의식에 대한 깨달음, 공자의 학문에 대한 끝없는 열정,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보여지는 인간적인 모습등에서 복잡하고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해줄 수 있게 해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논어를 고리타분하게 생각하거나 공자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은게 현실이다. 또는 저자의 말처럼 공자를 보수주의자, 국수주의자, 권위주의자로 보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공자를 부정적이고 편견으로 보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논어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번역되어 지고 있고 논어에 관련된 책 또한 무수히 많이 출간되어왔고 출간되고 있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번역문이라는 것은 번역자의 의견이나 생각등이 반영된 것이지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주자가 해석한 논어를 읽는 독자는 주자의 논어를 읽는것이지 공자의 논어를 읽는것이 아니라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래서 공자의 문제의식과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직접 원문을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논어를 해석함에 있어 논어에 쓰인 한문을 한문의 지식으로만 그대로 풀이하여 공자의 사상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것이 아닌, 공자가 그 말을 하게된 역사적 배경이나 그때의 상황, 발언배경등을 종합하여 논어의 원문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이 이루어졌을때 비로소 공자의 사상이 무엇이고 공자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고 이 책이 바로 공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 잡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공자, 공자의 정치학, 공자의 인간학, 공자의 철학등 4가지의 주제로 구성되어있다. 이 4가지의 주제를 통해서 잘못된 번역으로 인해 공자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을 저자의 바른 해석으로 자리 잡아 주고 있고 공자가 생각하는 정치라는 것이 그 시대에 얼마나 진보적인 것인지를 알수 있으며 군자에 대한 공자의 생각과 공자가 말하는 인 사상을 통해 공자가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지 알수 있다. 이 책은 이미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독자가 함께 읽어나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논어에 쓰인 한문은 그리 어려운 한문이 아니기 때문에 저자의 해석과 함께 천천히 공부하듯이 읽어나간다면 논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꼭 생각해야 할 것은 저자가 강조하고 있듯이 논어를 제대로 읽고 공자의 깊이있는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논어를 읽는데 물론 한문적인 지식도 필요하지만 그 보다는 인문학적, 철학적 지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논어를 잠언집이나 처세서가 아닌 철학서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도 그 속에 들어있다. 이책을 통해 그 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공자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논어가 이미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건 사실이지만 논어를 고리타분하거나 딱딱하게 생각한다거나 잘못된 해석에 의해 편견을 가진 사람 또한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통해 논어 다시 읽기 또는 논어 제대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원문에 충실하고 역사적 배경, 발언 배경등을 종합해서 해석한 이 책을 통해 공자 사상의 깊이를 느낄 수 있고 저자가 왜 공자를 개혁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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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표지에서부터 논어에대해 뭔가 말하려한다는 걸 알아챘다. 책갈피를 얼마 넘기지 않아 공자와 논어에 대해 말하고자하는 지은이의 의도가 분명히 느껴졌다. 강렬한 붉은 색의 띠지로부터 풍겨나오는 기운에서부터 시작해 글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논어는 진보다를 외치는 강한 어조를 느낄 수 있었다.
공자에 대한 긍정의 기운이 지나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빼고는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책읽기였다. 이제까지 알아왔던 논어를 확실히 재해석한 저자의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지고 논어를 재인식시키고자하는 저자의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지금껏 이해해 왔던 말씀마저 달리 해석할 땐 약간 당혹스럽게 느껴졌던 건 사실이다.
논어를 일부 혹은 공자님의 말씀으로 흘려들은 것 빼고는 실제 공자와 논어에 대해 몰랐던 내게는 나름 알찬 독서였다. 논어 속에 담긴 지혜와 철학 그리고 논어 자체인 공자에 대해 알아가는 첫단추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고 읽으려고 마음먹었던 고전 논어를 좀더 가까이 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가 주장하는 해석이 진실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논어 담긴 일부지만 기존의 해석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고 어떻게 같은 글이 다르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논어의 원문-한문 그대로를 적어주고 스스로 논어를 해석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함께 다시 해석해볼 수 있었던 점이다. 학창시절 배웠던 한문시간을 떠올리며 당시 배운 지식을 더듬어 제공된 공자의 말씀을 한자한자 따라가며 읽고 풀이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자공부를 좀더 해 논어를 원문을 그대로 읽어보고 싶은 욕심마저든다. 저자의 강한 어조와 주장에 거부감만 갖지 않고 논어가 다양하게 재해석될 수 있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또 다른 시각을 갖고 새롭게 공자와 논어를 이해하는 알찬 시간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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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공자'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다.
'공자'를 떠올려 본다. '입지'와 '지천명'등의 이야기를 한 사람, 배우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이, '인'을 강조한 사상가가 먼저 떠오른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하늘 같이 떠받들어지고, 오랜 시간 양반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까, 변화보다는 '보수'와 '전통의 수호'라는 개념이 생각난다. 공자가 생전에 이야기 했던 글을 모아서 엮은 '논어'는 수많은 이들에 의해 주와 역이 달렸다. '공자'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원본을 정확히 해석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서툰 번역 연습을 통해, 번역문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번역자의 능력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번역문은 객관적인 것이 아닌 번역자의 견해가 투영되었다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원문을 직접 읽어봐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좋았다. 그럴려면 공자가 태어났던 시대와 발언이 어떤 때에 이루어 졌는지, 그 당신의 문화는 어떠했는지 등장인물의 성향은 어떠했는지 등의 세부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많은 공부와 비교 준비를 통해서 저자만큼의 실력을 갖추었을 때 저자의 글의 완성도를 평가할 수 있다 생각한다. 그만큼의 지식을 아직 쌓지 못하였기에 번역의 완성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건, 전통이 아닌 진보의 시각으로 논어를 읽는다는 점이었다. 햇볕이 비추는 오후에 책상위의 사과를 놓아두면 햇살이 닿은 부분은 밝지만, 밝은 부분과 함께 그림자가 드리운 부분은 어둡다. 밝은 부분도 사과의 모습, 어두운 부분도 사과의 일면이라고 할 때, 기존의 통념과 다른 시각으로 공자의 '논어'를 해석하는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윤리 교과서에서 오래전에 배웠던 '인'과 사랑을 바탕으로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난 '공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 '보수주의', '민족 차별주의', '여자와 민중 천시'의 굴레를 벗기다.
공자가 살던 시대는 지금의 직선적 시간관의 역사가 아닌, 역사는 순환한다는 순환적 시간관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공자가 옛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옛 것을 되살려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려 노력하였으므로, 보수이기 보다는 진보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 주장한다. 공자가 천자를 편애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며, '이로움'보다 '덕'을 중요시했다 주장한다.
공자가 강조했던 인이 생략된 공자의 발언이라 고려하고 해석된 저자의 번역은 인과 '덕치'에 중심이 맞춰져 있었다. 이상을 꿈꾸지만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다. 뜬구름 같은 상상의 공간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지 않고, 현실과 과거의 사례속에서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공자의 모습을 저자가 보여준 안경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 왜? 공자의 '의도'는 사라지고, 보수의 굴레를 쓸 수 밖에 없었을까?
# '논어'는 철학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지배층의 체제 유지를 위한 논리에 이용된 공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지금의 시각에서 바라본 공자의 새로운 모습에 더 신경이 쓰였다. 저자의 새로운 번역 역시, 나의 경험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졌다.
처세서나 잠언집이 아닌 철학서라고 강조한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존의 해석과 다르게 변화의 시각으로 공자를 바라볼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준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키보드를 칠 때 늘 손등만 바라보는 것처럼, 한쪽만 보는것에 익숙했었는데, 손바닥의 모습을 본 느낌이다. 기존의 통념속에서도 변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저자의 해석의 설득력은 관련도서를 공부해 나가면서 조금씩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부록으로 담긴 공자 연표와 편명, 한문상식, 관련 정보는 책을 깊이있게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지막에 나온 참고문헌는 번역의 다양한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지표가 될거라 믿는다. 저자의 일관된 해석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이었다. 관점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 그거 하나만으로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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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이 널리 퍼진 요즘, '유교'라는 단어를 듣고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주로 고리타분함, 고루함 등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통과 미덕 - 윗사람과 부모님에 대한 공경, 깍듯한 예절,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 등 - 은 거의 모두 유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유학사상의 창시자이자 대표적인 사상가가 바로 공자다.
요즘은 공자의 사상을 처세 요령과 연결짓는 책들이 많다.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들을 거느리며 존경과 신임을 받았던 공자야말로 뛰어난 처세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 '논어는 진보다(포럼, 2008)'의 저자인 문화평론가 박민영은 공자에 대한 이런 세간의 평가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공자는 사람들이 인(仁)이나 예() 같은 범(汎)인류적 가치를 추구하도록 이끈 훌륭한 사상가요, 고귀한 깨우침을 세상에 전하고자 한 선각자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공자는 마치 기독교의 예수나 불교의 부처를 연상시킨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수와 부처의 사상은 종교로 발전된 반면 공자의 유교는 정치 및 윤리 사상으로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책을 읽고 나면 논어가 진보는 아닐지언정, 진부하고 퇴보한 사상 역시 절대 아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전이 왜 사랑받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사람들, 논어와 유교사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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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에 관심이 많은 만큼 여러 책을읽을때 마다 등장하는 유학이니 유교니 하는 사상에 관심이 가게되었다. 우리 국민의 정신적 근간이 되어 왔지만 줄기만을 체험을통해 경험할뿐 세세한 내용을 접해보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접하게된 “논어는 진보다“는 약간의 설레임과 두려움을 시작으로 한장한장 읽어 내려가며 우리가 따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생활속에 녹아있는 유교의 정체를 어렴풋이 짚어나갈수 있었다. 난 참 보수적이란 생각을 종종 한다. 옛 경험과 어른들의 말씀에 빗대어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수적이다란 말로 나를 가두고 싶지가 않다. 보수란 말속에는 진보란 말에 뒤처지는 뉘앙스가 들어있는 느낌이랄까...느낌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가 그렇게 주도하고 있는것 같다. 급변하는 세상속에 옛것을 지키고 유지하려하는 자세에 날카로운 시선이 꽂히는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까? 아마 공자에게도 그런 굴래가 그동안 있었던 모양이다. 주대로의 회귀를 찬동하는 말투(물론 그런건 아니다). 앞뒤 문맥없이 해석되어진 그의 문장은 세월이 흐르며 그를 보수와 형식의 대표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하지만 공자가 뜻을 둔것은 이는 아닐것이다. 세속에서의 잣대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고 서로가 서로를 베타적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의 논리가 주를 이루지만 공자는 말씀하셨다 이는 이(利)를 위한것이지 의(義)를 위한것이 아니라고... 집단논리속 이로움에 빠져 서로를 원망하다보면 마음속에 인이 깃들자리는 없어진다고 하던 그의 말은은 어질다 칭해지 그일지라도 마음먹은데로 이루어짐이 쉽지가 않음을 보여준다. 책을 몇장 읽어 내려가며 인(仁)에 대한 풀이가 기억에 남는다. 어질다...그동안의 학창 시절이 덫없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자주 듣고 책에서 읽어왔던 인. 하지만 난 한번도 그 의미를 생각해 본적이 없단 걸 깨달았다. 참으로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나의 학습방식에 혀를차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인을 중심으로한 다양한 풀이들이 참으로 명쾌하고 기가 막힌다. 처음 접해보는 정신문화적 충격이어서 더욱 크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인으로서 정신적 틀을 이루고 예로서 형식적 틀을 가꿔 덕치의 세상을 이루고자 했던 공자. 문화정치의 힘을 누구보다 먼저 깨닫고 있었으며 지배계층의 변화를 통해 노인들은 인을 누리고, 벗들은 인을믿고, 젊은이들은 인을 품는 세상속에서 모두가 조화롭게 살아가길 바라고 또바랬을 그였지만 세상은 그렇지가 못했다. 비록 그의 바램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바램은 모든이가 인을 가슴에 품고 선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질때까지 계속해서 진행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