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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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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51 년 전 사람을 이제 와서 아니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였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다 읽고보니 보통 사람 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성인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군자라고 해야 하는지 헷갈리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까지는 막연하게 성인의 경지에 올라와 있는 누구나 존경의 대상이고 공경의 대상이여서 우리가 끝까지 따라가야 할 그런 대상으로서 우러러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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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51 년 전 사람을 이제 와서 아니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였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다 읽고보니 보통 사람 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성인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군자라고 해야 하는지 헷갈리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까지는 막연하게 성인의 경지에 올라와 있는 누구나 존경의 대상이고 공경의 대상이여서 우리가 끝까지 따라가야 할 그런 대상으로서 우러러 보기만 하게 되었다.

너무 공자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사실은 사실로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이는 쪽에서 곡하게 들으면 그또한 사실이 사실로 되지 않을수가 있으니 공자의 말을 받아 적은 책이니 당연히 그 뜻과 좀 다르게 전달될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 해야하는데 절대적인 믿음으로써 말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공자가 지금 있다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자신이 아는 만큼 판단하도록 강요아닌 강요를 하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체로 모든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다만 동물에 대한 생각이 그 시대 상황에서는 사람도 같이 재물로 되고 있는 흐름에서 한명의 사람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동물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이 좀더 많은 것은 사실인듯 하다.

 

공자도 정치가 어렵기는 어려웠나보다 지금도 지식인들이 너나 할것없이 정치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만족하려고 아니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참여하기는 하지만 기존세력들의 반대와 함께 정치가 정치적인지 않는 다는 이유에서 인지 아니면 정치싸움에 진저리 난 사람처럼 이야기 하고 있는 모습에서 공자도 역시 인간이다 생각하게 된다.

 공자도 어쩌면 참으로 능력이 없을수도 있다 거의 자식벌 아니 손자벌 되는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그돈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하니 능력이 없을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누구의 밑에서 정치적 으로 이용되는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의 방법이엇을수 있으니 당연한 말이지만 보통사람은 아니다.

 

번지르한 언행을 삼가하고 자신의 말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을때 그 사람과 말다툼을 하지말고 자신의 그릇이 그런것을 탓하도록 놔 두는것이 현실 방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차피 설득하지 못할것을 알기 때문에 참으라는 말이었다.

 

공자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고 앞으로 이런 위해한 사람이 나올수있을지 고민이다. 나오면 지금도 같은 대접을받을수 있을까.

k*******k 2008.01.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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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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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해석으로 서당에서 배우면서 뜻이 이해가지 못하는 부분과 논어에서 상호 충돌하는 의미들이 있어 배우면서 석연치 않는 말들이 이렇게 해석되고 의미가 상충되지 않고 이해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심지어는 누구나 알고 있는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의 '시습'을 제대로 해석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단에게 공격한다고 전통적으로 해석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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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해석으로 서당에서 배우면서 뜻이 이해가지 못하는 부분과 논어에서 상호 충돌하는 의미들이 있어 배우면서 석연치 않는 말들이 이렇게 해석되고 의미가 상충되지 않고 이해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심지어는 누구나 알고 있는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의 '시습'을 제대로 해석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단에게 공격한다고 전통적으로 해석하는데 '성인'이라고 칭송받는 공자선생께서 공격하는 의미가 아니라 배우지않는다는 의미가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성리학의 주종인 주자선생님의 학설을 따르는 것이 전통적이지만 달리 해석할 수 있고 누가 더 공자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의미에 더 가까이갈 수 있는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대가가 해석한 것을 가지고 어떠한 의구심도 없이 따라 가는 것보다는 달리 여러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폭을 넓혀 준 책이라 생각한다. 도올선생님이 해석한 책이라든가, 어는 주부께서 나름대로 해석한 책이든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조선시대에 사문난적을 당하신 '윤휴'선생님, 중국의 주자선생님과 달리 해석하신 분들처럼 나름대로 그 시대에 맞게 그리고 공자선생님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는 책이라 생각한다.   

w****3 2008.03.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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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제대로된 논어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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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아오면서 <논어>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었나. 일단 한자가 주는 부담감이 컸다. 모르는 한자가 많았으며, 그 뜻을 알기도 어려웠다. 직역된 의미만 가지고는 그 의미를 해석하기 힘들었다. 또한 주입식 교육의 영향 탓으로 <논어>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기도 전에 ~ 해야 한다, ~ 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적 어투가 <논어>를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으로 만들어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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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아오면서 <논어>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었나. 일단 한자가 주는 부담감이 컸다. 모르는 한자가 많았으며, 그 뜻을 알기도 어려웠다. 직역된 의미만 가지고는 그 의미를 해석하기 힘들었다. 또한 주입식 교육의 영향 탓으로 <논어>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기도 전에 ~ 해야 한다, ~ 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적 어투가 <논어>를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으로 만들어왔다.  그런데 나도 나이를 먹은 것일까. 최근 들어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이 솔솔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전처럼 좋은 부분만 발췌해 놓은 것이 아닌 원문 모두를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서점에 가면 <논어>, <맹자>, <도덕경> 등을 들춰보며 어떤 주해가 잘 된 것인지 비교하곤 한다.

 

<논어는 진보다>는 이러한 때에 정말 잘 만난 친구같다. <논어>의 이 문장, 저 문장을 친절히 설명하며 새롭고 쉬운 해석을 들이댄다. 이 책을 읽으며 '아직 <논어>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검증되지도 않은 이 해석은 과연 옳은 것인지, 잘못되었다면 괜히 이 책으로 인해 <논어>의 본뜻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문득 들기도 했으나,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러한 의심은 전혀 필요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오히려 이 책으로 인해  <논어>를 좀더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마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공자라는 인물, 공자의 정치학, 공자의 인간학, 공자의 철학으로 나누어 <논어>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원문을 소개하고 종래의 해석과 함께 저자 박민영의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저자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함에 있어 종래의 해석이 논리적으로 어떤 모순이 있는지 밝히고, 본인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그와 관련된 다양한 일화와 또다른 원문들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간 이어져내려온 이 해석을 과연 저자가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논어는 진보다'라는 명제를 확인시키기 위해 충분한 근거 없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보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의 설명은 명쾌했다. 그의 해석들을 보며 관점의 차이가 이렇게 커다란 의미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심지어 직역된 말은 같아도 그 의미는 다르게 볼 수 있음을 알았고,  <논어>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은 말의 의미뿐만 아니라 공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대화의 정황, 말의 주체와 객체, 화자 등을 두루 살펴야 하는 어려운 작업임을 알게도 되었다.

 

"논어는 기본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텍스트이다. 제자들의 기억력에 의존하여 편찬된 논어는 전승되는 도안 재편집되고 첨삭되고, 유실된 것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편집자들의 의도나 정치적 필요서에 따라 왜곡되고 변형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선대 유교 주석가의 절대적인 권위까지 가세해 우리의 눈을 가로막는다. ‥‥‥ 어떻게 보면 유교적 권위에서 벗어난 현재가 오히려 공자의 진심에 가까운 해석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188면)

 

이 책을 읽으며 공자가 강조한 인과 예, 공자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이는 저자의 새로운 해석 덕분이라고 과감히 말할 수 있다. 논어가 진보다라는 주장은 공자가 시대를 앞섰기 때문이 아니다. 논어가 진보라는 것은 일관된 관점에서 인과 예를 강조하고 덕치를 주장함으로써 군자를 칭송하고, 평화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논어>를 읽으면서 저자의 새로운 해석과 다시 한 번 비교해 보고 싶다.

 

by 꽃다지, 2008년 1월 20일

l*******g 2008.01.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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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논어를 알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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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500~ 3000년 거의 동일한 시기에 동, 서양에서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인간의 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구 문화의 근간이 되는 로마에서 예수는 사랑을 부르짖으며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전파했으며 황하 문명을 중심으로 한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은 공자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가들을 탄생시켰다. 이들이 전파한 사상은 구두로 전해지고 양피지에 기록되어 전 세계 인류의 정신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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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500~ 3000년 거의 동일한 시기에 동, 서양에서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인간의 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구 문화의 근간이 되는 로마에서 예수는 사랑을 부르짖으며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전파했으며 황하 문명을 중심으로 한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은 공자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가들을 탄생시켰다. 이들이 전파한 사상은 구두로 전해지고 양피지에 기록되어 전 세계 인류의 정신적인 모태가 되고 있다. 특히 논어는 공자 사후 300년이 지나 중국의 국교가 되어 북동아시아의 소수 민족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부분의 인류 역사를 보면 통치자들은 이념과 명분을 앞세워 귀족이나 제후들을 모으고 백성들을 통치하였다. 특히 종교와 철학은 이러한 역사를 이끄는 큰 중심이 되는데 인간 존재 의미와 생존의 갈림길에서 항상 약자였던 대중은 이러한 명분에 항상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21세기를 무한 경쟁의 시대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역량보다는 글로벌 기업 중심으로 인간의 삶의 터전이 바뀌어가고 한시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치열한 경쟁 구도는 인간의 도덕적인 생활보다는 생존 전략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 있다. 공자 시대 서민이나 하층민들은 먹고 살기 위한 처절한 생존 경쟁을 해야만 했다. 제후들은 이러한 틈을 이용하여 경쟁 구도를 이끌어 낸다. 한마디로 그들은 먹을 꺼리를 찾아 목숨을 내 건 것이다. 그들에게 도덕은 먹고 살만 할 때 차후의 일이며 그래서 공자는 지도층에 인과 덕의 정치를 강조한다. 요즘의 세태를 보자면 대중들은 도덕보다는 경제를 살리라고 아우성이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지는 않는 세상인데 비교 우위의식과 비교 경쟁에 찌들 린 삶의 방식에 익숙한 탓에 나만 잘살면 되지 않냐는 극한 논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만 가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을 경제 발전의 현상이라고 하지만 인간 이기의 편리함에 대한 진전이지 결코 발전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헌데 지금 시대에 공자와 같이 권력자에게 인과 덕의 정치를 강조하는 현인과 대중을 이끄는 언론은 어디에도 없으며 대부분은 권력의 줄서기와 눈치 보기에 온 신경을 다 모은다.

논어는 저자의 말대로 실천적인 철학이다.

 

요즘 자주 회자되는 말 가운데 진보와 보수라는 말이 있다.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말로 미래로 나가고자 하는 진보와 과거의 유산을 지키고자 하는 보수는 근대에 생긴 개념이다. 고전의 대표격이랄 수 있는 논어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수주의의 원조라고 한다. 공자가 말한 溫古而知新 可以爲師矣옛 것을 익혀 새롭게 알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 라고 풀이 되어 공자가 태평성대를 일구어낸 문, 무왕의 정치를 흠모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설명하면서 논어가 정치지도자들이나 학자들의 편의에 의해 어떻게 변모되어갔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옛 것을 되살려 새롭게 깨닫는 것, 그것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해석의 차이에 다라 공자는 진보주의자가 된다.

논어의 오해석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이 에 관한 내용이다. 과 더불어 동양의 대표적인 가치관이자 이념이다. 충이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라는 뜻이라면 효는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라 부모를 로서 대하라는 뜻이다. 예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 봉양으로 사후 제사에까지 예로서 부모를 섬김을 말한다.

 

논어의 중심 사상인 그리고 지도자들의 이념인 德治 모두 일맥 상통하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 그곳에는 인과 예가 있다. 갈수록 팽배해지는 사회적 상황은 인간의 마음을 정신적인 공황으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하고 자신에 맞는 수행법을 찾아 나선다. 공자가 주장하던 인의 사상은 이러한 인위적이고 신적인 이념과 사상이 아니다. 인은 이미 우리들의 마음 속에 존재해 왔으며 거부 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온다. 결국 인간은 본연의 자세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삶의 기쁨을 느끼지 않을까?

왜 우린 논어를 알아야 하는가?

논어의 역할론은 경쟁구도의 사회 속에서 진실로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지 깊이 있는 무게감과 사유를 던져 줄 것이다.

논어는 진보다.’ 논어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보기 드문 책이다.

 

이달의 사락 k****4 2008.01.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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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제대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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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그 제자들과의 대화록인 논어,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혀 온 고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논어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논어를 읽는 재미는 여러가지가 있다. 논어 속 공자의 대답속에서 찾을 수 있는 어떤 문제의식에 대한 깨달음, 공자의 학문에 대한 끝없는 열정,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보여지는 인간적인 모습등에서 복잡하고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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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그 제자들과의 대화록인 논어,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혀 온 고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논어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논어를 읽는 재미는 여러가지가 있다. 논어 속 공자의 대답속에서 찾을 수 있는 어떤 문제의식에 대한 깨달음, 공자의 학문에 대한 끝없는 열정,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보여지는 인간적인 모습등에서 복잡하고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해줄 수 있게 해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논어를 고리타분하게 생각하거나 공자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은게 현실이다. 또는 저자의 말처럼 공자를 보수주의자, 국수주의자, 권위주의자로 보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공자를 부정적이고 편견으로 보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논어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번역되어 지고 있고 논어에 관련된 책 또한 무수히 많이 출간되어왔고 출간되고 있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번역문이라는 것은 번역자의 의견이나 생각등이 반영된 것이지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주자가 해석한 논어를 읽는 독자는 주자의 논어를 읽는것이지 공자의 논어를 읽는것이 아니라는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래서 공자의 문제의식과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직접 원문을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논어를 해석함에 있어 논어에 쓰인 한문을 한문의 지식으로만 그대로 풀이하여 공자의 사상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것이 아닌, 공자가 그 말을 하게된 역사적 배경이나 그때의 상황, 발언배경등을 종합하여 논어의 원문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이 이루어졌을때 비로소 공자의 사상이 무엇이고 공자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고 이 책이 바로 공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 잡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공자, 공자의 정치학, 공자의 인간학, 공자의 철학등 4가지의 주제로 구성되어있다. 이 4가지의 주제를 통해서 잘못된 번역으로 인해 공자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을 저자의 바른 해석으로 자리 잡아 주고 있고 공자가 생각하는 정치라는 것이 그 시대에 얼마나 진보적인 것인지를 알수 있으며 군자에 대한 공자의 생각과 공자가 말하는 인 사상을 통해 공자가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지 알수 있다.

이 책은 이미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독자가 함께 읽어나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논어에 쓰인 한문은 그리 어려운 한문이 아니기 때문에 저자의 해석과 함께 천천히 공부하듯이 읽어나간다면 논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꼭 생각해야 할 것은 저자가 강조하고 있듯이 논어를 제대로 읽고 공자의 깊이있는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논어를 읽는데 물론 한문적인 지식도 필요하지만 그 보다는 인문학적, 철학적 지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논어를 잠언집이나 처세서가 아닌 철학서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도 그 속에 들어있다.

이책을 통해 그 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공자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논어가 이미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건 사실이지만 논어를 고리타분하거나 딱딱하게 생각한다거나 잘못된 해석에 의해 편견을 가진 사람 또한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통해 논어 다시 읽기 또는 논어 제대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원문에 충실하고 역사적 배경, 발언 배경등을 종합해서 해석한 이 책을 통해 공자 사상의 깊이를 느낄 수 있고 저자가 왜 공자를 개혁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s*****3 2008.01.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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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다시 공자를 찾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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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공자인가? 공자가 2,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얘기는 무엇인가 ? 내가 던지기엔 이미 우문이 되었다.  어느새 공자와 논어에 대한 재해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기류가 되어 있다.  중국은 현재 전통문화 부흥과 새로운 정치이념 정립의 일환으로 공자의 사상을 재평가하고 있다.  이는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한 빈부격차와 사회모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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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공자인가?

공자가 2,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얘기는 무엇인가 ?

내가 던지기엔 이미 우문이 되었다.  어느새 공자와 논어에 대한 재해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기류가 되어 있다.  중국은 현재 전통문화 부흥과 새로운 정치이념 정립의 일환으로 공자의 사상을 재평가하고 있다.  이는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한 빈부격차와 사회모순을 조화롭게 해결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과연 논어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있기에 물질과 정신이라는 양대 산맥을 견인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보수의 전형과도 같은 공자를 진보라 단언하는 저자는 이렇게 운을 뗀다.

“ 논어도 2,500여 년이라는 세월의 두께만큼 무거운 권위에 짓눌린 텍스트이다.  권위는 고전을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한 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고전을 박제화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박제화된 논어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이것이 이 책의 화두이다.


우리는 인류의 3대 성인으로 예수와 붓다와 공자를 논한다.

카페의 등급 규정에 빗대본다면 나에게 예수는 심취멤버이고 붓다는 관심멤버이며 공자는 새싹정도라 하면 옳을 것이다.  저자의 논증에 대해 비판하기엔 기본지식이 없어 좀 벅찰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 책은 논어를 쉽게 풀이했다.  2,500년 전의 공자가 아닌,  지금의  정치, 경제, 사회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인문학적 논평을 읽는 느낌이 더 강했다.  꼭 공자의 사상에 빗대지 않더라도 이 책은 분명 읽을 만하다.  


저자는 제1장을 통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공자에 대한 편견을 논어를 통해 풀이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공자의 정치학을 소개하면서 우리시대 정치의 문제점과 군자가 나아가야할 길(道)을 제시한다.  제3장에서는 공자의 인간학, 제4장에서는 공자의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종래의 해석과 저자의 새로운 해석으로 달리 표현하고 있는데 정확한 의도를 흘려보내면 그 말이나 이 말이나,,,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한자의 다의적 표현들을 비전문가인 내가 옳게 해석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저자는 ‘도시문명과 사회적 윤리의 탄생’이라는 서문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역사적 배경과 무관한 텍스트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논어도 마찬가지다.  공자가 살았던 시기는 성읍이라는 도시문명이 정착된 시기였다.  도시문명의 출현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소규모 사회에서 대규모 사회로 이전되는 빅뱅의 변화였다.  이때 동서양에서는 대규모 사회에 걸맞은 도덕적 덕목을 설파한 사상가들이 출현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공자, 예수, 붓다였다.  칼 야스퍼스는 이 시기를 ‘기축시대’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문명의 역사를 구동시키는 사상가들이 동양과 서양에서 동시에 출현했다는 의미였다.  공자, 예수, 붓다는 각각 인, 사랑, 자비를 설파했다.  공자, 예수, 붓다는 각기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낯선 타인에 대한 사랑’을 주장했다는 점이 같다.”


그들의 덕목이 불변의 가치를 갖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도시적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첨언한다.  이러한 도시적 환경은 더욱 강고해지고 커져서 지역공동체의 붕괴와 생존경쟁의 심화, 기술문명으로 인한 정서의 파편화, 거대 조직 안에서 개인의 무력감, 방향을 상실한 증오와 분노가 우리를 감싸고 있어 이들의 철학이 더욱 절실해 진다는 얘기다.

네이버 검색어만 치만 주루룩 쏟아지는 논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그리고 무엇이 오역이고 무엇이 옳은 번역인지를 논하는 것도 생략하겠다.  논어가 철학적 논리임에도 생활의 논리가 되었다고 한탄하는 것 또한 상관하고 싶지 않다. (이런 걸 다 쓰다보면 나도 책 한 권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첫 번째로 군자가 나아가야할 바와 우리는 어떤 이유로 옳은 정치인을 선택할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 子曰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그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하고 그 자신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한다 하더라도 따르지 않는다.)

두 번째로 집단의 논리가 가져다주는 사회적 파장은 무엇인지. “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사람의 잘못이란 각자 자기 집단에 치우쳐 있는 것이다.  이 잘못을 보는 것이 곧 인을 아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유로운 비판적 정신을 의미했던 子曰 君子不器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정도만 얘기하겠다.



다산의 [목민심서]의 각론에 해당하는「이전(吏典)」의 첫째 조항에서 목민관(지도자)이 지녀야 할 덕목에 공자의 다음 말을 첫머리로 인용하였다.  (束吏之本 在於律己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行) 간단히 말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얘기다. 

정치적 관심이 거의 무관심에 가까웠던 내가 지난 대선을 지켜보며 민주주의의 퇴보가 가져다 줄 미래의 파장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나와 그 해석이 다를지 모르겠으나 저자의 글을 그대로 옮겨 보건데 ‘부도덕한 질서’에 대한 염려가 나와 비슷한 생각이지 않을까 싶다.


“사회지도층에게 어떠한 뜻과 도덕을 발견할 수 없는 사회에서 백성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를 포기하고, 대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런 사회에서는 백성도 온갖 편법과 술수를 처세술로 여기고,  부도덕한 질서에 영합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  지배층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엄격한 규율로 백성을 다스리고 백성 역시 법망만 피할 뿐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 자신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하고 그 자신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한다 하더라도 따르지 않는다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 자로/6”


일반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내세우는 정치인보다 선으로 포장된 정치인은 사회적으로 더욱 위험하다.  자신의 이익을 내세우는 정치인의 마음은 백성들의 눈에 보이지만, 선으로 포장된 정치인의 마음은 백성들의 마음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정치인은 자신과 대비되는 악인을 필요로 한다.  사회악을 일소한다면서 행해지는 공포정치는 언제나 그렇게 행해져왔다.  p50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 아래서 과연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지 의문스럽다.  또한 검찰권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흐지부지하는 사태까지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미 폐기된 학설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현실 정치의 작태를 보며 공자의 덕목을 다시 생각해 본다. 


첫 번째가 지도자상이라면 두 번째는 집단논리를 통해 나와 남 그리고 우리에 대한 생각을 해보고자 한다.  뉴스를 보고 있자면 방송 3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내용을 똑같은 멘트로 아나운서만 바꿔서 얘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미디어의 생각이 곧 일반 대중의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허다한 경우를 생각할 때 집단의 논리가 줄 수 있는 폐단은 실로 무서운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미디어를 이용한다는 건 지나가는 개도 아는 일이다.


“집단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집단의 논리’를 개발한다.  집단에서 벗어나 생활할 수 없는 인간에게 집단의 논리는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몸만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그에 소속되어 있다.  ...... 집단의 논리를 벗어나지 않고서는 인의 자리가 좀처럼 확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집단의 논리는 주로 남과 우리를 가르고 그에 따른 차별과 배제의 원리를 기본으로 삼기 때문이다.  집단의 논리는 인간의 의식을 유치하게 만드는 가장 큰 주범이다.  ........ 공자는 “이로움에 빠져 행동하면 원망하는 일이 많아 진다”고 했다. p56


정치논리는 기본적으로 집단의 논리에 기초하고 집단의 논리는 집단의 이익에 기초한다.  깨달은 자는 어느 정도의 추종자들을 양산하지만, 그 세력이 커지면 집단의 논리를 벗어나 있는 까닭에 일종의 위험세력으로 간주되며, 권력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예수는 그러한 깨달은 자의 전형적 운명을 보여준다. ............ 사회의 주류는 집단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깨달은 자는 아웃사이더의 운명을 가질 수밖에 없다.  p388


마지막으로 나의 마음을 끌리게 한 子曰 君子不器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를 얘기하고 싶다.  저자는 틀에 갇히지 말라는 의미로 두 가지 해석을 내 놓았다.  그 해석이 사뭇 마음에 들어 옮겨본다.  첫째.  인을 가슴에 담아두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며, 그것을 체현하는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의미로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더라도 법도를 넘지 않는’경지이다. 

둘째는 어떠한 가치를 확고한 형태의 진리로 품지 말라는 말이다. 어떠한 가치를 확고한 것으로 여길 경우, 반드시 교조화된 형태를 보이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상이라도 그 뜻을 취할 뿐, 그것을 절대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절대화된 가치는 다른 무수한 여타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종속시킨다.  그럴 경우 뜻은 사라지고 지적 권력과 권위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 공자가 자유로운 비판적 지식인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틀(그릇)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틀을 만들어 생각의 자유를 가두어 둘 때가 있다.   얼마 전 코미디 프로로 인해 이런 말이 유행했다.  ‘그때그때 달라요’ 이 말의 깊은 뜻이 아마도 두 번째 의미에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는 곧 중용과도 이어지는 말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논어의 중용에 대해서 ‘역동성’있다고 표현한다.  극단에 치우쳐 절대적 기준을 두고 선택과 배제를 일삼지 않고 상황에 따라 판단과 행동이 변화무쌍한 중용의 미를 역동성이 있다는 표현에 동감한다.  자신을 절대적인 가치로 판단하지 않고 역동성있게 표현할 때 깊은 공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것이 곧 중용의 미가 아닐까 싶다.  그 말이 참 마음에 든다. ‘중용의 역동성’ 공자의 중용의 미를 나타낸 말이 있는데 옮겨보면 이렇다.

“ 온화하면서도 엄격하셨고, 위엄이 있지만 사납지 않으셨으며, 공손하면서도 편안하게 대했다 ”


나에게 처음 중용의 리드미컬한 아름다움을 알게 한 것은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 리라 도입부이다. 그 후로 중용은 나에게 하나의 미덕이 되었다. 그래서 더 쉽게 공자의 중용을 받아 들였지 싶다.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힘이고 포기이다.  시의 기능은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며 시적 행위는 본래 혁명적인 것이지만 정신의 수련으로서 내면적 해방의 방법이기도 하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시는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다.  시는 격리시키면서 결합시킨다.  시는 공(空)을 향한 기원이며 무(無)의 대화이다. .... 시는 우연의 소산이자 계산된 결과물이다. ”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 책은 굳이 논어가 아니더라도 읽어볼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책이다.



b****h 2008.0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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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각으로 논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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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표지에서부터 논어에대해 뭔가 말하려한다는 걸 알아챘다. 책갈피를 얼마 넘기지 않아 공자와 논어에 대해 말하고자하는 지은이의 의도가 분명히 느껴졌다. 강렬한 붉은 색의 띠지로부터 풍겨나오는 기운에서부터 시작해 글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논어는 진보다를 외치는 강한 어조를 느낄 수 있었다.   공자에 대한 긍정의 기운이 지나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빼고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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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표지에서부터 논어에대해 뭔가 말하려한다는 걸 알아챘다. 책갈피를 얼마 넘기지 않아 공자와 논어에 대해 말하고자하는 지은이의 의도가 분명히 느껴졌다. 강렬한 붉은 색의 띠지로부터 풍겨나오는 기운에서부터 시작해 글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논어는 진보다를 외치는 강한 어조를 느낄 수 있었다.

 

공자에 대한 긍정의 기운이 지나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빼고는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책읽기였다. 이제까지 알아왔던 논어를 확실히 재해석한 저자의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지고 논어를 재인식시키고자하는 저자의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지금껏 이해해 왔던 말씀마저 달리 해석할 땐 약간 당혹스럽게 느껴졌던 건 사실이다.

 

논어를 일부 혹은 공자님의 말씀으로 흘려들은 것 빼고는 실제 공자와 논어에 대해 몰랐던 내게는 나름 알찬 독서였다. 논어 속에 담긴 지혜와 철학 그리고 논어 자체인 공자에 대해 알아가는 첫단추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고 읽으려고 마음먹었던 고전 논어를 좀더 가까이 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가 주장하는 해석이 진실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논어 담긴 일부지만 기존의 해석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고 어떻게 같은 글이 다르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논어의 원문-한문 그대로를 적어주고 스스로 논어를 해석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함께 다시 해석해볼 수 있었던 점이다. 학창시절 배웠던 한문시간을 떠올리며 당시 배운 지식을 더듬어 제공된 공자의 말씀을 한자한자 따라가며 읽고 풀이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자공부를 좀더 해 논어를 원문을 그대로 읽어보고 싶은 욕심마저든다. 저자의 강한 어조와 주장에 거부감만 갖지 않고 논어가 다양하게 재해석될 수 있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또 다른 시각을 갖고 새롭게 공자와 논어를 이해하는 알찬 시간이 될 것이다.

s***i 2008.01.22.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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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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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공자'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다.       '공자'를 떠올려 본다. '입지'와 '지천명'등의 이야기를 한 사람, 배우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이, '인'을 강조한 사상가가 먼저 떠오른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하늘 같이 떠받들어지고, 오랜 시간 양반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까, 변화보다는 '보수'와 '전통의 수호'라는 개념이 생각난다. 공자가 생전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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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공자'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다.

 

 

  '공자'를 떠올려 본다. '입지'와 '지천명'등의 이야기를 한 사람, 배우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이, '인'을 강조한 사상가가 먼저 떠오른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하늘 같이 떠받들어지고, 오랜 시간 양반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까, 변화보다는 '보수'와 '전통의 수호'라는 개념이 생각난다. 공자가 생전에 이야기 했던 글을 모아서 엮은 '논어'는 수많은 이들에 의해 주와 역이 달렸다. '공자'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원본을 정확히 해석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서툰 번역 연습을 통해, 번역문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번역자의 능력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번역문은 객관적인 것이 아닌 번역자의 견해가 투영되었다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원문을 직접 읽어봐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좋았다. 그럴려면 공자가 태어났던 시대와 발언이 어떤 때에 이루어 졌는지, 그 당신의 문화는 어떠했는지 등장인물의 성향은 어떠했는지 등의 세부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많은 공부와 비교 준비를 통해서 저자만큼의 실력을 갖추었을 때 저자의 글의 완성도를 평가할 수 있다 생각한다. 그만큼의 지식을 아직 쌓지 못하였기에 번역의 완성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건, 전통이 아닌 진보의 시각으로 논어를 읽는다는 점이었다. 햇볕이 비추는 오후에 책상위의 사과를 놓아두면 햇살이 닿은 부분은 밝지만, 밝은 부분과 함께 그림자가 드리운 부분은 어둡다. 밝은 부분도 사과의 모습, 어두운 부분도 사과의 일면이라고 할 때, 기존의 통념과 다른 시각으로 공자의 '논어'를 해석하는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윤리 교과서에서 오래전에 배웠던 '인'과 사랑을 바탕으로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난 '공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 '보수주의', '민족 차별주의', '여자와 민중 천시'의 굴레를 벗기다.


 

  공자가 살던 시대는 지금의 직선적 시간관의 역사가 아닌, 역사는 순환한다는 순환적 시간관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공자가 옛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옛 것을 되살려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려 노력하였으므로, 보수이기 보다는 진보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 주장한다. 공자가 천자를 편애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며, '이로움'보다 '덕'을 중요시했다 주장한다.


 "기존의 오랑캐 나라에 군주가 있어도 중국에 없는 것만 못하다"라는 종래의 해석을 부정하고, "오랑캐 나라 임금의 (덕이)있음은 중국 제후의 (덕이)없음만 같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민족 차별의 굴레를 벗겨준다. 여자와 민중 천시의 발언은 여성과 민중이 교육하기 어려웠던 시대의 한계를 지적한 말이라고 하면서, 지배층을 우선해서 교육하려 했다고 이야기 한다.

 

  공자가 강조했던 인이 생략된 공자의 발언이라 고려하고 해석된 저자의 번역은 인과 '덕치'에 중심이 맞춰져 있었다. 이상을 꿈꾸지만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다. 뜬구름 같은 상상의 공간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지 않고, 현실과 과거의 사례속에서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공자의 모습을 저자가 보여준 안경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 왜? 공자의 '의도'는 사라지고, 보수의 굴레를 쓸 수 밖에 없었을까?

 


  내적인 원칙을 지키고, 인과 예를 바탕으로 '덕치'를 꿈꾸던 공자의 '의도'는 사라지고 왜 어색한 번역들만 난무하게 되었을까? 저자의 '해석'대로라면, 공자가 주장하는 '군자'의 이상향과 '자기수신'의 관점은 매우 탁월한데, 실제의 현실에서는 예가 형식으로 전락해서 지배계층이 아닌 대상들에게는 심한 부담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배층의 지배논리를 위해 왜곡된 해석으로 인해, '공자'가 보수의 굴레를 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현대의 문화적 시각에 의해서 효력을 잃어버린 공자의 '논어'를 현대적 시각에 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재해석한 것일까?


 

# '논어'는 철학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지배층의 체제 유지를 위한 논리에 이용된 공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지금의 시각에서 바라본 공자의 새로운 모습에 더 신경이 쓰였다. 저자의 새로운 번역 역시, 나의 경험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졌다.

 

  처세서나 잠언집이 아닌 철학서라고 강조한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존의 해석과 다르게 변화의 시각으로 공자를 바라볼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준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키보드를 칠 때 늘 손등만 바라보는 것처럼, 한쪽만 보는것에 익숙했었는데, 손바닥의 모습을 본 느낌이다. 기존의 통념속에서도 변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저자의 해석의 설득력은 관련도서를 공부해 나가면서 조금씩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부록으로 담긴 공자 연표와 편명, 한문상식, 관련 정보는 책을 깊이있게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지막에 나온 참고문헌는 번역의 다양한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지표가 될거라 믿는다. 저자의 일관된 해석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이었다. 관점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 그거 하나만으로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7******e 2008.01.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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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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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이 널리 퍼진 요즘, '유교'라는 단어를 듣고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주로 고리타분함, 고루함 등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통과 미덕 - 윗사람과 부모님에 대한 공경, 깍듯한 예절,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 등 - 은 거의 모두 유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유학사상의 창시자이자 대표적인 사상가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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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이 널리 퍼진 요즘, '유교'라는 단어를 듣고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주로 고리타분함, 고루함 등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전통과 미덕 - 윗사람과 부모님에 대한 공경, 깍듯한 예절,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 등 - 은 거의 모두 유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 유학사상의 창시자이자 대표적인 사상가가 바로 공자다.

 

 요즘은 공자의 사상을 처세 요령과 연결짓는 책들이 많다.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들을 거느리며 존경과 신임을 받았던 공자야말로 뛰어난 처세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 '논어는 진보다(포럼, 2008)'의 저자인 문화평론가 박민영은 공자에 대한 이런 세간의 평가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공자는 사람들이 인(仁)이나 예() 같은 범(汎)인류적 가치를 추구하도록 이끈 훌륭한 사상가요, 고귀한 깨우침을 세상에 전하고자 한 선각자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공자는 마치 기독교의 예수나 불교의 부처를 연상시킨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수와 부처의 사상은 종교로 발전된 반면 공자의 유교는 정치 및 윤리 사상으로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공자에 대한 오해들 - 공자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주장했는가?, 공자는 부모에게 무조건 복종하라고 했을까? 등 - 을 다루고 2장에서는 공자의 정치학에 대해 알아본다. 3장에서는 공자의 인간학을 살펴보고 마지막 4장에서는 공자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존의 논어 해석을 비판한 내용과 이에 대한 저자 자신의 해석이 책 전반을 이루고 있다. 나름대로 논리적인 저자의 새 해석과 기존의 해석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다.


 논어를 통해 우리는 공자의 심오한 통찰과 철학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라는 위대한 주제를 언어로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 진리를 쉽게 전달하고자 비유와 이야기를 사용한 공자의 화법은 다중적인 의미해석을 유발하고, 이는 수많은 교리 논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논어는 공자 자신이 저술한 것이 아니라, 그 제자들이 공자의 언행 중 인상 깊고 훌륭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추려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논어를 읽고 공자 사상을 100%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지금까지 남이 해석해 놓은 논어를 접해 왔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해석을 제시하기에 앞서 공자 논어 원문을 맨 먼저 수록하였다. 또 책의 뒷부분에는 논어 해석에 필요한 주요 한자들을 실어, 독자가 논어를 직접 해석해볼 수 있도록 했다.


 어떤 사상이든 그 당시 시대 상황이나 사람들의 가치관을 먼저 이해해야만 올바른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오늘날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가치 - 사랑, 우애 및 가족애, 효도 등 - 를 설파한 공자가 왜 위대한 사상가로 추앙받게 되었는지는, 춘추전국시대의 상황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이처럼 역사와 사상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논어 원전을 읽어내려 애쓰다 보면, 공자가 전하려는 진리와 가르침에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으리라고 본다.

 

 책을 읽고 나면 논어가 진보는 아닐지언정, 진부하고 퇴보한 사상 역시 절대 아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전이 왜 사랑받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사람들, 논어와 유교사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g******m 2008.01.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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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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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에 관심이 많은 만큼 여러 책을읽을때 마다 등장하는 유학이니 유교니 하는 사상에 관심이 가게되었다. 우리 국민의 정신적 근간이 되어 왔지만 줄기만을 체험을통해 경험할뿐 세세한 내용을 접해보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접하게된 “논어는 진보다“는 약간의 설레임과 두려움을 시작으로 한장한장 읽어 내려가며 우리가 따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생활속에 녹아있는 유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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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에 관심이 많은 만큼 여러 책을읽을때 마다 등장하는 유학이니 유교니 하는 사상에 관심이 가게되었다. 우리 국민의 정신적 근간이 되어 왔지만 줄기만을 체험을통해 경험할뿐 세세한 내용을 접해보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접하게된 “논어는 진보다“는 약간의 설레임과 두려움을 시작으로 한장한장 읽어 내려가며 우리가 따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생활속에 녹아있는 유교의 정체를 어렴풋이 짚어나갈수 있었다.


난 참 보수적이란 생각을 종종 한다. 옛 경험과 어른들의 말씀에 빗대어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수적이다란 말로 나를 가두고 싶지가 않다. 보수란 말속에는 진보란 말에 뒤처지는 뉘앙스가 들어있는 느낌이랄까...느낌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가 그렇게 주도하고 있는것 같다. 급변하는 세상속에 옛것을 지키고 유지하려하는 자세에 날카로운 시선이 꽂히는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까?


아마 공자에게도 그런 굴래가 그동안 있었던 모양이다. 주대로의 회귀를 찬동하는 말투(물론 그런건 아니다). 앞뒤 문맥없이 해석되어진 그의 문장은 세월이 흐르며 그를 보수와 형식의 대표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하지만 공자가 뜻을 둔것은 이는 아닐것이다. 세속에서의 잣대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고 서로가 서로를 베타적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의 논리가 주를 이루지만 공자는 말씀하셨다 이는 이(利)를 위한것이지 의(義)를 위한것이 아니라고...

집단논리속 이로움에 빠져 서로를 원망하다보면 마음속에 인이 깃들자리는 없어진다고 하던 그의 말은은 어질다 칭해지 그일지라도 마음먹은데로 이루어짐이 쉽지가 않음을 보여준다.


책을 몇장 읽어 내려가며 인(仁)에 대한 풀이가 기억에 남는다. 어질다...그동안의 학창 시절이 덫없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자주 듣고 책에서 읽어왔던 인. 하지만 난 한번도 그 의미를 생각해 본적이 없단 걸 깨달았다. 참으로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나의 학습방식에 혀를차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인을 중심으로한 다양한 풀이들이 참으로 명쾌하고 기가 막힌다. 처음 접해보는 정신문화적 충격이어서 더욱 크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인으로서 정신적 틀을 이루고 예로서 형식적  틀을 가꿔 덕치의 세상을 이루고자 했던 공자. 문화정치의 힘을 누구보다 먼저 깨닫고 있었으며 지배계층의 변화를 통해 노인들은 인을 누리고, 벗들은 인을믿고, 젊은이들은 인을 품는 세상속에서 모두가 조화롭게 살아가길 바라고 또바랬을 그였지만 세상은 그렇지가 못했다. 비록 그의 바램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의 바램은 모든이가 인을 가슴에 품고 선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질때까지 계속해서 진행형이다.


h********y 2008.01.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