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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드리스콜 / 정진환 옮김/ 죠이선교회
『 새롭게 복음 전하는 교회 』
본서를 쓴 저자는 현직 목회자이다. 그래서 심정에 동질감을 느낀다. 그는 1970년생이다 나와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정서적 감정을 지닌 것 같다. 미국의 기독교는 전체적으로 보수적 경향이다. 한국 역시 비슷하다. 그러나 최근 10년 통계적으로 한미(韓美) 모두 교회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본서는 나의 개인적 질문들과 한국교회에 여러가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로 저자는 문화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적극적이라는 것은 신학적 의미보다 목회적 의미가 크다. 저자는 문화하면 세속적이라는 염려의 틀을 깨고 적극적으로 교회환경 특히 개척의 환경에 적용했다. 그래서 분명한 성서해석학에 근거한 새로운 목회실천을 제시한다.
교회를 개척하며 한국교회의 불문율, 교회성장주의에 몰두할 것인가? 하루에도 여러번 유혹 고민을 당한다. 그러면서 과연 성경적 성장은 무엇인가?로 질문은 귀결된다. 누구나 다 알듯 한국의 교회개척 현장에서 맹목적 교회성장의 환상은 이제는 포기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목회중인 도시가운데 교회의 숫자는 외적 숫자의 한계점에 벌써 도달한듯 하다.라고 저자는 본서에서 내게 말한다. 이제 외적 성장 못지 않게 질적 성장을 논하고 교회목표를 내적 성장으로 방향을 잡으라고 내 가슴에 대고 말하는듯 하다. 그런데 과연 내적성장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것이 바로 교회문화이다. 기도, 찬송, 예배.. 이런 교회안의 내적성장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더욱더 교회을 구성하는 성도들 삶의 내적환경을 복음으로 돌아서게 해야 한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본서에서 저자는 지적한다. 미국교회 구성원들이 건강하지 못하다. 한국 역시 이혼율의 증가, 결손가정, 진실성 없는 삶, 불건전한 SEX, 이단들의 침투로 인한 혼란등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이런 것은 신앙생활과 연결되지만 교회안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삶의 내적문화이다. 한국의 일부교회이지만 개별상담과 복지적인 측면에서 이런 문제들을 소극적으로, 개인의 문제로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소제목들에서 보듯 ‘구원하라’ ‘기억하라’ ‘회개하라’ 등 전투적 명령어로 교회가 개별성도들의 삶의 문제에 나서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교회문화의 외적문제로 적극적으로 끌어내어서 해결할것을 주문한다.
둘째로 깊은 성경연구로 사회적 문제를 다루었다라는 것이다. 저자는 목회지의 사회환경을 뒤로 미루지 않았다. 교회내 목회적 차원의 일반적 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도 역시 적극적으로 교회의 선교과제로 인식했다. 낙태, 동생애, 혼외 청소년임신, 실업... 과연 한국교회는 지역문제에 대하여 심도있게 생각하고 있는가? 주로 생각하는 것은 교회성장, 교회안정이다. 그러나 저자는 보수적 기독교와 다른 성경적 시각을 분명히 제시해 준다. 그것도 철저히 성경을 연구하면서 말이다. 아직도 한국교회 안에서는 담배, 술, 이런 것들에 대한 말조차 꺼낼 수 없다. 그리고 성서적 문제들로 여기면서 성경을 찾아가면서 연구조차 하지 않는다. 한국교회에서 이런 것에 대하여 저자처럼 강력하게 가르치고 말한다면 더 많은 남자성도들이 힘을 얻고 죄책감속에서 해방될 것이다. 그리하여 복음의 능력을 믿고 더 선교에 동참할 것이다.
오늘날 복음이 아닌 것이 복음인 것처럼 위장하는 사례가 한국교회안에 너무나 많다. 특별히 분명히 아닌데 하면서도 용기가 없어서 바른 복음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연막, 위장 복음이 많은 것이다. 결국 율법주의, 바리새주의 자들과의 공범자들만 대량 양산하는 것이다. 성서진리와 관계없는 것도 보수주의라고 확대 해석하여 가르친 경우가 종종 있다.
주님은 인간들을 정죄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다. 인간을 사랑하여 오셨고 인간은 주님의 큰 은혜에 감격하여 구원을 받았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사탄이 왜곡시킨, 오염시킨 세상문화를 무서워한다. 죄만이 그곳에 있다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진정한 복음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주님의 능력은 사탄의 문화도 변혁시킬 수 있다. 모든 문화가 위험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많은 문화는 중립적이다. 인간의 죄된 본성이 문제이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문화를 선교개혁의 도구로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은 성서의 바른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초대교회시대 복음의 능력이 새로운 혁신적 문화시대를 가져 왔다. 요나서의 내용은 세속문화속에 사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좋은 선교적 문화변혁의 한 예이다 .
셋째 아쉬운 것은 저자가 오늘날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외부형태가 오늘날 대표적으로 문화이다. 물론 책 한권으로 모든 것을 다루지 못한다. 저자는 훌륭한 책을 썼다. 문화의 상위구조인 자본주의 문제를 다루길 다음에 기대한다. 교회개척자, 목사는 복음이 자본주의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다라고 믿어야 한다. 교회, 자본주의, 문화는 선교개혁적인 과제에서 앞으로 한국교회가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씨름해야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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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자체로는 괜찮다. 그래서 별이 3개인데
문제는 번역된 책 내용 자체로만 괜찮다는 점이다.
마크 드리스콜은 무슨 책에서든 사용하는 영어 낱말이 완전히 길바닥 수준이라서 a에서 별이 1개인 경우가 꽤 있다.
이 책의 원서에서 쓴 낱말도 시정 잡배의 입에서나 나올 법하게 상당히 거친데 번역판인 이 책에서는 아주! 점잖게 번역해 놓았다.
게다가 a에서의 평에 따르면 저자는 다른 책에서 불법건축물을 교회로 쓰면서 전기를 도둑질해서 쓴 적도 있다면서 불법 건축물이었으니까 전기세를 낼 필요가 없었다고 당당하게 우겼고 또 다른 책에서는 별 쓸데 없는 성적인 농담을 꽤 써놨다고 한다.
이 책 내용 자체로만 보면 번역자가 워낙 번역을 잘? 해놨기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저자가 입이 건- 편이라는 점을 명심하기를 권한다.
원서의 노골적인 낱말들을 매우 예의 바르고 공손하게 번역했다는 점에서 편집 별은 후하게 1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