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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결산] 읽는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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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항상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읽다가 멈추는 소설이 늘어난다. 소설의 문장만 읽고 있을 뿐 작가가 그리는 그림이나 메시지를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라는 걸 안다. 취향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친구는 그런 말을 했다. 인물을 이해하는 게 힘들다고, 그래서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많이 읽는다고 말이다. 집중력이 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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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을 때 항상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읽다가 멈추는 소설이 늘어난다. 소설의 문장만 읽고 있을 뿐 작가가 그리는 그림이나 메시지를 찾지 못할 때가 많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라는 걸 안다. 취향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친구는 그런 말을 했다. 인물을 이해하는 게 힘들다고, 그래서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많이 읽는다고 말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걸 보니 나도 그런 때가 오는 건가 싶기도 하다. 제6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다가 든 생각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소설집을 다 읽지 못했다는 말이다. 궁금했던 작가의 소설과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만 읽고만 것이다.


 처음 소설을 읽게 된 홍희정의 「앓던 모든 것」은 무척 아름다웠다. 홍희정이란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일흔넷의 화자 ‘나’는윤오라는 청년을 수영장에서 처음 만났다. 갈 곳이 없는 윤오에게 자신의 집의 방을 내준다. 누가 보면 할머니와 손자처럼 보이는 사이다. 그러나 ‘나’에게 눈부신 청춘인 윤오가 다르게 보인다. 한때 문학에 적을 두었던 나에게 노랫말을 쓰는 윤오는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보상처럼 여겨진다. 그러니까 젊음에 대한 욕망을 조심스럽게 탐한다고 해야 할까. 윤오의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사고마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독특한 관계 설정과 아름다운 묘사가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백수린의「첫사랑」은 아련하고 아득한 기분을 몰고 온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는 ‘나’는 짝사랑했던 J선배와 만날 약속을 한다. 만약을 위해 예쁜 원피스라도 장만하기 위해 동기의 소개로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에서 만난 동기들과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현재 통폐합 위기에 처한 현실을 생각한다. 동기들은 대학원에 다니며 공부만 하는 나에게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하기도 한다. 그러다 J선배의 근황을 듣게 된다. 소설을 첫사랑이라는 제목처럼 낭만적인 부분이 등장하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일이 현실의 괴리에 대해서도 잘 보여준다.  


 김엄지의 「느시」는 다시 읽어도 묘한 매력을 지녔다. 무기력한 일상의 반복임에도 경쾌함 같은 리듬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개인적인 애정에서 비롯된 감정일 듯하다. 궁금했던 정영수의 소설 「애호가들」도 나쁘지 않았다. 스페인 문학을 강의와 변역을 하는 주인공을 둘러싼 관계를 무척 현실감 있게 담아냈다. 박민정의 버드아이즈 뷰」는 몰래카메라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통해 왕따와 관계의 단절에 대해 말한다.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날카로운 일침을 던진다고 할까. 오한기의 「사랑」은 기괴하면서도 독특했고 신선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면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놓치 않는 김솔의 「누군가는 할 수 있어야 하는 사업」도 기억에 남는다. 

 소설에도 유행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시류에 따르지 못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정지돈, 이상우(후장사실주의자)가 주목받는 작가라는데 그들의 소설이 내게는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쉽지 않다. 해박한 지식과 이론을 병행한 이야기, 모든 것을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에 동의하지만 아직은 어렵다.  

r*********s 2017.01.03. 신고 공감 4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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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결산] 건축이냐 혁명이냐: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다시 읽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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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진실을 추구할 때 있을 수 있는 끔찍한 일은, 진실을 아는 것이다. - 빅토르 세르주    정지돈의 「창백한 말」의 주인공인 ‘장’은 유학생인 여자친구를 만나러 모스크바에 간다. 그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날은 1월 2일이고, 그의 가방 안엔 세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장은 비행 동안 책을 읽거나 잠을 잤다. 화물로 보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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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진실을 추구할 때 있을 수 있는 끔찍한 일은, 진실을 아는 것이다.
- 빅토르 세르주

 

 

정지돈의 「창백한 말」의 주인공인 은 유학생인 여자친구를 만나러 모스크바에 간다. 그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날은 1 2일이고, 그의 가방 안엔 세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장은 비행 동안 책을 읽거나 잠을 잤다. 화물로 보내지 않은 그의 숄더백에는 책 세 권이 있었다. 『러시아 미술사』와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보리스 사빈코프의 『창백한 말』. (p.25)

 

이 작품의 제목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들은 보리스 사빈코프나 그의 작품인 『창백한 말』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발터 벤야민이 러시아 전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한창이던 1926 12월부터 1927 2월까지 모스크바에 머무르며 쓴 일기로서, 발터 벤야민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게르숌 숄렘에 의하면 『모스크바 일기』은 지금까지 전해진 벤야민의 저작 중 가장 사적이면서 철저하고도 냉정하리만치 진솔한 기록이다.

숄렘에 의하면 벤야민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모스크바에 가게 된다. 첫째, 연인 아샤 라치스(Asja Lacis)에 대한 애정과 둘째,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열망, 셋째, 문학적 의무들에 대한 고려. 따라서 독자는 『모스크바 일기』를 통해 이론가 벤야민의 뒤에 가려졌던 인간벤야민애인에 대한 감정, 지인들에게서 받은 인상, 공산당 가입과 사회주의에 대한 고민 등—에게 다가갈 수 있을 뿐마 아니라,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벤야민이 느낀 모스크바와 소비에트 연방의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사건들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벤야민의 사상이 맑시즘으로 옮아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이해하고 이 작품을 보면, 정지돈이 매우 정교하게 『모스크바 일기』와 궤를 같이 하여 작품을 구성하고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정지돈은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의 형식과 내용을 그대로 차용해서 소설-에세이라는 소설가로서의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구축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2015년에 제6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이 「건축이냐 혁명이냐」였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창백한 말」은 알렉산더 로드첸코, 보리스 사빈코프, 빅토르 세르주, 발터 벤야민 등을 호명하면서 혁명이 실패할 가능성이나 혁명이 성공할 가능성 혹은 혁명 그 자체에 대해 서술하는 것 같지만, 기실 건축과 혁명은 양자 택일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창백한 말」에 이르러 느끼는 것은 건축도 하고 혁명도 하고 혹은 건축으로 혁명을 하는 게 정지돈이 추구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정지돈은 건축을 함으로써, 건축이라는 방식을 통해 혁명을 한다. 물론 그에게 있어서 건축이란 글을 읽고 쓰는 행위이다. 그리고 정지돈이 그것(건축으로 혁명하는, 다시 읽고 쓰는 행위)을 통해 다가가고자 하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과거, 전위인 현대이다.

 

나는 로드첸코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로드첸코의 그림은 백년 전의 것이라기엔 너무 현대적이었다. 현대란 현재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이나 시대를 지칭하는 거라고 장이 말했다. 그는 다시 현대는 시간이 아닌, 인물이나 작품으로 오는 거라고 말하며 그런 의미에서 요즘은 전혀 현대적이지 않다고 했다. (p.25)

 

그런 점에서, 연대기적인 발표 순서를 무시하자면 「창백한 말」은 정지돈 소설의 초기작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심사위원들의 저작은 적확하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정지돈이라는 새로운 작가의 탄생과 새로운 소설의 탄생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다시 읽고 씀으로써(건축으로) 혁명하는 소설가의 탄생 말이다.

 

[총평]

1. 6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정지돈, 이상우, 오한기가 모두 포진해있다. 한국 소설계에서 가장 젊고 전위적인 부류는 '후장사실주의자'들인 듯하다. 생각해 보면 작년에 이어 올해도 후장사실주의자들의 약진이 돋보였던 한 해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있게 읽은 건 정지돈. 문학의 전위를 그를 통해 읽는다. 올해 『내가 싸우듯이』라는 소설집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소설리스트에서 올해의 데뷔작으로 선정할 만큼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한동안은 후장사실주의자들이 한국 소설을 추동하지 않을까 싶다. 도래하는 미래(혹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과거)를 보듯 기분 좋게 지켜보고 있다.

 

2. 이광호가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문학상이 문학적 권위를 만들고 재생산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문지문학상은 권위가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문학의 잠재성을 호명하는 문학상이 되고자 한다. 젊은 작가들의 이질적인 글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것도 이 작품집만의 특징인데, 조연정이 언급했듯, 올해 후보작을 낸 열 명의 작가 중 절반은 이달의 소설에 처음 선정된 작가들이다. 박민정, 양선형, 오한기, 정영수, 홍희정. 고무적이다.

 

3. 정지돈을 읽고 나서 이장욱이 생각났다. 내가 이장욱을 맨처음 좋아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정지돈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지돈은「창백한 말」이 존 파울즈와 레이먼드 카버, 미셸 우엘벡과 밀란 쿤데라, 토마스 만의 영향을 받았을뿐 아니라, 보리스 사빈코프, 로베르토 볼라뇨, 빅토르 세르주에게 빚졌다. 플라토노프와 이장욱의 「혁명과 모더니즘」, 올랜도 파이지스의 「나타샤 댄스」, 카레르의 「리모노프」, 수전 손택의 빅토르 세르주에 관한 에세이와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의 영향도 크다고 말한다.

정지돈에게 있어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는 별개가 아니며, ‘소설-에세이라는 형식은 그러한 작가적 특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임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저 중 적어도 한 명의 작가를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 경우엔 이장욱이었는데, 그다음엔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가 될 것 같다.



* 세심한 건축학자와 같은 정지돈의 면모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정지돈은 한 블로거가 번역해서 올린 로베르토 볼라뇨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읽고 「창백한 말」을 다시 쓰기로 했는데, 그때 쓴 버전이 지면에 발표한 작품과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당시의 제목은땅위에서의 마지막 저녁들이었다. 그 전에는 「모스크바에서 온 일기」였고 그 전에는 「카이로의 낮과 밤」이었으며 그 전에는 「눈밭 위의 여우」였다고 한다.

처음 단편을 쓴 건 2008년이고, 마지막으로 고친 건 2015년이니까 이 한 작품을 7~8년간 쓴 셈이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16.12.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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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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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Marc - Blue Horse I (1911)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요한계시록 6:8)  치익 하는 스팀 소리만 반복적으로 울리는 카페에서 그들은 사빈코프와 세르주에 대해,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한 세기 전의 혁명가들에 대해 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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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Marc - Blue Horse I (1911)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요한계시록 6:8)

 

치익 하는 스팀 소리만 반복적으로 울리는 카페에서 그들은 사빈코프와 세르주에 대해,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한 세기 전의 혁명가들에 대해 길고 긴 대화를 나눌 것이다. 나나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제는 사라진 지난 세기의 이상에 대해서. 나는 그들의 대화가 카페 안의 정적을 몰아내는 모습을 상상한다. 스팀의 온기처럼 카페 안을 가득 채울 그들의 대화를. (pp.39-40)

- 정지돈, 「창백한 말」

 

 

YES마니아 : 로얄 c*****g 2016.12.16. 신고 공감 2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