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앤 K. 롤링은 지금 이 곳이 아닌 저 미들랜드 어딘가의 황량한 벌판으로 독자를 송두리째 옮겨버리는 그런 작가가 아니다. 그녀가 그려내는 세계관은 엉성하고, 플롯은 빈약하며,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은 어색하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은 이전에 뿌려놓은 밑밥들을 해결하느라 허덕이며 그러한 단점들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거기에다가 번역까지도 뭔가 좀 아니다 싶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왜 본서를 집어드는 순간부터 페이지의 마지막까지 쉼 없이 달리게 되는 것일까.
시즌으로 나뉘어 방영되는 미국 드라마의 재미에 한번 빠지게 되면 그 이후 그 드라마의 재미가 전보다 못하게 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팬들은 계속 그 후속 시즌을 챙겨본다.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줄거리는 지지부진하고 각종 떡밥이 난무하더라도 적어도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만 살아 있다면 그들의 여정을 계속 지켜보고 싶은 관심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해리포터 시리즈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로 독자의 관심을 놓치지 않는 막장 드라마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막장 드라마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포터 시리즈가 이 만큼의 사랑을 받았던 것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오가는 버스 안에서, 또는 잠들기 전의 잠자리에서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읽으며, 나는 이 책이 본질적으로 '연민'과 '위로'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를 잃고, 이모부 댁에서 학대 당하며, 호기심 또는 질시의 눈으로 항상 감시 당하며, 최악의 상대에 의해 끊임 없이 목숨을 잃을 뻔 하고, 그를 지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잃고, 때로는 불신 당하고 때로는 깊은 실망과 절망에 빠져든다. 조앤 K. 롤링은 새디스틱하다 싶을 정도로 잔인하게 그녀가 창조해낸 주인공을 괴롭히고 또 괴롭히지만, 그녀가 해리 포터를 바라보는 가장 근원적인 시선은 '연민'이 아닐까.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면 해리포터가 자기연민에 빠져 어찌할바 모르는 장면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그 누구로부터도 위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소통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연민만이 유일한 감정의 분출이 될 수 밖에 없는 주인공. 작가는 그런 주인공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그를 응원해 주는 지원군들을 만들어 주고, 무엇보다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감싸안도록 한다. 그녀가 그의 창조물, 어쩌면 또 다른 자신에게 주는 '위로'.
두 번의 이혼을 하고 어린 딸아이와 함께 궁핍하게 살아가던 작가 지망생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작품에서 자신의 상황과 자신의 바램을 투영하지 않았을까. 해리 포터에게 많은 시련을 주는 한편 해리 포터가 그 시련을 극복해 내고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얻고 지켜내는 얘기를 그려가면서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은 아닐까.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보아야 할 책이나 영화가 있다.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한 해리 포터가 마침내 얻은 평화와 행복을 아마도 우리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고생한 친구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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