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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를 아주 오래 전에 영화로 본 기억은 있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더라구요. 그런데 우연히 청소년 징검다리 클래식을 통해서 읽게 되었지요. 청소년 용 책이라 상당히 말들을 다듬었더라구요. 좀 내용이 축약된 느낌은 들지만 전체적인 내용이 다 들어있고 이책을 잘 읽고 소화하기 위해서 그당시의 사회 상들에 대해서 책 뒷부분에 소개를 해주었고 그런 류의 소설들에 대해서도 국내와 국외 작품들을 많이 비교해서 읽도록 유도를 했습니다. 청소년 징검다리 클래식의[제대로 읽기]코너는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지식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상당히 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런 부연설명 없이 소설만 읽는 독자와 부연설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는 독자의 차이는 분명히 다릅니다. 청소년들이 독서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푸른 숲의 구성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 이소설을 통해서도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사람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여져서 예전이나 현대나 돈이 참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씁쓸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작자가 결국 말하는 것은 돈으로 이룰 수 있는 것과 결코 이루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이주는 행복이 많은 반면에 마음 한편은 언제나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개츠비의 종말 (엄청난 부자 개츠비의 장례식에 몇 안되는 사람만 오는 모습, 자신의 죄를 덮어준 개츠비를 버리고 떠나는 여인, 어려운 시절 함께 도와서 성공했지만 그의 장례식에 오지 않는 사업파트너...)을 통해 우리는 느낄 수 있지요. 그리고 돈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는 부분 (개츠비의 아버지가 아들의 장례식에 와서 슬퍼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지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자기가 이렇게 엄청난 부자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통해 "돈"("부") 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그명색을 유지한다는 것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이소설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아이들도 잘나가는 미래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그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고통의 길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는 것 같고 성공한 후의 삶(공인의 삶)이 얼마나 외로운 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아요.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청소년 여러분들이 한번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루어 가야 할 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들을 가져서 자신의 꿈에 대해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설정에 맞추어 삶을 계획하고 그계획들을 잘 수행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그러한 삶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진실이고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은 꼭 기억하시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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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가 위대하다면 무엇 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았다. 가치 없는 여자를 사랑하느라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가치 없는 사람들을 끌여들여 파티를 벌이고, 화려한 저택에 밤새도록 휘황한 불을 밝히고...허무하게 총 맞아 죽어버린 남자. 정말로, 위대하다는 말을 붙일 만한 사람일까? 뭔가 가치 있는 것들이 있을 텐데.
그러다 결국 위대하다는 말에 다소 한정적 의미를 붙여보기로 했다. 꿈을 좇는 일을 그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의미. 여기서 꿈은 현세적 가치와 상반되는 의미다. 다소 허황돼 보이고, 획득하는 일이 오로지 그 자신에게만 필생의 소원인 그런 꿈. 꿈이 가치로우냐, 그렇지 않으냐를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재는 일만 하지 않는다면 그의 꿈을 좇는 삶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
김동인 선생의 <무지개>라는 동화에서 소년은 무지개를 좇아다니다, 항상 손끝에 잡힐 것만 같은 그걸 따라다니다, 50년이 지난 후 그걸 잡을 수 없다고 깨달은 순간 늙어버리고 쓰러진다. 꿈에 대해 불가능이라는 현실적 깨달음을 가져버리면 그는 빛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개츠비는 꿈을 지닌 채 죽어버렸으므로, 늙어버린 현실과 마주하지 않았다. 그게 그를 빛나게 한다.
그러나 개츠비 외의 다른 사람들은 일찍부터 꿈을 꾸지 않았다. 언제든 달리기를 포기하고 되돌아갈 수 있고, 다른 길로 가면서도 그것이 그들의 삶을 괴롭히지 않는 심장을 지닌 사람들. 바람 부는 대로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먼지같은 인생들을 개츠비와 비교하니 정말로 초라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개츠비같은 사람들의 죽음은 꿈이라는 것에 일말의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살 맛을 감퇴시키는 작용을 한다. 순수한 열정으로 뭉친 이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고, 그게 많은 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생각도 들고.
책 뒤에 배경지식이 알차게 실려 있어서 개츠비 시대의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다. 갑자기 쏟아져내리는 돈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생각을 재삼 다듬었고, 로스트제너레이션에 대해 환기,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와의 애증관계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개츠비를 처음 접하는 청소년들에게 알맞게 나왔지만 나같은 성인들이 읽기에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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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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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책이라도 읽는 나이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당연하다!) 심지어 읽는 계절에 따라서도 느끼는 바가 다르다. 청소년기에 읽었던 많은 고전들을 지금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그래서 기회가 되면 이렇게 다시 읽어본다. 물론 일부러 찾아서 읽기는 힘든데 우연히 기회가 찾아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은 학창시절에 읽지는 못한 책이다. 그래도... 만약 읽었다면 그 때와 지금의 느낌이 어떻게 다를까.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를 배경으로 물질적인 것이 우선시 되는 시대풍조를 은근히 비꼬는 이 작품은 등장 인물 하나하나가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다. 비빌 언덕도 없고 배경도 없어서 어떻게든 상류사회로 편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 개츠비, 처음엔 사랑을 믿는 듯하지만 결국 외적 조건을 따라가고 끝까지 그것에 안주해 버리는 속물 데이지, 특별한 인생의 목표도 없이 그저 현실을 즐기며 세월을 보내는 부유한 한량 톰 등 여기에는 제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인물이 없어 보인다. 아, 있긴 하다. 바로 화자인 닉.
잠시 여자들이 꿈꾸는, 첫사랑을 못 잊어 혼자 살며 사랑이 돌아오길 바라는 그런 남자인 개츠비가 아름다웠다. 청소년기나 한창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20대였다면 끝까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자신이 잘못을 뒤집어 쓰는 개츠비가 한없이 멋있어 보였을 것이다. 그런 사랑이 결코 진정한 사랑일까 의심하는 지금 나이에서도 잠시나마 그런 남자가 멋있었으니까. 혹시나 지나가다 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화로운 파티를 자주 여는 개츠비는 일편단심 데이지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끝까지 그녀를 위해 산다. 그러나 그가 톰 앞에서 자신의 사랑과 데이지의 사랑을 확신하는 모습을 보며 뭔가 잘못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게 과연 사랑일까. 집착은 아닐런지.
혼돈의 시대에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되는 가치들이 있다는 명제는 언제나 유효한 것 같다. 1920년대를 바라보는 피츠제럴드도 그 어떤 가치를 이야기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상실했네, 다시 찾아야하네 하며 떠들고 있지 않던가. 마치 어른들이 신세대들을 보고 하는 말('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이란'이러는 것 말이다.)이 세대가 변해도 똑같듯이... 피츠제럴드는 닉의 입을 통해 다른 사람을 다 합쳐도 당신(개츠비)만 못 하다는 말로 개츠비를 칭찬한다. 적어도 개츠비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물질적인 것만 따지지는 않으니까.
뒷부분에 나와 있는 작품에 대한 여러 이야기와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시간이 언제나 흥미롭다. 피츠제럴드는 개츠비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또한 헤밍웨이를 발굴한 인물이기도 하단다. 그러나 둘은 성격도 문체도 너무나 달라서 서로 사이가 멀어졌단다. 어찌되었든 소설의 위대함이란 당시의 세태와 도덕, 그리고 시대를 잘 표현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단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사랑받는 고전으로 남아 있는 것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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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피엔딩의 소설이나 영화를 좋아한다. 그것이 삼류영화나 드라마같은 해피엔딩 일지 라도 슬픈결말은 나를 허무 하고 슬프게 만든다. 그러니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나에게 있어 아주 예외적인 것이다. 해피엔딩이 아님 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만큼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책들 중에 하나이다. 지금보다 한참 어렸던 7년전에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사실 슬픈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를 다행으로 생각하고 행복했었다.
주인공인 닉 케러웨이는 그의 이웃인 개츠비의 삶을 제 3자의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그러나 친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롱아일랜드지역의 거부인 개츠비는 매일 밤 호화스러운 파티를 여는데 우연히 그의 이웃으로써 파티에 초대 되었던 닉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소문을 듣게된다. 그에 대한 소문들은 대개 무시무시 한 것들 이지만 사실 개츠비는 아주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밤마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살고있는 건너편 집을 향하여 미소를 짓고, 행여나 그녀가 오지 않을까 매일 밤 호사스런 파티를 여는 것이 었다. 닉은 이러한 개치비의 감성적이고 화려한 개츠비에게 점점 매료 되어간다. 데이지, 그녀는 유부녀인데 그 지역 부자이자 스포츠 선수인 톰 부캐넌과 결혼하여 살고있었으나, 개츠비가 나타나자 둘은 결국 다시한번 눈이 맞고 만다. 과거를 되풀이하려는 개츠비와 갈등하는 데이지는 결국 어느날 톰의 정부이자 윌슨의 아내인 머틀을 교통사고로 죽인다. 개츠비는 데이지대신 누명을 뒤집어 쓰고 머틀의 남편인 윌슨에게 사살당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데이지는 그의 장례식에 조차 나타 나지 않는다. 또한 그 많았던 파티의 손님들의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는다.
젊은 시절 부유하지 못했던 개츠비는 호사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데이지와 이어지지 못하고 그녀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물질과 향락을 좋아하는 그녀를 만나기위해 어떻게 든지 부를 이룬 개츠비는 이제 데이지를 사랑할 “자격”을 얻게 된것이었지만 그 끝은 비극이었다. 그가 바래 마지않던 꿈과 희망이 결국 그를 비극으로 내몰고 갔다. 쾌락과 허황된 꿈만으로 가득찬 그의 인생 끝에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그는 홀로 죽음을 맞이 했다.
개츠비가 살았던 그 시절 즈음의 다른 부자들과 달리 개츠비에게는 “부의 의미”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 데이지를 향한 몸부림. 어떻게 해서든지 데이지를 손에 넣으려는 그의 한결같은 사랑은 지독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몸부림은 개츠비만의 방식의 사치였으며 그 속은 공허할 뿐이란걸 알고있다.
‘위대한 개츠비’는 당시 1차 대전 이후의 미국의 버블경제가 한창이던 시절의 쾌락과 향락만이 떠돌던 그 시절의 허무함을 그리고있다. 허황되며 비이성적인 꿈만을 쫓던 개츠비의 최후와 그 세대의 모습이 닮은 것이다. 하지만 그의 최후를 떠나서 개츠비는 여전히 위대하다.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한 여자를 위해 죽음을 맞이한 그의 최후는 해피엔딩도 새드 엔딩도 아니었다. 오직 데이지만을 위해 살았던 개츠비는 아마도 데이지를 위해 죽던 그 순간마저 행복해 하지 않았을까? 사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데이지와 잠시나마 행복했었고 그가 염원하던 데이지의 사랑을 얻었으니 개츠비에게만은 허무한 죽음이 아니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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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꿈을 쫓아 젊음을 바친 주인공 개츠비와 물질적 풍요를 택하는 그의 사랑 데이지.
이 책은 백여년전에 쓰여졌지만 그 풍경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내게 묘한여운을 남긴 개츠비. 그는 물질적 성공을 갈망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물질적 풍요를 제일로 생각하며, 앞뒤 돌아볼 틈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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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는 워낙 유명한 소설이며, 고전 중에 고전이다. 익히 그 내용은 너무나 알고 있고, 또 영화로도 만들어진 탓에 다시 읽어보겠다고 결심한 데는 나 나름에 이유가 있다. 이야기의 화자인 나는 우연히 옆집에 살고 있는 개츠비란 인물을 알게 되고, 친구인 톰과 먼 친척벌인 그의 아내 데이지와의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회상형식으로 이야기 한다. 돈때문에 개츠비와의 사랑을 뒤로 하고 톰과 결혼하지만, 사실 톰은 정부가 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톰과 오직 데이지를 위해 돈을 모아 언제가 그의 집에 들를것을 염려해 매일밤 파티를 여는 개츠비다. 그러다, 이 사실을 알게된 톰은 자신의 정부인 머틀이 개츠비의 차를 톰의 차로 알고 뛰어들다 사고로 목숨을 잃게되자 사고를 낸 당사자가 그의 아내인 것을 숨기고 오히려 개츠비에게 죄를 덮어 쒸우고 멀리 떠나고, 머틀의 남편이 쏜 총에 개츠비는 죽음을 당한다. 어려서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 많이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중에서 제일 이해가 어려웠다면 단연 '위대한 개츠비'다. 왜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붙었는지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한다는 이유로 데이지를 위해 대신 죽었다(?)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억울한 죽음을 당해서 그런건가 하는 의문이 늘 따라다닌 이야기였던 것이다. 누가 꼭 짚어 주면 좋으련만 아직 그런 책은 만나던 터에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눈에 띄었다. 청소년 징검다리 클래식에 나온 개츠비는 뒤에 "제대로 읽기" 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는 좀 다르게 역시 해석을 먼저 읽고, 다시 읽어보니 역시 단어 하나 하나가 , 인물묘사가 이렇게 와 닿을 수가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 고전이란 이렇게 다른 거구나 하고 감탄하게 했다. 시대적 배경지식을 알고 읽었더라면 내 청소년시절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고전 소설이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또 이처럼 잘 정리된 해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