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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접하고는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 되는 그런 책이다. 여기서 '술취한 코끼리'는 '다스려지지 않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 삶, 고통, 사랑, 두려움, 행복, 분노, 용서, 죽음과 같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108 마리의 코끼리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8의 숫자에서 눈치챌 수 있겠지만, 저자는 30년 넘게 수행승으로 살아온 유명한 스님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하였지만 스스로 삭발한 뒤 밀림으로 가서 위대한 스승 아잔 차의 제자가 된 아잔 브라흐마가 주인공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오직 하나의 스승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 스승은 다름아닌 삶이라고. 그리고 우리의 삶은 행복과 고통이 거의 같은 비율로 들어있는 것이라고. 우리들 각자는 그 삶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라고. 불가에서는 우리의 삶을 고해의 바다에 비유한다. 고해 또는 고통을 '행복의 부재'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우리가 흔히 추구하고 있는 행복은 욕망의 충족을 의미하지만 일단 충족된 욕망은 새로운 욕망을 잉태한다. 따라서 욕망의 자유, 선택의 자유라는 방법을 통한 행복의 추구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설파하고 있다.
그럼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욕망의 자유'가 아니라 '욕망으로부터의 자유'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이라고 설파한다. 세상에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그 원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메시지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잘 엮어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그는 스승 아잔 차와 함께 지낸 일화, 30년 이상 수행승으로 지낸 자신의 영적 성장과 경험들, 고대 경전에 실린 이야기, 농담, 그리고 절에서 행한 법문 등 108개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천을 짜듯이 잘 엮여져 있다.
차분하게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을 뒤돌아보기에 적당한 책이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진리를 깨우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실천의 문제가 빠져 있다.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이러한 깨우침은 우리의 삶에서 실천되어야 진정한 의미를 갖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측면에서 <불평없이 살아보기>를 한 번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 다스리기를 실제 생활에서 적용해 보고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있다. 남을 탓하기 이전에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보살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실천적 과제를 다룬 <불평없이 살아보기>가 이 책의 교훈과 잘 어울려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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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하였을 때 코끼리는 나에게 무언가 벗어날 수 없는 커다란 삶의 무게인가 싶어 '쿵'하고 와닿았다. 그 커다란 무게만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데, 술취함이라니...
이 책을 읽는 내내 도닦는 수도승 옆에서 물시중이라도 들고 있는 동자승같은 심정이 되었었다면 너무 억지일까? 마음이 많이 허해서 어디 둘 데 없어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치료사같은 손길로 다독여 주며 내 '마음'을 조금씩 열게 해 주었다.
비뚤어지게 쌓은 벽돌 두 장이 내내 마음이 걸렸던 사람에게는 나머지 998장의 벽돌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방문객의 한마디 깨달음에 훌륭하게 쌓아올려진 다른 벽돌들이 눈에 들어오며 '매우 아름다운 벽'이라는 것에 동의를 하는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 졌다. 미완성 투성이면서도 나름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탓에 우리 아이에게도 좋은 면보다는 부족한 면을 지적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을 잠시나마 반성하게 해 주었다.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내려놓음'이다. '깨어 있으라. 무엇에도 얽매이지 말라. 마음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흐르는 대로, 있는 그대로 놓아 두라'
고통이라는 것. 어쩌면 그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은 집착이 아닐런지... 그 아픔으로 인한 정신적인 통증보다는 그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여기며 몰입하고자 하는 못난 집착이 실제의 고통보다 더 많이 아파하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내려놓음이라...그 집착을 내려놓으면 고통도 줄어 들고 마음도 편해 진다는 것을 어찌 깨닫지 못했을까..
이 책은 온 몸을 뒤흔들만한 충격적인 감동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잔잔하게 다가와 내 몸 구석구석 곤두서 있던 많은 칼날들을 조금씩 무디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역할을 해주었다. 한 자리에 앉아 독파하기 보다는 내 맘이 한 번씩 허해질 때 마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 마다 살며시 넘겨 보며 마음의 위안을 받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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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과연 술취한 코끼리를 길들일순 있을까??라는 엉뚱한 생각부터 들게 만든 책^^
책을 처음 받았을때 뭔가 특별한 느낌이었다..
불교 이야기라고는 하나 종교랑은 아무 상관이 없는듯...자신의 종교가 불교가 아니라도 이책은 너무 도움이 될듯하다.배움을 얻는데 종교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중에서 하나... 1.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아침을 눈을 떳을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며 밤에 잠자리에 들기직전 자각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이 책을 다 읽었지만 다시 한번 읽어야 할까보다..너무 쉽게 금방 읽어버려서 기억에 다 남아 있지 않은것 같기도 하다...다시 읽을땐 필기도구를 준비하고 하나하나 깊이 새기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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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이책의 저자는 아잔 브라흐마로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후 밀림에 들어가 30년이상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몸은 호강하지만 마음으로 지옥을 사람이 있고, 몸은 힘들지만 현실에서 천국을 누리는 사람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평상시에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죽음이 삶을 통째로 바꾼다
고대 인도의 아쇼카 왕과 그의 동생 기타쇼카가 있었는데.. 방탕한 동생을 바로잡기 위해 꾀를 내었다 외출을 하는 척 하면서 옷을 두고 간다" 신하들은 동생을 꾀어 왕의 옷을 입어 보라고 꼬드긴다 이는 대역죄에 해당되기에 동생은 거절했지만 계속해서 꼬드겨서 결국 동생은 왕의 옷을 한번 입게보게 되었고 바로 이 순간 형인 왕이 들어오게 된다 왕은 대역죄를 물어 사형에 처한다고 위협한다 대신 배려의 차원에서 7일간 모든 호사를 누리게 해 준다
"왕의 옷을 입어본 것은 대역죄! 사형에 처하는 게 마땅, 마지막으로 7일간 모든 호사를 누리게 해 줄 터이니, 뭐든지 얘기만 하라"
여자,음악,옷,음식... 7일후 왕은 동생에게 7일간의 호사를 잘 누렸는가? 라고 물었는데 "하루도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내가 곧 죽으리란 것을 알면서 어떻게 즐길 수 있겠습니까?" 이후로 동생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1]죽음이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삶을 알차게 살고 싶다면 죽음을 떠올리면 된다
[2]용서는 상대를 무방비로 만든다 긍정적인 용서는 상대의 분노를 잠재우고 세상을 밝게 만든다
[3]인생은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방정식이다 누군가 내게 적대적인 행동을 한다면... 맞대응보다는 현명한 대처가 훨씬 낫다 부정적인 일은 가슴에 묻고, 부정적인 삶의 비극들을 내 안의 거름으로 만들어야 한다
부당한 대우에 현명한 대처를 할 줄 아는 지혜... 그 것은 바로 내공이다 깨우침을 얻은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다!
이 책은 내게 정말 소중한 교훈을 주었고, 내게 부족한 역량을 채워주며, 나의 핸디캡이 뭔가를 명확하게 깨우치게 된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책 한권이 내게 주는 효용과 영향력에 대해 세삼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실천이 없는 지식보다는 이 책의 교훈과 메시지를 내 삶에 접목할 수 있게하는 액티비티를 개발, 선정하여 나를 진정으로 변화시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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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책은 갈색 상자에 소중히 담겨져 있었고 난 열자마자 빛같은 속도로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은 날 강렬한 힘으로 흡수 하는 듯 했다. 아니, 내가 이 책을 흡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마디한마디가 피부속으로 스며들어 하나의 깨달음을 이루어 냈다
약 3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는 교훈적인 일화와 작가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지금 까지 지니고 있던 욕망에 대해 작가는 '내려놓으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쓰고 또 원했지? 이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대신 새로운 욕구가 마음속에 채워지고 나는 작가가 주는 '가르침'에 대한 목마름으로 읽은 부분을 또 읽고 또 읽었다
작가는 여느 사람 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모든 자기계발서와 매일 보는 텔레비전에서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떠들어 댔지만 아잔 브라흐마 (작가) 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땐 아무것도 하지 말라" 고 얘기한다 나에겐 충격적인 한마디이다 바쁘고 또 맹목적으로 달려온 나날 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바다에서 놀다 물결에 밀려나온 사람이 파도를 이기려고 한다면 죽고 말것이다 그는 마음을 편하게 먹고 물결에 몸을 맏기고 있다가 흐름을 찾았을때 전력을 다하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런 일화에서 나는 수긍할수 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여태까지 안되는 일에 매달리다가 있는 것 마저 잃어버린 경험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게 가르침을 주는 책이었다 두고두고 읽어보아도 인생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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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 지기 어려운 이유가
성공해야 한다.. 이 치열한 삶의 틈바구니에서..
늘 그렇듯 숨쉴 공간이 있는
아잔 차의 수제자 아잔 브라흐마의
생각이 너무 많으면 안된다..
수도승이 되고 싶진 않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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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참 좋은책이다 우선 읽으면서 내가 지금껏 읽었던 여러 잠언집이랄지 다른 스님들 말씀과 약간 겹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예를 듭으로써 헐씬 좋은 내용이 되어버리고 이해도 헐씬 잘 되었다 읽으면서 눈물이 핑도는 부분도,우리가 고쳐야 할 점도 모두가 너무나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로 풀어주어서 감동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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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책의 이름과 불교관련 책이라는 정보를 보고서 책을 읽기 전부터 쓸데없는 고정관념에 휩싸였다. 불교에 대한 책이라면 내용이 지나치게 딱딱하거나 지루하진 않을까,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책이 될 것인가라는 여러 걱정들. 지금와서 보면 그 모든게 기우였었고, 아잔 브라흐마가 강조한 것처럼 나는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한 것이 되었다. 주지스님의 신분을 가진 저자 아잔 브라흐마조차도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고, 자기가 믿는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그 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한다.
"내 이름의 B는 불교도(Buddhist)의 B이고, R은 로마 가톨릭교도(Roman Catholic)의 R이고, A는 영국 성공회 교도(Anglican)의 A이고, H는 힌두교도(Hindu)의 H이고, M은 회교도(Muslim)의 M입니다." - p.198-
심지어 아잔 브라흐마의 이름조차 다양한 종교의 첫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것이라니. 그의 이름에 그런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 것이 인상깊었다. 아잔 브라흐마는 불교계에 입문한 주지스님인 동시에 나에게는 훌륭한 멘토였다. 그가 제시한 108가지 일화들을 하나하나 읽고 있자면, 속이 말끔히 걷히는 느낌이다. 고통, 분노, 두려움, 자괴감, 불안함. 나는 그동안 얼마나 쓸데없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내 안에 있는 술취한 코끼리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는지. 나는 사소한 것에도 불행하다고 느꼈고, 내 마음 자체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무엇인가를 절실히 원하고 갈구했으며, 그걸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욕심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쌓아올린 수많은 벽돌 중 어긋난 단 두 개의 벽돌만을 신경쓰고, 제대로 하기 위해 전체의 벽돌을 허물려고 애쓰고 있었다. 곧게 잘 쌓아올려진 나머지 수많은 벽돌은 보이지 않을 만큼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 아잔 브라흐마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주지스님의 신분을 가진 그에게 이런 표현을 쓴다는 것이 실례가 될 수 있으나, 내가 할수 있는 표현 내에서는 최고의 찬사이다. 단지 이야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통해 우회적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자기를 돌아보게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이 고정관념이 무서운 것은 자기가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고정관념이라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즉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단지 고정관념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아잔 브라흐마는 특히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게 하는 일화들을 많이 소개하였다. 그중 한 일화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태어날 때부터 청력 장애를 가진 청년이 부모와 함께 병원에 갔다가 의사의 권유로 낮은 확률의 수술을 성공해서 청력을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그 청년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당황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는 애당초 소리를 듣기 원하지 않았으며, 이제는 끝없는 소리의 고문을 견뎌내야만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병원에서 의사와 부모가 그의 수술을 결정했을 때, 누구도 그에게 소리를 듣기를 원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이가 그 장애로 인해서 꼭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 자체도 하나의 고정관념이 될 수 있다. 나도 당연히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리를 듣기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때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했던 일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의외의 고통으로 다가올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고정관념의 타파이다. 그런 점에서 아잔 브라흐마의 일화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절대적으로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잔 브라흐마는 주지스님이지만, 이 책은 불교적 색채로만 쓰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잔 브라흐마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이나 올바른 인생을 살기 위한 부분에 대해 더 강조점을 두었고 그렇기에 이 책은 불교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자기계발서적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마음과 영혼의 치유를 받아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가난하지만 행복한 아잔 브라흐마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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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와다(Theravada, 상좌부) 불교 스님의 글이 우리나라의 유명 작가에 의해 소개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기쁘다. 테라와다 불교가 어떤 것인지, 우리나라 불교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잔 브라흐마의 사진>
테라와다(상좌부) 불교
현재 불교는 크게 북방불교와 남방불교, 혹은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라는 식으로 나뉘어지고 있으나 부처님 시대에는 이런 나뉨이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신 후 100년이 지나고 나서 불교에는 부파불교 시대가 열리었는데 그때 상좌부 불교와 대중부 불교(나중에 대승불교가 됨)로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대승이니 소승이니 하는 것은 부처님의 법을 따르고 의지하는 데에는 별 의미가 없는 나뉨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인도, 티벳, 중국, 일본 등으로 전파되어온 대승불교권에 속하게 되어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로 전파된 남방불교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테라와다(Teravada)라는 말은 "장로(長老)들의 길"이란 뜻으로 상좌부(上座部)라고 합니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사용하셨던 팔리어로 된 경전을 근간으로 하여,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대승 경전과 대비됩니다. 이 팔리어 경전(아함경)은 기원전 1세기경 스리랑카에서 최초로 쓰여진 것으로 기독교 시대가 열린 이후에 형체를 갖추어가기 시작한 대승권의 산스크리트어 경전이나 다른 어떤 경전보다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 사실적이고 정확하게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좌부 불교는 지금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전승 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상좌부 불교에 거의 접근해 보지 못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도 무미건조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일 뿐이어서 상좌부야말로 살아있는 불교의 전통이라는 사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불자들은 중국이나 일본의 선(禪), 티벳의 밀교에 관심이 많아 단순하고 역설적인 선의 직관적 방식이나 미묘한 교리상의 특징, 부처나 보살들이 펼치는 기적이나 환시(幻視)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좌부 불교의 경전은 일차적으로 불교의 뿌리에 근거를 둡니다. 말하자면 팔정도(八正道), 십이연기법(十二緣起法), 무아(無我), 사성제[苦, 集, 滅, 道] 등의 사상이 반복되어 강조되고 설명되어집니다. 상좌부 불교 이론과 불교 심리학의 상당한 부분이 삶의 거의 모든 측면을 체계화시켜 놓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열 가지 번뇌’, ‘관(觀)의 네 가지 대상(4념처)’, ‘깨달음의 네 단계’같은 것들이지요. 다소 복잡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가르침들은 수행의 근본적인 요소들을 정교하고 깨끗하게 다듬기 위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상좌부 불교는 삶을 덧없고 근본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갖는 유일한 실체적 가치는 깨달음의 성취, 즉, 열반(Nibbana)에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상좌부 불교는 그 가르침과 수행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분명히 부정적인 특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행자들은 언제나 의도하지 않은 단순한 상태, 그리고 통찰력과 지혜와 자유의 필요성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대승경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붓다의 미묘한 기적이나 깨달음에 대한 찬양의 노래는 거의 없습니다. 또한 선시(禪詩)에서 볼 수 있는 깨달은 자의 자유로움이나 본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의 시도 없습니다. 그리고 밀교의 복잡 미묘한 방법론이나 황홀경의 노래도 없습니다. (자료: 보리수선원 http://www.borisu.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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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을 샀는데 이 책 내용이 일부 수록되어 있는 광고지를 봤다. 거기 실려있던 내용이 너무 와닿아서 구입했던 책,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코끼리를 갖고 싶었다. 그는 코끼리가 너무 좋아서 코끼리 한 마리를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자나 깨나 코끼리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뜨거웠다.
그는 차츰 알게 되었다. 당장 코끼리를 갖게 된다 해도 자신은 그걸 키울 능력이 없다는 것을. 그는 평범한 넓이의 마당을 가진 자그마한 집에 살고 있었고 아주 가난하진 않았지만 농담으로라도 부자라고 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코끼리를 손에 넣는다 해도 그것을 데려다 놓을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으며, 날마다 코끼리를 배불리 먹일만큼의 사료를 살 돈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끼리가 과연 자기에게 오게 될지도 의심스러웠지만. 만에 하나 갑자기 그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을 유지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돈을 모으려고 밤낮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그가 일차적으로 원하는 것은 코끼리이지 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곧잘 돈을 모을 기회를 놓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코끼리를 너무도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그는 싫지만 돈을 모아야 했다. 왜 하필 코끼리냐고 사람들은 그에게 묻곤 했다. 개나 고양이라면 쉽게 키울 수 있을 것 아닌가? 물론 그 자신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온통 코끼리한테 사로잡혀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아직도 부자가 되지 못했고, 아직 코끼리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가 원하는 것은 코끼리가 아니었다.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코끼리를 포기할 수 있는 마음.'
우리는 얼마나 저렇게 미래의 어느 순간을 위해 현실을 희생하며 사는가. 어쩌면 정작 오지도 않을 미래를 걱정하며 말이다. 그러나 너무 오래 그것만을 갈망해 왔기에, 그것을 포기하면 지금까지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래서 여전히 계속해서 추구하는 헛헛한 마음. 때론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이 자신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붙잡고 있는 어리석은 마음.
삶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원하는 어떤 것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무언가 갖게 되면 또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게 되니까. 코끼리를 간절히 갈구해서 언젠가 그것을 소유하게 되면, 우리는 이제 또 더 멋지고 아름다운 코끼리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언제나 내가 가진 것보다 더한 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자신을 지옥에 넣기도 하고, 살아가는데 있어 주눅들게도 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자기 만족이 아닐까? 스스로 충만히 차오르는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타인의 시선이 들어가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행복도 불행도,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지 않은가.
정작 원하는 코끼리는 얻지 못하고, 부차적인 것들에 신경쓰다가, 어느새 무엇을 위해 내가 그것들을 준비하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면서도 열심히 그 부수적인 것들을 위해 애쓰는 마음. 그렇게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들이 우리네 삶에서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계속해서 내려놓는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마음을 비우라고, 그 마음 때문에 네가 힘들어지는 거라고. 그러나 정말 그렇게 다 비워내며 살 수 있을까. 가끔은 무언가를 하고 싶고, 갈구하고, 못해서 아쉽고, 좌절도 하고, 그랬던 삶이 또 그립기도 한데. 한편 또 저렇게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저 정말 고요한 삶을 살아보고 싶기도 하고... 나이들어가며 그러나 점점 아주 조금씩 후자 쪽으로 더 가까워져가고는 있는 거 같다.
몸과 마음, 영혼을 위한 안내서. 마음수양을 위해 읽기 괜찮은 책이다. 구성도 예쁘고, 그림도 맘에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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