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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집에서 조금만 길을 걸어 나오면 벚나무 몇 그루가 심겨져 있다. 따뜻한 날씨 탓인지 이미 며칠 전부터 하얗게 벚꽃이 피어 있어 밤에도 길은 환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지나다 보니 바람이 많이 거세지도 않은데 벌써 잎이 반짝이며 떨어지고 있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고 분망하단 핑계로 시내의 여간한 꽃길에조차 나가보지 못한 게 벌써 몇 해째이다. 아침 저녁으로 오가며 보는 이 벚나무가 더 즐거운 이유이다. 하지만 이렇게 떨어지는 꽃잎을 보니 그저 속없이 놀러 다니느라 정신 못 차리던 예전이 떠올랐다. 물론 아주 잠깐의 상념이었지만.
체호프를 처음 읽게 된 건, 정동극장에서 본 니나의 김호정 씨 덕분이었다. 『갈매기』 앙코르 공연이었는데 역시 좌석은 만원이었다. 겨울 무렵이었고 갈매기 박제는 우리만큼이나 굉장히 추워 보였다. 혹시 희곡의 지문에 그런 설정이 나온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게 벌써 3년 전이다.
『벚꽃 동산』은 애석하게도 무대에서 보진 못했다. 하지만 읽어 본 체호프의 희곡 중에선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인생이라고 하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릴 때 나는 어느 시점을 향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에는 과거 지향형인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1막의 배경부터 의미심장하다. "여전히 <어린이 방>이라 불리는 방" 그곳에 등장하는 이들은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미래를 이야기하며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다. 벚꽃 동산은 아름다웠던 과거의 추억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곧 찍혀 없어질 운명의 메타포가 된다. 아직도 옛 향수에 젖어 갈 길을 몰라 방황하는 이들의 어설픈 감상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아무리 후하게 돈을 줘 버리고 악단을 불러 흥을 돋워도 다가올 변화의 시기를 거스를 순 없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현실 도피는 대안이 아니라 아편이다. 그리고 체호프는 바람처럼 자유롭지만 불안할 수밖에 없는 미래를 맞는 이들의 심경을 짜릿한 에스프리로 질감 있게 승화하고 있다. 그것도 체호프 스스로 이야기 한 것처럼 '4막 코미디'의 형태로.
이 책에는 『갈매기』와 『벚꽃 동산』을 포함해 모두 여섯 편의 희곡이 담겨 있다. 다른 작품들도 참 좋다. 삶이란 게 뭘까 괜히 고민해 보게 만드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스꽝스런 형태 안에 담겨 있는 체호프극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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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좋아하지만 돈은 별로 없고, 체호프의 단편집을 굉장히 인상깊게 읽었고,
열린책들에서 내는 책들은 참 보기 좋아서 기분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