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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부조리극이다 -마렉 플라스코의 『8요일』
모든 사랑은 부조리극이다. 사랑을 할 때, 당신은 행위와 목적의 의미가 어긋나는 경계선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 사랑은 삶을 치열하게 하는 동시에 환멸을 느끼게 하는 양가적인 본질을 지닌다. 사랑을 조명하는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이 사랑의 성취가 아니라 상실과 실패에서 사랑의 본질을 되묻는다. 이 부조리극의 무수한 목록 속에서 한 권을 펼친다.
폴란드 작가 마렉 플라스코의 소설 『8요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요일인 ‘8요일’이라는 상징을 통해서 사랑의 부조리와 구원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1950년대 폴란드 바르샤바. 도시는 무겁게 짓눌려 있는 환자와 흡사하다. 거리에는 알콜중독자와 창녀, 빈민들과 쓰레기로 가득하다. 그 안에 한 연인이 있다. 아그네시카와 피에트레크. 그들은 폐허 속에서 필사적으로 자신들이 머물기 위한 방을 찾지만 폐허가 된 도시에 그들이 머물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그네시카의 집에는 탄식을 늘어놓는 병든 부모가 방치되어 있고, 오빠는 실패한 사랑 때문에 알콜에 의존하는 나약한 지식인이다. “주정뱅이와 공산주의와 영웅밖에 없는”(52쪽) 나라에서 지식인은 한없이 무력하기만 하다. 피에트레크는 반정부 운동을 하다가 수감생활을 마친 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 “사방이 벽으로 가린 방을 구하지 못한다면 삼 면으로 된 방”(16쪽)이라도 갈구하지만 이 작은 소망마저도 이뤄지지 않는다. 아그네시카는 출구가 없는 현실에 절망하여 충동적으로 처음 보는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오빠에게 권총을 건넨다.
이 소설은 1950년대 폴란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전쟁 후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경제위기 속에서 독재 정권을 맞이한 당시 젊은이들의 절망을 두 연인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일곱 개로 견고하게 구축된 요일들은 체제가 정한 시간표를 상징한다. 인간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유를 원하지만, 그 의지가 관철될 수 있는 공간인 ‘8요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는 두 연인의 ‘방 구하기’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근래의 우리의 문학-풍경을 돌아보게 된다. 근래의 우리 소설에는 연애 소설이 드물다. 안정된 직장을 위한 '스펙'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는 젊은이들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20대 작가들은 더 이상 사랑이야기를 쏟아내지 않는다. 그들이 응시하는 것은 주로 고시원과 아르바이트에 치이면서, 살아남기 위해 냉정하고 독해져야 하는 현실의 고독과 우울이다. 가끔씩 등장하는 연애소설은 역동적인 부조리극이 아닌, 값싼 멜로의 형식을 지니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지금의 청춘들은 훗날 '젊음이 없는(No-Young) 세대'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대학조차 경쟁과 효율의 구호에 잠식되었으며 낭만과 저항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드물지 않은가.
부조리한 현실과 결합하면서 사랑을 다룬 문학은 '사회학'과 '정치학'으로 진화한다. 따라서『8요일』에 등장하는 두 연인의 방황은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은유로 확장된다. 지금-여기는 또 다른 폐허이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8요일'은 부박한 현실에서도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청춘에 대한 상징이면서,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방을 갖고자 하는 연인들의 소박한 희망을 대변한다.
문득 스무 살 언저리에 읽었던 소설(윤영수)을 상기하게 된다. 그 책의 제목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다. "사랑하라, 희망없이". 당신은, 사랑할 수 있는가. 희망이 없는 가운데서도 말이다. 사랑이라는 부조리는 폐허 속에서도 꿈꾸기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현실이 더럽고 추하다 보니까 인생이 괴상한 작은 지옥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인생 어딘가에는 작열하는 금속이 있을 거야.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은 그 불꽃을 잡으려고 강렬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게 아닐까? (6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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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읽으면서 답답함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가족 관계에 있어서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고, 또 연인에게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확 자포자기하여 인생을 포기하고 싶다. 하지만 모든 것은 쉽지 않고, 내일은 제8요일이 아니라 월요일이다. 또 하루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을 보니,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4면이 벽인, 아니면 3면이 벽인 방 하나가 필요한데, 가난한 연인에게는 그 작은 방하나 마련하기 조차 쉽지 않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한국에 있는 많은 러브 호텔들을 이해해주기로 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의 가난한 연인에게도 비용이 적진 않겠지만 그래도 희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 소설에서 갈망하는 것이 비록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작은 방 하나였겠지만, 근복적으로는 인간의 관계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책 소개에서는 평범한 가정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이런 가정이 평범하다면 모든 인류가 불행할 것이다. 이 소설의 구성원들은 어떻하던지 현실을 벗어나려고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환상을 쫓아가는 비상구로 모두 제8요일을 꿈꾼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불신이 존재하고, 사실 서로 약간은 솎고 솎아주면서 살아가고, 어느 정도의 기대를 포기하고 만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다들 알고 있는 것 같다. 상대방도 나에게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고, 상대방은 나중이라는 것을.
제8요일을 기대하고 그들은 살아가지만 결코 제8요일은 오지 않는다. 다들 알고 있다 제8요일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또 월요일이 온다. 또 주말을 꿈꾸면서 일주일을 살아가야한다.
(사족. 이 책을 고르다 보니 2권이 있었다. 같은 출판사인데 번역자가 달랐다. 일단 출판된 날이 늦은 것으로 골랐다. 양혜윤씨가 폴란드어를 바로 번역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