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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는 가볍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이었다. 엘링 시리즈의 첫번째 시즌, '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는 제목부터 처절하다. (내 표현이 더 처절한가?)
이 사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책 속에선 엘링이 어떤 장애를 가진 사람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당연하지, 대부분이 엘링의 독백이니까. 하지만 엘링의 입을 통해서 이 사람이 32년을 엄마하고만 살아왔고, 얼마 전 엄마가 죽어서 혼자 살아야만 하고, 신문도 읽고 나름 똑똑하고 솔직한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데는 서투른, 그런 사람이구나...라는 걸 알 수 있다. 자폐적이고 편집증적인 성향이 약간 있고, 사회에 쉽게 적응하기 힘들 것 같고, 그러면서도 무척이나 솔직하고 공정하다.
맞은 편 아파트의 할머니를 시작으로 동네 주민들을 관찰하는 엘링으로부터 대놓고 말하긴 당혹스럽지만 우리도 그런 욕망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뭔가 성적이고 은밀한 것을 보고 싶어서 엿보기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다만, 애정이었고 궁금증이었을 뿐이다.
또 하나, 대놓고 말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건, 우리도 우리의 상상으로 현실을 만들어나간다는 거. 엘링은 그게 좀 극적으로 지나칠 뿐, 우리도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통해서 저 사람은 저럴거야~ 라고 지레짐작하고 스스로 그 사람에 대한 형상과 이미지를 만들어나가지 않느냔 말이다.
우리 모습의 극단적인 사례를 엘링이 보여주고 있는 듯 했고, 책을 덮을 즈음, 작가가 써놓은 '우려'를 읽게 됐다. 작가는 독자들이 엘링의 모습을 우리의 미래상으로 보게 될까봐 두렵다고 했다. (혹은 현재 모습에 대한 비판이랄까? 암튼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작가는 독자들이 엘링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슬퍼하게 되는 걸 걱정하는 것 같았다.)
엘링 시리즈는 시즌4까지 있다고 하는데, 무척 읽고 싶지만, 이 책을 사야만 하는가...라는 고민에 휩싸인다. 부산대학교 도서관에도 이 책은 없더라는 사실.ㅜ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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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엘링의 독백, 이 책은 거의 엘링의 공상의 세계나 독백으로 이루어지지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인 엄마가 죽었다는 글로 시작하기에 온통 배경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엘링은 잘 버텨낸다. 17-B동에 사는, 화분에 물을 주는 리게모르 욜센의 모습을 보고, 엄마가 떠올라 그녀를 망원경으로 관찰하며 슬픔을 달래며 의지하는 엘링. 아마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스토커라며 신고해 버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알기에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방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보며 자신만의 공상을 하는 장면에서는 지루하고 그의 끝없는 상상의 세상에 질려버린다. 나는 아무래도 타인의 긴 이야기를 들어주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주지 않는 엘링, 혹 투명인간이 아닌가 생각되어 일어나서 박수를 쳐보는 모습에선 풋~하고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사색의 시간을 가질 땐 그의 탁월한 표현능력과 묘사방식에 놀라기도 한다. 나도 엘링처럼 타인의 삶에 늘 관심을 가진다. 집안에 불을 켜야만 할때는 맞은편 아파트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 어떻게 꾸며놓고 사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게 되는 나의 모습 또한 엘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망원경을 들고 보든, 그냥 보든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 사람들에게는 기분 나쁜 일일테니까. 꽉 닫쳐진 폐쇄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한데 하루종일 쳐다보고 있어도 지겨워지지 않을 것 같다. 무성영화를 보는 기분(?)일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의 대출금이 남아있어 다른 곳에 옮겨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복지사 에릭센, 모든 집안일은 엄마가 다 해결했는데 이런 시련이 닥치다니, 엄마가 죽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 엉엉 울어버리는 엘링. 엘링을 집안에서 보호한다는 조건으로 나라에서 지원금을 받았는데 이제 더이상 그 돈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도 엄마는 엘링에게 이런 말을 해 준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특별하다고 말했을뿐이다. 타인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엘링에게 사회의 벽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엘링은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면 이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리게모르 욜센의 집에 있는 생쥐부인이 엘링의 전화를 받았을때 그는 새로 이사온 비욘 그레툰이라 자신을 소개한다. 눈앞의 문제를 인식하려 하지 않는 행동은 어린아이처럼 보이지만 그가 리게모르 욜센에게 얼마나 의지하는지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다.
그저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엘링, 비록 어린시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자신을 챙겨주고 보호해 주던 엄마가 죽고 없지만 "나는 엘링입니다"라고 자신있게 소개하던 그가 이젠 '비욘 그레툰'이 되고 싶어한다. 타인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어 망원경을 들었던 엘링은 지금 아마 처절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비록 금세 소설 한편을 쓰듯이 또 새로운 공상을 하겠지만 말이다. 엘링의 사는 모습을 보면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때 그 충격이란.......나의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외로움이 엘링의 마음과 다르지 않아 공감하게 되는가 보다. 이제 엘링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시즌 2, 엘링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탁월한 유머감각으로 나를 유쾌하게 만들어 줄 엘링을 또 만나러 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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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링 연작소설 중 첫번째 이야기이다.
엘링은 망원경을 통해서 타인의 일상을 관찰하며 자신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공상하는 시간으로 자신의 일상을 채워나간다.
엘링의 상상력을 따라가다보면 정말 엘링은 조앤롤링 못지 않는 상상력을 가진 소유자다.
엘링이 다른 누군가를 엿보고 관찰하며 느꼈던 감정, 생각해던 것들, 나 또한 그런 엘링에 모습을 관찰하고 지켜보면 많은 걸 느끼고 생각했었던 시간이었다. 엘링의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겹쳐지는 내모습이 일정부분 꽤 있어서 놀랍기도 했었고..정상과 비정상을 구분짓는 기준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참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증상인데. 언젠가는 일주일 내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층에서 우리 집까지 계단을 오르내리길 반복했던 적이 있다. 혹시 빼먹고 안 밟은 계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지만 엘링, 네 속에 이런저런 아이러니가 많이 숨어 있는 건 정말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넌 벌써 미쳐버렸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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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엘링이라는 주인공의 관찰과 상상입니다. 형식상 내용은 전부 관찰된 단편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엘링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엘링은 32살이나 먹은 성인이지만 사회부적응자인가 봅니다. 그래서 연금을 받으면서 어머니에 얹혀서 살아가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세상에 던져집니다. 그래도 엘링에게는 그냥 흘러가는 세월일 뿐입니다. 우연히 한 노파를 찍으면서 스토커가 되기도 합니다. 이게 시리즈여서 1권을 먼저 빌렸는데 2권 이하를 빌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을 때 재미가 있든지 아니면 뭔가를 얻을 수 있어야 계속 읽을 이유가 됩니다. 이 책은 적어도 저에게는 남는 게 없습니다. 다만 색다른 형식의 글이여서 일단 중립 점수를 부여합니다. 원제는 노르웨이어겠지만 낙원 어쩌구 할 것 같고 그렇다면 번역자가 봤다고 하는 독일어 판본의 제목 [천국의 조망]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한글제목 '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는 출처가 어디일까요? 100418/100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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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내용(정확히 설명해서 출판사가 풀어쓴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 2년 전 구입한 책이다. 연작 소설이라 다 살까 하다가 한편 먼저 읽고 나중에 구입해야지 하고 신중히 생각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책 읽는 내내 엘링은 '짜증난다' 혹은 '화가 난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책을 읽는, 엘링의 태도를 지켜봐야 하는 나야말로 짜증나고 화가 났다. 엄마의 죽음 이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엘링이 맞은 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망원경으로 훔쳐본다는 설정은 좋은데, 대부분의 내용이 엘링의 상상이라는 점은 이 책의 반전이라고 할 만하다. 의식의 흐름에 가까운 소설은 역시 내겐 무리다. 그렇다고 전혀 건질 게 없는 책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책들에 비해 구미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 좋은 독서습관은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자기가 읽기 힘들면 안 읽는 거라고 했는데, 난 무식하게 꾸역꾸역 읽었다. 그래도 내가 산 책인데, 어떤 맛인지는 알고 싶으니까.
엘링은 측은한 아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안녕, 엘링! 아쉽지만 네 뒷이야기는 접할 기회가 없겠군.
* 공교롭게도 몇주째 계속 노르웨이 소설을 접했다. 음, 비록 엘링은 싫더라도 북유럽 소설에 흥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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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 "엄마가 죽었다"는 말로 시작되고 있는 이 책은 엘링의 유일한 대화 상대이자 친구였던 리게모르 욜센을 관찰하면서 그 주면인물 그리고 17-B동을 감시하면서 엘링만의 상상, 엘링의 철학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서 잠깐!! 이 책의 첫머리에 작가는 엘링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이미 처음부터 자신의 성격을 확립하고 있었다.
그 동안 엘링은 엄마라는 울타리속에서 생활해오다가 이제 그 울타리를 넘어서려고 하는 모습이 아주 담백하게 잘 그려져 있다. 엘링은 세상속에서 모든 것을 단절하고 살아온것은 아니었다. 일간지 <아르바이더라데>를 구독했으며, 노르웨이의 사회, 정치에 관심도 가지고 있다. 특히 엘링이 좋아하는 할렘 브룬트란 총리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도 구상하기도 하고 시적인 표현도 쓰기도 한다. 엘링은 이제 더 이상 17-B동을 관찰할 수 없다. 엘링이 받고 있는 연금으로는 집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링이 가야하는 곳은 요양원이다.
과연 엘링은 요양원으로 가서 어떤 상상의 이야기를 풀어 놓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이 도서를 읽는 동안 나 자신에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을
여러분도 엘링의 상상의 나라로 한번 여행을 떠나보는것은 어떤지 ~~~ 그 속에서 새로운 삶의 지혜를 많이 많이 찾아 가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엘링 고마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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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나를 멈추게한책 바로 [나는 내 친구 엘링 입니다]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서부에 위치해 있는 오슬로라는 수도를 배경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엘링 사회민주주의라 부르짖으며 내가 서야할 자리를 당당히 밝히면서도 나라의 제도아래 그가 있는 보금자리가 없어질까 두려워 하는 엘링 그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혼자 독립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생활이야기다. 엘링은 외로움을 감추려고 애쓰는 어린아이 같았다. 아직 性에 관한 것도 무지한 이였으며, 자립생활을 할때는 어떤 조건들이 갖추어 져야하는것도 몰랐다.. 그저 엄마가 다 해결해주었을뿐.. 첫장부터 ‘엄마가 죽었다.’ 로 시작된다. 엄마의 존재가 바로 이 책의 핵심이자 엘링이 스스로 독립할수 있는 열쇠인 샘이다. 엄마가 죽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도 그녀의 울타리에서 편안하게 호밀빵 네조각에 마가린을 듬뿍바르고 두조각에는 생선푸딩 한조각에는 가우다 치츠 그리고 나머지 한조각에는 살라미를 얹어 먹었을 것이다. 그녀가 죽고난뒤 엘링은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걸 직감으로 느끼게되며 그녀의 자리를 누군가가 채워주길 바랬다 .엘링은 어머니방 맞은편인 17-B동에 사는 리게모르 욜센 이라는 노인에게서 관심을 갖게된다. 죽은 엄마와 화분에 물주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일흔살가량 되는 그녀를 엄마로 여기며 그의 틀속에서 그녀의 생각과 행동들을 엘링 방식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며 결론을 내린다. 엘링이 상상한 것들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엘링만의 방식으로 모든 것이 그려졌다.
그녀의 주변 인물까지 확대되면서 관심없게 보았던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각양 각색이라는걸 알게되지만 그것이 평범한 생활이란걸 아직 모른다. 그저 엘링에게 보여지는 그들은 비 정상적인 사람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외계인처럼.. 우리는 집단 무리에서 같은 행동을 해야지 평범하다 느낀다. 그중 한명이 쭉정이처럼 톡톡 튄다면 그 무리에서는 낙오자가 되고 만다. 엘링이 바라는 사회민주국가는 복지시설이 잘 발달 되어 있다 하더라도 개인 프라이버시를 지킬수 있고 내가 있고 싶어하는 내 보금자리를 빼앗지 않는것이 복지국가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를 도우려 하는 사회복지사 엘릭센의 최후 방법은 여러명이 같이 사는 요양원이다 그는 항상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 편에 섰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문제로 분투하던 고위층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았다. 내 생각에 유일한 정치적 선택이라 할 수 있는 사회민주주이의 기초는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것이다 .-p210 엘링 자신 스스로가 고위층이였다면 자기를 그렇게 세상속으로 쫒아내지 않았으리라고 믿고 있다. 사회에서는 버림받은 낙오자 이지만 그만의 울타리를 만들며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복지제도를 꼬집어 비판한다. 서민층을 위한 복지국가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듯한 작가의 예리한 시선들.. 엘링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었나보다. 침묵이 확산되면 공동체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 소통이 마비되고 침묵이 사회 현실의 일부가 된다면 공동체는 병들고 썩어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인내심을 쌓기위해 카드 게임을 슬쩍 카드를 들여다보는 하찮은 속임수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p172 엘링을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지 않고 선입견적인 시선으로 그를 통제하려는것.. 그는 사회를 바라보는 암적인 존재들도(속임수를 쓰는사람, 도둑질을 하는 사람, 약한사람들을 괴롭히는사람,,) 평범하게 살고 있고 임대주택이라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다. 그런 사람들 까지도 용서한 엘링이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엘링에게만 시선이 집중되며 그를 평범한 틀안에서 끄집어 내려하고 있다. 다시 교육을 받고 오라는것처럼 그를 선입견으로 바라보는것이다. 아니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을 속였다. 우리는 달콤한 단잠에 빠져 있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속았다. 그녀는 우리등 뒤에서 교활한 속임수를 썼고 , 그것은 곧 우리들 중 한사람의 도덕성이 상실되었다는것을 의미한다. -p169 전혀 나쁜 의도는 없었지만 어쨌든 단순한 착오로 내가 죄를 뒤집어 쓰게 된다면? 물론 모든 곤경은 극복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냉철한 이성을 통원한다면 결국 모든 상황을 해명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해야 하는거지?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잘 알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오해로 무고한 사람이 평생 억울한 죄를 뒤집어 쓸 수 있다는것도 안다. 어떤 타당한 근거도 없이 궁지에 몰려버린 사람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야 한다. -p185
엘링을 공동체집단으로 살게하하는것이 자립할수 있는 사회복지 국가의 최선책이라 단정지으며 억지로라도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야 한다는걸 암시하는 것으로 엘링 시리즈 1편의 스토리는 끝을 맺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내면의 세계를 끄집어 낼수 있는 계기가되었다. 외골수적으로 한가지만 고집하는 엘링. 내 어둠속에 자리잡고 있는 속마음의 엘링!! 우리모두가 생각과 행동을 일치하면서 살왔다면 엘링처럼 살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엘링은 적어도 자기의 생각으로 남에게 피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속마음을 표출하며 사는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다. 속으로는 욕하고 있지만 나는 웃고 있다.. 이건 이중인격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중인격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나 혼자만의 상상이고 생각일뿐 상대방이 전혀 나의 생각을 꽤뚤어 보지 않으면 나는 평범한 보통사람이 되는것이다. 현실과 타협하며 적당히 적당히 사는것! 하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엘링은 살고 있으며 가끔은 엘링이 되길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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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 --잉바르 암비에른센
이 책은 나이 서른 살이 넘었지만 궁금한 점이 많고 호기심이 많은 조그만 일에도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한 어린아이의 정신력을 가진 순수한 사람 “엘링”을 주연으로 쓰인 노르웨이 연작소설 첫 번째 이야기 “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엘링’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되고,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쓰고, 궁금해지고 자기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나만의 생각이란 것은 맞다 틀리다 없이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 책에서 저자 잉바르 암비에른센은 주인공 엘링을 통해 인간들의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들은 일초 일분에도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나름대로 판단을 하며 살아간다. 그 모든 생각들이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보이는 엘링의 모습은 곧 우리들이 모습일 것 같다. 단지 표현하거나 들어내지 못할 뿐이다. 어느 날부터 엘링은 옆집 사는 사람의 생활을 관심 갖게 되고, 그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일까, 어딜 갔을까 계속 궁금해진다. 엘링이 생각하는 멋진 사람들도 곁 모습만 멋지고 각각의 약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엘링도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된다. 이웃들이나 사람들의 대한 호기심이 많은 엘링은 망원경을 통해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게 된다. 어떤 날에, 경찰 공무원이 와이프를 폭행 하는 모습을 망원경을 통해 보고 화를 낸다. “나는 시위 도중에 시위대원 하나가 녹이 슨 쇠사슬에 묶여 승마용 채찍으로 한 대 얻어맞았다고 해서 ‘폭력 경찰 물러가라!’를 외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대부분의 경찰들이 투철한 책임감을 갖고 어려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신선한 과일 광주리에도 썩은 사과가 끼여 있기 마련이다.”--엘링 엘링은 현대사회의 잘 못한 점을 쿡쿡 찌르고 있다. 도둑질, 폭력, 이혼 같은 것을 왜 하는지 이유가 궁금해지고 자기 스스로 판단한다. 엘링은 누군가가 폭행하고 있을 때 모차르트의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어떨까 궁금해 한다. 우리들은 조용히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 사람 가운데 가서 소리를 찌르지 않으며 시끄럽고 정신없는 자리에서 책을 펼친 경우도 무척 적다. 서로 말 다툼 하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술(!)을 마시며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은 우리들의 문화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결과를 나올지 미리 알면 위험한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 하게 됐다. “요즘 이혼에 관한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누가 설거지를 할지, 누가 마지막 남은 감자를 먹을지와 같은 사소한 다툼이 가정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불만족스러운 섹스, 둘 중 한 사람이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도 심각한 이혼 사유가 된다.”--엘링 저자 잉바르 암비에른센은 이 세상에 엘링 같은 순수하고 소심한 아이들이 많으며 곁 모습은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들도 약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녀교육을 대해서 큰 고민에 빠진 우리들에게도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치고 강하게 키우지 않으면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엘링이 적응하기 힘든 것 같이 우리 아이들도 세상에 적응하기 무척 힘이 든다는 커다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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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기의 진수, 엘링의 이야기는 '엄마가 죽었다'라는 극적인 상황으로 시작되지만, '엄마가 죽었다. 모든 일은 전혀 극적이지 않게 진행되었다'라는 시작 문구처럼 전혀 극적이지 않게 서술된다. 32년간 엄마와 둘이서 살아 왔으나, 간암으로 어머니를 잃고 혼자 남게 된 엘링. 그는 슬픔보다는 공허감으로 어머니의 빈 자리를 기억하는데, 그 공허감을 채워주는 것은 노르웨이의 총리인 그로 할렘 브룬트란에 대한 동경이다. 어려서부터 우표와 동전, 코르크 마개와 새알을 모아온 수집가인 엘링은 그로 할렘 브룬트란을 아주 좋아해서 신문 기사 스크랩으로 앨범 9개를 꽉 채울 정도이다.
그로가 이웃에 함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엘링은 그때부터 맞은편 건물에 사는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어머니의 방에 있던 가구들과 물품을 모두 구세군에 기증하고 난 텅 빈 방에서 망원경으로 이웃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레블링스틴가 17-B 동에 사는 여덟 가구에는 엄마와 아빠, 아이의 세 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없는 듯, 부부 또는 모자, 또는 독신 가구로 이루어진 모습이 참 조용하고 쓸쓸하게 보이기도 한다. 남의 집을 허락없이 엿보는 것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나쁜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 커튼 사이로 보이는 아주 작은 한 장면을 재료로 하여 끝도 없이 퍼져나가는 엘링의 상상력 때문에, 스토커라는 느낌보다는 웃음이 새어나온다. 자신의 상상에 반하는 사실이 나오면 그 사실을 상상에 꿰어맞추기 위해 왜곡하는 모습마저도 재미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구타당하는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연민과 불의에 대응하고자 하는 정의감, 리게모르 욜센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과 설레임, 그 동경이 깨졌을 때의 아픔을 보면 엘링의 순수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엘링은 그들을 훔쳐보고 있었음을 이야기할 수 없으므로 그 현실에 직접 개입할 수 없고, 지극히 한정적인 정보로는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전화를 걸어서 말없이 끊는 방식으로 나름대로 소심한 응징을 가한다. 미움보다 더 잔인하다는 현대의 무관심은 엘링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항목이었으니, 과다한 관심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하게 되지만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로 조금씩 다가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엘링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장 인물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꽤 장편 소설을 읽어낸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엘링의 끝없는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갖가지 단편들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엘링이 받는 연금으로는 집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요양원으로 가게 되는 이야기로 1권은 끝난다. 옮겨 심기를 하는 식물들이 한동안 몸살을 앓는 것처럼, 대인 관계를 어려워하는 엘링이 그간의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잘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 끝없는 혼자 놀기의 진수인 엘링, 그는 그 자유로운 상상력 만큼이나 약하고 복잡한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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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같은 이쁜 내용일줄 알았는데 주인공이 남자였다.
그래도 뭐 괜찮습니다. 노르웨이 소설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읽어왔던 책이랑은 느낌이 다르다. 문체라던지 좀 독특하다는 느낌?
그런 재미로 읽었다. 비슷비슷한 일본소설 등에 질린 사람들 뭔가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면 좋겟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