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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리 멘젤 감독이 1966년에 만든 <가까이서 본 기차 Ostre sledované vlaky / Closely Watched Trains>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이칠란트에 나라를 빼앗긴 체코의 작은 시골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이제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갈라진 나라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화라 자주 보기 힘든 작품이다.
서로 다툰 적도 없고 만난 일이 없는 사내들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터. 때로는 사내답게 살고 싶은 마음에서 제 발로 갔고, 어떤 이는 어쩔 수 없이 끌려 갔지만, 피비린내를 풍기는 그런 곳의 속을 제대로 안다면 멀쩡한 사내들은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싸움보다 사랑을 찾는 사내들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그리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싸움은 머리가 돈 찌질이들이나 해라...멀쩡한 우리는 사랑을 하련다...
2. 체코의 작은 시골역인 코스토믈래티에 엮어 있는 사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철도청을 다스리는 검사장은 "젊은이들이 싸움터에 나가서 피를 흘리며 히틀러 총통의 뜻에 따르는데, 역에서 일하는 이들도 싸움터는 아닐지라도 그런 몸가짐으로 살아야 해" 하며 눈을 부라린다.
전쟁 전에 아주 잘 나갔던 백작부인은 사내와 계집이 어울리는 일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교회를 다시 세워야 하겠어요. 요즈음 무너진 교단 뒤에서 몹쓸 짓을 하는 이들이 있어요..."
역장인 막시는 나이가 들고 뚱뚱한 아내와 같이 살면서 입으로는 바르고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뒤로는 아리따운 아가씨한테 눈길을 주다가 아내 때문에 같이 놀지 못하자 속이 터진다. "요즈음 젊은 것들은 아래위가 없어. 세상이 아마겟돈 같아. 아무 데서나 살을 섞질 않나..."
3. 그런데 싸움터에 간 사람들은 간 사람들이고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아야지 하는 이들도 있다.
배차계장인 후비츠카는 그저 사랑 타령 하느라 바쁘다. 말을 타고 마을에 내려온 백작부인을 보고는 뿅 가서 넋을 잃는다. "저 아낙네만 나한테 온다면 온 세상이 암흑에 빠져도 좋아... 차라리 내가 백작 부인의 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그러면 같이 온 마을을 돌아다닐텐데..."
견습생으로 역에서 일을 하게 된 밀로시 흐르마(바클라프 네카르)는 스물두 살이어서 모르는 게 많다. 기차에서 차장을 하는 마샤(지트카 스코핀)가 밀로시를 좋아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쩔쩔 맨다.
기차가 서있을 때 밀로시가 마샤와 입맞춤을 하려고 눈을 감았는데 마샤가 탄 기차가 떠나 버린다. (우씨...) 역으로 찾아온 마샤가 밀로시한테 다가오는데 후비츠카가 방에서 나올까 걱정하다 허탕친다. (이런...) 마샤 삼촌의 가게에서 마샤와 잘 해보려고 옷도 벗었지만 열린 문에만 마음을 쓰다 또 놓쳐버리고... (도대체 왜 이래....마샤가 어떻게 생각하겠어...나는 죽어야 해...)
4.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에 나가지 않고 속 편하게 시골역이나 지키고 있는 여러 사내들이 어떻게 하면 계집을 잘 꼬드길까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감독은 멀쩡한 사람이라면 싸움을 멈추고 사랑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것일까?
곳곳에 보는 사람들을 웃기는 대목이 많다. 계집과 살을 섞은 사람은 다음 날 역 앞에서 콧노래를 부르는데, 역장 막시는 둘이 즐긴 역장실의 쇼파가 찢긴 탓에 "누군지 잡히면 죽는다!"고 소리를 친다.
역에서 전신기사를 하는 아가씨와 배차계장 후비츠카가 노는 모습도 귀엽다. 역에서 쓰는 도장을 아가씨의 종아리와 허벅지, 엉덩이에 찍은 모습을 보고, 제 엄마는 미친 놈을 잡아야 한다고 날뛰지만, 경찰이나 판사들은 실실 웃기만 한다. "잉크가 이레는 가겠어요. 젊은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네요. 흐흐흐. 이런 건 죄가 아니에요..."
너무 일찍 저도 모르게 볼일을 봐버리는 탓에 마샤와 잘 안 된다며 의사가 살을 많이 섞어본 아낙네한테 가서 가르침을 받으라고 밀로시한테 말하자, 뭘 모르는 밀로시는 역장의 아내한테 찾아간다. 이 대목이 아슬아슬 하지만, 지나치지 않아 좋다.
5. 전쟁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랑하며 살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랑을 때로는 우습게, 때로는 가슴이 아프게 보여주는 감독의 솜씨가 놀랍다. 게다가 감독이 우리 나이로 스물아홉 살에 찍은 영화라 하니 더욱 놀랍다.
오래된 흑백 영화지만 디브이디 화면이나 소리는 괜찮다. 그러나 보너스로 예고편 하나 없다. 그런데도 한 장짜리 디브이디의 값은 무척 비싸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보기 어려운 영화라 하더라도 아무 것도 없이 영화만 들어 있는데...많이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