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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단편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이 단연 좋았다
이런 저런 말보다는-
* 나는 신혼 때처럼 종종걸음으로 그를 마중해 모자 먼저 받아 걸었다. 비록 늙은 얼굴에 걸맞지 않는 갓난아기 같은 민둥머리를 하고 있을망정 그는 매일매일 멋있어졌다. 너무 멋있어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황홀한 적도 있었다. 일찍이 연애할 때도 신혼 시절에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건 순전히 살아 있음에 대한 매혹이었다. 그러고 나서 풍성한 식탁에 마주앉으면 우린 더불어 살아 있음에 대한 안타까운 감사와 사랑으로 내일 걱정을 잊었다. 그 시간 그의 구미에 맞는 한그릇의 두부찌개는 누가 천년까지 먹고 살 보화를 가지고 와서 바꾸자고 해도 거들떠도 안 볼 만큼 값진 것이었다. 남들이 십 년 후를 근심하고 백년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우리는 순간을 아까워했다. 죽음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동물도 죽을병에 들거나 상처를 입으면 괴로워하기도 하고 저희들 나름의 치료법도 있으리라. 그러나 죽음을 앞둔 시간의 아까움을 느끼고, 그 아까운 시간에 어떻게 독창적으로 살아 있음을 누리고 사랑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건 인간만의 비장한 업이 아닐까. 그가 선택한 인간다운 최선은 가장 아까운 시간을 보통처럼 구는 거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에게 순간순간 열중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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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깊은 맛이 있다고 해도 될까요. 이 마음도 알 것 같고 저 마음도 애틋하게 들리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시대를 먼저 훑고 간 잔상들이 잠결에 누워서도 맴맴 생각났다지요. 등장하는 이야기의 면면의 일부가 지금과 별 다르지 않은 점을 발견할 때면 사람 사는 일이 다 고만고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여러 단편 중에서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특히 좋았습니다. * 마지막 일년은 참으로 아까운 시절이었다. 죽을 날을 정해놓은 사람과의 나날의 아까움을 무엇에 비길까. 애를 끊는 듯한 애달픔이었다. 세월의 흐름이 빠른 물살처럼 느껴지고 자주자주 시간이 빛났다. 아까운 시간의 빛남은 행복하고는 달랐다. 여덟 개의 모자에는 그 빛나는 시간의 추억이 있다. 나만이 아는. * 내가 내 일이 잘 안되어 두억시니 같은 모습으로 아이들이나 집안일과 부딪칠 때마다 그는 말했다. 쉿 조용히 하자, 느이 엄마 또 거짓말이 딸리나보다. 혹은 손수 커피를 타가지고 와서 당신 또 거짓말이 막혔나보구려 하고 놀리기도 했다. 그럴 때처럼 그의 시선이 따뜻하고 정겨울 때도 없었다. 그러면 나도 슬며시 웃음이 나오면서 그래, 한낱 거짓부리인 것을 하고, 죽자꾸나 덤벼들던 그 참담한 악전고투에서 한 걸음 물러날 여유가 생기곤 했다. 그렇다고 내 소설 쓰기가 그에겐 한낱 거짓말 만들기로밖에 안보였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 나는 요새도 가끔 그가 남긴 여덟 개의 모자를 꺼내본다. 그 안에서 머리카락 한 오라기라도 찾아보려고 더듬어보지만 번번이 헛손질로 끝난다. 그 여러 개의 모자는 멋이나 체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민둥머리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몸을 차디찬 땅 속에 묻은 건 확실한데 아침마다 우수수 지던 그 숱한 머리카락은 지금 어느 만큼 멀리 흩어져 티끌로 떠도는 걸까. 생며으이 가엾음이 티끌과 다를 바 없다는 속절없는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의 흔적을, 남긴 물질에서 찾는 것보다는 남긴 말이나 생각에서 찾는 게 그래도 조금은 덜 허전하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고, 잘난 척할 줄도 몰랐기 때문에 담소는 즐겼지만 그럴듯한 말은 할 줄 몰랐다. 우리 집엔 그 훈한 가훈도 없다. 그의 말이 생각나는 것도 그가 끼면 편안하고 여유로워지는 담소 분위기이지, 멋있거나 뜻깊은 말뜻은 아니다. * 잘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