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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찡한 시편들
"마음이 찡한 시편들" 내용보기
'문학상'이라는 문학작품상이 갈수록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몇 회를 거듭할수록 배출된 수상작들을 보며 그 말을 실감하곤 한다. 영화로 치자면, 1탄보다 2탄이 못하듯, 문학상 역시, 처음보다 뒤로 갈수록 그 취지가 떨어지는 듯 하다. 그래서 한동안 문학상 작품집을 읽는 것을 중지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연찮게 접한 2003년도 소월시 문학상 작품집을 보고난 후
"마음이 찡한 시편들" 내용보기
'문학상'이라는 문학작품상이 갈수록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몇 회를 거듭할수록 배출된 수상작들을 보며 그 말을 실감하곤 한다. 영화로 치자면, 1탄보다 2탄이 못하듯, 문학상 역시, 처음보다 뒤로 갈수록 그 취지가 떨어지는 듯 하다. 그래서 한동안 문학상 작품집을 읽는 것을 중지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연찮게 접한 2003년도 소월시 문학상 작품집을 보고난 후 다시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이번 수상작은 이문재 시인의 <지구의 가을="">이었다. 하루 세 끼마다 살기 위해 음식물을 섭취하는 우리의 몸은 얼마나 비루한 것인지... '우주를 먹고 자란 쌀 한 톨이 / 내 몸을 거쳐 다시 우주로 돌아가는 / 커다란 원이 보입니다 / 내 몸과 마음 깨끗해야 / 저 쌀 한 톨 제자리로 돌아갈 터인데 // 저 커다란 원이 내 몸에 들어와 / 툭툭 끊기고 있습니다 /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린다 해도 / 이 음식으로 이룩한 깨달음은 / 결코 깨달음이 아닙니다'라며 시를 맺는 시인의 마음. 하지만, 결코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시인과 우리는 아직도 깨닫지 못했기에 이는 영원한 숙제로 남으며 사유의 시간을 건네준다. 그리고 이문재 시인의 <새의 날개="" 안쪽="">이라는 시도 좋은 인상을 주었다. '날개 안쪽은 희지만, 바깥쪽은 검은 새'. 시인의 눈에 그 이유는 '아주 오래된 슬픈 보호색' 때문으로 보인다. 적에게서 자신을 가리기 위해 늘 날개 바깥쪽은 검은색이다. 그러나 둥지에서 기다리는 어린 새끼들을 위해서 날개 안쪽은 흰색이다. '흑인들의 손바닥은 얼마나 흰가 / 사람들의 정수리는 / 내 어깻죽지는 또 얼마나 검은가 / 검은 땅 높은 빌딩'. 굴욕의 삶을 살아온 흑인으로서조차 보호색 개념의 검은 살갗 안쪽에 제 삶과 가족을 위한 따뜻한 흰빛을 감추고 있다. 그리고 날카롭게 경계의 빛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정수리와 내 어깻죽지와 검은 땅, 검은 빌딩'. 우리의 안쪽에도 흰빛이 자리잡고 있을까. 시인은 새 날개 안팎의 예리한 관찰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이문재 시인의 시뿐만 아니라, 추천우수작들 또한 전에 비해 탄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정일근 시인의 작품들은 수상작 못지않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어머니의 그륵="">이라는 시 속에서 어머니의 삶과 무지한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릇을 '그륵'이라고 하는 어머니와 말을 만들어내는 시인이어야 하면서도 사전에 적힌대로 '그릇'이라 하는 자아를 통해 시인은 성찰의 세계로 빠진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불과 /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잠언에서처럼 나의 삶만큼 사물이 보이고, 또 그 사물을 어떻게 불러주느냐에 따라 사물의 깊이와 넓이가 나에게는 달리 나타나는 것이다. 아직 내가 걸어온 삶의 깊이는 한없이 얕기만 하여, '그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내 아이들에게 '그륵'이라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의 둥근 뱃속에서 쌀 한 톨조차 그냥 배설되지 않고, 내 살 속에서 오래 영글어 훗날 내 영혼을 통해 우주로로 돌아갈 수 있기를 염원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 물을 담아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 어머니의 긁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불과 /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주어야 하는데 / 두툼함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1*******y 2003.06.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