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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저 목사님의 책은 온실 속에서 곱게 배양되어온 곱상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비닐하우스를 걷어 제치고 야생의 햇빛과 바람을 쏘이게 만드는 .. 현실을 직시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참 야성을 회복케하는 놀랍고 귀한 역사를 일으키는 책이다. 아무런 결단도 책임감도 없이.. 그저 믿어주는것으로 천국을 약속받는다면 싸구려 복음에 물들여진 나약하고 보잘것 없는 종교인일 뿐이라고 토저 목사님은 질책한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여전히 십자가와 상관없는 아무런 포기도 희생도 치르지 않으려는 우리들에게 십자가와 함께 반역과 불순종의 옛자아를 못박으라 한다. 죽으라 한다. 그리하여 십자가에서의 옛자아를 죽게함으로 십자가를 통과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부활과 승리의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십자가 길을 걸으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 속으로의 내면여행이 시작되었고 참으로 힘든 결단들이 내 앞에 줄지어 서있었던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것....... 쉽지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바울의 고백처럼 .. 날마다 내 자아가 죽었음을 확증해야하는 하루 하루가 ..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죽었다한들.. 아직도 살아남아 활개치는 옛습성들은 순간 순간 죽은 줄 알았던 옛자아를 살아돌아오게하는 기막힌 기적을 일으키기도하는데..
한번쯤은 십자가에 냉엄하게 직면해 보길 원한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길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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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아주 강하다. A.W 토저의 책은 전체적으로 Strong하고 hard하다. 대충 대충 신앙 생활 하려다가도 그의 책을 읽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이런 역할을 감당해 줄 사람도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토저의 책은 적정한 시기에, 적정한 여건을 갖춘 상태에서 읽게 되면 그 power를 실감할 수 있다. (사실 Impact는 손에 꼽을 만큼 강하다)(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나 연약할 때 읽으면 큰 시험에 빠질 수 있지만, 뭔가 자극이 필요하고 강렬한 메시지가 필요하다면 집어들 만 하다)
역시 항간에는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상당한데, 대개는 근본주의 계열의 목회자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처럼 야박하게 굴 필요는 없어 보인다. 토저의 책은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의 말을 몇 부분 인용해 보겠다.. 난 , 토저의 '강력한 호소' 가 이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은 열심히 기도하지만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히 원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영생에 관심이 있지만 , 다른 것에 더 마음이 끌린다. 그들은 참된 믿음 가운데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 다른 것에 막혀 결단에 이르지 못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 두려운 사실을 사람들에게 깨우쳐주시기를 바란다. 존경스럽고 경건하며 기도에 열심이 있고 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열심히 찾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면 마치 보물을 찾은 듯이 기뻐한다. 사실 예수님을 찾아왔던 젊은 부자만큼 열심 있는 사람을 보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교회를 잘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찾아 나선다. 그들을 만나 농담을 주고 받고 , 공통의 관심사를 찾으려고 스포츠에 대해 얘기하고 , 그런 다음 아주 조심스럽게 말한다.
"당신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 마음의 평안을 얻고 학점도 잘 받을 수 있고 만사가 형통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현대의 기독교가 쇠퇴한 것이며 , "형제여 , 내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왜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들은 회개와 신뢰와 복종을 통해 하나님 나라로 들어온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갈라진 틈새를 통하거나 옆 창문을 넘거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 안으로 몰래 들어오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내적 증거도 , 평안도 , 확신도 없다."
사실, 이와 같은 열심과 헌신 그 자체는 필요하다. 힘의 주체를 '나'에게 두느냐, '성령'님께 두느냐의 중요한 논의가 남아 있지만 이와 같은 열매를 잃어 버린 우리들의 모습이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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