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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시집 [접시꽃 당신]이다. 나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워낙 유명했었던 시집이기에 여기저기서 많은 말들이 돌아다녔었다는 기억이다. 그렇지만 내가 도종환하면 떠올리는 것은 [담쟁이]란 시이다. 어떤 기회에 알게 되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그 시를 처음 보았을 때, 가슴이 싸해졌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언젠가 시인의 건강이 좋지 않다던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이 산문집은 시인이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회색 빛 도시를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 생활하면서 써 놓았던 글들을 엮은 것이다. 그가 숲 속에서 자연과 함께 생활하면서,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삶의 속도를 늦추고 지나온 삶을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치유해가는 글들을 읽으면서, 나 또한 시인이 초대하는 그 숲 속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이런저런 일들이 생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 일년간 자신이 일구어 놓은 것을 수확하면서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질주하던 삶 속에서 낙오가 된 것은 아닌지 실의에 빠지기도 한다. 길가의 가로수들도, 그리고 정원의 나무들도 모두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을 싸늘한 바람에 맡기고 있는 것을 볼 때, 내 가슴속에서도 휑한 찬바람이 인다. 아직도 나는 내 삶의 속도를 늦추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 동안 힘들게 달려오면서 여기저기 긁힌 곳도 많고, 이런저런 교통위반도 했을 텐데, 아직도 그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실망하고, 분노하고, 아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그런 나에게 말하고 있다. 내실이 없는 허세와 과장이 많았던 삶은 아니었는지, 이제는 평온한 속도로 가보라고.. 시인은 우리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리고 삶의 속도를 규정속도 이상으로 올리는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드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나보다 잘된 사람,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만 쳐다보고 살지만, 나만큼 가지지 못한 사람,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쳐다보며 살아가라고 한다. 또한 자연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우리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만을 욕심 내고 있다. 남들은 서슴없이 가진 것을 나누고 베푸는데, 나는 그냥 나 하나를 지키고 사는 것도 어려워하며 한 세월을 살고 있다. 시인의 말처럼 잘못 살고 있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가난한 마음을 잃지 말라고 한다. 가난했기 때문에 정직하고 순수했던 눈빛을 잃지 말라고 한다. 날마다 탁해져 가는 눈빛 속에 비춰진 욕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시인이 초대하는 그 숲으로 나도 가고 싶다. 남이 내게 베푼 것은 고마워하되, 내가 베푼 것은 잊어버리고 오래 기억하지 않는 삶, 나의 잘못은 엄격하되, 타인의 잘못은 관용하는 태도, 내 욕망은 다스리고 절제하지만, 남의 욕망은 이해하는 마음을 그 숲 속에서 배우고 싶다. 오랜만에 반갑게 만난 친구들과의 모임이 끝난 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았던 부분 때문에 씁쓰레했던 기억이 있다. 만남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즐겁고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나를 다스리고 싶다. 그 숲 속에서 욕망과 탐욕에 찌든 나 자신을 치유하고 싶다. 그것이 벽이라고 느껴질 때, 담쟁이를 생각하며 그 벽을 뛰어넘고 싶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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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봄을 나기 위해 필요없는 힘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헐벗은 채 서있는 나무이고자 했다. 전혀 새롭지도 않고 설레이지도 않은 시작이었다. 특별히 무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지만 신묘년의 게으름이 임진년까지 쫓아오는 바람에 새해첫날 부터 약속을 깨버리게 되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면서 년초부터 힘이 쫙 빠져버린 것이다. 끝내지 못한 인간관계를 흐지부지 끌어오면서 마음은 마음대로 녹초가 되고 몸은 몸대로 피로와 함께 하고 새로운듯이 가뿐한 마음으로 굳이 무언가를 하지 말자고 다짐은 해놓고 은근히 하지 않은게 또 신경쓰였다.
뭔가 알 수 없는 초조한 공기가 날 감싸고 있었는데 조금씩 덜어버렸다. 꼭 자기를 읽어달라는 듯이 내 눈앞에 살랑살랑 거리던 이 책을 읽으면서 이번년도는 반드시 책 100권을 읽어야지 하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읽으려면 2~3일에 한권은 읽어야 한다. 근데 도무지 나가지 않는 진도에 2주나 이 책을 잡고 있자니 답답하기도 하고 슬며시 불안하기도 했다. 사실, 안 읽혔다기 보다는 천천히 나름 아주 천천히 읽을려고 애를 썼다. 그냥 읽고나서 읽었어요 하고 티내기 보다는 음미 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하나 하나 놓칠 수 없는 지금 내 마음을 너무 잘 대변하고 있는 주옥같은 글들이었기에...
아무 빛깔도 가지지 않은 듯 보이는 색, 색을 다 버린 것 같은 무색,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수수한 흰색에 벌들이 더 많이 몰려오는 게 다 무슨 까닭이 있을 듯싶습니다. 곤충은 여름 숲의 진초록에서 붉은색을 구분해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히려 흰색이 초록색과 대비되어 눈에 더 잘 뜨인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가지고 있을때 더 사랑받는다는 이치를 여기서도 깨닫게 됩니다.
도종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中-
나를 드러내려 애쓰는 지금이었다. 단지 좀더 드러나 보이는 성격일 뿐이었고 나란 사람이었을 뿐인데 그 부분을 전체로 치부해 버리고 나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가 쌓이고있었다. 그래서 애써 나 이런 면도 있는 사람이거든요 좀더 자세히 들여다 봐주시면 안될까요?라면 애쓰고 있던 지금이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굳이 속앓이 하지말자. 오래도록 지켜보는 사람은 언젠간 나를 알게 될거야 물론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게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고쳐야지 그런게 아니면 굳이 마음아파 하지말자 라고 생각했다. 그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내 마음을 건드리지 못하면 좋은 글일지라도 살아있지 못하는 글 일 수도 있다 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 상황의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것 뿐이니 너무 주관적인 글은 걸러 읽으시고, 마음이 지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으실때 읽어보시길 권한다 하나하나 날아서 그대들 마음에 닿을터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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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대화하는 법
오늘 공교롭게도 매스컴을 통하여 작곡가 이영훈님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문세의 히트곡들을 작곡했던 분인데.. 필자의 친누나가 이문세의 열렬한 팬이었던지라.. 덩달아 이문세씨의 노래를 들으며 사춘기를 보내었었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공개방송에 나란히 출연해서 정겹게 담소를 나누던걸 야심한 밤에 이불을 덮어쓰고 라디오를 통해 즐겨 들었던 일이 참으로 기억에 생생한데..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더랬다..
바로 그 시절이었다.. 88 서울올림픽이 화려한 서막을 올리며 보다 더 잘사는 나라를 위해 국민들 모두가 희망에 들떠있던 그 시절..
어느 시인의 슬픈 이야기와 시가 코밑 수염이 거뭇해지고 이마에 여드름 만발하던 팔팔한 대한민국의 청소년 조차도 여린 감성으로 돌아가 눈물짓게 했으니.. 그 분이 바로 도종환 시인이었고.. 그 시가 '접시꽃 당신' 이었다..
('안개기둥'을 연출했던 박철수 감독이 연출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주연 배우에는 목련같이 새하얀 백색의 조끼 난닝구를 입고 알통을 씰룩 거리며 영비천이나 로얄디 따위를 호쾌하게 들이킬것만 같은.. 시인의 이미지랑은 거리가 상당히 먼 이덕화씨랑 그 시절 당대 최고의 미녀 여배우라 캐스팅 된 듯하나 어우동의 뇌쇄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하여 자연을 사랑했던 시인의 아내역으로는 매치가 잘 안되던 이보희씨가 맡았다.. 그 해 백상예술대상을 싹쓸이한걸로 보아 꽤 흥행에는 성공했던 기억이 난다..)
임신한 시인의 아내는 암에 걸렸다.. 아이는 건강하게 세상의 빛을 보았으나 아내는 구름의 저편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시인의 표현처럼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가버렸다.. 그 죽음을 지켜보며 시인은 평생을 자연을 벗삼아 청빈한 삶을 함께 하고자 했던 사람을.. 마음 놓고 약 한 번 못써보고 떠내보내야 하는 자신의 무능함에 괴로워하며.. 그래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것으로라도 사랑의 실천을 생각했던..
그 시인..
세월이 10년이 지나서야.. 최근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도종환 시인은 어느 숲 속에서 청안하게 지내며 우리들을 불렀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라고..
5년전 시인이 숲을 찾았을때.. 그는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남은것 없이 바닥이 다 드러난 상태였다한다.. 숲은 그런 시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아낌없이 위로해 주었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게 하여 골짜기 물로 닦아주었고 나뭇잎의 숨결로 말려주며..
그렇게..
시인은 진정 숲에서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깨달은것 같습니다.. 자연을 벗삼아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사랑하는법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비처럼 사랑하고 싶습니다. 꽃은 꽃대로 향기롭고 나비는 나비대로 아름다운 사랑. 혼자 있어도 아름답고 함께 있어도 아름다운 사랑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불에 갓 구워낸 은행의 연둣빛 또는 노릇노릇한 빛깔, 그 안에는 떨잎으로 지기 직전 가장 아름답게 불타던 은행잎의 샛노란 열정이 있고, 싸아한 맛이 있으며 은근한 겸허가 있습니다. 수억 년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진화하기를 거부하는 소박한 자기 고집의 빛깔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요..
나를 만나기로 한 날 다른 이들이 약속을 잡자고 하면 나는 중요한 약속이 이미 잡혀 있다고 말합니다.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한 일정이고, 바꿀 수 없는 약속이어야 합니다. 내 안에도 내가 돌보고 배려해야 할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텃밭을 망쳐버린 고라니에 대해서 말하는 후배와의 대화는 참으로 인상 깊습니다.. 후배가 약을 놓아 고라니를 잡자고 하자 시인은 말합니다..
고라니가 좋아하는 풀이나 열매를 우리가 가져다 먹은게 더 많을지도 모르니.. 그때 고라니가 참았다면 우리도 참아야 한다고..
그렇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도 배우지요..
조화의 빛은 공생의 빛입니다. 상생과 공존의 빛입니다. 서로 빛깔이 다르기 때문에 세상이 다채롭고 풍요로운 것입니다.'
매번 남들이 저같지 못함을 야속해 하곤 했지요.. 내것이 소중하고.. 내 생각 내 기호가 중요하듯이.. 타인들의 그것들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요..
'인생의 고통은 소금과 같다네. 하지만 짠맛의 정도는 고통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지. 잔이 되는 걸 멈추고 스스로 호수가 되게나.'
시인이 숲에서 깨닫고 배운것들 입니다..
참.. 아름답지 않나요..
마음 한편이 푸근해지지 않나요..
우리에겐 언제라도 돌아갈 숲이 있으니까요..
눈을 감으면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그 소리는.. 계곡을 흘러 내리는 시냇물 처럼 잔잔하고.. 숲 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처럼 영롱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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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선이 앙증맞게 귀여운 봉오리를 손끝으로 가만히 건드려보다가 나도 이제는 내 빛깔을 조금 낮추기로 합니다. 강렬한 빛에서 담담한 빛깔로 옮겨가기로 합니다.' 정말 그 산방에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언젠가 티비에서 '집배원과 시인' 인가 하는 제목으로 작가의 일상이 나온적이 있다. 한참이나 그 속에 갇혀 눈을 떼지 못하고 보았던 적이 있는데 사람이 드문 곳에서 그가 세상소식을 접하는 것은 '집배원' 과의 소통이었다. 그 집배원 아저씨는 세상소식만 물어다주는 반가운 사람이 아닌 '정' 까지 듬뿍 나누어 주기도 하였는데 글 속에도 그 나눔의 정이 나타나있다. 자연속에서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자연과 맞추어 사는 것인지 모든것들의 주인양한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빛깔을 낮추지 못한것, 덜어내지 못한것으로 본다. 나 또한 산행을 못하는 체력이라 산을 즐긴지는 얼마되지 않는다. 처음 첫발부터 천천히 갈 수 있는 곳까지 오르며 다른 사람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 아닌 내게 전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하며 리듬을 맞추어 가다보니 나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자연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내 눈 높이를 낮추어야 볼 수 있는 자연에 반하기 시작하면서 산은 그야말로 내 전부처럼 느껴져 가지 못할때는 몸살이 날 정도이고 한번 다녀오면 한마디로 저질 체력 때문에 몸살이 나는 사이클을 반복하면서도 다시금 산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속에 있으면 겸허해지고 나 자신이 너무 작고 모두가 대등소이해지며 철마다 그들이 가르쳐주는 것들은 정말로 엄청났다. 초보 산행꾼에게도 산과 자연을 그렇게 다가왔으니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에게는 자연은 어떠할까.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내가 느끼고 보았던 것들이 모두 담겨 있는듯 하여 너무도 좋았다. 이 책은 가을이 깊어 지고 있는 나무숲 의자에 앉아 가을바람과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읽었다. 정말 자연속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고 자연의 이야기로 쓰여진 글들을 읽다보니 그대로 그 순간에 놓여있는것만 같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 속으로 들어간듯한 이상한 감정이입에 빠져 들게 되었다. 한참 지금 산에 분홍빛 노란빛 물봉선이 피어 있는 시기라 그런지 그의 글들은 내 눈 속에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듯 하여 산으로 달려 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는 날마다 다섯알씩 밤을 나누어 먹는 다람쥐도 친구이고 주인이 없는 집에 내려와 마당을 헤집어 놓은 산짐승도 친구가 될 수 있고 가끔 산나물을 뜯으러 오르내리는 분들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며 아침이면 자명종처럼 노랫소리로 아침잠을 깨워주는 산새 또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도회지에서 가졌던 욕심이 필요할까. 두 손안에 쥐었던 것도 놓아야 비로소 자연을 자연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산방, 그곳이 왠지 부럽기만 하다. 무엇이 이유가 되었건간에 누구나 마지막 소망은 '전원생활' 이 로망처럼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몸도 마음도 자연과 더불어 살찌우는 시인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처럼 느껴졌다. ' '선생님, 그냥 두 글자로 된 거요.' . 나는 어묵, 튀김, 라면,김밥, 만두.. 이런 두 글자들을 떠올리다. '그래, 좋다. 사줄게.' 하고 대답을 하고 학교 근처 식당으로 몰려갔는데 문을 들어서며 큰 소리로 음식을 주문하는 미란이의 목소리, '아줌마, 우리 탕슉!' ' 정말 '빵' 터졌다. 요즘 아이들을 어찌 당하랴. 두 글자 정확하게 맞다. 삶이란 내가 예견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외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세상에서 선생님을 했다고 하여 자연속에서도 모두가 그를 '선생님' 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런 마음을 버리지 못하였는지 새소리마져도 '선생선생선생..' 하고 지저귀는듯 듣는다. 자연속에서는 그가 꼴찌일 수 있다. 선배들에게 배워야 하고 자연에게 배워야 그 속에서 정착하고 그들의 일부가 되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졌던 지위와 부는 자연속에서 아무가치도 없다. 두발로 흙위에서 서기 까지는 내 온전한 힘과 그들과 적절히 힘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지 내가 가진 어깨의 힘이 아닌것이다. '상처없이 어찌 봄이 오고, 상처 없이 어찌 깊은 사랑이 움트겠는지요.' '처음 이 산에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는 황량하고 스산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을 꽉 다물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봄을 맞을 때는 너무도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맞은 봄이라 진달래꽃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세 번째 봄을 맞을 때는 뒤뜰의 산벚나무를 보며 '절망을 하찮게 여기지 않았듯/ 희망도 무서워할 줄 알' 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번째 봄을 맞으면서는 소생의 힘에 대해 생각했고 고마워 봄 햇살에 절했습니다. 이제 또 봄을 맞으며 나는 다시 고요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무들처럼 자신의 표피를 벗어내며 더 단단해져 가는 방법을 그가 봄을 맞으며 깨달아가는 과정속에 모두 담겨 있다. 그의 글들을 읽다보면 정말 마음이 '청안' 해 진다. '그러나 돌아오면 늘 잘 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방에 와 있으면 마음이 다시 청안해집니다. 맑고 편안해집니다. 이 숲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부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끄러운 소음이 적당히 길들여진 사람이 적막한 숲에 적응하며 살기란 힘든 것이다. 한 두번 산행을 하거나 산에 갈때는 물론 좋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곳에서 자연과 적응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산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힘든 것이다. 하지만 자연속에서 몸은 점점 자연과 닮아가고 자연과 같이 해마다 나이테를 가지듯 편안해져 가는 그의 글 속에서 문득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며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 내 짐을 내려 놓듯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다람쥐가 밤 알 다섯개를 먹기 위하여 찾아 오는 툇마루에 앉아 그와 생강나무꽃차를 한 잔 마시며 많은 대화가 아닌 눈빛만으로도 족할 그런 시간을 나눈 듯한 마음이 맑아지는 산방 이야기는 마음이 때를 씻어 준것처럼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숲 초대장을 받고 바로 달려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아니, 이 녀석들이 진짜, 이렇게 마당을 파 헤쳐 놓으면 어떻게 해,' 하고 잔소리를 칩니다. '누가 여기에다 똥을 싸놓았어.' 하고 주위를 둘러 보지만 아무도 손드는 녀석이 없습니다.' 자연과 내가 살아가는 길은 기생이 아닌 '공생' 이다. 가끔 마당에 와서 똥을 싸 놓아도 밭을 헤집어 놓아도 그녀석들의 터전에 내가 들어와 사는 것이기에 나의 일부를 내어주며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아야지 그들의 길을 막으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헛웃음만 나오는 부분을 읽다가 마당에서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니 웃음이 그치지 않고 나왔다. 누가 손들겠는가. 내 마음을 비워야지.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그들이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 창밖에는 풀풀 눈발이 날리는데 나는 배춧국 한 그릇에 이 저녁이 행복합니다. 다른 이들은 어디서 무얼 먹으며 행복을 찾고 있을까요.' 나 또한 요즘 친정엄마가 주신 시래기로 시래깃국을 끓여 먹으며 국 한사발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내가 족하면 세상이 다 내것이 되는 것이지 나의 행복은 남이 가치를 따져 준다고 행복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모든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처럼 작은 것 하나에도 늘 감사를 잊지 않는 그의 삶을 보며 나의 하루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나의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그리고 간접적이지만 그의 숲의 초대되어 '배춧국' 한사발 먹고 나온 듯한 개운함과 포만감이 일시에 몰려오는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더 가을 숲에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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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알이 좋은 말 사람에겐 다 개개인마다 주어진 소명이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어떤 진귀한 소명이 주어졌을지 아직도 고민중이긴 하지만, 도종환 시인의 소명은, 지금 막 다 읽은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확실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글, 시, 마음이 한데 어우러져 사람을 치유하고 자연을 치유하고 세상을 맑게 하는 사람. 저도 책 속에 등장하는 한 마리의 동물처럼, 그냥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 도종환 시인의 조용한 관심과 쓰다듬을 받은 기분으로 책 전체를 읽고 덮었습니다. “참 좋다.” 김용택 시인의 싯구처럼, 짧게 ‘참 좋다’ 라는 말로 청아하게 맑게 끝내고 싶지만, 이 긴 여운이 남는 이 글을 좀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쓰겄습니다. 그게 그나마 저의 작은 소명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대가 이곳에 올 때는 바쁜 걸음으로 산을 넘어오겠지만 돌아갈 때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분주한 마음으로 제 문학의 숲에 오셨다가 고요해진 마음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라며 조용하지만 당당히 밝힌 서문. 정말 꼭 맞습니다. 치유제 한 알 시원한 찬물에 마신 느낌, 그 치유제가 알알이 내 몸속에 스며드는 느낌. 청안 다사로운 햇살 채우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소생 사람도 저마다 별입니다. 가진 것을 베푸는 보시는 재물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웃는 눈빛도 보시인 것입니다. 단잠, 쪽잠, 노루잠, 가을 햇살을 덮고 자는 잠, 풋잠 몇 해에 한 번씩은 그냥 밭을 빈 밭으로 놓아두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나도 나를 그냥 빈 밭으로 놓아두고 있습니다. 윤회하며 되살아 나는 길 단풍든 나뭇잎이 바람에 몸을 씻으며 내는 소리. 고구마가 멧돼지 일가족에게 자신을 허락한 걸. 고구마의 계산된 행동 내가 심은 걸 다 먹었다고 고라니를 죽여야 한다는 건 지나친 생각입니다. 우리는 있는데 나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답답해집니다. 내 소리를 알아듣고 내가 지금 어떤 마음 상태인지를 아는 사람..... 지음(知音) 옹송거리고 화선지 어쩌면 이리도 알알이 이쁜 말들이 많을까요? 깨끗하고 기분까지 맑게 하는 말, 단어, 마음씀. 잊혀졌던 단어들.. 무엇보다 잠을 표현하는 말에도 여러 말이 튀어나올 때는 재미있어 밑줄을 그어봤더니 이렇게도 많이 나오더군요. 정말 한 권을 다 읽고 덮을 때에는 마음이 다 푸근해지고 배불러 옵니다. “각자가 지닌 음색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기 소리가 다른 소리와 어울리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259쪽 라는 말씀. 도종환 시인의 말은 도입에 밝힌 경쟁의 중심, 사막과도 같은 곳에 있으면 얼른 이제 이 숲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말씀이 처음 내가 생각했던 마냥 산 속의 숲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이 구절을 통해서야 또 다시 전달되어 옴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며 서로 살아내고 살아가게 하는 것은 아닐는지... 이렇게 가만히... 조용히 내 방안에 앉아 몇 해의 봄을 보내며 깨달은 진리를, 아름다운 자연을, 그냥 꿀꺽 삼켜도 되는지요? 모쪼록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제 하루 하루 그리고 매번 맞이할 봄과 계절들. 모두를 새로운 마음으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쁠수록 잊지 않도록 이 책을 뒤척이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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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빛 배경 위에 쓰여진'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라는 제목을 보는것만으로도 내 마음에 따스함과 평안함이 전해지는 느낌이 든다. 제목의 물음이 마치 나를 이 책이라는 숲에 초대하는 것만 같아...그 제목에 물음에 어서 응답 하고 싶어 서둘러 책장을 넘겨본다. 저자의 산속에서의 담백하고 소박한 일상을 담은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지..우리가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삶이 과연 바람직한 삶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된다. 놓쳐버리는.. 메마르고 건조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거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에서 빗겨서 각박한 일상에 둘러쌓여 하루 하루 찌든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들의 메마르고 지쳐버린 마음을 촉촉하고 따뜻한 기운으로 채워줄수 있는.. 마음에 쉼표를 줄 수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자연을 향한 향기로운 마음, 향기로운 시선이 책을 읽는내내 내 온 마음이 향긋함과 달콤함으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책을 읽다보면 꽃그림, 새그림 등 다양한 그림들이 글과 함께 어울러져있는데..담백한 그림이 글과 참 잘 어울리는 거 같다. 도종환님의 글을통해 자연을 통해 배우는 삶에 대해서 많은 깨우침을 얻어간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가식 없는 사람의 진실한 언행이 보여주는 아름다움, 꾸미고 만들어 낸 아름다움이 아닌 순수한 아름다움, 그런풍경, 그런 사람을 보고 싶습니다. 자주 만나고 싶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고, 아름다움과 하나 되어 있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사십시오. 이 하루를 사무치게 사십시오. 물 한 모금 앞에서도 솔직하게 사십시오. 햇볕 한 줌앞에서도 모래 한 알 앞에서도 당당하게 사십시오. 그러려고 우리가 지금 살아 잇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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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이마를 비추는 환한 햇살과 상쾌한 아침공기 그리고 어제 하루도 무사했구나 하는 안도감을 얼마나 자주 느끼며, 그것에 대해 얼마나 자주 감사하고 있는가? 늘 내 곁에 있어주며 사랑과 힘을 주는 가족, 친구, 지인 그리고 그 어떠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자주 마음을 전하고 있는가?
이 책을 덮고 나자마자 밀물처럼 쓸려오는 질문들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내 마음을 알 것이며 내가 굳이 찬양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통해- 그것이 노래든 글이든 음성이든지간에- 표현되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발 옆으로 지나다니는 작은 일개미, 겨울 내 움츠렸다 봄이 되어 만개하는 산 속의 이름 모를 꽃,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는 빨간 고추잠자리 이 하나하나가 세상이라는 것을 나는 망각하고 있었을까? 작고 큰 세상들이 모여 결국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루하루 숨만 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도종환님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라는 산문집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나는 많은 질문을 하고 답을 했다. 산 속에서 지내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면서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청안한 삶이 된다고 생각하며,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미비한 존재인가를 알려준 소중한 한 권의 책이다. 짙은 초록색의 이 산문집은 내 손에 들어오기 전부터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내 손에 들어오고, 이 책을 펼친 순간 나는 산 속의 그 촉촉하고 영롱한 이슬 맺힌 새벽 공기, 작은 산새의 지저귐, 단 하루도 반복되지 않는 자연의 순환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성찰을 하는 한 분을 만났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작은 꽃잎의 움직임을 보면서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굴러다니는 도토리를 내 입에 넣기 보다는 겨울 내내 고생할 다람쥐에게 선뜻 내어 줄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훌쩍 멀리 이유 없이 떠나고 싶을 때,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로부터 독립하여 혼자이고 싶을 때, 이 책을 다시 펼 것이다. 짙은 녹음이 우거진 산 속으로 걸어가 다시 나를 돌아 볼 것이다.
지금 내 삶은.. 그리고 당신의 삶은 "청안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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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일상,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생활속에서 행복의 의미를 찾기위한 첫걸음을 누군가는 푸른 하늘 한번 올려보는것이라 했다. 마음의 여유가 어쩌면 행복을 원하는 사람의 첫걸음인 것이다. 숲에서 보내는 도종환님의 편지를 받았다. 똑같은 삶이지만 공간적인 차이가 시간적인 차이와 심적인 차이를 만드는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빌딩 숲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산새들이 지저귀는 숲으로 불어 오는 바람은 같을까 다를까? 울긋불긋한 그림들 속에 담고있는 일상의 언어들로 여유를 잊고 살았던, 방향없이 달리기만 했던 우리들에게 쉼표, 의 의미를 던져 주고 있는듯 하다.
<그대 언제 이숲에 오시렵니까> 숲에서 보낸 이 파란봉투의 편지에는 커다란 4장의 편지지가 담겨져 있다. 나는 꽃 그늘 아래 혼자 누워있습니다. 함께 있어도 늘 외로운 삶, 나의 것에 집착하는 삶, 충분히 사유할 시간 없이 쫓기듯 달려온 삶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노란 애기향 풀꽃, 조팝나무 진한향기를 맡으며, 매화꽃 따다가 꽃차 마시며, 맑고 평안한 그런 청안한 삶을 이야기 한다. 내것으로 만들기 위한 삶으로 인해 외로움은 커져만 간다. 이 숲의 모든것이 흘러가는대로, 느끼는 대로 모두 내것이 된다면 그 속에 청안한 맘이 담겨질 것이다. "늘 청안하시기 바랍니다." 상처없이 어찌 깊은 사랑이 움틀 수 있을까요. 삶의 지혜. '상처없이 어찌 봄이 오고, 상처 없이 어찌 깊은 사랑이 움트겠는가' 인생의 깊이, 삶의 고뇌속에, 마음의 상처는 더 큰 성공으로 다가온다. 꽃 한송이도 상처위에서 피어나고, 눈해를 입었던 소나무에 빼곡하게 솔방울이 달리 듯이. 실패는 잃기만 하는것이 아닌 성공을 위한 토양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한번더 가르치고 있다. '아는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다. 잉글랜드에 있는 축구선수 이영표 선수가 즐겨하던 말로도... 봄날 만난 꽃나무에 대해 많이 아는것보다 그 꽃나무를 사랑하는것이 중요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에 대해 아는것도 중요하지만 그를 좋아하고 함께하는것이 즐거워야 일하고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꽃과 나무, 바람, 산새소리를 즐기는 숲의 생활로 우리를 손짓하고 있다. 삶이 담겨있는 숲으로... ![]()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사세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오늘을 사는 방법을 이야기 한다. 가능하다면 매사에 "~구나, ~겠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라고 말한다. 덜 어리석고, 덜 분노하고, 덜 포악하게 덜 추하게 살아가는 방법. 바로 감사의 맘으로 오늘을 사는것이다. 처음 우리가 눈뜨고 바라본 세상은 지금의 황량한 모래 벌판이 아니었다. 도시의 벌판과 모래먼지 사이를 횡단하며 지친 몸. 이제 그 사막을 떠나 평화와 사랑, 여유가 가득한 이 숲으로 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한 꽃은 다 어디있는가. 새를 사랑한다는 것은 새장에 새를 가둬두는것이 아니라고 했다. 새가 높이 날개짓하도록 새장 밖으로 날려보내는것이 사랑이라고.. 삶을 살면서 우리가 사랑했던 많은 꽃들. 그 꽃들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원하는 자리에 꺾어다 놓은 꽃은 이미 죽은, 생기를 잃은 꽃이다. 꽃이 있고 싶어 하는 자리 그 자리에 있도록 해주는것이 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다.
마음의 여유는 주변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사랑은 여유로운 마음의 다른 말이다. 숲으로 부터 받은 파란 편지속에 담긴 일상, 그 일상속에 우리 인생의 길이 담겨져 있다. 오랫만에 만난 도종환님의 산문집이었다. 자신이 집착하는것이 내 삶의 목표가 될수 있지만 고통의 원인도 거기에 있다. 황량한 사막도시를 걷는, 외로움을 품고있는 우리들에게 숲속에 핀 작은 꽃 향기를, 이름 모를 산새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마음의 여유로 외로움을 치유하고 인생에 작은 쉼표를 던져주며, 행복과 사랑을 열수 있는 길을 이 편지는 담고 있다. "청안하시지요?" 어디선가 그런 물음이 들려오는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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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좋은 아저씨가 손짓한다. 한가득 환한 웃음을 얼굴에 담고, 여기 이 푸르고 평안한 숲속으로 어서 오란다. 손짓에 이끌려 추운 겨울 바람 이기고 숲속에 당도하면, 따뜻한 초록빛 차를 갈 색 고운 컵에 담아 줄 것 같다. 도종환 시인의 요즘 인사말은 "청안하신지요?"라고 한다. 그만큼 속 숲에서의 생활이 푸르고 편안하다는 뜻이겠지.
팍팍하고 때로는 울퉁불퉁한 일상들. 1퍼센트의 행복에 99퍼센트의 불행이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 이 때 도종환 시인이 나에게 묻는다. "청안하신지요?" 고민 끝에 내가 대답해본다. "글쎄요. 열심히는 살고 있는데요. 어째 기분이 좀 그래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시인이 답한다. "청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궁금해 하며 내가 조심스레 물어본다. "어떻게 해야 청안할까요?" 눈을 고요히 빛내며 답하신다. "음.... 꽃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같아요." "저 꽃 좋아해요. 노란색 프리지아도 예쁘고요. 붉은 색 튤립도 좋아하는걸요."
우리들은 모두 꽃을 사랑한다. 그래서 남녀가 고백을 할 때도 한아름 꽃을 선물하고 축하해 줄 일이 있을 때도 꽃을 산다. 그리고 많은 시인들도 꽃을 단골 소재로 사용했다. 꽃은 그만큼 우리에게 인기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꽃은 다 어디 있는 걸까. 꽃을 제대로 사랑했던 것일까? p. 283 꽃이 필요로 하는 자리에 꽃을 존재하게 하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로 하는 자리에 꽃을 갖다놓고 사랑하는 동안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견디는 일입니다. 견디면서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책 『소유냐 존재냐』에서의 소유방식과 존재방식의 삶이, 도종환 시인의 책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꽃을 사랑하는 방식이 다분히 우리 위주라는 부분이 특히 와 닿는다. 꽃도 그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을 텐데 나의 틀에만 끼워 맞추려고 하지 않았는지. 머리로는 존재 방식을 외치면서, 몸으로는 소유 방식의 삶을 살지 않았는지. 여기서 꽃이 어디 꽃 뿐 이겠는가.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내가 원하는 그 위치, 내가 원하는 그 방식으로 짜 맞추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이 책은 이처럼 끊임없이 저자와 대화를 나누게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내가 나에게 말을 걸게 한다.
날씨 좋았던 여름날, 식물원에 갔었다. 고즈넉한 경치를 바라보면서 '사람은 이렇게 나무, 풀, 꽃 그리고 바람과 지내야해.'라는 생각을 품어봤었다. 그러면서 고요히 흘러가는 처마 밑 구름 한 조각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때 내가 느낀 바와 저자가 숲에서 살며 느낀 청안한 삶이, 거의 비슷한 색깔을 띠고 있지 않을까 한다. 저자가 숲에서 보았다는 초록색 나뭇잎, 햇살, 메뚜기, 앵두꽃, 저녁 노을들이 책 곳곳의 동양적인 그림과 함께 어우러져 손짓하고 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