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금작물이 '황금작물'로 오기있게 오기 되어 있다.
하긴 환금이나 황금이나 매한가지겠구나.
죽은 자의 음택을 살피는 일은 마음 자체가 고된 일이다. 눈에 잘 감기지 않는 소송문건과 사건경위서를 읽고 입에 붙지 않는 말들을 붙여보려고 애를 써 보기는 한다만 좀체 진척이 되지 않는다.
휴식 삼아, 죽은 시인의 사회에 이미 오래전 입적한 한 시인의 시를 읽는다.
살아남았더라면(그들은 늘 죽음을 사는 자들이니)이란 전제가 붙을 수 없는 요절 시인들의 시를 읽는 날들이다. 그중에 임홍재의 시는 신경림 시인이 편저한 '농민시선집(실천문학사, 1985년)'에 시 몇 편이 실려 있어서 그 전편의 시를 읽어 본다.
하곡수매의 풍경이 고스란하다.
*퉤기 - 아마 혼혈아를 일컫는 비속어 '트기'의 경기도식 방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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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의 노래 Ⅱ
내 유년의 어머니 무명의 옷고름 속
눈물 같은 청보리야
서러운 황토흙물이나 들이고 앉아
부러진 대창 같은 깔끄러운 수염만
키우고 있기냐.
죄 없이 죄를 지은 양
새하얀 쌀알에 밀려
시커면 맨살을 드러내고
그렇게 땡볕에서 타고 말 것이냐?
차디찬 서릿발 속에 너를 심고
주인은 가난해도 한 번쯤 풍요하라고
겨우내 보듬어 준 우직한 우리 애비,
애비를 저버리고
고작 주인의 시커먼 몰골이나 닮아
똥값으로 퉤기질만 당하기냐?
마차에 실려 실려
농협창고로 가는 골목에서
황소가 너의 가슴을 흔들어도
홈 파인 네 맥맥脈脈엔 인내의 힘살만 불거져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구나.
작석 더미를 바라보면
누렇게 뜬 우리 지번地番이 생각나고
등 굽은 황소가 생각난다.
서릿발 속에서 가꿔온 네 푸르름이
한껏 푸르를 때 보리피리 불면
역겨움 다 가시고 바람이 잘까 몰라.
황금작물에 밀려
기름진 땅은 다 뺏기고
토박한 땅구석에서 허위대는 청보리야.
주름진 주인의 얼굴빛이나 하고
죄 많은 새끼들이나 키워 갈 걱정이냐.
그러나 알리라 알리라.
황금이 식량이 되지 않는 먼 훗날에
보리를 가꾼 우직한 우리 애비의 뜻을
하나의 보리가 썩어 열매가 되는
청보리의 푸르른 뜻을.
-임홍재(1942-1979), 시집 <청보리의 노래>, 요절시인 시선집 시리즈2, 이승하·우대식 편, 새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