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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얘를 통해 걔를 만나고, 그를 통해 그녀를 보고,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를 듣고.
사실 이 책의 평가는 위의 한 줄로 충분히 갈음할 수 있다. 망구엘이 보르헤스에게 받은 영향력이야 가히 절대적인 것이기에 말이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망구엘이 본격적으로 고백하며 보르헤스를 회상하는 이 글이 썩 매력적이진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집어 들며 뭔가 둘 만의 사적인 공간이 손에 잡혔으면 했다. 하지만 자기 것으로 남겨 놓고 아직도 조금씩 그를 소화하고 있는 망구엘의 모습만 발견했다. 조금은 서운하기까지 하다. 구성은 여러모로 아쉽다. 특히 보르헤스의 연대기와 어록은 많이 불편하다. 망구엘이 그와 함께 보낸 시간들의 무게는 망구엘의 문장들 속에 남겨 두면 안되는 것인가. 억지춘향에 가까운 어록을 통해 보르헤스를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랄 정도이다. 책 제목 때문에 이것을 보르헤스 입문서로 선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차라리 역자의 말처럼 보르헤스 각주서에 가깝다.
하지만, 그래도 아주 꽝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야겠다. 위대한 작가의 삶을 가장 곁에서 나누었던 경험은 비록 단 한 줄로 서술할지언정 샘나는 일이다. 이를 통해 '내가 결코 될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되게 하기에 말이다. 특별히 비오이 카사레스와 오캄포 같은 문우들 과의 관계를 재생해 준 것은 이러저러해도 고마운 일이다.
언필칭 망구엘은 보르헤스를 통해 인생의 길을 닦았다. 스스로 자신의 태엽을 감아보면 어떤 한 눈부신 지점에서 보르헤스의 손길이 시작되는 부분이 있음을 이글을 통해 고백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보르헤스의 찬란한 어두움에 빚진 그 지점에 서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보르헤스와 함께(With Borg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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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매트릭스 1을 우연히 보다 깜짝 놀랐다.심오하게 철학적인 내용이란걸 깨달았기 때문이다.게다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보르헤스의 숨결이라니,뜻밖이었다.특히 네오가 가상의 공간을 걸어가는 장면에선 네오 대신 보르헤스가 걸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중년에 장님이 된 보르헤스는 그가 사랑하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를 누군가의 팔장을 끼고 그렇게 걸어 다녔다고 한다.그가 지각하던 공간 감각은 분명 우리완 달랐을 것이다.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 중심에 서서 무언가를 느끼고 상상했을 보르헤스,세상의 중심에 선 사람처럼 서서 그는 무언가를 알아내려 자신의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있었을 것이다.마치 네오처럼...가상 공간에서의 네오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르헤스,전혀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 그 둘은 생각보다 많이 닮아 있었다.그나저나 이 겸손하고 능글맞아 보이는 보르헤스란 작가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걸까? 그가 알고 있는 진실들에 소름이 끼친다.거기에 그가 깨달은 수많은 진실들 중 우리가 제대로 해석해 낸 것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진땀마저 흐른다.그에겐 내가 파악하는 이상의 뭔가가 있을거라는 어렴풋한 짐작이 점차 확신으로 변해간다.그를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하지만 이제 겨우 난 기껏 짐작만 할 수 있을 정도이니...그를 정확하게 알아 낼 수 없다는 사실이 현재로선 안타까울 뿐이다.
열여섯살의 알베르토는 장님이 된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지 않겠냐는 보르헤스의 부탁을 받고는 그의 집으로 간다.그로부터 4년 남짓 보르헤스를 방문하면서 알게된 이야기들을 과장없이 적고 있는 수필집이다.그 방문이 특권이란것을 깨닫지 못한 소년 알베르토는 하루 하루를 보르헤스와 별다르지 않게 보낸다.그와 대화를 나누고,책을 읽어주며,책과 생리적인 교감을 나누고 있는 듯한 보르헤스는 지켜 보면서.그때의 기억들을 통해 멩구스는 보르헤스가 어떻게 자신의 상상력과 생각을 소설속에 녹여 냈는가 들려 준다.그 덕분에 " 원형의 폐허들"이나 "바벨의 도서관","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그리고 "세익스피어의 기억","알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어 좋았다.하지만 무엇보다 보르헤스의 진면목과 에피소드들을 알게 된 것이 더 큰 수확이었다.인간적이고,말할 것도 없이 지성적이며,개구장이처럼 짖굳고,<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처럼 다정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보르헤스,그런 인간을 만나는 것이 맨날 일어나는 흔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수천년부터 시작 돼 한번도 끝이 난적이 없는 대화를 자신이 이어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인식했다는 천재,작가이기에 앞서 책이란 독자들에 의해 재탄생하는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열정적인 독자였던 보르헤스,그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추천한다.얇다.솔직히 이런 책은 더 두꺼워도 상관없는데...
<책속에서> 우주를 도서관이라고 부르고 낙원을 '도서관의 형태로'상상한다고 실토한 사람의 서재치고는 그 규묘가 실망스러웠는데,어떤 시에서도 말했듯이 언어란 단지 '지혜를 모사'할 수 있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책이 넘치는 공간,책으로 터져나갈 것 같은 책장,원고더미가 길을 막고 빈 틈새마다 빼곡한 잉크와 종이의 정글을 기대했다.그런데 정작 와서 보면 몇 귀퉁이에만 얌전하게 책이 꽃혀 있었다.50대년대 중반이었으니 아직 젊었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보르헤스를 찾아갔다가 집이 소박하다면서,거장께서 왜 좀더 품위있고 화려한 곳에 살지 않느냐고 물었다.보르헤스는 그 말에 심기가 몹시 상했다. "리마에서는 그러는지 모르겠군." 그는 생각이 짧은 페루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여기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허세 부리는걸 좋아하지 않는다네." p.28
보스헤스의 현실의 정수는 책 속에 있었다.책을 읽고,책을 쓰고,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그 알맹이었다.그는 수천 전에 시작돼서 한번도 끝난 적이 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인식했다.책은 과거를 복원했다....그는 유행을 쫓는 문학이론에 질색했고,책이 아니라 학파와 파벌에 몰두한다며 특히 프랑스 문학을 비판했다.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는 언젠가 문학계의 지인 가운데 "관습과 관행,또는 나태에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은 보르헤스뿐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독자야.책을 구입하는 것 같은 사적 영역에 의무감이 끼여들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젊은 작가에게--마누엘 무히카 라이네스 전진의 꿈을품는 것은 부질 없나니. 바다만큼 많은 글을 쓴다고 해도 이미 보르헤스가 썼을 테니까.
보르헤스의 보에노스아이레스는 세계의 형이상학적 중심이기도 했다.베아트리즈 비테르보네 지사실로 이어지는 열 아홉번째 계단에서는 온 우주가 수렴하는 점인 알렙이 보이고 칼레 멕시코 거리에 있는 국립도서관은바벨의 도서관이 된다. 보르헤스는 예민한 몽상가였고,꿈 얘기를 즐겨했다.꽉 움켜진 생각들이나 두려움을 놓아 버릴 수 있고,그렇게 자유롭게 풀어놓은 것들이 제 나름의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다고 느꼈다.특히 잠들기 전의 짧은 시간,'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의식할수 있는'잠과 깸 사이의 시간을 좋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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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부터 서서히 진행되다가 58세에 실명하게 된 보르헤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피그말리온' 영어/독일어 전문 서점에서 일했다. 보르헤스는 그 서점의 단골손님이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책 읽어주기를 부탁했고, 1964년부터 1968년까지 나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준 많은 행운아 가운데 한 명이었다.
유명한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그의 서재를 구경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었을까? 그의 서재는 소박했지만, 우연과 무질서의 법칙에 대한 믿음이 반영되어 있었고,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에게도 서재는 곧 자서전이었다. 그의 서재는 보르헤스의 문학적 경험들로 이루어진 시간. 이를테면 율동적인 리듬이 넘치는 영국 빅토리아와 에드워드 시대, 중세 초의 무기력, 1920년대, 193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 그가 사랑했던 제네바, 독일 표현주의 시대, 지긋지긋한 페론 정권, 마드리드와 마주르카에서 보낸 여름 그리고 미국 독자들로부터 처음으로 아낌없는 찬사를 들었던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의 몇 달 등등으로 구성된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만 해도 떨릴 것 같다. 망구엘의 고모는 보르헤스와의 만남을 매번 기록해 놓으라고 말했지만, 15살의 망구엘은 고모의 말을 듣지 않았고, 기록하지 않았다. 안타깝다. 소중함을 몰랐으리라. 보르헤스의 목소리를 통해 들으면 몰랐던 작가들에 대해서도 광채 속에 빛났다고 했다. 왜 안 그럴까? 나에게 지금 조정래 작가나 한 강 작가를 만날 기회를 준다면 난 부지런히 기록해 놓을 것 같다. 그는 기억에 의존해 이 책을 썼다.
보르헤스는 수줍음이 많아 어린 시절 도서관에 가서 사서에게 어떤 책을 주라는 걸 못했다. 그냥 조용히 브리태니커 사전만 읽었다. 그는 백과사전을 읽으며 드루이드 성직자와 드루즈파, 드라이든을 만난 걸 기뻐했다. 그는 백과사전의 질서정연한 우연에 운을 맡기는 이런 버릇을 끝끝내 버리지 않았기에 백과사전을 통해 상상력을 즐겼고, 뜻하지 않은 작가들을 알게 되고, 지식을 갖췄다.
보르헤스의 실명은 유전적 성격이 강하다. 할아버지도 그랬고, 아버지도 그랬다. 그는 실명했지만, 자신의 실명을 문학적 차원에서 많이 이야기했다. “책과 어둠”을 주신 ‘신의 아이러니’라는 말을 거론한 것은 유명했고, 호머나 밀턴 같은 역사 속의 장님 시인도 들먹였으며, 그의 눈에 남은 유일한 색인 노란 색을 좋아해 노란색 넥타이도 즐겼다. 또한, 그는 책 읽기를 여전히 했고, 뮤지컬을 즐겨 봤으며, 감각만으로 자신의 서재에서 책을 골라냈다. 외국 책방에서도 책의 겉을 어루만지거나 쓰다듬으며 직관으로 찾아내서 망구엘을 놀라게 했다. 그야말로 신의 경지다.
보르헤스의 또 다른 특징은 엄청난 기억력에 있었다. 기자가 보르헤스가 실명인 것을 알고, 놀려주려고 보르헤스의 작품을 외웠다고 잘난 척했다. 그때, 보르헤스는 틀린 부분을 지적해 주었다. 그는 그 엄청난 기억력으로 옛날 탱고의 노랫말과 오래 전에 죽은 시인들의 지독한 구절들, 대화의 조각들과 온갖 소설의 묘사와 수수께끼와 경구, 영어와 독일어와 스페인어도 모자라 포루투갈어와 이탈리아오로 쓴 장시들, 명언과 말장난과 우스갯소리, 베르길리우스의 구절을 줄줄이 외었다.
보르헤스는 서사시를 가장 좋아했고, 독일어를 사랑했다. 보르헤스는 대화를 즐겼고, 식사 중에도 대화에 방해가 될까 봐 튀는 음식은 피했다. 보르헤스를 평생 괴롭힌 악몽도 두 가지 있었다. 그것은 거울과 미로의 악몽이었다. 어렸을 때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조각한 황동 판에서 처음 접한 미로는 한복판에 괴물이 버티고 있는 ‘문 없는 집’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했다. 거울은 어느 날엔가 자신의 것이 아닌 얼굴을 비추거나, 그것도 모자라 아무 얼굴도 비추지 않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으로 공포를 자아냈다.
보지 못하는 공포보다 더 큰 공포가 있을까?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걸어보면 알 수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계. 처음부터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실명했다면 더 공포였겠지. 그러나 보르헤스는 누구보다 긍정적이었다. 그는 실명에도 굴하지 않고 뮤지컬 영화도 보러 다니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란색도 포기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책 읽는 것을 듣는 것으로 대체해 끊임없이 읽었다. 노벨상도 수차례 거절했지만,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 멋진 사람. 보르헤스가 썼다는 <바벨의 도서관>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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