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구원이 달려 있는 교리가 아닐까? 내가 어떻게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는가?
존 파이퍼 목사님은 이 책에서 현대의 신학자들이 공격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칭의교리를 전통적인 입장(종교개혁자의 입장, 더 나아가 교부들과 사도들의 입장)에서 성경주석을 통해서 옹호하고 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이 칭의교리 논쟁이 왜 중요한가를 밝히고, 현대의 도전(특히 건드리 교수의 입장-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가 된다는 입장)에 맞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로 전가된다는 전가교리를 옹호한다.
바른 교리는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와 기쁨을 준다.
만약 나의 믿음, 나의 연약한 믿음이 나를 의롭게 하는 의가 된다면 나의 구원은 미궁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의가 되기에 나는 오늘도 만족하며, 감사하며, 안심한다.
작은 책이며, 논쟁적인 책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기쁨을 주는 복음적인 책이다.
|
|
칭의 교리를 사수하라! 번역자가 붙여준 제목이겠지만 굉장히 전투적인 제목이다. 번역서에 이런 제목을 붙인 데는 원저자가 보여주는 치열한 장면이 내용 중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칭의>는 죄인에 대한 모든 율법적 요구가 만족된 것을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재판적 행위다. 이 선언은 죄인을 향하여 무죄를 선언하는 그야말로 법정적 선언일 뿐이다. 당연히 그가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의미도 아니고 지금까지 죄인이라고 규정되었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얘기도 아니다. 나는 이 선언을 “죄인이 지불해야하는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지불하심으로 얻어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선언 자체가 은혜이고, 이런 선언이 있게 하신 예수의 사역도 은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것을 값없이 얻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사회에 대해서도, 자연환경과 온 우주만물에 대해서도 은혜로운 자로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칭의의 개념이다. 그런데 존 파이퍼(John Piper)는 이런 사상이 도전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가 생각하는 그 도전에 대한 교리적인 응답이다.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도전”이 어떤 것인지 밝히기 위해서 “로버트 건드리”라고 하는 학자의 견해를 대표적으로 내세운다. 그것은 네 가지로 요약되는데 칭의에 있어서 믿음의 역할 문제, 칭의에 있어서 의의 전가 문제, 칭의와 성화와의 관계문제, 의의 전가 교리에 대한 성경적 지원문제 등이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 개혁파 교회의 부흥을 선도하고 있는 최고의 영향력 있는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현대적인 감각에 맞춘 열린 예배 분위기에서 자라난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자기들이 자라온 모판을 버리고 저자의 영향권 아래로 들어가고 있다. 존 파이퍼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과 열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가진 그런 열정과 교리적인 전제 가운데 쓴 것이다. 저자는 먼저 이런 도전이 생기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이어서 도전의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규명한다. 그리고 자신의 응전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을 성경적 증거자료를 사용하여 길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짧은 결론으로 정리하는데 그것은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됨으로 얻어지는 것이고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회가 역사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가르쳐온 진리이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똑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싸움처럼 보인다. 특히 저자가 상대하는 도전자들도 믿음을 말하고 칭의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기독교 안에서 그거면 다 되지 않나 싶은데도 존 파이퍼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믿음이 우리의 구원문제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언제든지 사람의 공로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는 것 같다. 인간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모든 공로는 하나님의 것이어야 하는데 건드리로 표현되는 도전자들의 견해는 사람의 공로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침해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역시 하나님에 대한 그의 충성심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은 아무래도 “의의 전가 문제”에 있다. 로마서가 제안하는 것처럼 우리의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되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과 같은 빙식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이라고 하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나는 이것을 생각할 때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 연합으로 신적인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저자가 걱정하는 것은 이 전가의 문제를 도전자들이 무시하고 폐기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책의 내용으로만 이야기한다면 나는 사실 그것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도전자의 대표인 건드리의 제안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파이퍼를 통해서 건드리의 생각을 전해 듣는 것뿐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과연 파이퍼가 건드리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가?”하는 의심이었다. 아무래도 파이퍼가 자기 전제를 가지고 자기 얘기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성화의 문제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파이퍼에게는 칭의 안에 성화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이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이야기를 굳이 이렇게 물고 늘어져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교리서에 보면 “구원의 서정(序程)”이라는 게 있다. “사람이 구원받는 순서 혹은 과정”이라는 뜻인데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견인, 영화 등이 그 순서다. 하지만 이것은 개혁파 교회가 정한 순서일 뿐이고 교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자기들만의 순서를 정해놓고 있다. 이상한 것은 이 사람들이 자기가 정한 순서가 맞다고 주장하면서 서로를 정죄하고 치열하게 싸운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순서가 있기는 있다. 로마서 8장30절이 그것인데 웃긴 사실 한 가지는 정작 성경에 나오는 것은 예정, 소명, 칭의, 영화 딱 네 가지만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 나머지는 어디서 왔을까? 당연히 기독교 역사를 살았던 사람들이 만들어서 사이사이에 끼워놓은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교리를 대할 때마다 항상 드는 씁쓸한 생각이 있다. “사람이 만든 그런 것을 가지고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심판하고 싸워도 되는 것인가?”하는 것이다. 칭의가 성화를 포함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싸우는 파이퍼의 열정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너무 많이 앞서간 충성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충성심 말고도 다른 것이 있을텐데... 나를 신학적으로 규정한다고 하면 나는 저자가 믿는 하나님의 칭의 신학의 라인에 서 있는 사람이다.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내가 따르는 신학적인 주장이 심각하게 도전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관심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도전이 내가 생각하는 도전 같은 것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교리를 사수하는 현대적인 명확한 논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저자는 자기의 주장을 설득 없이(물론 자기는 설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상대하는 건드리는 설득되지 않았다)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것 같기도 했다. 교리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나에게는 이 부분이 크게 아쉬운 부분이다. 답답하고 지루하기만한 일반적인 교리책을 또 한 번 보는 것 같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