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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분명 우리나라 역사의 한장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건만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은 극히 일부분 이었던것을 생각하며 얼마전 다녀온 박물관 수업에서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더불어 연결되어진다. 깨어진 기와장 한장을 정성스레 복원하여 전시할만큼 발해의 유물은 아주 미비합니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속에서 우리는 역사 또한 반만을 이해하며 살지않았나 아쉽기만한 대목이으로 그렇기에 우리가 접할수 있는 고구려와 발해의 유물과 역사는 극히 일부일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로 나의 부족한 발해역사를 무마했었지 싶어졌다.
이렇듯 우리의 역사를 잘알지못하면서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왜곡하려하는 중국학자들이 중국호족과 발해 유민들이 하나가 되어 재건한 발해의 역사를 그들의 나라라고 우기며 모든 유적지들에 대해 자신의 것인냥 떠벌리고 있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수 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우선하게된다.
평생동안 한국사를 연구해온 역사학자이신 이이화 선생님또한 그런 안타까운마음으로 발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듯하다. 쾌나 두꺼웠던 책속에 발해의 모든것을 담아내실려고 하신듯 발해개국과정부터 거란에 의해 멸망한 시간까지 역사 문화 외교 사상과 예술 풍속등과 왜 우리의 역사인지에 대한 고증까지 하나하나 짚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당 연합군에 위해 고구려가 멸망한시기는 668년이었다.그후 당의 측천무후가 안동도호부를 설치 고구려 유민들을 한없이 핍박한 시간속에서 거란과 말갈 고구려유민들은 그렇게 끊임없는 영토분쟁을 일으키게 되고 드디어 698년 대조영은 동모산기슭 지금의 중국땅 돈화시 서남쪽에 도읍을 정하고 `진국`이라는 나라 이름에서 713년 `발해국`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며 229년의 짤은역사가 시작 되고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발해의 역사는 10대 선왕시절 영역이 사방 5천리에 달했으며 5경12부62주로 나누어 영토를 다스릴만큼 번성했다. 또한 당당한 하나의 나라로서 당과 일본 신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외교정책을 펼치기도한다. 처음 개국당시 자신의 속국임을 강조하고자 했던 당의 노력들은 이토록 고구려 후손임을 내세워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는 행보들로 그들의 굴복을 받아내고있었다.
역사는 승리한자의 이야기라 하였던가. 229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역사상 아주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었던 발해는 그렇게 신라 귀족들의 경쟁의식에 밀린 앝은 사고로 인해 오랜시간 묻혀지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생활모습과 풍습 무덤양식등 많은 분야에서 고구려의 후손임을 알수 있었던 발해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유득공의 발해고에 담겨지게 되지만 이미 많은것을 읽은후였다. 지금이라도 더이상 우리의 역사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여야함을 발해의 아픈 역사속에서 찾을수 있었던 시간으로 황량한 요동벌판에 남겨진 발해의 흔적들을 찾아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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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발해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저 대조영이 세웠고 다른 부족도 함께 있었다는 정도? 기억으로는 발해에 대해서는 깊게 다루질 않았던 것 같다. 하긴 지금도 발해의 역사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보다 불확실한 것이 더 많으니 당연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상하게 발해 하면 해동성국이 절로 떠오른다. 그만큼 강하게 자리잡은 이미지인가 보다.
솔직히 말해서 말갈족이 어땠는지 거란족이 무엇을 했는지 무척 헷갈린다. 그래도 이 책을 보니 정리가 되는 듯하다. 물론 여기서도 확실한 자료가 없다보니 추정하거나 짐작하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그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관심을 갖지 않고 발굴하려 애쓰지 않은 그동안의 우리를 탓할 수밖에. 그래도 이이화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역사를 쉽게 접해주려고 애쓰는 분이 있으니 다행이다. 그 분의 책이라면 일단 무조건 신뢰가 간다. 아마 나만 그렇지는 않을 걸...
아이와 발해에 대해 알아보자고 한 후 설명을 하려고 보니 나도 정리가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은 읽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관계로(특히 숫자는 더욱더) 굵직굵직한 사건이라도 이야기를 해주려 했지만 역시나 힘들었다. 그래서 우선 요즘 왜 발해에 주목하는가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아이도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올 파장이라던가 현재 우리가 어떤 것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것은 전혀 모르는 그저 막연한 책 속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그렇게 깊이 있는 이야기보다는 발해의 역사연표를 만들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당시 주변국과의 상황은 어땠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아이가 책을 읽고 모든 것을 알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기에 책을 보며 정리해가기로 했다. 고구려가 멸망한 연도는 알겠는데 대조영이 발해를 세운 연도는 나도 몰랐었다. 발해가 멸망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도 있지만 우선 발해에 촛점을 맞췄다. 936년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적어 보았다. 마지막 왕은 시호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코디언 북처럼 접으려고 했는데 그만 간격이 맞지 않아서 약간 이상한 모양이 되자 꾸며서 뒤의 글씨보다 표지를 돋보이게 하겠다더니 열심히 꾸민다. 옆으로 세워 놓은 모습이다. 그 안에 더 많은 사건을 적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너무 자세하게 하면 오히려 더 헷갈릴 것 같아 중요한 사건 위주로 적었다. 어느 나라나 멸망하기 전에 보이는 징조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속시원히 발해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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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하면 학창 시절 국사시간에 배웠던 해동성국이라 불리었고,대조영이 세웠고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주축이었다는 정도가 떠오른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사를 다시한번 공부할 기회가 있어 도서관에서 발해 서적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대부분 전문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두꺼운 책들이라 읽기에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이번에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께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쓴 책이라 하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 책 역시 어린이들이 읽기에 그리 만만하거나 가볍지만은 않다. 우선 그 두께부터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 책은 아이들이 보기 좋게 글자체가 크고 중간중간 사진과 삽화가 있어 글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전체적으로 8부로 나누고 다시 그 하위 주제들로 나누어 한편한편 읽는데는 그리 부담스럽지도 않으며 부모님과 천천히 읽는다면 내용도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된다. 역사란 것이 급하게 서두른다고 또 일부분만 안다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닌만큼 시간을 두고 읽다보면 발해뿐만 아니라 발해의 주변 국가들, 그리고 발해에 영향을 끼친 나라들까지 관심의 폭을 넓히고 역사라는 큰 줄기를 만들어 갈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집 큰 아이 (현 초2)가 즐겨보던 드라마가 ‘대조영’이었는데 엄마가 이 책을 보고 있으니 자기도 보고 싶다는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각자 묵독을 해서 읽고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나면 서로 알게 된 부분이나 몰랐던 부분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읽었는데 상당히 흥미와 관심을 보였고 엄마와 함께 읽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특히 자신이 봤던 드라마에서 나왔던 이름들이 나오면 아주 반가워하며 아는 체를 했는데 , 이럴땐 역사드라마도 아이에겐 도움이 되는것 같았다. 아이의 말이 대조영의 이버지가 드라마에선 ‘대중상’이라고만 나오는데 책에는 ‘대걸걸중상’이라며 아마 걸걸만 빼고 간단하게 ‘대중상’이라고 부른것 같다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또한 우리 발해의 땅이 이렇게 넓었는지 몰랐다며 발해가 게속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넓었을까하며 아쉬워 하기도 했다. 드라마에선 발해가 세워진 것까지만 나와서인지 발해가 왜 멸망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찾아 읽었는데 역시나 한 나라의 멸망은 외부적인 문제보다는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해에서도 알수 있었다. 발해는 후기에 들어 당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해동성국이라 불릴만큼 우수한 문화의 발전을 이루었다. 발해 지배자들은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문제는 발해의 지배세력들이 풍족한 삶을 누리면서 점차 균형을 잃어버린채 문관을 높이고 무관을 낮추어 본데 있었다. 사치와 안일에 빠져 정치는 돌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다툼에 정신이 빠져 있으니 조정이 분열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발해는 야율아보기가 거느린 거란의 군대에 무너지고 말았으니 한나라를 세우기는 힘들어도 한나라가 없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라는 교훈을 우리는 여기에서도 배울 수 있다. 발해는 나라를 세운 뒤 망할때까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당의 조정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고구려처럼 자주적 면모를 잃지 않으려 했다. 고구려를 계승한만큼 생활방식이나 문화, 예술등 고구려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중에서 몇가지 독특한 점은 발해 사람들은 물고기 껍질로도 옷을 지어 입었다는 것,그리고 움집에 구들이 놓았다는 점, 활설 놀이 (오늘날 스키와 썰맹놔 비슷한 빙상경기)도 특이하다. 중국이나 다른 북방나라들과는 달리 오직 고구려와 발해만이 구들을 놓아 추위를 막았다고 한다. 발해의 생활문화는 북방민족과 농경 문화를 고루 받아들였고 선진문물을 수용하여 문화를 발전시키고, 모자라는 물자를 수입하여 생활을 꾸렸다. 이 책을 읽고 발해에 대해 제일 마음에 든 것은 발해가 여성상위의 사회였다는 점이다.발해는 일부일처의 제도가 있었고,결혼한 남편이 측실을 두거나 외도하는 것을 결코 용납지 않았다고 하니 지금으로 볼 때 여성의 권위가 꽤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조영이 동모산을 수도로 정하고 698년에 진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926년거란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228년의 발해라는 나라는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리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런 발해의 역사를 다른 민족이 말살하려는 의도에 따라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자료도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정말 안타까웠지만 이이화 선생님이 직접 예닐곱 차례나 발해 유적지를 돌아보고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하니 그분의 열정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느껴진다. 이 책을 통해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은 발해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슴 뿌듯하게 느꼈고, 좀 더 발해에 대해 활발한 연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다.
[아이와 홈스쿨링] 이 책을 읽고 아이와 어떻게 재미난 홈스쿨링을 할까 고민하다가 초2인 우리 아들은 역사와 게임을 접목 시키면 상당히 좋아한다는 점이 생각나서 직접 보드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보드 게임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지만 직접 만들고 게임도 하다보면 조금이라도 더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해서다.
게임 방법은 간단하다. 게임판에 세 나라 발해, 당, 신라의 세 나라 말판을 그리고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지시대로 하면 된다. 먼저 게임 할 사람이 어떤 나라를 할지 정해서 먼저 도착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주사위 하나는 당, 발해, 신라가 각각 쓰진 주사위이고 하나는 수가 나오는 주사위이다. 두 주사위를 동시에 던져서 나온 나라를 보고 그 수만큼 가면 된다. 하지만 이 게임의 재미는 뭐니뭐니 해도 상대편이 주사위를 어떻게 던졌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내 팀이 발해라고 해도 상대가 던진 주사위가 발해가 나오면 발해의 말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강중간 지시에 '발해하면 떠오르는 것 3가지 말하기'나 발해의 생활상 3가지 말하기'등이 있어 역사에 대해 조금의 관심을 유도 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게임판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렇게 열심히 하는 일도 드뭅니다. 글자도 예쁘게...) 아이가 만든 게임판 일부분 모습 (발해 말판은 제가 썼고요 나머지는 아이가 썼어요. 요즘 역사 만화책을 보더니 아는대로 썼네요.) 완성된 게임판
게임 규칙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아빠에게 보여줘서 함께 한다고 열심히 게임 규칙을 쓰네요.)
게임하기 위한 준비물 완성^^ 드디어 엄마랑 두 아이랑 각 한 나라씩 맡아서 게임을 했어요. 다섯번 했는데 모두 정민이가 이겨서 얼마나 좋아하던지....물론 정민이가 발해, 발해가 이겼다고 더 좋아합니다. 아빠오면 또 한다고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채민이는 져도 좋다고 웃네요. 자기가 직접 만든 게임이라 아주 애착을 가지고 좋아합니다. 어려운 역사 게임으로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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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했을까? 처음부터 책의 제목에서 해동성국이란 용어를 발견하면서 반갑기까지 했다. 왜그랬을까? 어쩌면 발해에 대한 무지함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었을 것이다.
역사에 대해 많이 모르는지라 딸아이가 가끔씩 역사에 대해 물으면 잠깐만을 외치며 열심히 찾아보곤 했다. 작년인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지도에서 발해를 본 아인 그저 궁금증을 떠나서 신기한지 자꾸 발해에 대해 물었다. "우와~~ 저 위까지 모두 우리나라였다고? 발해도 우리나라예요?" ...
엄마도 발해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는데 찾아서 읽어보고 알려주겠노라고 했지만, 그 뒤로 아이도 더 이상 묻질 않았고, 나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다행히도 이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아직 아이에게 읽어주거나 알려주진 않았지만, 열심히 읽는 엄마의 모습을 자못 진지하게 바라보는 딸아이 덕분에 엄마는 다시 역사공부를 한다.
발해라는 이름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 바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대조영이 발해군왕으로 책봉될 때 처음 사용하였으며, 중국 동북지방의 안쪽 바다를 부르던 이름이었다.
kbs역사프로에서 발해에 대한 자료로 일본에서 발견된 목간의 일부를 보여준적이 있었다. 나무에 희미하게 드러났던 글을 책에서 다시한번 보니 반갑기까지 하다. 더욱이 발해가 확실히 고구려의 뒤를 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해동성국이란 당나라와 주변 나라들이 발해를 부른 호칭으로 바다 동쪽의 거룩한 나라라는 뜻이다. 의미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인문이 발달하여 문화의 수준이 높았다는 점을 말하고, 또 하나는 특산물이 많이 생산되고, 다른 나라와 교역하여 재물이 많다는 의미이고, 마지막 하나는 많은 땅을 개척하여 확보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즉 해동성국은 발해를 아름답게 높혀 부른 호칭이었다. [발췌; 해동성국 발해 95~96쪽]
우선 발해의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아이에게도 조금씩 발해는 어떤 나라였으며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를 알려줘야겠다.
다음은 딸과 함께 홈스쿨링한 내용입니다. 책을 미리 엄마가 읽어보고 어떻게 아이와 활동할 것인지 고민을 했지요. 그동안 부실한 탓에 아파서 움직이질 못했는데 어제 몸을 추수리고 중앙박물관을 찾았지요.
고고관을 들러 훑어보듯 선사시대와 삼국시대 등을 둘러보고 드디어 발해관에 도착했습니다.
가방에서 [해동성국 발해] 책을 꺼내어 책을 펼쳐보이며 같은 내용을 찾은 아이는 딱 초등2년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발해의 넓은 영토확장에 뿌듯함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아이를 보고 저도 흐뭇했습니다.
돌아와서 오늘 엄마표 독후활동+나들이 활동을 했지요.
먼저 중앙박물관 발해관입니다.
책에서 봤던 유물을 보고 반가워하던 현지. 활동지에 이 사진을 넣어서 완성했습니다.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현지. 실은 거의 대부분의 활동은 책을 찾아가면서 답을 썼지요. 그래도 엄마는 만족합니다.
땅을 파고 기둥을 세우고 짚(?)을 엮은 움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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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중국땅이 된 만주벌판. 이땅이 고구려에 이어 발해까지 우리민족의 생활터전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구려만큼 발해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못하는것 같습니다. 늦게나마 이이화선생님의 발해를 읽으면서 발해가 다양한 나라와 접촉하였기때문에 문화도 다댱하게 표현된것과. 정혜공주의 무덤. 기와문양. 온돌장치들은 고구려의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점에 놀라웠습니다. 다만 복장은 당나라 문화를 받아들여 당나라식으로 바뀌었지만, 전반적인 발해의 문화는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한것이 유물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보였습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라는 생각을 가지고, 옛고구려에 견줄만큼 영토를 넓히고, 나라의 힘을 강하게 길러 당나라에서 동쪽의 큰나라라고 불리울만큼 세력이 대단했습니다. 요즘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비겁한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 학자들에게 유물도 잘 보여주지 않고, 우리의 유물또한 관리를 소홀하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텔레비젼 드라마의 영향으로 아이들도 발해에 대한 호기심이 늘어난 요즈음, 우리의 발해역사를 제대로 알려줄수 있는 이이화선생님의 발해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잃어버린 만주벌판을 다시 찾을날이 올수 있도록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것들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처럼 아들녀석과 발해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텔레비전도 없는데도 인터넷으로 대조영을 볼 정도로 좋아해서인지 잘 따라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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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우리 민족에게만 존재한다]
언어세상의 주춧돌 시리즈를 즐겨보고 있던 터에 마침 아직 읽지 못한 발해 부분을 접하게 되어 무척 기대가 컸다. 역사...역사는 그렇다. 모든 것이 승자와 강자에 의해 기술되기 때문에 편중되는 무언의 압력과 사라진 기록에 대한 아쉬움이 함께 한다. 삼국의 통일을 내세우는 신라에 의해서 기록되어지는 우리의 역사는 고구려나 백제에 대한 기록도 많은 부분 훼손되거나 손상됨이 적지 않고 발해에 대한 부분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 백제를 말하던 한 학자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백제라는 거인의 아주 일부일 뿐이라고 했는데.. 긴 역사는 아니지만 광활한 영토를 누비던 발해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인의 옷자락 정도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이화라는 지명도 높은 역사학자를 따라서 발해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역사이기는 한데 우리에게는 없는 역사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의 역사에서 발해에 대한 기록을 찾으면서 신라는 아니더라도 고려에서는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고구려 유민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가 바로 발해였고 고려 역시 고구려를 이어받는 정통성을 말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려 어디에도 고구려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어떤가? 조선에서도 전기가 아닌 후기 북학자 유득공이 지은 [발해고]에서 발해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그의 발해고 전문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북쪽의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함과 무관심에 대해 꾸짖으며 발해가 공존한 남북극시대를 논한다.
우리가 배웠던 국사시간의 역사에는 통일신라시대라는 명칭이 훨씬 더 많이 쓰였다. 통일 신라로만 우리 역사를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고구려 유민이 주축이 되었으나 많은 말갈족을 거느렸던 발해사까지 함께 보는 남북극시대로 역사를 논할 것인지는 좀더 적극성을 띄고 역사 교육에 거론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 나라에는 자료가 너무도 빈약해-실은 전무해서 중국의 사서에 나온 기록에 의존해서 더듬어 가는 발해사는 더듬어지는 자취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역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의지가 있었으면 언제든 날아가서 발해의 영토였음직한 산성이나 무덤, 궁궐터를 연구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해 발해사는 이미 중국변방의 한 역사로 귀속되어가고 심지어 우리 고구려사도 그렇게 변질되어간다. 한국인의 역사탐방을 반가워하지 않는 중국측에 의해서 이제는 중국에 있는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은 손대기 어려워져서 정말 안타깝다..
책을 읽으면서 발해의 생성과 성장 ,그리고 붕괴까지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현실에서 우리가 고민해야하는 역사적 입장에서 생각이 자꾸 머물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된 발해 3대 문왕의 두 딸 정혜공주와 정효공주의 무덤에 관심이 갔다. 두 공주의 무덤은 정확한 묘비석을 통해서 발해의 문화와 역사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자료라고 한다. 문왕의 둘째 딸인 정혜공주의 무덤은 고구려 후기의 돌방무덤 형식을 따랐고 넷째인 정효공주는 세월이 흘러 중국당의 무덤양식을 많이 수용해서 고구려와 중국의 혼합된 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특히 무덤 양식과 벽화를 비롯해 많은 자료를 남긴 정효공주의 무덤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어 많은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였다.
한 권의 책이 시발점이 되어서 잊혀졌던 혹은 잊고 지냈던 우리 역사의 한 자락을 다시 더듬어 볼 수 있었기에 정말 만족스러웠다. 앎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아이들이 지속해서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고 내것으로 할 때, 그 때 함부로 남의 역사를 왜곡시킬 수 없는 내공이 쌓이게 되리라 생각한다. 알아가자..그리고 지켜가자..그것이 발해사를 보면서 지속적으로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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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한 홈스쿨링을 위해 우선 발해에 대한 유적지를 담은 자료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두루 수집해 보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중국여행을 통해서 개인들이 남긴 자료나 학자의 자료들을 조금씩 얻을 수 있었다. 조사하면서 느낀 점은 발해나 고구려 등 우리나라 북방의 역사에 대해서는 우리보다는 북한에서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수용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발해를 인식하면서 남북극시대를 말하기 시작한 1980년대보다 훨씬 전에 북에서는 통일신라시대가 아닌 남북극시대를 사용했으니 말이다.
표지에는 발해 전성기의 지도와 조선후기 발해에 대해서 언급했던 북학자 유득공의 [발해고]의 일부를 담아 고구려를 이어받은 우리역사의 한 부분으로 발해를 논하는 부분을 실어보았다.
발해 3대 문왕의 둘째 정혜공주와 넷째 정효공주의 무덤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두 무덤이 발해사 연구에 큰 의미를 갖는 것은 기록이 남아있는 묘지석 덕분이다. 기록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남겨진 유산으로 역사를 추적하는데는 상당한 영향력을 주기 때문이다.
정효공주의 무덤은 대부분 발해 무덤에서 보여주는 고구려 후기의 돌방무덤 형태가 아니라 당의 영향도 함께 받은 무덤 형태였다. 두 공주가 약 20년의 시간차를 보이는데 그 동안 발해 역시 중국의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공주의 무덤에는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벽화가 발견되었는데 당시 발해의 문화를 추론하는 소중한 자료가 된다. 벽화 속의 12사람인 과연 남자인가?여자인가?에 대한 논란도 흥미롭다. 남장을 한 여장이라는 설이 강한 편이라고 한다.
발해 무덤의 독특함은 무덤 위에 있는 탑에서도 찾을 수 있다. 탑이라고 하면 절에만 세우는 것으로 아는데 발해에서는 무덤 위에도 이런 탑을 세웠다고 한다.
무덤 외에 발해가 진나라고 세워진 최초의 건국장소인 동모산, 정혜공주의 무덤이 나온 육정산, 이외에 다른 산성들을 담은 자료를 모아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발해사를 바라보는 주변국가들의 시선이다. 남북한과 일본, 러시아, 중국은 과연 발해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곳은 발해의 민족은 말갈로 본다. 우리나라만 고구려 후예 혹은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은 말갈이라고 본다.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나라 뿐이라니... 국가체제를 보면 우리나라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고구려 문화외에 당의 문화도 받아들인 것으로 보나 중국은 당나라 관할지방으로 당문화를 띤다고 보고 러시아는 당나라 문화와 주변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일본은 한 술 더 떠서 말갈이 건국하고 일본에 조공을 바친 나라라고 한다. 물론 최근에는 바뀌었지만 말이다.
약하다..고개를 돌린다..싶으면 어느새 역사는 우리 것이 아닌 남의 것이 되고 조작되고 변질된다. 우리는 그동안 국사 교과서와 일본의 국정교과서 등을 통해서 경험한 바있다. 다시 또 한번 우리 후손들에게 변질된 역사를 안겨줄 것인가 말것인가는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으로 남게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설픈 자료모음이지만 하나 만들어서 아이의 거실의 한 구석에 놓고 오며가며 아이와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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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나에게 단한가지 내가 소망하는게 있어
갈려진 땅의 친구들은 언제쯤 볼수가 있을까~(생략).....
90년대인가? 철원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도 나왔던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가 생각났다. 참 이상도 하지^^;;
이 노래를 들을적마다 난 "맞다,우리 민족은 참 서로를 외면하고, 나눠진채
많은걸 잃어버리고,참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노랫말 가사에도 나오는것처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보여줘야 모습이 실려있는데도 말이다..
역사가 그런것 같다..
우리가 모른척 외면 하고 살면 언제 어디서 이웃나라가 나꿔채도 할말이 없음을..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당당하게 지켜오고 지내왔던 생활의 터전 만주벌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키려 하지않으니 지금 중국은 발해는 물론 고구려까지 그들의 역사에 순 날로 집어넣으려 하고있다.
중국역사책에는 대걸걸 중상과 대조영이 고구려의 별종 또는 고구려 장수였다고 기록되어 있거나 또는 말갈족의 하나인 속말부붙이로 표기 되어있다고 한다.
이들 부자가 속말부붙이로 고구려 장수엿다면 분명 고구려 유민일터 그런데도 오늘날 중국인들은 이들을 말갈붙이로만 부를뿐 고구려붙이거나 고구려 유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단일민족이 아니라는점을 걸고 넘어진다는 것이다 고구려 유민을 중심으로 말갈족과 거란족으로 이뤄진 발해이지만 당당히 고구려 정통을 계승했지 아니한가.
이는 정말 책에서 언급한데로 다분히 고구려의 흔적을 지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사실 그옛날 발해와 신라가 서로 친하게 지내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면 지금처럼 네역사 내역사 따질필요도 없을텐데...
해동성국 발해 이 책 한권으로 발해역사를 제대로 알아볼수가 있었다.
이이화 선생님의 말씀대로 발해가 왜 우리의 역사인지, 발해가 어떻게 우리역사에 계승되어 왔는지 한걸음 더 발해를 가까이 할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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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선생님의 이야기 한국사의 심도 있는 내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언제부턴가 발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드라마도 나오고 관련 서적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데 과연 역사학자가 바라보는 발해에 대한 입장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발해는 하나의 나라이기에 앞서 고구려의 전통을 기초로 중국과 말갈족의 좋은 점을 받아 들여 하나의 조화를 이루려 했던 나라였다. 부자인 대걸걸중상과 대조영은 고구려의 유민, 또는 말갈족의 추장이라 보는 견해도 있지만 고구려의 유민으로서 고구려를 충실하게 계승하려 했던 대조영이 세운 나라라는 초점에 맞추고 접근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조영이 나라를 세우게 된 이유는 조국을 잃은 후 갖은 핍박을 받으며 고구려를 E시 일으키자는 바람이 왕성해지고 고구려 유민들이 당나라에 대응해 고구려 부흥 운동을 벌이는 현실을 바라보며 동모산에 수도를 정해 진국이라는 새 나라를 세운다. 후에 당나라 현종에 의해 발해군왕이라는 책봉을 받게 되고 발해국왕으로 격상된다. 발해가 고구려의 정통을 계승한 역사 기록이 일본사에도 나오지만 정작 신라의 기록이나 우리에게 제대로 된 역사 기록이 없기에 중국이 지금까지도 자기의 속국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정말 분개되는 노릇이다. 태조 대조영의 사후 무왕은 발해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고 발해의 명성과 위엄을 크게 떨친다. 문왕에 이르러 상경성이 수도가 되며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고구려를 계승한 자주 국가로서의 면모를 분명히 함과 발해의 문화를 부흥시키며 자신을 황상, 대왕이라 호칭하는 천손의식을 내세우며 중국과의 대등함을 보여주고 있다. 성왕에 이르러 해동성국이라 불리는데 그만큼 문화의 수준이 높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후기에 들어서면서 발해는 고구려의 빛나는 희생정신이었던 상무정신이 없어지며 무관을 얕보고 조정이 분열되면서 거란에 의해 멸망당한다. 후에 다시 후발해와 정안국, 흥료국등이 부흥운동을 벌였으나 실패하며 역사의 미아가 되어 버린다. 발해는 건국부터 멸망하는 시점까지 고구려처럼 자주적인 면모를 잃지 않았다.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는 발해를 형제나라로 인식하여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고 북방의 고구려와 발해의 정통성은 고려로 이어지게 된다. 발해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문왕의 딸이었던 정효 공주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발해에 대한 귀중한 역사자료가 되는데 조선의 유득공에 의해 쓰인 발해고를 통해 발해를 독립적으로 바라보며 우리의 역사로 인식하려 하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홍라녀 전설을 통해 당시 발해 여성이 적극적이었고 사회적 지위가 높았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발해는 엄연히 존재했던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고유한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며 문화적으로도 우수하였던 발해가 역사의 미아가 더 이상 되질 않길 바란다. 이 책을 통해 발해에 대한 더 많은 이해를 돕고 우리의 과거 속 가장 광대했던 영토를 지녔던 발해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다시 일어나게 될 날이 올 것 이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피지기라 생각한다. 중국이 발해를 말갈의 나라라 주장하고 자기 나라의 속국이었음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언지 그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이 책이 도와 줄 것이다. 다시금 발해의 용맹과 기상을 느낄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기를 고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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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는 것 처럼, 우리의 주변에서 발해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실, 아니 알려져 있는 사실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까닭인지 몰라도 발해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실이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말갈족이 발해를 세울때 구성원으로 참여한 까닭에 발해의 역사를 논할때 우리나라 역사인지 남의 나라 역사인지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광개토대왕 이야기는 많이 들을 수 있었지만 발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 지지 못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모르는 사실이 너무나 많았다.고구려 유민을 데리고 대조영이 발해를 세웠으며, 동쪽의 예의바른 나라라 하여 해동성국이라 불렀다는 정도로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우리 역사는 아는 만큼 우리가 지켜낼 수 있다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발해의 내용을 대강 알아보면,고구려가 망하고 나자 당나라는 10만 여명의 고구려 유민을 만리장성 가까운 영주땅으로 옮겨 살게 하였고,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동모산을 중심으로 하여 대조영이 698년에 `진국`이라는 나라 이름에서 713년 `발해국`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며 229년의 역사가 시작 된다.
대조영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정복활동을 세차게 벌여 나라의 기초를 다져간다. 2대 무왕을 거쳐 3대 문왕 시기에는 나라 안의 살림살이를 다지고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며,제 10대 선왕시기에는 일본과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외국의 문물을 받아 들이려 노력을 많이 했으며 바로 이 시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해동성국`이라고 불리워 지게 된다.
발해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면 무쇠 농기구를 널리 사용하여 농사를 지었으며, 소와 돼지 등을 가축으로 많이 길렀고,생산되는 가죽은 겉옷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5경 15부 62주의 지방제도와 중앙기구는 3성 6부를 두었으며, 군사는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불의 신을 가장 숭배하였으며, 마구, 축국, 투호, 바둑, 장기등의 문화 생활과 샤머니즘을 토대로 한 민중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발해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이 별로 없어 더 많은 내용을 소개하고 싶지만, 너무 많은 사실을 적게 될 것 같아 여기서 줄이고자 한다.천천히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노구를 이끌고 추위에 떨며 상경성의 궁터, 동경성이 있던 두만강 가도 거닐며 발해의 역사 흔적을 찾아 헤매셨던 선생님을 생각하며,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먼저 잘 알고 지켜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보충을 다녀와서 틈틈이 정리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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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하면 학창시절 그저 안타까운 역사의 한 부분으로만 배웠던 기억부터 떠오른다. 광활한 중국대륙으로의 뻗어감에 무한하리라 믿었던 고구려의 기상이 맥없이 무너진 후 그 드높았던 기상을 다시금 일으키고자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동모산을 향하여 갔다던 대조영은 마침내 발해라는 나라를 일으켜 다시 한 번 우리 역사의 번영을 꿈꾸게 하였다고.
그러나, 그 역시도 오래가지 못하고 당의 주변국이었던 거란에 의해 허망히 무너져 우리의 광활한 대륙으로의 도전은 그렇게 막혀버렸노라고만 알고 있던 발해를 평생을 한국사 연구에 힘쓴 이이화 선생님을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일흔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뙤약볕과 살을 에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 발해 유적지를 돌아보고 집필했다는 이이화 선생님의 '해동성국 발해'이야기는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여제 측천무후의 지시를 받고 달려온 거란족의 장수 이해고를 천문령에서 대파하고 동모산에서 진국을 세운 대조영. 그렇게 발해는 고구려의 명맥을 이어받은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5대 애왕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 동안 발해는 당시 장안 다음으로 동북 지대 최대의 수도인 상경의 모습으로 그 번성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주변국인 거란과 일본 및 당과 신라와 당당한 고구려의 후예로서 외교와 교역을 발휘한다.
여태껏 부분적으로나마 알고 있던 발해의 당시 정치적 상황이나 주변국들과의 관계에 더하여 발해인들의 생활상과 그들만의 독특한 사상과 돋보엿던 문화 예술까지 알게 되어 더욱더 발해가 우리의 중요한 역사임을 실감하였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당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당이나 신라때문에, 그리고 생각이 짧았던(?) 고려의 한 학자때문에 잃어버렸던 발해의 역사를 조선 후기에야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21세기 동북아공정을 주장하는 중국에 의해 다시금 발해의 역사를 빼앗기게 될 처지에 놓인 우리는 결코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다시는 빼앗기지 않도록 힘써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발해인들의 생활상과 문화는 다시금 발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발해를 결코 잊지말아야 하는 그 이유가 바로 이 책안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