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보면 보잘 것 없을 것 같은 선도. 사실 그런 걸 하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었다. 별 대단한 위치 같지도 않았고.. 그러나 교내 생활지도를 나갈 때면 으레 완장 하나 쯤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생각하는 나를 보며, 때때로 놀라고 우습기도 하다. 누구나 완장을 차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모양이다. 또 대단찮은 권위를 세운답시고, 완장 하나쯤 차고 싶어하는 게 사람의 심리인가보다. 어쩌면 주인공 임종술 처럼 지난 날의 한을 풀기 위해 완장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이책은 요즘처럼 저마다의 완장을 얻기 위해 서로 헐뜯고 싸우는 현대인들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외침인 듯 보인다. 구수한 사투리와 엉뚱한 에피소드로 읽는 이에게 풋풋한 웃음을 주지만, 그 속에는 결코 웃을 수 만은 없는 현실이 숨어 있다. 웃음으로 즐기면서 이 사회의 문제점을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는 소설, 완장. 완장에 몰두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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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각자가 아주 나약한 존재들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알기에 그 나약함을 감추어줄 무언가가 필요한것이 현실이다. 현재의 나는 혹은, 우리는 어떤 비밀의 완장을 어께에 두르고 감추고 지내고 있는가?
완장은 소설속 주인공의 내면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사실적 내면을 대변하고있다. 저수지 감시원이라는 뜻하지 않은 감투를 쓴 종술의 모습에서 나또한 내모습을 보았고 또 그 어떤 사람의 모습또한 나타나게 만든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나약한 종술이었으나 감투하나 쓴 순간 근방에서는 제일의 건방을 떨수있고, 그로인해 한번의 설핏한 눈길로 사람들을 다루는 법을 알아버린다.
이소설의 시대와 배경은 지나간 과거속의 시간이고 또한 과거의 인물들이었으나, 종술은 마치 현대의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처럼 내 옆에서 미친듯이 춤을 춘다. 혹은 내가 종술이가 되어 춤추고 있는지,내팔엔 어떤 비닐완장이 채워져있는지 한번 매만져보게 된다.
현대사회, 과거였지만 다시 살아나 춤추고 다니는 종술이는 나약한 인간의 단면이며 지금 우리들을 옭아매고 있는 어떤이의 완장과 매우 닮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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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 장편소설 완장.
1980년대 언제던가.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송된 것이 기억난다. 탤런트 조형기가 주인공인 임종술 역을 맡지 않았었나 하는 기억이 있는데....
최근에 책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에서 제목을 발견하고 책을 잡았다.
주인공 임종술은 놀고먹는 날건달로 조그만 마을 위 저수지의 감시원으로 푼돈 5만원에 '취직'을 한다. 그에겐 월급보다 팔에 채워주는 완장이 더 마음에 든다. 저수지를 순찰하며 '공유수면관리법'을 들먹이며 낚시꾼들을 내쫓는 것이 자신의 임무이다.
서울 생활 동안 숱한 '완장'들에게 쫓겨본 그로서는 완장이라는 것이 높디높은 '권력'이다. 그 권력을 제 멋대로 휘두르며 활개를 치다 술집 작부인 부월을 만나 자신의 권력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진짜 높은 완장들은 실제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왼팔에 '번쩍이는' 비닐완장은 가장 낮은 권력일 뿐이며, 높은 권력의 완장은 보이지 않는다는.
8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살짝 비틀어 보여주는 재미가 있다.
중학 2학년 필독 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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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볼 때마다 우리를 숨막히게 하는 그것, 권력. 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책임감은 무시한 채, 그것으로 온갖 행패를 부리다 결국엔 점퍼를 얼굴까지 뒤집어 쓰고 비참한 기자들의 사진 세례를 받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 '권력이란 것이 얼마나 달콤하고, 또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일까'에 대해 작가 윤흥길은 '임종술'을 내세워 그것을 아주 웃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도 웃기다. 권력이 주어지는 것에 대한 자격은 없다. 권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그 권력이 주어진 사람은 사실상 별 거 아니다. 완장을 차고 행패를 부리는 주인공 '임종술'은 누구인가?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어머니 고생만 시키고, 힘 좀 쓴다고 날뛰는 양아치로 동네에서 욕은 바가지로 얻어 먹는 사람이다. 바로 그것이 완장을 내려 주는 진짜 권력들이 원하는 인간이다. 무식하게 다른 사람들과는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그 완장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진짜 권력들이 이용해 먹기가 편하다. 여기서 작가는 완장의 주인공을 아주 하찮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완장을 우습게 만드는 초기작업을 시작한다.
권력이 하는 것이라곤 '권력을 내보이고 유지하는 일'이다. 완장의 주인공 '임종술'이 처음에 하는 짓이란 게 뭔가? 바로 완장을 있어 보이게 새로 맞추는 일이다. 윤기 나는 새빨간 완장을 그의 팔뚝에 찬 채 그는 동네를 휘젓고 다닌다. 버스를 돈 안내고 타는 일, 술집 작부 부월이에게 생색내는 일을 하는 데 종술이는 완장을 사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맡은 일인 저수지 관리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저수지를 자신의 목숨인 마냥 지킨다. 왜냐하면 그 저수지가 있어야만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완장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완장 지키기'는 자신의 옛 친구도 흠씬 때려 줄 만큼 무섭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더욱 더 멀리 하기 시작한다. 권력은 결국 망한다. '임종술'의 결말은 어떠한가? 가뭄으로 인해 저수지는 말라 버리고 '임종술'은 필요하지 않게 된다. 순순히 물러날 종술이가 아니었으며 종술은 온갖 횡포를 부리다 결국엔 쫓기는 신세가 되어 도망을 간다. 저수지로 떠내려 오는 종술이의 시뻘건 완장. 그것은 권력의 종말을 의미했으며 권력이란 결국 '부질없는 것'이라는 인상을 남겨 주었다.
그런데 진짜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종술이를 저 지경까지 만든 그 권력인 최사장은 종술이를 이용해 먹을 대로 이용해 먹다가, 자신에게 밉보이고 필요없는 존재가 되자 가차없이 해고한다. 그는 그 뒤에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진짜 권력은 그 뒤에 숨어 있다. 그 진짜 권력의 콩코물인 '하빠리' 권력은 자신을 망쳐가면서 그 권력을 지키려고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언제나 권력을 갈망한다. 권력은 수많은 아랫사람들을 거느리게 하고, 날아가는 새라도 떨어뜨릴 듯한 기세를 가져다 준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하찮고 별볼 일 없는 것인가? 가족도 잃게 하고 친구도 잃게 하는 그것은 정작 필요한 것은 버리게 하고 필요없는 것만 잔뜩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닌가? 그 부질 없는 것을 우리가 얼마나 갈망하는가? 작가는 권력을 비판하는 한편, 그 권력을 갈망하는 우리에게도 일격을 가한다. 우리가 다분히도 해학적인 종술이를 보고 웃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보고 웃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머리 아프고 가슴 아프지 않다. 왜냐하면 종술이(우리)는 끝나지 않았고 '희망이 남아있는 어딘가'로 부월이와 함께 떠났기 때문이다. 권력이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 곳, 자신이 권력에 지배되지 않는 곳. 작가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 곳으로 가자, 그 곳을 만들자'라고. [인상깊은구절] "남보담 잘났다는 표적으로 차고 댕기는 것이 완장이란 말이냐?" "뭐 잘났을 것까지야 있을꼬마는‥‥‥그런다고 못났을 것도 없겄지요." "아니다. 모자란다는 뜻이다. 모자란 만침 아직도 더 채울 것이 있는 사람이란 표시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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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구수한 저자의 입담이었다. 풍부하게 사용된 전라도 사투리, 그리고 상황을 적절하고 다양하게 형용하는 저자의 글솜씨는 참으로 이 책의 가치를 높여줄 만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종술이 그렇게 완장에 집착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종술에게 완장은 권력 그 자체이다. 완장을 찬 일본 앞잡이 때문에 불구가 되었고, 이를 복수하려는 듯, 6·25때 인민군의 선두에 서서 완장을 차고 자신을 불구로 만든 사람을 마구 때려 숨지게 했고, 전쟁이 끝난 후 도망치다 죽임을 당한 아버지, 그리고 불법 매매를 하다 완장을 찬 단속범에게 잡혀 교도소를 들락거려야 했던 자신의 과거 속 그 완장…….그래서 종술은 저수지를 지키는 감시원의 완장, 그 별것도 아닌 완장을 대단한 위력을 가진 듯이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저수지 물문을 연다는 소문에 길길이 날뛰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완장의 이면에 있는 권력의 속성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 완장의 이면에 있는 권력의 의미는 부월이 한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완장은 그 이면에 있는 최대의 권력자가 고용한 하수인의 증표일 뿐이다. 따라서 완장을 찼다고 해서 그가 곧 권력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종술은 이런 권력의 속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완장을 차고 으스대던 종술을 비판의 눈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힘없는 백성에 불과한 종술이 완장에 집착하는 모습은 거꾸로 평범한 서민들이 얼마나 권력자들의 권력에 농락당하고 살아왔는지를 반증해 주는 것일 것이다. 서민들이 권력자들에게 패배당하고 살지 않았다면 종술이 그렇게까지 완장의 위력에 집착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다소 아쉬운 것은 풍부한 어휘와 묘사에도 불구하고, 적절하지 않은 상황 설정 등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는 것이다. 부월이 술집 작부로 전전하게 된 동기를 여고 시절 교사에 대한 짝사랑이었다고 하거나, 부월이와 한나절을 같이 보내고 온 손녀에게 운암댁이 배신감을 느끼고, 마음으로부터 손녀와의 결별을 선택한다는 것은 적절한 상황 설정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구구절절이 너무 상황 묘사를 치밀하게 하려 노력한 흔적들이 오히려 소설의 질을 떨어뜨린 감이 없지 않다. [인상깊은구절] "나도 알어!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볼일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자기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꼴봤어? 완장 차고 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 없이 넘들이 흘린 뿌시레기나 줏어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 게여! 진수 성찬은 말짱 다 뒷전에 숨어서 눈에 뵈지도 않는 완장들 차지란 말여! 우리 둘이서 힘만 합친다면 자기는 앞으로 진짜배기 완장도 찰 수가 있단 말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