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당히 오랜만에 읽는 9S 시리즈의 최신권으로 하야마 토오루씨의 건강문제로 전권과의 텀이 길었던 만큼 걱정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으나, 그런 염려를 떨쳐버리듯 예전과 같이 긴박감이 넘치는 스피디한 전개로 9S 다운 매력을 더욱 뽐내준 8권이었습니다. 1. 여전히 영화 뺨치는 기발한 장면전환 9S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방불케하는 기발한 장면전환입니다. 천국의 문 편 이후 자리를 잡기 시작한 9S 특유의 장면전환 기법은, 더욱 스케일이 큰 이야기인 ADEM 편을 거쳐 해성편에 이르면서 완성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은 효율적인 장면전환을 필요로 합니다.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 캐릭터, 저 캐릭터 구분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다간 쓰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머리가 어지러울 뿐이죠. 사실 그렇기 때문에 비틀어진 '현실'을 주무대로 하는 대부분의 라이트노벨에서는 비교적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더라도 주인공의 시점을 중심으로 서술해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판타지나 SF처럼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다수의 캐릭터가 등장하게 되기 때문에,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위한 장면의 전환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됩니다. 델피니아 전기, 로도스도 전기 등 대표적인 판타지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연대기 형식을 통해 자연스러운 장면전환을 이루고 있으며, 그 외의 모험계열 판타지물은 1인칭에 가까운 서술 시점을 통해 장면전환을 최소화하기도 합니다. SF에 가까울 정도로 독특한 설정하에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9S 역시, 효율적인 장면전환이 필요한 부분이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ADEM, 해성, 마나메 가문, ALC부대원, 일곱 가지 대죄 등 다양한 입장의 등장인물들을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야기가 중심을 잃지 않고 흘러갈 수 있는 것은 시간차에 따른 서술일 것입니다. 리니어 익스프레스를 이용한 트릭 묘사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이, 시간의 흐름에 반하는 절묘한 서술 방식으로 인해 독자는 다테와 함께 유우의 정신적 부활에 놀라고, 쿠로카와와 함께 유우의 등장에 놀라며, 유우와 함께 토마의 행동에 놀라게 됩니다. 이러한 기법이 가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기반은 아무래도 전체적으로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겠지요. 아무리 이 시간 저 시간 왔다갔다 하는 기법을 사용할 수 있어도, 미래의 이야기를 제대로 그려놓지 않는다면, 혹 그려놓았다 하더라도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생각해놓지 않았다면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기법이니까요. 2. 완성도 -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혼돈의 조각들' 빅토리카의 표현을 빌자면, 슬슬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만한 혼돈의 조각들이 다 모여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드러나는 수수께끼의 파편들은 매우 작긴 하지만, 충분히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으며 드디어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리는듯한 느낌의 8권이었습니다. '작품 전체를 꿰뚫는 커다란 물음표' 라는 것은 흥미를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를 어떤 방식으로 밝혀 나갈지는 작가에 따라 다릅니다만, 분명한 것은 작가 스스로가 얼마나 '준비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느냐에 따라서 저 물음표를 활용할 수 있는 폭이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작가 스스로가 명확한 엔딩과 그에 이르는 과정을 그려놓지 않았다면, 당연히 그것을 이용한 수수께끼를 던지는데에도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죠. 그런 면에서 볼 때, 9S는 더할나위없이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미네시마 유지로라고 하는 최종보스(?)를 향해, 이쪽저쪽에서 뻗어나가는 선에 대한 조율을 각 권마다 완벽하게 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당기는 힘이 강력한 스피디한 전개를 주축으로 하면서도, 8권에서는 여태껏 조연에 불과했던 심리묘사 또한 토마, 유우, 마야를 통해 유감없이 펼쳐내고 있습니다. 모든 혼돈의 조각이 한꺼번에 드러나지 않고, 매 권마다 적절히 제어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9S의 권말은 절대 '엔딩'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만큼 다음 권에 대한 기대감은 어떠한 작품보다 클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3. 토마와 유우 스케일이 커지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퇴색된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그래도 9S의 시작은 토마와 유우의 만남에서부터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하는 열쇠 또한 다름아닌 그들이 쥐고 있다는 것을 8권에서는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줍니다. '조연에 불과했던 심리묘사' 라고 표현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여태까지의 거대한 사건들의 방아쇠를 당겨온 것은 다름아닌 토마입니다. 동굴 속 공주님에게 햇빛을 보여준 것도 그이고, 모두가 적이었던 천재 소녀의 마음의 벽을 허문 것도 그였으며, 여전히 차가웠던 그녀를 위해 전쟁터로 뛰어든 것도 그였습니다. 유우가 워낙에 튀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단순한 둔감바보 캐릭터로 변모해가는 듯한 느낌도 있었던 토마이지만, 그 무서우리만치 유우만 바라보는 마음은 이번 에피소드에 와서야 결실을 맺습니다. 한 여성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 여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열혈적인 사랑에 빠진 주인공. 수많은 액션과 복잡한 배경 스토리 때문에 묻혀지기 쉽지만, 토마처럼 바보같은 사랑을 하는 히어로 캐릭터를 찾기란 요즘 참 힘듭니다. 그렇기에 더욱 그를 응원하고 싶어지고, 또 엇갈리는 유우의 태도가 아쉽기만 했었죠. 8권에서는 결코 평범한 해피엔딩의 길로 달려갈 수 없을거란 것이 자명한 커플의 모습이, 이토록 멋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우만을 향하는 토마의 모습이 매력을 갖는 것은 작품 안에서만의 사정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요새 라노베 주인공치고 이 녀석처럼 무모한 사랑을 하는 캐릭터가 없는 것 같아요. 다수의 여성 캐릭터 등장과 태도가 불분명한 애매한 연애노선, 사랑의 라이벌 등장 등의 소재가 마치 공식처럼 라이트노벨을 주름잡아 왔으니까 말입니다. 물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나 엇갈리는 호감선 등이 재미있고 다채로운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주관이 뚜렷하지 않는 캐릭터를 남자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남성 독자들이 히로인들을 상대로 대리만족을 체험하기에도 좋죠. 하지만 '멋있는 남자 캐릭터'가 나오기 힘들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일례로, 똑같이 무모한 행동이 트레이드 마크인 동명이인 토마(In 금서목록)군. 이 녀석도 자기 몸 돌보지 않는 무모함에서는 사카가미 저리가라 할 정도입니다만, 잘 아시다시피 매번 히로인이 바뀌어서야 절실함이 느껴질 수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너덜너덜해져도 대충 며칠이면 다시 무모한 행동을 할 수 있을만큼 회복되어 버린다는 점 역시 무모함이 갖는 절실함이라는 매력을 갉아먹습니다. 렌탈 마법사의 이츠키 사장님, 역시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무모함을 갖추고는 있습니다만.... 마찬가지로 '아무에게나',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도와주려 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 소녀만을 바라보고 피해왔던 자신의 운명에조차 정면으로 맞서는 토마의 모습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토마는 유우를 위해 자신의 양심에 맞서고 고민하지만, 그녀가 위험에 빠지자 모든 것을 제쳐두고 달려가는(?) 변함없이 멋진 기사님을 맡아 열연합니다. 이번 에피소드가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역시 지금까지 차가운 태도만을 보여주던 공주님이 녹아내리는 장면 때문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