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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s Eye :: Margaret Atwood
항상 내가 피해자인줄 알았다. 울면서 주변 사람을 붙잡고 어떻게 내가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냐며 상대가 내게 한 안좋은 일만을 나열하며 내 쪽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말을 기어이 듣고자 했다. 나는 상대에게 아무런 피해도 끼치지 않은 양 했다. 뭔가를 했더라도 상대가 먼저 했기 때문에 정당한 권리 행사 였다는 것을 과장해 설명했다. 들어주는 사람조차 지치고 지겨워 하는 기색이 보이면 행여 편이라도 잃을까봐 짐짓 눈치를 보거나 아니면 그 마저 내 마음 몰라주는 배신자 라며 내가 먼저 지레 연락을 끊어 버렸다. 그러고는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내 자신이 이렇게 우울하고 비련한 것은 다 세상이 너무 거칠고 내 몫의 복이 모자라서라고 주억거렸다. 그래서 지금의 성격이 이렇게 된 거라고 당연해 했다. 그런 일들을 겪었으니까 지금 이럴 수 밖에 없는거라고. 그렇게 상처 받았으니까 지금 이렇게 방어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거라고.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은 다 당연한 결과라고.
타고난 성격이라는 것도 분명 있겠지만 사람의 성격은 대체로 주어진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특히 유년기, 판단력이 부족한 시기에 선택할 수 없는 환경이 강제 되면 그렇게 접촉되는 면에 있어선 수동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부모나 교사 등의 지도하는 사람의 손길이 부족하면 오로지 생존 욕구와 애정 갈구 욕구에 의해 반응하는 아이들은 주체하지 못하는 자의식과 정립되지 못한 자존감에 휘청이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으로 더 스스로를 상처에 노출 시킨다. 자기 아픔에만 민감하다보니 공감의 기능은 상대적으로 퇴화되고 그 자리를 불특정다수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자리 잡는다. 그리하여 서로 죽고 죽이는 제로섬 게임이 시작된다.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식이다. 어느덧 근본적인 원인은 잊혀지고 서로에 대한 경계만 팽배해진다. 그렇게 모두가 상처 투성이의 피해자가 된 채 그대로 나이만 먹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그와 같은 표본 과정을 보낸 한 여성이 있다. 어린 시절, 가족을 따라 이주해 다니는 생활에 익숙해 사회성이 결여된 일레인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아이들과의 사교를 원할히 하지 못한다. 함께 어울리는 또래의 무리가 생겨도 자존감 부족으로 늘 괴롭힘과 왕따를 당한다.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 때문에 부모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서 괴로운 생활을 해나가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소녀들, 특히 앞장 서서 심한 짓도 서슴치 않는 코딜리어에 대한 증오가 차곡차곡 쌓여져 간다. 목숨까지 위협 받는 괴롭힘을 당하고 나서야 그 아이들과의 관계를 끊어내는데 성공하지만 이미 일레인의 마음은 세상 모두에 닫혀 있는 뒤였다. 그대로 일레인은 성장하며 부족한 애정 결핍을 불안정한 사랑에서 갈구하다 다시 실패하기를 반복한다. 그토록 증오했던 코딜리어가 불행에 처했을 때는 미움과 두려움 속에서 외면한다. 나이를 먹어가며 화가로서 성공하고 주변 관계가 안정이 되고 나서야 일레인은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고 관계에 좀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를 한다.
노년의 일레인을 현재로 하여 과거를 오가며 1인칭으로 진행 되는 이야기면서도 작가는 일레인의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는 부분을 독자에게 각인 시킨다. 어떤 부분은 완전히 잊고, 어떤 부분은 과장되어 있다는 묘사로서 한 사람이 갖는 기억의 불완전함을 강조해 보이는 것이다. 일방적인 기억을 갖고 평생 알 수 없는 괴로움과 죄책감에 시달려 온 일레인은 사람들이 자신이 그린 작품을 평가 하는 것을 보면서 서서히 사람의 사고가 얼마나 자기주의적이고 단면적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림 안에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그려 넣어도 보는 사람들은 제각각 해석하고 자기 편의로 받아 들이기 마련인데, 자기만의 진실을 전달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내 진실만을 중히 하는 동안 상대의 진실을 헤아려 볼 생각을 했을까. 자기 상처만 돌아보느라 코딜리어를 비롯하여 여태까지 관계해 왔던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일레인은 다시 그것을 만회할 기회를 갖기를 소망한다. 환경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만으로 만들 수 없었던 성격이야 어쩔 수 없다쳐도, 공감의 마음을 회복하려 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도리가 아닌가.
작중에서 일레인이 어린 시절 소중히 했던 구슬 이름이었던 '고양이 눈' 은 상처 받았지만 필수불가결 했던 유년기 그 자체이자 왜곡 되고 과장된 기억, 타인보다 나 자신을 우선 하는 자의식의 상징으로 생각된다. 어린 시절 불합리하게 받은 상처로 스스로를 가여이 여기면서도 완벽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자학하고, 방어의 이유를 수집하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휘두른 칼이 누구를 해쳤는가를 잊거나 외면하며, 아픔을 잊지 못하고 미움을 지속 시켜 나가면서도 그것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것과 동시에 그렇게 형성된 지금의 자신을 못내 사랑하는, 그 결정체가 이 소설에서 말하는 '고양이 눈' 일테며, 사람이라면 이 '고양이 눈' 으로 대체 되는 것을 하나씩 마음 속 저 깊이에 품고 있지 않을까. 또한 그것은 오로지 혼자만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편견이자 단면적 시선이기도 하다. 상대가 별 의미없이 하는 행동만으로 혼자 상처 받고 증오를 키우며 미움으로 살아가는 어리석음이 얼마나 우리 인생을 낭비하게 하는가.
지금은 그저 후회 뿐이다. 영영 맞지 않고 헤어질 사람은 헤어진다해도 모자랐던 자신을 무턱대고 강요만 했던 서투름이 후회되고, 받아 들여지지 못해 미움으로 방어하여 상대를 상처 입혔던 것이 후회되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괴로움으로 나를 마모 시키기만 했던 것이 후회된다.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도는 것 마냥 상대가 주인공인 나를 찔러댄다고만 생각했던 그 자의식 과잉에 부끄러워 때때로 잠못 이룬다. 다시 돌이킬 수 없다해도, 다시 회복 시킬 수 없다해도, 이제는 같은 실수는 그만두자. 적어도 미움으로 나를 낭비하지 말자. 제대로 된 자존감을 되찾으려면 그런 식의 스스로에 대한 과대 평가와 투정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아픔은 억울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복수함으로 회복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인생에 할당된 몫이며 그로 인해 형성된 성격을 나는 사실 사랑하고 있다. 그러니 거기에 부러 생채기 내어 누군가에 봐달라 하소연 하지 말자. 정녕 인정 받고 싶다면, 그래서 나아질 것 같다면, 내가 먼저 누군가의 아픔을 들여다보자. 치유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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