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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폴란을 처음 알게 된 건, The Botany of Desire와 The Omnivores' Dilemma였다. 어쩌다보니 가장 읽고 싶었던 The Omnivores' Dilemma는 못 읽고, 출판 순서로는 그 책의 앞뒤 순서를 차지하고 있는 The Botany of Desire와 In Defense of Food를 읽게 되었다.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실제로 "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재정적으로 독립을 한 건, 돈을 버는 수단이 생기면서부터였으니까 꽤 오래 되었다. 사실 재정적 독립을 일단 완수하고 나서는, "먹고 살기"라는 문제는 그저 돈을 지불하면 대략 해결되는 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결혼을 하고 주거하는 공간이라는 것이 생기다보니, 게다가 때로는 내가 "먹여야 하는" 상대가 생기고 나니 그리 쉽지가 않다.
무언가를 사서, 손질해서 혹은 조리까지 해서 에너지를 확보해야 하는, 조금 다른 개념의 독립은 사실 아직도 멀었고, 그저 맡은 일을 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경제적 독립보다 조금 더 서툴다.
그러다보니 "무엇을 먹어야 하나"라는 문제에 천착하게 되었다.
이 책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에 대한 가이드에서 더 나아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 게다가 상당히 잘 읽히는 간결하고 위트있는 문체가 마음에 든다.
간단히 말하자면, 위의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책의 표지에 나와있다.
"Eat Food. Not Too Much. Mostly Plants."
1. Eat Food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음식"다운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먹지 않으면서 살고 있다는 지적이다.
"The problem with nutrient-by-nutrient nutrition science," points out Marion Nestle, a New York University nutritionist, "is that it takes the nutrient out of the context of the food, the food out of the context of the diet, and the diet out of the context of the lifestyle."
미국은 이미 "영양소" 라벨을 통해 "이 식품을 먹으면, 비타민 XXX를 섭취할 수 있다"는 식의 접근이 만연하며, 영양소 하나하나의 개별 효과에 집착하고, 이 영양소들을 싼값에 사고 파는 시장이 되어 버렸다는 얘기. 소아비만과 당뇨가 남의 일이 아닌 우리나라도 별반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어떤 실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미국인들에게 "chocolate cake"라는 단어를 보여주고, 이 단어에서 어떤 것이 연상되는지 기록하게 했더니, 미국인 피험자들은 "Guilt"가 가장 주된 연상어였던 반면, 프랑스인 피험자들은 "celebration"이라고 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lipid hypothesis (지방은 독,이라는 가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So this is what putting science, and scientisim, in charge of the American diet has gotten us: anxiety and confusion about even the most basic qustion of food and health, and a steadily diminishing ability to enjoy on of the great pleasures of life without guilt or neurosis."
전체 문맥과 종합해서 설명하자면, 지방이 어떤 context에서 섭취가 되어 어떠한 득과 해가 있는지 과학적으로 완전히 판명된 바 없는데, 먹는 행위의 즐거움은 이미 저 멀리 팽개쳐 두고 두려움과 건강하지 못한 영양주의 (nutritionism)만 남았다는 얘기다.
2. Mostly Plants.
제대로 된 음식을 왜곡되지 않은 식문화 속에서 즐겁게 먹되, 주로 채식을 하라면서 폴란은 한 conference에서 강연자의 말을 인용하는데, 매우 와닿았다.
"The dinner we have eaten tonight, he told his audience in a 1928 lecture, "was a part of the sun but a few months ago." Industrial food both obscured these links and attenuated them. In lengthening the food chain so that we could feed great cities from distant soils, we were breaking the "rules of nature" at least twice: by robbing nutrients from the soils the foods have been grown in and then squandering those nutrients by processing the foods.
어찌보면 먹이사슬의 단계로 볼 때, 결국 원래 인간이 주식으로 먹던 건 식물이고, 식물은 태양 에너지를 통해 영양소를 공급한다. 사실 다른 동물도 식물에서 에너지를 취하고, 먹이 사슬의 다음 단계로 이 영양분이 축적되어 이동되는 관계일 것이다. 따라서, 농경문화의 일부로서의 "먹기"라는 활동이 산업화된 지금, 육류를 일일필요량보다 훨씬 더 많이 먹는 (메인요리로서 먹는) 습관은 영양소의 과잉섭취로 인해 심장병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 그 외에도 고립되어 자기들만의 식문화로 살아가던 원주민들이 문명의 세계에 개방되면서 성인병에 시달리게 되는 케이스가 늘어나는 패턴을 보면서, 이들을 일정기간 동안 원래 살던 자연에서 살게 했더니, 자연히 보다 구하기 쉬운 식물을 더 많이 먹게 되었고, 비만 등의 성인병이 줄어들면서, 신체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실험도 이 책에 아니더라도 잘 알려진 사례이다.
3. Not Too Much.
마이클 폴란은 식문화의 산업화로 인해, 식품의 질을 희생하면서 양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인해, 더 많은 칼로리를 더 싼 가격에 파는 것이 수퍼마켓의 전략 아닌 전략이 되어 버렸다.
그로 인해 또 한 가지 섬뜩했던 부분은, nutritionism으로 인해 원하는 영양소를 processed package로 인공적 섭취를 하게 될 경우, 비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의 인용이었다.
"His hypothesis is that a body starved of critical nutrients will keep eatin gin the hope of obtaining them. The absence of these nutrients from the diet may counteract the normal feeling of satiety after sufficient calories are eaten and that such an unrelenting hunger may be a biological strategy for obstaining missing nutrients."
미국인들은 눈앞에 있는 접시가 비워져야 그제서야 포만감을 느끼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폴란은 천천히 먹어야 위의 포만감을 인지할 수 있으며, 그러다보면 자연히 적게 먹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름하여 이야기하자면,
나에게 초콜렛 케익은 고달픈 하루 일과에 대한, 혹은 심적으로 지친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다. 그렇지만, 마이클 폴란이 결론에서 제시하듯이 식품첨가제가 내 몸에 축적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소량의 유기농+수제 초콜렛을 환경까지 유의해가면서 소량만 먹으려면, 혹은 직장인의 각박한 정서를 달래줄 즐거움의 일부로서 좋은 재료를 좋은 사람에게 구해다 "직접 만들어" 먹기에는, 상당한 장애물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정말 좋은 재료를 좋은 사람에게 제 가치에 맞도록 보상을 지불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요리하여 믿을 수 있는 "음식"을 먹을 수만 있다면, 정말로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생태학적 식생활이란, 아직도 매우 갈 길이 멀지만서도, 먹거리에 대한 의심과 각성은 깊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