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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어리석은 생각들, 다른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맞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고 공감하고 있던 것을 소재로 다룬 책이라서, 그래서 관심이 많이 갔어요. 그렇잖아요, 남들과 같은 획일적인 생각으로는 빛을 발하는 걸 바라는 것 자체가 힘든 세상이잖아요. 남들과는 다른 생각, 독특한 발상이여야만 되는 세상이죠. 일적인 면에서도 그래요. 독특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많이 생각해낼수록 성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철학이니 하는 분야의 책에 그렇게 관심을 많이 가진다거나 선호하면서 읽는다거나 하는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많이 공감하고 있던 소재를 다룬 책이라 다른 때완 다르게 남다른 관심이 간 것이고, 그렇게 읽게 된 거예요. 그리고 평소 '다른 생각'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했던 것이니만큼 잘 읽혀지더군요.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꾼 어리석은 생각들>이 보여주는 예, <세상을 바꾼 어리석은 생각들>이 알려주는 좀 더 심도 깊은 '다른 생각' 덕분에 그동안 많이 생각했던 부분들에, 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한데요, 의미를 표현하자면 날개가 달리기도 했어요. 제 생각을 뒷받침해주듯 도움을 받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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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다른, 그로 인해 세상을 바꾼 흥미로운 생각들
책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서평을 쓰려 하면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출판사와 저자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고, 서평이 편파적으로 안 좋게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흥미로운 부분 몇 군데를 제외하곤 책 제목과 내용이 매치가 되지 않아 자꾸만 물음표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나의 짧은 이해력도 한 몫 거들었겠지만 제목만 보고 상상했던 것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린 내용은 “당시에는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에게 철저히 배척을 당했으나 후대에 재해석되어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다.”였다. ‘이러이러한 이유’와 ‘이렇게’에 초점을 맞춰 진행했더라면 덜 지루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 쓸모 있는 것,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에만 매달린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이렇게 자문할 것이다. ‘나는 새롭고 익숙하지 않으며, 단지 관념적으로만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어떤가?’ 철학자들이 뿌려 놓은 씨앗은 알아볼 수 없거나, 더러 쓸모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새로운 사고를 가진 사상가나 예술가, 발명가나 선각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이 살아생전에 명성을 얻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이들에게 바치는 책이다. (머리말, 13쪽)
철학이란 무엇일까. 나는 부끄럽게도 철학 서적을 접한 적이 거의 없다. 부끄럽다는 표현을 쓴 것은 철학 서적을 읽지 않으면 왠지 기본에 미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마음속에 언젠가는 꼭 읽어야만 하는 짐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많은 양의 교양서적을 읽은 여동생도 철학 서적을 접할 때면 난감해하곤 한다. “언니, 아마 처음에 철학 서적 몇 장만 읽으면 잠이 저절로 올걸.” 그 말을 웃음으로 넘겼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이 점점 무거워졌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생각들을 크게 3부로 나누어 <한발 앞서 생각하는 사람의 길>, <효용성의 지배>, <정신에서 나오는 새로운 것>으로 풀어놓았다.
인간이 사고하고 깨닫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야말로 심리학과 논리학을 넘어서는 철학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다.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의무일 것이다. 철학의 과제로는 우선 사고하고 인지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 그리고 지금 받아들인 것들을 조금 더 잘 활용하도록 하는 일 등이 있다. 철학자는 점쟁이가 아니다. 즉, 초감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것은 그들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이 진실을 이해하고 그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로써 스스로도 진실론자가 될 수 있다. (머리말, 12쪽)
재미있게 읽은 부분을 몇 개 소개하고자 한다. 화가이자 사진작가인 만 레이 Emanuel Radinsky(1890~1976)의 1921년, <선물>이란 작품이 무척 인상깊었다. 다리미의 평평한 밑면에 밖으로 솟은 못들이 일렬로 박혀 있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데 전혀 쓸모 없어 보여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본래의 용도를 무색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다다이즘과 난센스 예술의 대작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비용-이용-과익으로부터 벗어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한다. 유용성의 한계를 꼬집은, 고정관념과 압박감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표현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갈릴레이를 통해 철학과 과학이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최초의 컴퓨터 발명가들의 기계에서도 신과의 연관성이 있다는 발견은 새로웠다. 이진법에 신에 관한 이야기가 숨어있었다니! 이진법은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 수학과 기술적인 기본 연구였을 뿐 아니라, 신을 깨닫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7을 111이라는 숫자 배열을 통해서 나타낼 수 있는데 이 배열은 바로 삼위일체인 신을 뜻하는 것이며, 동시에 창조의 날이 지나고 안식일인 제7일을 뜻하기도 한단다. 그는 기계의 기본 토대가 된 수학이 신의 작품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차르트 음악은 태교 음악으로 유명하다. 그의 음악은 경제와 건강을 위해서도 좋은 음악이라고 한다. 이미 모차르트 쿠겔 초콜릿으로 상품화되었고. 젖소에게서 우유를 더 많이 얻으려고 젖소 사육자는 모차르트 음악을 튼다고 한다. 동물 뿐만 아니라 식물에 모차르트 음악을 들려주면 더 빨리 성장한다는 결론도 나왔다고 하니 흥미롭다. 아이큐 테스트 시 아이큐를 상승시키는 효과도 있으며,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의 마라톤 대회에서는 달리기 주자들이 비엔나 음악학교를 지나칠 때 더 빨리 뛸 수 있었다고 한다. 효용성 지배의 원리를 적용한 예라 하겠다.
전화기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벨이 아니라 안토니오 메우치(Antonio Meucci)였다고 한다. 그는 1860년에 한 신문에 자신의 발명품을 소개하고, 1871년에 임시로 특허를 신청했는데 3년 뒤 기간 만료로 무효가 되었다. 설계도와 기계를 되돌려받지 못한 상황에서 얼마 후,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설계했고 1876년 특허 신청과 함께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메우치는 이듬해 벨을 상대로 고소하나 재판 진행상태에서 1889년 가난에 찌들어 살다 죽게 된다. 백 년이 넘게 흐른 2002년에야 미국 의회는 메우치가 전화기의 발명자이며 특허 소유자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발명은 경주마에 올라탄 기수처럼 스피드와 긴장감을 요하기도 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고(思考)를 하며 사는가. 단순하게 사는 걸 좋아하는 나는 머릿속을 꽉꽉 채우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퀴즈 프로를 안 좋아하는 편이다. 신경 쓸 일도 많은데 저런 용어, 이름까지 달달 외우며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기본상식이라고 누군가 반문하면 할 말을 잃겠지만,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보단 마음을 가득 채우며 살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다.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삶은 지양해야겠지만 사유(思惟)하는 삶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개인의 욕망을 좇는 사고가 아닌, 인류의 보다 나음을 위한 현인들의 고뇌와 사유는 마땅히 존경받아야 하리라.
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따져서 생각하는 자는, 해답을 찾는 데 성공한다. 르네 데카르트는 이를 벌써 알려 주었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속이지 않았다. 계속된 진보는 의문점을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법을 보여 준다. 이제 그것은 아주 작아져서 ‘네’와 ‘아니오’의 결합만이 우리의 넓은 세계의 다양성을 ‘1’과 ‘0’과 관련짓는다. 그러나 여전히 더 이상 데이터화 시킬 수 없는 나머지는 남아 있다. 원래 아무도 측량할 수 없는 그것으로부터 사유는 시작되는 것이다. (200쪽)
그러고 보니 26편의 철학 이야기를 접하면서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재미있게 읽은 부분도 제법 있다. 내가 이 책을 이해한 부분은 극소수 분량이지만 통찰력을 갖춘 자나 철학 서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보다는 더 많은 흥미로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세상을 바꾼 어리석은 생각들이 아닌 세상을 바꾼 나와 다른 생각들, 흥미로운 생각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너무 오자(誤字)에 민감한 것일까. 끝 부분으로 갈수록 틀린 글자가 많아져 출판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 틀린 글자가 있네요. 그는 넒은 의미에서 볼 때 ‘철학자’였던 것이다. (53쪽) → 넓은 연상 작용으로 멀리 있는 것과 설 연결되기도 한다. (197쪽) → 서로 하지만 나와 소피아아를 엮는 것은 이성이 아니다. (211쪽) → 소피아 그것은 복잡한 분장을 그대로 써 내려가는 것보다... (221쪽) → 문장 정신적 배경과 바탕에서 표면으로 거칠게 몰려듣다. (229쪽) → 몰려든다 격언2 (231쪽) → 격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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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은 책의 전체 내용을 함축한다는데, 이 책은 제목과 표지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니.. 제목 얘기로 시작하겠다. 이 책의 제목에서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단어를 '더 큰 효용성을 위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해석한다면 오히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와는 정 반대의 의미가 되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본 도서의 부제가 '다른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인데, 저자의 의도에서 '다른 생각'이라는 것은 '효용성'이라는 물질 문명의 거류(巨流)에 맞서서 '비효용적'으로 보이는 것을 주장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효용성'을 반대하고 있는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간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은 철학과 연결되어 있었다. 철학은 수학, 물리학, 의학 등 수많은 탐구 영역들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자연과학이 점점 발전하면서 철학으로부터 독립했고, 철학은 기술 학문들에서 동떨어진 외로운 존재가 되었다. 저자가 비유하기로는 소외된 철학은 '어머니'와 같고, 독립한 기술 학문들은 곧 '자식'과 같다. 자식이 독립해서 더 빠른 것, 더 많이 생산해 내는 것을 추구하는 동안 비효용적인 어머니 '철학'은 자식과 점점 더 멀어졌다.
이제 현대사회에는 고도의 물질 문명이 이룩되었는데, 이제서야 우리는 비로소 조금씩 뒤돌아보고 깨닫기 시작한다. 철학의 부재로 인해 뻥 뚫린 공간들이 보이고,정신없이 달려오는 동안 많은 병폐들이 이미 자리잡았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요즈음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효용성과 부(富)를 향해 때때로 우리는 얼마나 맹목적인가? 반대로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하라'고 하는 이 책의 메세지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 참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사회는 모짜르트의 아름다운 음악마저도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 혹은 '과일이 더 맛있고 탐스럽게 자라도록' 이용하라고 한다. 그런데 모짜르트는 그럴 의도로 작곡한 것이 아닐 텐데 아이러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음악을 진정으로 감상하는 법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 소개된 예시 중에 '가시 돋힌 다리미'가 기억에 남는다. 1921년 만 레이(Emanual Radinsky)가 제작했다는 이 작품은 다리미 밑바닥에 못을 박아두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 물건은 명확하게 비용과 효용성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쓸모없는 물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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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 대개 목차를 보며 어떤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있을까 짐작을 하며 책 읽기를 시작한다. 총3부로 나뉘어져 있고 1부와 3부에는 '다른 생각'이라는 것이 들어가 있는데 2부에는 왜 없는지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 드는 느낌은 이 책은 일종의 신문 칼럼들을 모아다가 낸 책이 아닌가 싶었다. 즉,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것이란 느낌보다는 각각의 소고들을 나열한 듯한 느낌이었다. 단편들로 바로 읽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책을 다 읽고 나서 어떠한 주제로 책을 썼는지는 명확치 못했다.
철학자답게 저자는 철학의 위치 이동과 분화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정치,미술,철학,음악 등에 몇몇 선각자들의 생각과 그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을 대비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당장에는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생각들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은 없다. (독자들에게 맡기고 있는 듯 싶다 ^^)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 배웠던 점은 정신 VS 물질의 구도에서 정신의 문제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점이었다. 나의 경우 심리학에 있어 뇌의 호르몬의 활동이라는 것에 무게가 많이 실렸었는데 정신 작용이라는 점도 고려해야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즉, 뇌 신경 전달 물질이 모든 우리가 하는 작용을 설명하진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유신론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많은 좋은 문구들을 가지고 있다. 책을 보면서 적은 것을 몇 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반신불수가 되어 버렸다 -진정한 예술은 모두 다 목표 없고 쓸데없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예술은 '미(美)'와 관련되어 있지, '유용성'과는 관련 없다 -베토벤은 하늘에 다다르기 위해 애썼고, 모차르트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혁명은 연기될 수도 있지만, 저지될 수는 없다
끝으로 오타 하나를 지적하면서 리뷰를 마친다. p53 아래서 셋째줄 '그는 넒은'을 '넓은'으로 수정해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