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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와 <고양이 빌딩>으로 잘 알려진 다치바다 다카시는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이다. 책을 사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 학생 때는 문학에 심취했고, 기자와 철학도로 살았다.
1974년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을 통하여 세인의 관심을 받았다. 그런 그가 이제는 자연과학, 종교, 뇌과학, 우주, 지구과학, 죽음, 예술, 테크놀로지, 국제정치경제학, 생명과학 등으로 지적 지향을 넓혀가고 있다.
어느 한 분야에 생명을 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만큼, 다양성이 지배하는 학문과 책에 대하여 대단한 열정으로 책 읽기를 한다.
우리는 그가 읽는 분야를 '논픽션'이라 부르면 이런 글쓰기를 하는 사람을 '논픽션 작가'라 한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하여 책 100권을 읽어야 한다는 그가 이번에 <피가되고 살이되는 500권, 피도살도 안 되는 100권>을 냈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를 쓰기 전까지 자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그는 이 시기를 '나의 수수께끼의 공백시대'라고 표현한다) 대담 형식으로,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책 읽기 족적을 실었다.
수수께끼같은 시대였지만 그는 이때 지적 자산이 충분히 축적되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읽기 시기였다고 말한다. 책 한 권을 쓰는데 100권을 읽어야 한다는 말은, 껍데기 같은 책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우리 시대 글쟁이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2부 나의 독서 일기에 소개된 책은 235권이다. 나의 독서 일기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주간문춘>에 신간을 읽고 쓴 독서일기를 연재한 것이다. 신간 서평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가 서점에 가서 책을 선정하는 방법은 재미있다.
'도쿄도서점'에서 책을 고른다. 무턱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주 들르는 도쿄도 서점과 미디어 서평을 먼저 참고한다. 처음에는 열 몇 권에서 스무 권 정도 선택한다. 표지와 띠지, 목차와 머리말, 후기 정도를 보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한 권 당 1분에서 3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
다음으로 15권 정도 고른 책을 2분 정도 살펴보면서 이거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 10권 정도 남기는데 한 권당 3분 정도 하여 7할 정도를 가지고 집에 와서 주의깊게 읽는다. 앞 부분 5, 6쪽을 읽는다. 그 책의 질이 대부분 5, 6쪽에 결정된다고 믿고 있다. 한 권당 6, 7분이 소요된다. 여기서 제외되는 책이 있고, 읽을 만한 책이 5권 정도로 줄어든다. 책 한권을 선택하기 위하여 그가 드는 품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처음 읽은 책들이 대부분 문학 작품이었지만 그가 나의 독서 일기에서 소개한 책은 논픽션이다. 일본은 지금 문학보다는 논픽션이 강세라고 한다.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가 문학도로 삶을 살았던 시절은 지독히도 픽션이 대세였다. 그가 <문예춘추>에 있을 때는 문필가로 '선생'이라고 지칭되는 사람은 소설가 뿐이었다고 한다.
그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오늘날의 문학 부진 현상의 근본 원인을, 독자가 문학 작품에서 멀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을 현대 문학 속에서 찾아 볼 수 없다는 데서 찾고 싶습니다."(45쪽)
하지만 논픽셕은 생생한 현실을 제공하는 재미에 빠져들게 한다고 말한다. 픽션보다 훨씬 재미있고 흥미와 생생함이 살아 있는 논픽션은 사방에 펼려져 있다고 다치비나는 말한다. 문학 작품에 대한 비판에 모두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 시대 소설들의 공허함이 지배하는 것에 분명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나 개인적으로는 분명하다. 소설과 비교해도 논픽션 작품들이 흥미와 재미, 생생함이 강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치비나는 왜 그토록 책을 읽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그리고 인간이 지적인 욕망을 상실하지 않는 한, 인간은 '더 책을 읽고 싶다', '새로운 책과 더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더 읽고 싶은 책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바로 그 사실 자체가 지적인 인간에게 있어서는 살이 있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 욕망이 사라진다면 그 사람은 이미 지적으로 죽었다고 해도 좋습니다."(52쪽)
한 마디로 정의하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책 쓰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단편과 표피만으로 글쓰기를 말 장난처럼 해대는 요즘 글쓰는 이들을 향한 일격이다. 다치비나의 책 읽기는 대충이 아니었다. 그를 세상에 알린 <다나카 가쿠게이 연구>는 탐사보도를 통하여 거대한 악과 일전을 겨루어 이긴 것은 지독한 책 읽기이라는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치비나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아사히 저널>을 무대로 록히드 재판 비판파들과 논쟁을 했다. 그와 논쟁한 사람들은 법률 전문가들이었다. 그는 그들과 대항하기 위하여 15단 분량의 법률 전문서를 철저히 독파했다고 말한다.
"형법이나 형사소송법 주해서를 읽는 것은 물론이지만, 전문가들과 논쟁할 때는 그 수준으로는 당해날 재간이 없으니까 일본평론사의 <공판법 대계>(전4권) <증거법 대계>(전4권> 같은 책을 읽어야 했어요. 그 때 늘 곁에 두고 도움을 받은 것이 <판례 형사육법전서>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최고재판판례집에 달려드는 식으로 해갔습니다."(170쪽)
결국 그는 법률전문가들과 논쟁에서도 지지 않았다. 다치비나는 어떤 분야를 읽어도 철저했으며, 분명했다. <피가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에는 책 제목만 소개한 것들도 있지만 다치비나를 통하여 우리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읽기가 필요하며, 얕은 지식으로 책 한 권 내는 우리 지식 풍토에 강한 경고임은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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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를 위한 책이라고 광고하는 또 하나의 책... 피도 안되고 살도 안된다.
책의 내용은 저자가 살아온 이야기 속에 '그때는 이거 읽었지...' 라는 정도의 소개 뿐이다. 단지 자서전 + 책이름 소개 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가 소개하는 책들은 한국에 없는 책이 많으며, 일본에서조차 중고서점이나 찾아보라는 불친절한 것들이 많다.
피도 안되고 살도 안되니 돈버리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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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이미 화려한 독서편력을 자랑한바 있지만 정말이지 그가 책에 대해 쓸때마다 기가 죽는다. 그는 뭔가를 쓰기 위해서는 그 전제이자 준비로서 반드시 읽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입출력비를 100대 1정도라고 봤는데, 책 한권을 쓰려면 적어도 100권은 읽어야한다는 뜻이다. 너무나 쉽게 쉽게 책이 찍어져 나오는 이 시대에 새겨들을 말이다. 그는 별것 없는 시시한 책이라도 읽은 책은 반드시 버리지 않는다. 모아둔 책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이 따로 있을 정도인데, 일명 '고양이 빌딩'에 소장된 책이 3만5000권이라고 한다. 젊은날 다다미 일곱장짜리 아파트에 살때는 책을 사과상자에 담아 서가를 만들었는데 그 무게를 이기지못해 목조 아파트 벽에 금이 갔다고...그래서 철근으로 지은 맨션의 원룸으로 갔다는데 취약한 상부구조가 책무게를 견디지 못해 결국 바닥이 꺼져버렸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때다.
책 앞머리 대담 부분에는 인상적인 대목이 많은데 그 중 이런 구절이 있다.
지적인 인간은 영원히 갈증을 해소할 수 없는 숙명에 처한 탄탈로스같은 존재입니다. 읽어도 읽어도 만족스러울 만큼 충분히 읽는다는게 불가능한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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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열권에서 스무 권 정도 선택한다. ================================================= 저자의 책사냥법과 관련하여 흥미롭게 본 구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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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문제는 이 책들은 일본에서도 헌책방에나 가야 있을 오래된 책이고.. 우리나라에는 대부분 소개되지 않았다는 것... 저자 자신도 고서점에나 가야 있을 책이라고 소개하는 책들도 있고 저자 자신이 자신이 서재에서우연히 보게 된 책을 소재로 쓰다보니 각분야의 필독서라는 책이 빠진것이 많으며 그런 책은 각자 알아서 찾아 보라고 하고 있다...그렇지 않더라도 국내에는 미발매 된 책이 많으므로 구할수 있는 책이 거의 없다...일본 원서를 읽을 생각이라면 모르지만 원서를 구하는 방법도 만만치는 않을 듯한 책들이고..
책을 많이 읽고서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긴 하지만 우리 현실에 그다지 필요한 책은 아니라고 보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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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보다 다른 책이 관심이 있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라는 책이다. 공교롭게도 그 책을 선택하지 못하고 이책이랑 천황에 관한 책을 빌려왔다. 그리고 이 책을 보다시피 600페이지 두꺼운 분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책을 소개하는 책이기 때문에 두껍지만 별불편함 없이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어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 나오지 않는 책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 책을 보고 싶은 마음,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저자의 남다른 독서법은 문과를 전공했음에도 문학, 철학 뿐 아니라 과학, 수학, 천문학, 공학까지 가리지 않고 소화하고 있으며, 우리의 출판 시장과 대조적인 일본의 출판 시장을 마주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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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였다. 제목에 낚였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순진하게도 도대체 어떤 책들이 500권에 포함될까 궁금했다. 하지만 그저 비유적인 표현으로 제목을 붙였다고 하며 '제목처럼 정말로 500권과 100권의 책을 소개한 것은 아니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물론 많은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번역본이 있나도 모르겠다. 예전에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을 읽을 때에는 거기에 소개된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하나하나 검색해서 찾아 읽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의욕도 나지 않는다.
일단 그것은 좋다. 뭐 그럴 수도 있으니까. 워낙 세상에는 제목이 근사하지 않으면 쳐다보지 않을 것들이 많고, 나같은 경우에도 제목과 저자 이름에 끌려 묻지마식 독서를 즐기니, 나같은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심산이었나보다. 이해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보았을 때의 신선한 느낌은 없었다. 어쩌면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은근히 기대해서 이런 실망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책장에 꽂아놓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나 오랜만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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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를 만들어낸 10년간의 독서.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 무려 3만 5천권의 장서로 꽉차있는 ‘고양이 빌딩’의 주인. 이 많은 걸 모두 다 읽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천권 정도 책을 썼고 대략 만권 정도는 계획적이고 정교한 도서를 했다고 한다. 만권이나! 인간이 살아가는 한 그리고 인간이 지적 욕망을 상실하지 않는 한, 책을 더 읽고싶다거나 새로운 책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존재이다. 더 읽고싶은 책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바로 그 사실 자체가 지적인 인간에게 있어서는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독서는 새로운 사상가와 만나 관점을 일변시키는 경험이다. 그리고 새롭고 광대한 지적 세계와 만나는 장이다. 세계를 보는 새로운 방식을 배우는 기회가 된다. 다치바나에게 책은 세상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가기 위한 수단이다. 석학들이 저술한 필생의 작품을 읽은 즐거움은 그 무엇과 비길 수 없다. 30년 이상에 걸쳐 만들어낸 책도 만날 수 있다. 세상에는 신간이 나오면 내용은 살펴보지도 않고 일단 곧장 사게 되는 그런 작가도 많다. 어떤 책은 책 만듦새부터 본다. 무언가 불가사의한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번역이 엉터리라서 거의 이해 불가능한 책은 물론, 엉성해서 읽다보면 짜증이 난다거나 3장 이하는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은 생각이 들거나 글솜씨에 문제가 있고 필요 이상으로 주제를 벗어나 자주 탈선하기 때문에 읽기 싫어지는 책도 있다고 털어놓는다. 어쨌거나 필자의 앎에 대한 열망과 그것을 성취해나가는 모습이 경탄스럽다. 일본은 독서대국이다. 그런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필자와 같은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누구든지 그렇지만 읽고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수량적으로 말하면 지금도 읽어야 하는 책이 또 500권 정도는 있다.” 나 역시 밀레니엄 기념으로 독서를 시작하였다. 목적없이 이책 저책 사다보니 500권 정도는 책꽂이에 꽂혀있고, 그 가운데 400권은 읽은 것 같다. 저서는 아직 없고 편저 1권 내는 데 그치고 있고, 그나마 재미있게 읽었던 책도 시간이 지나니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달쯤 전부터는 이미 읽은 책 서평이라도 써두어야겠다고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다. 그런데 책은 왜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치바나 같은 사람이야 직업적으로 글을 써서 먹고사니 독서는 당연한 일이 아닌가! 어쨌거나 딸 송현이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먼 미래를 위한 투자? 유식해지기 위해서? 다치바나처럼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