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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융성기, 그 어진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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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게 우리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분은 그 말에 조금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인물이다. 거대한 나라, 명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대마도,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분은 나라의 위상과 배려의 마음까지 잘 전달한 보기 드문 위정자다. 우리나라 역사상에 정말 큰 인물로 우뚝 섰던 유일한 분, 나는 그분을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게 되었다. 읽어나가면서 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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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게 우리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분은 그 말에 조금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인물이다. 거대한 나라, 명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대마도,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분은 나라의 위상과 배려의 마음까지 잘 전달한 보기 드문 위정자다. 우리나라 역사상에 정말 큰 인물로 우뚝 섰던 유일한 분, 나는 그분을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게 되었다. 읽어나가면서 분의 인품에, 분의 능력에 가슴 따뜻함을 느끼면서 고마움까지 들었다.


책은 태종이 어떻게 왕이 되었으며, 어떻게 피의 역사가 전개 되었는가? 조선 초기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태조의 다섯째로 태어나 그가 나라를 창업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 그 뒤 태조가 약간의 정신을 놓으면서 사랑에 눈멀어 배다른 형제인 8번째(방석)를 세자로 삼으려는 상황이 이루어진다. 그때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배다른 형제들을 제거하고 자신이 왕 위에 오를 수 있는 힘을 가졌으나 둘째인 정종을 왕으로 옹립한다. 그리고 자신은 왕세제가 된다. 그 뒤 넷째(방간)가 주위의 꼬드김에 자신의 위세를 믿고 난리를 일으키나 태종(방원)에게 제거 된다. 제 2차 왕자의 난이다. 그 후 태종은 정종에게 양위 받아 왕 위에 오른다. 그리고도 외척들의 발호를 겪으면서 매제들인 민무질 형제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태종의 세자 양녕은 기발한 행동들로 인해 태종의 눈에서 멀어지게 되고, 태종은 결단을 내려 충녕을 세자로 책봉한다. 그리고 몇 개월 흐른 후 그에게 양위라는 형식을 빌어 왕의 자리를 물려준다. 그러나 군사권은 자신이 가진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왕위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자구책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충녕의 처가를 절단 내는 결과로 나타난다. 왕비 심씨의 아버지인 심온이 군사권에 관한 일 때문에 영의정의 자리에 오르고도 타인(박은)의 모함을 받아 사형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는데도 세종은 아무런 일도 아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한다. 그 일에 간섭을 하는 것은 아버지에게 도전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세종의 아내인 심씨는 친가가 아무도 없는 왕비가 되고 그것이 오히려 세종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라를 다스려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충녕은 태종의 생각 외로 왕의 노릇을 잘하게 되고, 세조도 차츰 뒤로 물러나게 되면서 실질적인 권력이 자동적으로 세종에게로 넘어 온다.


세종 초기에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그래서 대처하다가 못하여 직접적으로 근원지를 공격하게 된다. 대마도를 이종무를 시켜서 공격한 것이다. 그때 대마도는 본토에서 온 자가 대마도주를 제치고 자신이 세력을 잡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이종무는 대마도 전역을 송두리째 공격하니 그들이 견디지 못하고 항복을 하고 만다. 본토에서 온 자들은 도망을 가버리고 대마도주를 중심으로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고, 회군을 하게 된다. 역사적인 대마도 정벌의 위업을 이룬 것이다. 그때 만일 그 땅을 우리의 땅으로 편입을 했더라면 지금은 어떻게 우리의 영토가 이루어져 있을 것인가? 조금은 현재의 입장이 아쉽다. 지난 여름 대마도를 방문하면서 곳곳에 스민 우리 선조들의 흔적을 좇으며, 가슴 아팠던 적이 있다.


세종 초창기의 가장 큰 업적이 군사적 입장에서 대마도 정벌이라면 문치적인 측면에서는 집현전을 재생시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었을 것이다. 가장 중추적이고 뛰어난 자들을 중심으로 집현전에서 일을 하게하고, 젊은 학자들을 대거 발탁하면서 뛰어난 문화 사업을 이루어나갈 바탕이 마련된 때이기도 하다. 그들 중에 나중 계유정란을 통해 희생되는 자들과 세조의 치하에서 나라의 기둥이 되는 자들이 성장한다. 물론 세조의 가장 큰 치적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하는 일들도 집현전 학사들의 도움에 의해서 결실을 맺는다. 집현전이 세종의 업적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관이었고, 그 속에 있는 그들의 손에서 많은 문화들이 정리, 창조되었으리라 생각된다.


1권 글의 마지막에 세종의 형제애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 나온다. 양녕과 효령 대군을 궁중으로 불러 정의를 나누고, 또 양녕이 한 곳에 기거하여 답답해 하니까 강산을 유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양녕이 먼저 평양을 선택하니 세종이 조건을 달고 허락한다. 술을 한 자리에서 3잔 이상 마시지 말 것과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을 것 등이다. 그러면서 양녕의 기질을 잘 아니까 세종이 배려를 해서 평양에서 그가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일을 도모한다. 한 아름다운 여인을 양녕이 묵는 곳 옆집에 기거를 하게하고, 소복을 입혀 양녕과 우연히 해후하게 한다. 그리고 여인에게 못이기는 척 양녕에게 시중을 들게 한다. 양녕은 평양에서 즐거운 생활을 하다가 세종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올라온다. 그때 그 여인은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안달하는 것을, 치마폭에 시 한 수를 적어주고 나중에 데리고 가겠다는 언질을 주면서 혼자 올라온다. 그런데 궁궐에서 세종을 만나 연회를 여는데 그곳에 그 치마를 입은 여인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양녕은 죽을 죄를 지었다고 세종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종은 웃음을 띠면서 자신이 계획한 것임을 밝힌다. 그리고 데리고 가서 같이 살 것을 권유한다. 세종의 배려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세종은 인간적인 면에서도,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도의적인 면에서도 나무랄 데 없는 인물이었다. 백성을 제일로 생각하는 군주의 바른 생각과 관리들이 정직과 솔선수범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이끌어 나가는 것들이 정말 귀감이 된다.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그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는 것이 전제군주국가다. 그런 면에서 세종조의 백성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백성을 가장 먼저 생각했고, 그들의 편의를 위해서 모든 힘을 아끼지 않았던 세종, 우리나라에 이런 지도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기쁨이 되는 책읽기다. 2권이 기다려진다. 

j****3 2017.11.0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