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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한열의 생애를 새삼 돌아본다. 그의 이름 석자를 치고 검색을 해보았다.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후의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22살의 나이에 사망했다. 고 나와있다. 시민 운동가라고 칭한 청년 이한열의 삶의 한순간을 함께 했던 운동화와 함께 김숨의 소설로 복원되었다.
그의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한 것은 아니다. 소설 속 복원전문가인 '나'의 시선으로 L의 운동화를 복원을 결정하기 전까지, 복원을 결정한 뒤 복원을 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김숨은 L의 운동화를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고 최대한 건조하게 표현해냈다. 아마도 슬픔을 드러내는 걸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L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것은 애도의 한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104페이지)
그렇다. L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일은 그를 애도하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그날, L이 운동화를 잃어버린 날의 일들을 기억해내는 일 또한 그를 애도하는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두짝을 신어야 하는 운동화 임에도 한 짝이 잃어버려 운동화 한짝만이 그의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동안 운동화는 스러져가고 그가 민주화를 위해 앞장섰던 날들도 점차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덩그러니 한짝만 보관되어 있던 운동화를 소설속 화자는 오랫동안 고민끝에 복원해내기로 했다. 아마도 잘해내지 못하리라는 것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L의 운동화를 복원해내는 일은 아픔을 함께하는 일이기도 했으므로.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어떤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때는, 그것이 죽어 갈 때가 아닐가. 희미해져 갈 때, 변질되어 갈 때, 파괴되어 갈 때, 소멸되어 갈 때. (33페이지)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이들이 L의 운동화와 똑같은 운동화를 신고 다녔을까? 나는 애타게 L을 기다렸을 왼짝 운동화를 생각한다. 어떤 여학생이 주운 왼쪽 운동화를, 주인이 끝끝내 찾아가지 않았다는, 끝끝내 찾아가지 않아서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갔을 운동화를. (83페이지)
이한열의 운동화 복원이 소설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한 복원가에 의해 복원되었다고 한다. 예술품 즉 그림이나 조형물을 복원해내는 줄만 알았는데, 이처럼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 중요한 디딤돌이 되었을 운동화를 복원해내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디뎠던 발걸음에 의해 닳았을 신발 바닥의 한 부분. 닳은 신발 바닥의 밑창 ,기하학적인 무늬를 맞추어 그의 운동화 한짝을 끝내 찾지 못했던 안타까움을 바라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L의 운동화를 복원해내는 과정에서 화자는 역시 복원가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이소연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역시 아프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 그 아이가 어딘가로 갔다가 찾아오는 길에 왼짝 오른짝 바꿔신은 줄도 모르고 아이의 운동화 끈을 세게 조였던 이야기였다. 그녀가 바라보는 L의 운동화와 화자가 복원해내는 운동화는 서로 하나의 끈을 이룬다.
L의 운동화는 그의 손에 점차 형체를 만들어가며 복원되고 있었다. 28년전의 아픔과 함께.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그의 생명이 되살아나기를 간절하게 소망했던 그를 지키던 사람들의 염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28년전의 그날. 운동화 한짝을 자신의 몸처럼 소중하게 지켰던 그 순간들을 기억해내는 과정이었다.
김숨의 문장에서 나는 이한열의 삶을 생각했다. 곳곳에 슬픔이 배어있었고,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잊고 있었던 사건들, 지금은 역사가 된 사건들이 아프게 다가왔다. 스러지는 운동화를 한 편의 소설로 복원해 내었듯 그날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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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은 절대 분노로부터 오지 않는다 . 호의는 언제나 분노를 이긴다 .' (165쪽)
"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 죗값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 같아 ." " 아침에 그 신문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 . 치러야 하는 죗값이 100그램일 경우 , 100그램에서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말이야 . 단지 죗값을 치러야 하는 기간이 연장되는 것 뿐이지 . 줄어들지는않는것 같거든 ......, 당장은 아니더라도 죗값을 치러야 하는 때가 언젠가는 오는 것 같아 . 죗값이 100그램일 경우 20그램밖에 치르지 않았다면 언제가 80그램을 치러야 하는 때가 반드시 노는게 아닌가 싶어 ." (167쪽)과장
위의 죗값 보존 법칙을 주장하는 이는 복원실의 동료 한과장의 말이고 이론이다 . 얼마 전 끝난 닥터스" 라는 드라마를 보다 한참 생각에 빠지게 한 대사가 있었는데 , 그건 인과응보에 대한 주인공들의 나래이션 부분이었다 . 대략 옮겨보자면 , 인과응보는 한 개인에 있지 않다 . 이 세상 온갖 것들의 형태로 있고 돌아오고 한다 . 뭐 , 그런 내용이었다 . 이 세상의 질서 , 선 과 악 , 그리고 복수...를 놓고 볼때 가장 바람직한 형태라고 평소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누군가의 나래이션으로 들으니 감전 된 것 같이 느껴졌다 . 나만 하는 생각은 아니란 얘기니까 ...... 그럼에도 우린 쉽게 원한과 복수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 미워하는 마음 그건 어딘가로 이어지는 마음이기도 하고 , 그게 끝나면 그저 삶의 큰 이유나 맥락조차 흐려지는 이들이 있으니까 . 죗값 ㅡ 이라 , 어른 들 말에 착한 끝은 있다던가 ... 그렇다고 믿는다 . 그러길 바란다 . 그래야 세상이 조금 더 물큰물큰 감동스러울테니까 , 살만 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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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 쓰는 것에 한계가 있다 .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 분명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 " 라인 홀트너를 좋아한다고 , 말하며 작가 김연수가 "죽음의 지대"라는 걸 이야기 하는 부분이다 . " 그곳에 가면 언어가 제일 먼저 끊어지고 , 모든 인식이 끊어지고 , 공백상태가 찾아온다 . 그걸 지나야 8천미터 위로 올라갈 수 있다 " 라는 식으로 멋있게 표현했어요 *ㅡ라고 , 이 부분을 몇 번이나 다시 , 다시 읽으며 어쩌면 조금 , 아주 조금 옮겨볼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 엄청 더디고 느린 걸음으로 , 그러나 빠르게 부식되고 공기 중에 해체되고 있는 L 의 운동화에 대해 , 그 낡음과 소멸의 진행을 낱낱하게 지켜보는 이의 눈이 되어서 한마디라도 할 수있다면 , 그럼 될 것만 같다고 ...노트만도 열장은 넘을건데 , 사념만 들끓고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나는 포기해야 하나보다 하고 있었다 . 이 대담들을 읽기 전까지는 , 마치 같이 앉아 두런두런 얘기하듯 떠들어준 덕분에 내 기억이 조금씩 그 온도에 반응을 보인 것만 같다 . 잔뜩 공기 중에 노출이 되서 화학 반을을 일으켜 열화 (劣化) 된 것처럼 , 그렇게 스르륵 ! 저마다 다른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 L 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사건의 현장을 같이 한 동기들끼리 모여서 서로의 기억 조각을 꺼내 이리저리 맞춰보면서 누락된 어느 지점에 대해 먹먹하게 말을 잇던 장면들 ....그래서 였을게다 . 김연수 작가의 말에 반응한 것은 , 따로 놓고는 짧게 말하며 지나갈 수 있지만 전체로 정리가 되진 않던 용기를 내게 한다 .흩어진 마음을 경화 (硬化) 시킬 필요가 때론 있다 . 복원같은 건 아니겠지만 , 어쩌면 복원 일지도 ...마음 복원 .
" L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그런데 저마다 꺼내 놓는 기억들이 조금씩 달랐어요 . 미묘하게 다르기도 했고 , 약간 다르기도 했고 , 완전히 다르기도 했어요 . 기억에도 시차 (時差) 같은 것이 존재하는 걸까요 ?" "...... 그런데 신기하게도, 완전히 다른 기억들의 경우 오히려 일치를 보는 것이 쉬웠어요 . 어느 한쪽이 자신의 기억이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고 지레 포기 하거나 , 어느 한쪽이 강력하게 자신의 기억이 맞다고 우기거나 했으니까요 . 문제는 아주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기억들이었어요 . 그런 경우는 어긋난 부분들을 맞추기가 어려웠어요 ." (132 쪽 ) 맞추기가 어려운 미묘한 이야기를 , 아주 거대한 몸통조각을 우리는 알고있다 . 역사라고 부르는 것들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 ... 미세한 차이란 목격자가 아닐까 ...저들처럼 서로 맞다고 혹은 틀리다고 말할 증거인들 , 알 것도 같지만 내것이 그 시간에 있었으니 옳다고 주장한다면 , 지금에 아무도 없고 그저 전달자들만 있는 지금은 무엇을 믿어야 할까 . 자신 혹은 자신이 따르는 믿음의 방향에서 전해주는 것들을 그저 바라 볼 수 밖에 없지 않나 ? 그렇기에 L 의 운동화를 두고 그의 어머니는 모르겠다고 , 저것이 그 L의 운동화라니까 그런가보다 하지 ... 사실 아무것도 선명한 감각으로 알게 되는 건 아닌 것들 . 속삭임 처럼 비물질인 주제에 물질처럼 형태를 감지하게 하고 , 운동화인 주제에 인공의 물질인 주제에 자연 유기물처럼 부패의 냄새조차 산 것들을 따르려하는 운동화 . 이 이야기를 읽으며 어쩌면 이 역사라는 것이 전부 허구같다고 , 그러가보다 하니까 그런가 하지 , 하듯이 ...... 그렇기에 그렇게나 애를 써 증거라는 것을 남기고 추억할 방법 따위를 오래오래 전달하려고 있는 것일 복원가들 , 혹은 역사가들 연구자들 , 학자들 그렇겠지 . 허구의 토대를 믿을 만한 것으로 단단한 실체로 만드는 사람들 . L의 운동화를 읽으며 푸슬거리며 흩어진 마음들이 또 동시에 그 노력 때문에 다시 단단하게 뭉치며 모양을 보이고 있다 . 지금 . 지나간 역사의 한 토막을 섞는건 피하고 싶다 . 가능하다면 , 이대로 이 부분 우리가 보는 몸통이 사실 누구의 주장대로 전부 진실은 아닌거라고 , 그 기록들조차 보여지길 위해 쓰이는 것들이니 지금은 , 그저 자신이 신고 있는 운동화가 전부인냥 살아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 네가 잘못했네 , 내가 잘못했네 하는 한숨나는 이야기들은 멀리 에둘러 가면서 ... 보이스의 죽은 토끼를 끌어안고 그저 다독다독 내 기억만을 내가 아는 전부로 알자고 할 수 밖에 ......어떤 상태를 뛰어 넘어 8천미터 위로 올라가듯이 공백의 상황까지도 품고서 ......
*ㅡ의 부분은 악스트 052 쪽에서 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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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처음에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김숨 소설은 이번이 세번째예요.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을 먼저 봐서 다행입니다. 제가 만약 김숨 소설에서 이것을 가장 처음 봤다면 다른 두권은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이 책 좀 어려웠습니다. L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이야기지만 그것만 말하지 않더군요. 이런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운동화 꼭 복원해야 해, 그 운동화로 뭐 하려고, 하는 생각입니다. L의 운동화는 그때(1980년대) 많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신었습니다. L의 운동화는 많은 운동화에서 하나지만 L이 신었기에 뜻이 있겠지요. 한켤레도 아니고 한짝이지만. 신발 한짝은 어쩐지 쓸쓸해 보입니다. 두짝이 한결레여서 그렇겠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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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마크 퀸의 작품 '셀프'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이 작품은 5년 동안 꾸준히 모은 작가 자신의 피를 재료로 제작한 두상이다. 그의 작품은 재료의 특수성 때문에 반드시 영하 9도의 냉동고 안에서만 온전할 수 있다. 한 수집가가 가지고 있던 그의 작품이 실수로 녹아내린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작가가 의도하고자 했던 인간의 '유한성'을 확실히 증명하게 된다. 설사 다른 생명체의 피로 똑같은 거푸집에 다시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작가가 그것을 만들 당시의 그 피일 수는 없는 것이다. L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과정은 과연 어디까지가 '그'이며 '그의 것'이었거나 '사물 자체'이느냐가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마크 퀸의 작품 이야기가 처음에 등장했을 것이다.
사실 모든 현대 미술은 '어떤' 결과가 나왔느냐보다는, '어떤 의도'로 그것을 전시대에 올려 놓았으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현대미술을 이야기 하는 책의 첫 머리에 항상 '뒤샹의 변기'가 나오는 것은 그러한 관점을 처음 보여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L의 운동화가 L이 남긴 작품처럼 - 뒤샹의 변기가 공산품이었음에도 그의 작품이 되었던 것 처럼 - L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고 이제 화자인 '나'가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채관장에게 처음 L의 운동화 복원을 요청 받았을 때, 나는 28년을 버티다 거의 뇌사상태에 빠진 운동화를 소생시키는 것에 큰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복원에 내키지 않는 이유는 L을 복원하는 자체에서 오는 부담감, 현실적인 시간의 부족, 폴리우레탄 소재의 생경함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또한 복원하는 작업 자체도 어려운 것이지만, 어디까지 복원을 할 것인지, 최소한의 복원에 그칠 것인지, 그도 아니면 지금으니 모양새를 그대로 유지하게만 할 것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L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일련의 과정이 L을 되살리는 작업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가 바로 6월 항쟁의 상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9일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동료가 부축하는 사진은 태극기를 펼치고 상의를 탈의하고 달리는 학생의 모습, 박종철의 영정을 들고 군중이 행진하는 모습과 함께 6월 항쟁을 다룰 때 항상 먼저 떠오르는 사진이다. 그 당시 입었던 연세대학교 티와 운동화는 곧 그를 구성하는 오브제가 되어 그 자체가 된 지 오래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설 전체의 분위기가 그렇듯 하나같이 무겁고 우울한 캐릭터들이다. 소설의 중심은 그 복원가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L의 과거나 복원가나 혹은 주변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복원' 자체에 방점을 두어 L의 운동화가 L을 살려내는 작업에 다름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뭔가 연결고리가 조금 더 있었다면 극적인 재미는 조금 더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진지한 소재를 채택했다는 것이 반드시 전체의 방향을 규정하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운동화의 끈을 풀고 작업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장면이었다. 시위대 최전방에서 전경부대를 방어했던 L은 운동화가 풀리지 않게 하기 위해 독특한 방식으로 끈을 묶었다. 나는 그것이 바로 L이라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어떤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놓기로 결정하는 장면이다.
L의 운동화 끝은 독특한 방식으로 묶여 있다. L의 운동화를 예술 작품이라 가정할 경우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끈이다. ..(중략).. 복원가인 내가 너무 많이 개입한다는 판단에 따라, 나는 끈을 그대로 둔 채 복원 작업을 이어서 진행해 나가기로 결정한다. 그 결정 때문에 복원 과정이 훨씬 더 난해하리라는 걸 잘 알지만.(p.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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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렇게 뜨거운 이야기를 차갑게 썼을까. 김숨의 <L의 운동화>는 여러모로 나의 기대를 배신한 소설이다. L이 이한열 열사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 나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처럼 읽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소설을 상상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소설은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차갑고 서늘하다. 이한열 열사가 상징하는 독재 타도, 민주주의 같은 대의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마음에 남은 얼얼한 여운은 뭘까. 얼음을 만졌는데 동상이 아니라 화상을 입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미술품 복원 전문가인 '나'는 L(이한열 열사)이 타계하기 직전에 신은 운동화 한 짝을 복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에 빠진다. L은 1987년 6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 2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L의 희생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피격 당시 L이 신었던 운동화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다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L의 정신을 기리는 상징물로 남았다. '나'가 복원을 망설이는 것은 L의 운동화를 복원할 실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L이 상징하는 가치에 공감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나'는 L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 흉물처럼 남아 있는 L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일인지 고민한다. L의 운동화를 복원하고 감상하는 것은 결국 산 사람들의 죄책감과 부채감을 달래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L이 신다 만 상태로 남아 있는 운동화에 손을 대는 것은 실상 복원이 아니라 훼손이 아닐까. L의 운동화는 1987년 당시 전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신었던 흔하디흔한 타이거 운동화 중 하나일 뿐인데, L이 신었다는 이유로 복원 대상이 되고 기념관에 전시되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일까. 애초에 이 운동화가 L이 신은 운동화이기는 한 걸까. 나머지 한 짝은 어디 있을까. 소설의 모티프가 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는 실제로 존재한다(신촌역 8번 출구 근처에 있는 이한열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으로 상상한 L의 운동화를 사진으로 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사진 속의 운동화는 L이 신은 운동화라고 보는 게 맞을까, 복원 전문가가 복원한 운동화라고 보는 게 맞을까. 낡고 해진 운동화는 30년이 지나도 복원할 수 있는데 왜 죽은 사람은 복원할 수 없을까. L이 남기고 간 사람들은 저 운동화를 보고 무엇을 생각할까.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끝없이 생성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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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는 미술품 복원가이다. 어느 날, 채 관장으로부터 L의 운동화를 복원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운동화 사진을 본 '나'는 어떤 방식으로 운동화를 복원하는 것이 진정한 복원인지 고뇌에 빠졌다. 비록 예술 작품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담겨진 작가의 의도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복원이 진행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L의 어머니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복원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조심스레 L의 운동화를 운반하여 파라로이드, 에폭시수지 등 화학물질을 조심스레 주입했다. 끈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개인의 물건이 시대의 유물로 되살아나는 순간이라고 저자는 기록한다. '한 기억의 조각을 왜 시대적 유물로 기록해야 할까?'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질문이었다. 소설 속 운동화의 주인인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운동화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만드는 것... 그것은 아픔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야 함을 의미한다.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그 가슴 깊은 속에 맺힌 아픔을 다시 한 번 겪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록'은 그들의 아픔을 승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그의 의로운 죽음을 알리고, 우리의 역사를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기록되는 과정에서 ''복원가'으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복원가는 훼손된 미술 작품을 고치는 의사이자, 바른 역사를 적는 역사가이기도 하다 - 한 개인의 물건을 시대적 유물로 복원할 때 그 유물이 그 사람을 대체하지 않도록, 또 긴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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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한열이 좋아하던 호박잎에 보리밥 한가득 싸서 멕여보고 싶다”던 어머니의 말이 웅웅 거리고 어둡고 깊은 밤에 갇힌 분노가 추잡하고 어이없는 정국 앞에서 또 한 번 끓어 오른다. 매일 새롭게 쏟아지는 참담한 국면과 형편없기 그지없는 검찰의 작태를 바라보는 일이 소설 내부의 시대에서 조금도 달라진 바가 없어, 그저 암울 또 암울, * 복원에 대한 세심한 묘사와 복원가로서의 고뇌를 들여다 볼 수 있어 좋았다. * L의 운동화가 내 작업대를 떠나, 뚜벅뚜벅 작업실을 걸어 나가는 상상을 한다. 복도를 통과해 보존연구소 출입문 밖으로 걸어 L의 운동화는 골목을 헤매다 도로에 이른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어 선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다. 차들이 뜸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넌다. 비둘기 한 쌍이 어슬렁거리는 쓰레기통 앞을 지나,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간다. 개찰구를 통과한다. 지하철이 서고, 문이 열린다. L의 운동화는 잠시 주춤하다 마침내 온갖 신발들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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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집회 중 (당시 일련의 집회에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같은 해 1월에 있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문이었다. 박종철은 그렇게 죽어서 열사가 되었다.) 전경이 쏜 최류탄에 (우리는 그것을 직격탄이라고 불렀다. 허공으로 쏘아야만 하는 그것은 때때로 우리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맞았다. 그리고 사경을 헤매다 다음 달인 7월 5일 사망하였다. 이한열 또한 열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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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도, 증인도 없는 법정을 상상해 보았어요. 피해인석과 증인석은 비어 있고, 사건과 사건 번호와 배심원들과 재판장과 피의자만 있는 법정을요. 그럴 때 L의 운동화가 피해자이자 증인이 되어 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피해자가 이미 죽고 없으니, 피해자를 대신할 운동화를 어떻게든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피해자이자 증인이니, 어떻게든 살아서 증언하도록요. _p.55 최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관련된 기사를 읽었다. 백남준의 대작 '다다익선'이 전시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지난해 2월 '누전에 따른 화재 폭발 위험'이란 공식 진단명을 받고 상영을 중단한 상태였고, 미술관의 상징으로 무늬만 유지해왔던 터였다. '다다익선'은 1986년부터 88년 완성한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의 상징으로 존재했으나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이를 복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술관은 얼마 전 '다다익선' 작품의 시대성을 위해 '원형 유지'를 하겠다는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복원이 어려운 일부에 LED · LCD 등 모니터 교체를 우선 배제하고 브라운관(CRT) 모니터를 그대로 수리·보완을 이어가겠다는 뜻이었다. 『L의 운동화』를 읽지 않았다면 관심 가지지 않았을 기사였다. 『L의 운동화』는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청년 이한열의 운동화가 복원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실제 미술품 복원 사례들을 통해 '복원'의 의미를 언급하며, L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복원'이란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는 것이라면, L의 운동화의 원래 모습은 무엇일까? L이 운동화를 사서 처음 신은 때? 혹은 최루탄을 맞을 당시? 이를 통해 L의 운동화를 최대한 복원해야 할지, 최소한의 보존 처리만 해야 할지, 사망선고가 내리진 운동화의 레플리카를 만들 것인지 스스로 질문을 하며 '복원'의 본질에 대해 말한다. "내가 복원해야 하는 것은, 28년 전 L의 운동화가 아니다. L이 죽고, 28년이라는 시간을 홀로 버틴 L의 운동화다. 1987년 6월의 L의 운동화가 아니라, 2015년 6월의 L의 운동화인 것이다. 28년 전 L의 발에 신겨 있던 운동화를 되살리는 동시에, 28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p.100) 이러한 질문 외에도 『L의 운동화』에는 우리가 기억해야만 하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언급된다.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 효순과 미선, 제주4.3사건, 일본군 위안부 사건, 홀로코스트까지. 역사 속에 억울하게 스러져 간 많은 사람들을 우리 기억 속에 되살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L의 운동화가 복원된다는 소식을 들은 한 사내가 메일을 보내온다. L이 신었던 '타이거' 운동화는 한때 자신의 운동화이기도 했음을, 그 시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운동화를 신고 다녔던지 자신의 친구인 M도, J도, K도 그 운동화를 신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운동화는 L의 운동화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운동화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을 겪어낸 그 시대 모두가. 우리에게도 잊으면 안되는 사건들이 있다. 이제는 스무 분밖에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도, 어이없이 눈앞에서 아이들의 죽음을 목도했던 세월호 사건도. 바쁜 삶에 치여 잠시 잊은 것처럼 살아가다가도 소녀상과 노란 리본을 보면 모두 같은 시간으로 기억은 복원된다. 이 시대를 겪어낸 우리 모두의 기억이고 아픔이었으니까. 아름다운 미술품이나 고시대 유물들처럼 귀중한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기억을, 어떤 기억의 매개체를 남길 수 있을까. "나는 역사를 기억의 투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억은 구체적인 매개물로 형성되고 유지되는데, L의 운동화 같은 물건이 그 매개물이 아닌가 싶어요." (p.135) 어쩌면 우리가 살아있음은 그러한 '기억'들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보며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느꼈던 기억, 세월호 참사를 목도하며 함께 위로하고 분노했던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는 한 그 순간에 나는 살아있던 것이라고. 그 기억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최루탄에 쓰러진 L을 부축한 마음, L을 병원 응급실로 옮긴 마음, L의 운동화를 들고 응급실 앞에서 기다린 마음, L이 툭툭 털고 일어나기를 기도한 마음, L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애도한 마음, 그를 영원히 기억하려는 마음, 그 마음들…. L의 운동화가 그가 그 시대에 살아있었음을, 그의 마지막 순간을 피를 토하며 증언하듯 결국 우리의 기억들도 증언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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