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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황당하고 허술한 사기극이 통했던 이유
"엄청나게 황당하고 허술한 사기극이 통했던 이유" 내용보기
18세기 경 프랑스에서 예수, 카이사르 등 역사적 인물의 편지를 대거 위조한 사기꾼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황당한 것은, 종이에 그 당시의 프랑스어로 글을 써서 편지를 위조했다는 것이다.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종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는데다가, 이천여 년 전의 인물이 쓴 편지라면서 프랑스어로 쓰다니! 이건 한국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A4 용지에 한글로 글을 써 놓고, 광개
"엄청나게 황당하고 허술한 사기극이 통했던 이유" 내용보기

18세기 경 프랑스에서 예수, 카이사르 등 역사적 인물의 편지를 대거 위조한 사기꾼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황당한 것은, 종이에 그 당시의 프랑스어로 글을 써서 편지를 위조했다는 것이다.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종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는데다가, 이천여 년 전의 인물이 쓴 편지라면서 프랑스어로 쓰다니! 이건 한국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A4 용지에 한글로 글을 써 놓고, 광개토대왕의 친필이라고 사기친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잠깐이나마 이런 사기극이 통했다는 것이 정말 황당하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허술하고 황당한 사기극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사건이 있었으니, 아일랜드라는 10대 소년이 셰익스피어의 필적과 편지를 끊임없이 대량으로 위조했던 사건이었다.

 

<셰익스피어 사기극>은 아일랜드의 위조 사기극을 전면으로 다룬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위조작들이 유명세를 탄 후 위조라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는 형식이 아니라, 아일랜드의 전기처럼 아일랜드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위조하는 모습을 먼저 묘사한 후 세간의 논란으로 넘어간다. 책을 읽다 보면, 아일랜드의 사기극이 사기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할 정도로 허술하고 어처구니없이 거창해서 할 말을 잃게 된다. 이런 사기극을 진짜라고 믿었던 사람이 있었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을 때 옹호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셰익스피어의 필적과 원고가 발견되기를 고대했던 만큼 위작을 진품이라 믿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이렇게 황당한 위작을 보고 의심도 들지 않았단 말인가?

 

아일랜드는 적당히 오래된 것처럼 보인 종이에 대강 글을 쓰고 셰익스피어라는 서명을 하고는 셰익스피어의 문서라고 했고, 근처 고서점에서 오래된 책을 구입해 책 곳곳에 메모를 남기고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적어서 셰익스피어의 장서라고 말했다. 아일랜드는 자신의 위조품을 어디까지나 부친에게만 보여주었다. 셰익스피어 연구자가 되고 싶어하던 아일랜드의 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했고, 셰익스피어의 새로운 문서가 발견되었다면서 세상에 알린다. 아일랜드는 셰익스피어의 오래된 원고가 보존되어 있을 만한 출천을 꾸며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위조품을 만들어냈고, 사건은 위조품의 양으로나 사회적 파장으로나 점차 커져갔다. 아일랜드의 사기극은 <보티건과 로웨나> 사건에서 정점을 찍는다. 자신이 직접 작품을 하나 쓰고는, 셰익스피어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새롭게 발견되었다고 꾸며낸 것이다. 정말 이걸 믿었다고?

 

특히 아일랜드의 아버지가 그 서투른 위작들을 진품이라 믿었던 이유가 압권이었다. 아들이 선량하고 정직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면 나름대로 애틋한 부자가 되었을 테고, 진품이라 믿는다고 이미 널리 공언했기 때문에 자신의 오판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 끝까지 고집부렸다면 심리학적으로 설명이 될 텐데, 실제 이유는 터무니없다 못해 위조범 아일랜드에게 일말의 동정까지 가는 것이었다. 글쎄, 그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들이 너무나도 멍청했기 때문에, 그런 위조를 할 정도의 지능이 없다고 단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일랜드가 처음 위조를 시작한 것은 셰익스피어에 관심을 가지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자신이 인정받고 싶어서였다고 털어놓았는데 동조는 못 하고 용납은 안 되어도 수긍은 되었더랬다.

 

<셰익스피어 사기극>의 이야기는 입방아를 찧으면서 조잘댈 만한 이야깃거리다. 사기사건이지만, 끔찍한 범죄가 아니라 웃기고 황당한 해프닝에 가까운 것이니 말이다. <셰익스피어 사기극>이 시사하는 것은 아일랜드의 위조 행각이 아니라, 그런 어처구니없는 위조를 믿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덧 독자는 반문하게 된다. 이렇게 대대적인 사기행각이 또다시 일어나면, 우리는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오래된 종이에 오래된 잉크로 글을 쓰면 과학검사는 대강 통과할 텐데, 그런 위조품이 나타나면 우리는 냉철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적어도, 열광에 함몰되지 않는 것이 관건인 것만은 확실하다.

p*******1 2011.01.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