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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에는 표류 경험자가 많았다 -탐라문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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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면 '로빈슨 크루소'나 '15소년 표류기'부터 떠오르는데, 18세기 조선에서도 표류기가 있었다. 그전부터 조선에 이양선이 출몰했고, 하멜처럼 표류하다 고국으로 돌아간 이도 나온 걸 보면 탐라에서도 표류경험이 있는 백성이 여럿이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탐라문견록'은  제주 목사로 부임한 부친을 따라 탐라로 갔던 정운경이 탐라에 관련한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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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면 '로빈슨 크루소'나 '15소년 표류기'부터 떠오르는데, 18세기 조선에서도 표류기가 있었다. 그전부터 조선에 이양선이 출몰했고, 하멜처럼 표류하다 고국으로 돌아간 이도 나온 걸 보면 탐라에서도 표류경험이 있는 백성이 여럿이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탐라문견록'은  제주 목사로 부임한 부친을 따라 탐라로 갔던 정운경이 탐라에 관련한 내용을 담아 펴낸 책이다. 아무래도 섬이었던 탐라는 뭍과 다른 점이 많았을 것이고, 정운경은 그런 탐라의 자연황경과 풍경, 풍습 등 탐라를 '문견'한 기록과 함께 탐라 주민의 표류기 15편을 실었다. 이 중에서 '귤보'에서는 귤에 관해, 즉 귤 모양이나 쓰임새에 대해 기재하고 있는데, 한양에서라면 양반이라도 해도 귤을 보고 맛볼 기회가 흔치는 않았을 것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본 탐라는 이국적이면서도 신선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당시에는 널리 읽히고 이익이나 박지원같이 쟁쟁한 인물들이 언급할 정도로 주목받은 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후세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다가 이번에 정민 선생이 자료를 찾아 이렇게 다시 펴낸 것이다.

 

안남국(安南國),소록국(蘇祿國),유구국(琉球國)..차례대로 지금의 베트남, 인도 네시아, 오키나와를 이르는 말인데, '탐라문견록'에 실려있는 열다섯 편의 표류기에 등장하는 나라이다. 이외에도 대만도 포함돼 있다.

탐라백성이 표류지에서 머무는 눈에 들어온 풍습이나 민심, 왕들에 대해 보고 들은 내용이 간단하게 실려있는데,  여러 명의 표류기인지라 '탐라 문견록'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표류하는 동안 초미의 관심사는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불안했지만 그들 눈에 비친 풍경은 무사히 귀국한 뒤에도 잊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표류자들의 신분을 보면 관노나 탐라주민이 대부분인데, 어떻게 이들이 짧긴 하지만 표류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것은 정운경의 노력덕분이다. 정운경은 이들을 요즘 말로 인터뷰했고, 그 기록을 남긴 것이다. 부친임지에 왔지만 섬이다 보니 달리 할일 없으니 그랬나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다가도, 정운경이 상당히 호기심많고 성실한 기록자였다는 것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 표류기는 외국 문물이나 문화를 접할 수 없었던 백성들의 눈에 비친 조선 밖 넓은 세상의 모습이었다. 이들이 언급한 정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고 이색적인 풍경이었을 것이고, 이들이 바다밖 넓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켰을 것이다.

정보로서뿐만 아니라 표류기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감이었다. 한편한편 모두 소설감으로 충분했지만, 정운경은 담백하게 마무리했고, 마지막에 '최담석전'은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기록했다. 표류해서 소식이 끊어진 아버지와 몇십 년 뒤에 재회하기까지 그야 말로 드라마틱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표류기 외에도 정운경은 한라산을 등반하는 등 탐라 곳곳을 여행하고 둘러본 기록을 이 책에 함께 담았다.

 

'탐라문견'을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더 것은 18세기 조선의 현주소였다.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주변 국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있었던지. 표류민들을 귀환시키는 과정에서 일처리가 미숙하기 이를 데 없었고, 표류민들을 태우고 조선에 입항한 일본배의 경우 조선배보다 훨씬 우수했음에도 그 기술을 배우기는 커녕 배를 불살라 버렸다고 하니. 요즘 같으면 기술이전 받으려면 치뤄야 할 댓가가 만만치 않은데 조선은 여전히 변화에 둔감했고, 천하태평이었다. 한 마디로 조선의 발전이나 변화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안이한 정신이고 태도였다.

 

앞서 언급한 '로빈슨 크루소'나 '15소년 표류기'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지리상의 발견으로 바닷길을 개척하고, 더 나아가 팽창적 제국주의의 조짐을 일러주는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반면 '탐라문견록'을 보면 조선은 채 한세기도 못돼서 닥쳐올 제국주의의 비수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운경은 훌륭한 기록자였다. 하지만 이 '문견록'은  보고 들은 기록으로 머물렀다. 조선사회에서 조선 밖 세상, 바다 너머를 찾아가려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충족시키려는 시도나 도전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시도가 과학과 기술에 대한 수요를 부르고,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기회가 될텐데.

조선 사대부들은 보고 들은 것을 남기는 기록문화나 인문정신은 분명 빼어났지만 그 정신만큼 행동을 수반하지 못했고, 미래에 대비하지 못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e****0 2015.04.19. 신고 공감 8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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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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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완료! 2021. 5. 1 바다밖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깊게 파고들거나 널리 퍼지게 만드는 천하관을 가진 인물은 드물었다. 제주 고유/토속의 문화나 민속 탐구는 거의 없다. 정운경이 표류민을 하나하나 인터뷰하고 기록을 남겼다기에는 기록이 자세하지 않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탐라문견록에 따르면 정운경은 제주를 한바퀴 일주하고 반시계 방향으로 모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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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완료! 2021. 5. 1

바다밖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깊게 파고들거나 널리 퍼지게 만드는 천하관을 가진 인물은 드물었다.

제주 고유/토속의 문화나 민속 탐구는 거의 없다.

정운경이 표류민을 하나하나 인터뷰하고 기록을 남겼다기에는 기록이 자세하지 않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탐라문견록에 따르면 정운경은 제주를 한바퀴 일주하고 반시계 방향으로 모슬포, 산방산 정도까지 돌아보고 온게 다다.

그러니 그 풍토, 풍습에 대한 기록이 뛰어날 수가 없다.

부록의 귤보도 직접 다 먹어보고 혹은 찾아보고 적은 것인지 의심이 든다.

책을 소개하는 설명에 과장이 많아 거부감이 든다.

표류민들의 이야기 중 흥미로운 것들이 조금 있다.

-조선인들은 표류 당해서 조난되면 일단 울고부터 본다. 동정심 유발

-제주도민들이 출신지를 전라도라 숨기는 배경

-의외로 표류했던 사람들이 17,18세기에 많았던 것 같다.

-조선시대 표류민에 대한 연구는 미약하다.

-일본의 철저한 심문, 표류민 송환 체계

-표류민들이 다른 나라에서 보고오는 물산, 경제, 정치, 사회 등의 폭이 좁고 거의 없다.

-표류한 깡촌 백성들 (제주민) 까지도 소중화주의에 매몰된 모습

t*******g 2021.05.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