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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 담배의 모든 것>의 구성
이 책은 크게 서문, 1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18세기 조선의
흡연 문화사’라는 제목으로 저자인 이옥(李鈺, 1760~1815)에
대한 소개와 <연경(烟經)>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들을 설명하고 있다.
1부는 <연경(烟經)>의
번역으로 담배의 재배(첫째 권), 담배의 원산지와 전래, 성질 및 맛, 피우는 방법(둘째
권), 담배를 피우는 데 사용되는 도구(셋째 권), 담배를 피우는 이치(넷째 권) 등을
각각 다루고 있다.
2부는 담배에 관한 11가지 글을 수록하고 있는데, 담배가 유입된 지 100여 년 밖에 되지 않는, 18세기 조선의 흡연 옹호론과 금연론을
보여준다.
흡연 옹호론에 속하는 글로는 담배를 의인화하여 쓴 가전체(假傳體) 소설인 이옥(李鈺)의 <담배의 일생[南靈傳]>과 노촌(老村) 임상덕(林象德, 1683~1719)의 <담파고의
일생[淡婆姑傳]>이 있고, 정조(正祖)의 <남령초(南靈草)를
주제로 질문에 답하라[南靈草 策問]>, 둔와(遯窩) 임수간(任守幹, 1665~1721)의 <연다부(烟茶賦)>, 청광자(淸狂子) 박사형(朴士亨, 1635~1706)의
<남초가(南草歌)>
등이 있다. 반대로 금연론에 속하는 글로는 이덕리(李德履, 1728~?)의 <금연책을
제안한다[記烟茶]>, 소암(笑庵) 이현목(李顯穆)의
<담바고 사연[淡巴苽說]>, 일수호(一水戶) 황인기(黃仁紀, 1747~1831)의 <남초
이야기[南草說]>,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 1741~1826)의 <어른과
어린이의 윤리와 높은 자와 낮은 자의 질서가 담배로 인해 파괴된다[論長幼尊卑之壞於南草]> 등이 있다.
부록으로 <연경(烟經)>의 원문과 영인본이 수록되어, <논어(論語)> 등
고전을 공부하듯이 참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8세기 조선 선비가 본 흡연
풍속
저자인 이옥(李鈺)은 “성균관 유생으로 있던
1792년 국왕이 출제한 문장 시험에 소품체(小品體)를
구사하여, 정조 임금으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엄명을 받기도 했다. 일과(日課)로 사륙문(四六文) 50수를 지어 옛 문체를 완전히 고친 다음에야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는 징벌을 받았고, 또 경상도 삼가현[지금의
합천]에 충군(充軍; 천역(賤役)으로 간주되는 수군 등에 강제 복무토록 하는 형벌)을 당한, 쓰라린 체험도 하였다. 그로
인해 관계(官界)로의 진출이 막혀버려, 이후 문학 창작에만 매달리며 일생을 보냈다.1)”
이렇게 자기만의 문체와 내용을 고집한 끝에 출세길이 막혔지만, 끝까지 자신의 소신을 고집했던 이였기에 “나는 담배에 심한 고질병을
가지고 있다. 담배를 몹시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즐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남들이 비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망령을 부려 자료를 정리하여 저술을 내놓는다2)”고 말하고 <연경(烟經)>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애연가(愛煙家)를 자부하는 그조차도 용납하기 어려운 흡연 풍습이 있으니,
“◎ 어린아이가 한 길이나 되는 긴 담뱃대를 입에 문 채 서서 피운다. 또 가끔씩 이
사이로 침을 뱉는다. 가증스러운 놈!
◎ 규방의 다홍치마를 입은 부인이 낭군을 마주한 채 유유자적 담배를 피운다. 부끄럽다.
◎ 젊은 계집종이 부뚜막에 걸터앉아 안개를 토해내듯
담배를 피워댄다. 호되게 맞아야 한다.
◎ 시골 사람이 다섯 자 길이의 흰 대나무 담배통에
담뱃잎을 가루로 내어 침을 뱉어 섞는다. 그 다음 불을 당겨 몇 모금 빨자 벌써 끝이다. 화로에 침을 퉤 뱉고는 앉은 자리에 재를 덮어버린다. 민망하기 짝이
없다
◎ 망가진 패랭이를 쓴 거지가 지팡이와 길이가 같은 담뱃대를 들었다. 길 가는 사람을 가로막고 한양의 종성연(鐘聲烟) 한 대를 달랜다. 겁나는 놈이다.
◎ 대갓집 종놈이 짧지 않은 담뱃대를 가로 물고 그 비싼 서초(西草)를 마음껏 태운다. 그
앞을 손님이 지나가도 잠시도 피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몽둥이로 내리칠 놈!3)”와 같은 경우다.
그렇다면 금연론자(禁煙論者)의
입장에서는 어떤 흡연 풍습이 눈에 거슬렸을까?
윤기(尹愭)는 <어른과 어린이의 윤리와 높은 자와 낮은 자의 질서가 담배로
인해 파괴된다[論長幼尊卑之壞於南草]>에서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태어난 지 열 살 남짓 되면 남녀와 귀천을
따질 것 없이 모두 담배를 배워 피운다. 아들과 아우가 아버지와 형 옆에서 담배를 가로 물고 있고, 노비가 그 주인 앞에서 담배 연기를 품어대고 있다. 그러니 젊은이가
어른을 대하고 천한 자가 귀한 자를 대하는 태도야 다시 말해 무엇하랴!
내가 어렸을 때는 그래도, 어린아이와 비천한
자는 짧고 짧은 연죽(煙竹)을 사용했고, 어른이 보지 않는 장소에서 숨어 피워 마치 금지하는 행위를 저지르는 태도를 보였다. 지금은 노비나 사환(使喚)같이 천한 일에 종사하는 자라도 반드시 한 길이 넘는 긴 담뱃대를
바로 물고 조금도 어른을 피하려 들지 않는다. 또 천한 자들이 존귀한 사람이 있는 장소를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어른과 노인들 앞에서 불을 피워대며, 마주 보고 두 다리를 쭉 뻗은 채 연기를 뿜어대며
웃고 떠든다. 그런데도 존귀한 사람이나 어른들이 그런 행위를 탓하지 않는다.4)”
일단 이들의 글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어린아이들의 흡연이다. 왜
어린아이들이 흡연을 했고, 그것이 묵인되었을까?
여기에는 대가 긴 담뱃대, 즉 장죽(長竹)의 존재가 작용했다. “왜냐하면 기다란 장죽을 입에 문 상태에서는 대통에 손이 닿지 않았으므로 누군가가 불을 붙여주어야 했고, 따라서 장죽을 피우려면 불 붙여주는 종을 거느리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불
붙여줄 종을 거느릴 처지가 못 되는 사람은 장죽을 피울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이치였다.
그런데 장죽에 불 붙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가
긴 만큼 세게 빨아들여야 겨우 불이 붙었다. 그래서 양반 체면에 볼 씰룩이면서 불 붙이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하여 (담배를 붙여주는
종인) 어린아이에게 담뱃대를 빨아 불이 붙게 한 다음 불
붙은 담뱃대를 넘겨받는 양반이 꽤 많았다고 한다. 양반의 체모 유지를 위해 아이들의 흡연이 조장된 셈이다.5)”
심지어 순조(純祖, 재위 1800~1834)때에 이르면 임금이 “담배 피우는 속습(俗習)이 이미 고질이 되어 남녀노소를 논할 것없이 즐기지 않는 사람이
없어 겨우 젖먹이를 면하면 으레 황죽(담뱃대)으로 담배를
피운다6)”고 개탄한 내용이 실록에
실릴 정도였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남령초(南靈草)를 주제로 질문에 답하라[南靈草
策問]>에서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자신이 담배의 혜택을 입지 못한 백성들에게 담배를 피우게 할 의무가
있으며, 담배를 배격하는 사람들을 계도할 사명감(을 느끼고) “우리
강토의 백성들에게 베풀어줌으로써 그 혜택을 함께하고 그 효과를 확산”시켜고자 한다고 선언7)”했던 유명한 골초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의 희망사항이 실현된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만약 이옥(李鈺)을 비롯한 18세기 애연가들이 오늘날 태어나서 ‘흡연은 질병입니다.’라는 구호로, 담배를 구입하는 것이 폐암과 같은 질병을 구입하는
것이라는 공익 광고를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그들은 상관없이 담배를 피울 것이다. 지금만큼은 아닐지라도 당시에도 이미 담배의 유해성이 알려진 상태에서 열심히 담배를 태웠으니까.
지금도 담배의 유해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기호식품이지만 한번 접하면 끊을 수 없는 그 중독성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닌가.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이옥,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안대희
옮김, (휴머니스트, 2008), p. 18 2) 이옥,
앞의 책, p. 33 3) 이옥,
앞의 책, pp. 111~112 4) 이옥,
앞의 책, pp. 202~204 5) 박은봉,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책과 함께, 2007), p. 385 6) 박은봉, 앞의 책, p. 383 7) 이옥,
앞의 책, p.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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