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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의 몸을 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담을 헐다.
""에도의 몸을 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담을 헐다." 내용보기
『에도의 몸을 열다』(타이먼 스크리치, 박경희 역/ 그린비, 2007)는 어렵지만, 읽혀지는 책이다. 어렵다는 것은 낯선 한자어나 당대 일본인의 명단이 끝도 없이 이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어지럼증 탓이기도 하고, 독자로서 서양 미술사나 해부학에 대한 기반지식이 무른 탓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꿋꿋이 읽혀지는 까닭은 ‘해부학’의 전래를 통해 일본의 근대를 돌아본
""에도의 몸을 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담을 헐다." 내용보기

『에도의 몸을 열다』(타이먼 스크리치, 박경희 역/ 그린비, 2007)는 어렵지만, 읽혀지는 책이다. 어렵다는 것은 낯선 한자어나 당대 일본인의 명단이 끝도 없이 이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어지럼증 탓이기도 하고, 독자로서 서양 미술사나 해부학에 대한 기반지식이 무른 탓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꿋꿋이 읽혀지는 까닭은 ‘해부학’의 전래를 통해 일본의 근대를 돌아본다는 발상이 신선했고, 해부학의 여러 특성과 전래과정에서 보여 지는 몇몇 인상적인 장면에서 근대국가/문화와의 공통점을 발견해내는 저자의 감식안이 기발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에도로 대표되는 18c 일본을 어떤 의미에서건 ‘닫힌’ 상태로 규정하고, ‘하나의 물질을 하나의 전체로 인식’하는 일본과 ‘물질의 안을 열어 하나하나 드러내는’ 특성을 가진 서양의 만남을 통해 일본의 근대를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을 위해 동서양이 대면하는 접점으로 해부학을 겨냥한 것은 탁월하면서도 용기 있는 선택으로 보인다. (‘용기 있다’ 라고 말한 것은 부럽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높다랗게 담을 쌓은 현재의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시도이기 때문이다.)    

 

 표제 중 ‘에도의 몸’과 ‘열다’의 의미는 중의적이다. 에도의 몸은 ‘에도(시대)인의 몸’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5장에서 드러나듯 ‘정부(혹은 국가)로서의 에도’라는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열다’ 역시 관점에 따라 해부학적인 행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고 ‘문호의 개방’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따라서 표제에서 드러나는 이 책의 목적은 일본의 근대를 기존의거시적인 정치사ㆍ경제사의 관점으로만 관찰하지 않고 학술사ㆍ문화사적으로도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18c의 일본, 도쿠가와 바쿠후 치세의 에도는 상공업 발전과 더불어 봉건제 말기의 모순들이 드러나면서 체제의 기반인 농민층의 동요와 해체가 시작되던 상황이었다. 이에 대한 지주층의 대응은 식산흥업, 즉 농업생산량의 증대를 통한 체제 강화였는데 그러한 생산량 증대를 위해 이용된 것이 바로 난학을 비롯한 서양과학이었다. 1592년의 천주교 박해 이래로 일본 내 기득권층이 고수해 온 쇄국정책의 빗장이, 거꾸로 자신들의 체제 사수를 위해 풀려지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난학의 적극적인 수용 움직임이 일어나는 와중에 독일 출신의 요한 쿨무스(Johann Adam Kulmus)가 낸 해부학서 『타펠 아나토미아』(Anatomische tabellen)와 몇몇 다른 의학서의 번역본인 『해체신서』가 출간 되면서 일본에서 본격적인 해부학의 시대가 열린다. 책의 출간과정에는 서양의 동판인쇄술과 일본 내의 화가들이 동원되는데, 저자는 이점에 주목해 해부학의 탄생이 기술ㆍ문화적인 측면과도 연계되어 일본 근대의 전조로서 일정하게 기능했다고 본다. 인쇄술을 비롯한 기술의 보급은 물론이고 경험을 중시하는 서양근대 과학 관념의 유입은 지리학 등 여러 방면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끌었고, 『뱃속 수도 음식물 전투』, 『열네 미인의 뱃속』등, 당시의 소설과 그림에서도 보여지 듯 해부학은 당대 문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국가를 신체에 견주어 봄으로써 중앙집권적 국민 국가 개념의 형성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저자인 타이먼 스크리치는 미술사학자이면서 아시아, 특히 일본학 연구자로 해부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현미경을 통해 일본의 18c를 분석했다. 18c 『해체신서』의 번역자들이 전문적인 해부학자가 아니었던 것처럼 저자 역시 그 분야의 전공자는 아니다. 그 때문일까, 저자는 해부학을 매개로한 일본 분석을 거듭하면서도 해석에 있어서는 매우 조심스럽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한 번도 단언하지 않는다. 해부학의 전래가 18c 일본의 변화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만 그것이 근대로 진입하는 결정적인 열쇠인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미시사, 혹은 생활문화사적 관점의 특징으로 볼 수도 있고 한편으로 넘치는 것을 경계하는 저자의 균형 감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소 모호해 보이는 저자의 스탠스에 대신 변명을 하자면 우선,『해체신서』의 등장과 일본의 근대를 맞물려 놓고 보기에는 1세기 가까운 시차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처음 번역된 1700년대 후반은 일본 내에서 쇄국정책이 공식적으로, 그리고 거의 전면적으로 유지되던 시기였다. 일본이 근대 서양과 동양의 힘의 차이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것은 1840년 아편전쟁이 벌어진 다음이었고, 보다 직접적인 체험은 그 뒤로도 10년이 더 지난 상황에서 이루어 졌다. 18c 일본은 아라이 하쿠세키로 대표되는 유학자들이 여전히 지식인의 주류를 점하고 있었으며 ‘근대 일본의 현자’로 칭송되는 후쿠자와 유키치 류의 근대적 지식인이 활약하기 까지는 1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즉 18c 해부학을 비롯한 서양문명의 전래를 당시 일본 내의 특정한 하나의 조류로서 해석한다면 모르되 이를 일본 근대의 지표로 제시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저자의 다소 애매모호한 견해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해할 만하고 타당하다.

 

 그렇다면 비판할 점은 없을까? 먼저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했지만 표제에서도 드러나듯, 저자는 근대 이전의 일본, 해부학 전래 이전의 에도를  ‘닫힌’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 ‘살아있는 것을 하나의 전체’로 본다는 것이 과연 일본과 동양만의 특성인지, 과연 서양에는 이런 특성이 없었는지, 이는 서양사상사를 통해 따로 논쟁해 볼 만한 사안이지만 닫힌 일본과 열린 서양(혹은 근대)라는 이분법은 저자의 조심스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를 두기에 충분한 논리이다. 다음으로 지적할 점은 그 당시 일본을 비롯한 동양 의학에는 과연 해부학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유학자이면서 한의학자인 김용옥은 EBS 주최로 열린 한 방송 강연에서 금ㆍ원 시대까지 중국을 중심으로 해부학이 꾸준히 발전해왔으며 적어도 당시까지는 동양의 해부학 수준이 서양 이상의 것이었음을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16c에 편찬된 동의보감은 해부학이 한의학에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김용옥은 해부학이 서양에서는 잦은 전쟁과 전염병 연구로 인해 외과 수술의 방편으로 쓰여 지면서 발전을 거듭한 반면에, 상대적으로 그러한 상황이 적었던 동양에서는 내장 각 부분의 기능을 이해하는 정도의 최소한의 연구만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중세이후 발전 속도가 더디었다고 말한다. 김용옥의 견해에 전부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저자가 <닫힌 일본 : 열린 서양(근대)>의 구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해부학을 끌어온 것이라면, 이는 이전까지 저자가 해부학을 선용함으로써 획득한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책의 설득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불안요소로 작용한다.

 

 

참고 문헌

 

노형석,  "18c 조선이 일본에서 본 것은?", 한겨레21, 695호, 2008

조현범,  "문명과 야만 : 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 책세상, 2002

한상일, "일본 지식인과 한국 : 한국관의 원형과 변형", 오름, 2000  

b****2 2008.06.21. 신고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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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는 서양의학의 이상(理想)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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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열다’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에도의 몸을 열다>라는 제목으로 대상이 구체화되면서 에도시대의 사회상을 살펴본다는 의미가 조금 더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본 18세기의 일본’이라는 부제를 보면 난학과 해부학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는 것으로 보아, ‘일본이 에도시대에 들어와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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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열다’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에도의 몸을 열다>라는 제목으로 대상이 구체화되면서 에도시대의 사회상을 살펴본다는 의미가 조금 더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본 18세기의 일본’이라는 부제를 보면 난학과 해부학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는 것으로 보아, ‘일본이 에도시대에 들어와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려 하는구나’ 정도로 시야를 좁힐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보니 ‘여는’ 주체에 따라서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닫혀 있는 문을 여는 힘이 안으로부터 작용하는지, 혹은 밖으로부터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 힘에 대한 반응의 크기도 상황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 입니다. 그렇다면, 난학이 에도의 문을 열고, 에도가 난학을 수용하면서 에도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오늘의 일본이 가능하게 된 전환점이 된 것이라는 내용을 담았겠다고 미루어 짐작하면서 읽기 시작했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변화를 내부에서 평가하는 것과 외부에서 평가하는 것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겠다싶은데, <에도의 몸을 열다>는 18세기에 난학이 에도의 문을 열었던 것처럼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타이먼 스크리치교수라는 영국인의 눈으로 에도문명이 어떤 변화과정을 겪었는지 살피는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13세기 경기병을 앞세운 몽고제국의 침략은 유럽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습니다. 당-송을 거쳐 금-원-명으로 이어지는 중국문명의 발전은 눈부신바 있어 암흑기라 부르던 유럽문명을 앞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동양문명은 유럽의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명에는 부침이 있기 마련, 유럽이 르네상스운동을 통하여 대두된 인문주의의 확산으로 빠르게 발전하는 동안 이번에는 동아시아문명이 침체기에 들어섰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에도의 몸을 열다>의 저자는 미술사를 전공한 학자답게 풍부한 미술작품을 인용하여 18세기 당시의 에도사회가 서양문명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일본 역시 근대기에 외국과의 교류에 적극 나서지 않는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유럽 열강과 당시 부상하던 미국이 아시아항로를 개척하여 유지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일본을 개방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역사학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4363872). 그러한 시대적 요구 말고도 비슷한 시기에 동아시아 3국에 전해진 서양의학을 중국과 우리나라는 수용하지 않은데 반하여 일본은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통의학을 버리기까지 하게 된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에도의 몸을 열다>를 통하여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칼’을 이야기의 핵심키워드로 삼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근대미술에 등장하는 칼, 특히 정물과 해부학실습에 관한 그림들 등장하는 칼에 담겨진 의미와 일본의 전통 사무라이문화에 등장하는 칼의 의미를 좇아 일본이 난의학, 특히 외과영역을 받아들이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양적 사유로서는 사물을 전체로 조감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네덜란드 문화에서는 닫힌 사물은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에 내부를 열어보아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역시 전국시대까지는 사무라이의 칼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다음 내린 무기몰수령 이후 사무라이계급의 ‘칼’은 상징적인 존재로 무력화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칼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은 지대할 수밖에 없었는데, 네덜란드의 문물이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칼과 가위와 같은 날붙이들에 대한 문화적 공감이 가능했던 것이라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제2장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네덜란드의 의학, 특히 칼을 매개로 하는 해부학, 외과학이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이미 18세기 초반부터 네덜란드로부터 외과도구들이 수입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아니라 1800년에는 니시구라쿠(西苦樂)가 <난의 두부외과수술도(蘭醫 頭部外科手術圖)>를 그렸다고 하니 서양의학의 외과수술법이 일본에는 생소한 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동아시아국가들의 전통의학 영역에서는 해부나 외과수술에서 주로 하는 신체를 절개하는 행위는 관심 밖이었기 때문에 일본인의 시각에서 서양의학의 해부학이나 외과수술은 경이적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난의학을 행하는 자들에게 해부학 지식은 필수사항이었던 관계로 유럽해부학교과서를 저본으로 하여 <해체신서>가 출간된 것은 1774년이었지만, 일본전통의학에서는 신체를 절개하는 시술을 멸시하였기 때문에 난의학에 관심을 많은 일부의 호사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해체신서의 저자가 강조한 다음 글을 보면 현재의 의학교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의학에서의 해부학의 중요성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하겠습니다. “해부학 책은 도보(圖譜)를 비교해 보며 읽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러므로 각 조목에 반드시 그림이 있다. 또 부인(符印)을 적어서 관람하는 데 편리하게 했다. 독자는 적절하게 서로 비교해 보는 데 소홀함이 없게 하라.(169쪽)”

 

결국은 외과시술을 통하여 극적인 치료효과가 주목을 받으면서 해부학에 대한 관심 역시 자연스럽게 커지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유럽사회에서도 사체를 훼손하는 것을 금하던 시절이 있어 의사들이 해부를 위한 사체확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비상식적 행위까지도 불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멜라키 킹 지음,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사람의 무늬 펴냄; http://blog.yes24.com/document/5381957). 일본 역시 사체해부는 주로 사형수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중국에서도 드물게 이루어지던 것으로 차이가 있다면 해부결과를 기록한 그림이 서양의학의 영향을 받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일 듯합니다.

 

이 책에서는 일본집권층이 일본의 전통의학을 폐하고 서양의학을 나라의 주류의학체계로 세우게 된 배경을 생략하고 있습니다만, 서양의학에 일본에서만 적극적으로 수용된 배경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서양의학이 유독 일본에만 전해진 것은 아닙니다. 당시 북경은 서양문명이 쏟아져 들어오던 곳이며, 서양의학 역시 중국어로 번역 소개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북경에 왕래가 잦았던 조선의 선비들 가운데 서양의학에 관심을 두었을 법한 인물들도 적지 않았을 터입니다.

 

역시 18세기 들어 실학자들이 남긴 서양의학에 대한 기록을 보면, 서양의학의 생리학, 혈액, 호흡, 신경계에 관한 내용을 적은 이익의 〈성호사설 星湖僿說〉전염병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이헌길의 〈마진방 麻疹方〉이나 정약용의 <마과회통 麻科會通> 등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마과회통〉에는 천연두 치료를 위한 제너의 종두법이 소개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실학자들은 대부분 권력과 거리가 있는 남인세력이었던 까닭으로 국가정책으로 적극 채택되지 못하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왜란과 호란으로 어수선한 국내상황으로 외래 문물에 대한 관심이 크기 못하였던데다가 1621년 허준에 의하여 <동의보감 東醫寶鑑>이 완성된 것이 전통의학에 대한 의존을 키웠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에도의 몸을 열다>의 뛰어난 점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네덜란드 의학이 에도시대에 전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에도시대의 음식문화, 지리학 그리고 여행을 인체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윌리엄 하비의 혈액순환설을 인용하여 심장과 동정맥에 대한 해부도를 설명한 부분에서 오랫동안 눈길을 옮길 수 없었습니다. “혈액이 지장없이 원활하게 흐르려면 신체 내의 모든 동맥, 정맥이 깨끗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라가 통일 상태를 유지하려면 모든 길이 자유자재로 통해야 한다. 일본에는 오랜 전통이 있어서 지도는 정치적 분할 뿐 아니라 주요한 길도 나타냈다(뜻밖으로 서양지도는 그렇지 않았다.(300쪽)”

 

저자의 맺음말에서 그의 뜻이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해부학과 해부도보의 역사를 좇는 것이 아니라, 해부학이 자신의 저편으로 빠져나가 있던 알지 못하는 역사를 다루려 한다. (…) 그리하여 해부라는 수사학이 의학에서 나아가 더 넓은 사상의 지평에 영향을 끼친 양상을 그리려는 바가 이 책의 요점이다.(356쪽)” 즉 고대 철학자들이 인체를 ‘미크로코스모스(소우주)’라 하여 신이 창조한 우주를 가리키는 마크로코스모스와 대칭점에 두었던 것처럼 인간의 신체를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자리매김하여 더 넓은 외부세계를 축약해서 자신에게 재현한다는 유럽의 초기해부학자들의 발상을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꽤 오래 전에 정부조직에서 일하고 있을 적에 느꼈던 점입니다. 조직 간의 경쟁이 지나치고 조직간의 소통이 규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의학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신체의 각기관에 각각 맡은 역할을 효율적으로 함으로서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 즉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여기 문제가 생겨 질환이 발생하면 적절한 약을 투여하거나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하여 치료를 하는 것이 의학입니다. 즉, 의학은 작은 사회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조직을 관리하는 기본철학을 익힐 수 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더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의학, 의학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관심이 커지고 있는 시기입니다.

 

주(1)

해체신서[解體新書(かいたいしんしょ)]

일본 에도시대에 번역 소개된 해부학교과서입니다. 독일 의사 쿨무스의 《Anatomische Tabellen》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Ontleedkundige Tafelen》을 저본으로 스키타 겐파쿠(杉田玄白)이 중심이 되어 중역한 것입니다. 중역이라고는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그림과 설(設)은 전부 해체에 관한 화란의 여러 책을 비교연구하여 가장 명료한 것을 채택하고 이를 베껴서 손쉽게 정통하게 한 것(169쪽)”이라 설명한 것으로 보아 타펠 해부학을 근간으로 하여 다른 해부학책에 소개된 내용을 뽑아 편역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y*****2 2012.01.30. 신고 공감 6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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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리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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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가 예술 및 문학의 전성기였다면 17세기는 유럽과학의 황금시대라고 불릴 만합니다. 이 시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하비, 케플러, 갈릴레오, 데카르트, 파스칼, 호이헨스, 보일, 뉴턴, 로크,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등이 있습니다. 이어서 18세기로 넘어옵니다. 의학사가(醫學史家) 찰스 싱어(Charles Singer)는 1700년과 1825년 사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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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가 예술 및 문학의 전성기였다면 17세기는 유럽과학의 황금시대라고 불릴 만합니다.

이 시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하비, 케플러, 갈릴레오, 데카르트, 파스칼, 호이헨스, 보일, 뉴턴, 로크,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등이 있습니다.

이어서 18세기로 넘어옵니다. 의학사가(醫學史家) 찰스 싱어(Charles Singer)는 1700년과 1825년 사이의 시대를 의학에 있어서 정리(整理)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일본어로 ‘네덜란드’는 보통 ‘오란다’라고 하지만, 18세기에는 ‘화란’, ‘화란타’ , ‘아란타’ , ‘홍모’ 라는 명칭이 혼용되었습니다. 에도시대는 일본어로는 江戸時代로 표기되며, 도쿠가와 시대(徳川時代)라고도 합니다. 1603년 3월 24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이이타이 쇼군으로 임명되어 에도에 막부(왕조)를 연 시기를 에도 시대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1868년 5월 3일 에도성이 메이지 정부군에 함락되는 때까지의 265년간을 가리킵니다. 에도시대에는 나가사키 데지마에서의 중국, 네덜란드와의 교류와 쓰시마 번을 통한 조선과의 교류 이외에는 외국과의 교류를 금지하는 쇄국정책을 폈습니다. 이 시기는 네덜란드가 일본 교역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책의 부제로 실린 난학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난학(蘭學)은 에도 시대 중기 이후 네덜란드어 서적을 통해 서양의 학술, 문화를 연구하던 학문의 총칭입니다. 바쿠후가 펼친 쇄국정책 탓에 개항 때까지 서양 지식 도입의 유일한 창구였습니다. 아오키 곤요, 스기타 겐파쿠, 마에노 료타쿠, 오쓰키 겐타쿠 등 다수의 난학자가 배출되었고 의학, 수학, 병학, 천문학, 역학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연구가 이뤄졌습니다.

 

 

사물을 전체성으로만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익숙했던 이 당시의 일본인. 나아가서는 통일성을 깨뜨린다면 균형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 난학은 분명은 숙고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난학의 감각으로는 무엇이든 제대로 이해하려면 내부를 열어 보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닫힌 채로는 어떠한 것도 지식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외부에 대한 내부의 우월이라고도 표현됩니다. 일본인의 시각으로는 새롭고도 기이한 발상이었습니다.

 

 

그 많은 ‘여는’현상과 ‘열린’ 실체 중에서 저자는 특히 인간의 신체에 국한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인간의 신체는 작은 세계, 즉 우주를 작게 농축시킨 소우주로 여긴다. 따라서 절개된 인체는 그 자체를 넘어서 우주 전체의 현상을 가리키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육체는 반드시 알려질 필요가 있으며, 몸을 아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전부를 아는 것이었다.”

 

 

탐구자의 눈이 인간의 신체로 향한 이상 절개도구가 필요했습니다. 절개도구에는 여러 형태가 있었지만 어찌 되었던 무엇보다 예리한 칼날이 필요했습니다. 일본의 도공(刀工)전통은 유명했습니다. 봉건시대의 무사들은 정장(正裝)의 일부로서 칼을 차고 다녔지요. 베는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권리 덕분에 사무라이는 사농공상 가운데 최상위 지위를 누렸습니다. 칼은 곧 사무라이였습니다.

 

한편 한방의(韓方醫)는 어떤 이유에서든 신체를 절개하려 생각하지 않았고 그 필요성조차도 못 느꼈지요. 외과의를 경시(輕視)하기까지 했으니까요. 굳이 열어봐야 속사정을 아느냐 이었겠습니다. 이 당시 의료계 현황에 비춰볼 때 한방은 매우 잘된 시스템이긴 하지만 ‘들여다보는 일’은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난학 덕분에 외과, 해부학이 발달됩니다.

 

 

이 과정 중에 출간되는 책이 『해체신서』(解體新書)입니다. 에도 시대의 번역 의학서로, 독일 의사 쿨무스의 《Anatomische Tabellen》라는 책의 네덜란드어판인 《타펠 아나토미아, Ontleedkundige Tafelen》를 일본어로 중역한 것입니다. 서양서적 완역으로는 일본 최초의 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번역 총 책임자는 스기타 겐파쿠였으나,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고 알려집니다. 이 책은 서양 해부도의 전모를 광범위한 일본인 독자층에게 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타이먼 스크리치는 1961년 영국의 버밍엄 출생. 옥스퍼드 대학 졸업.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 했습니다. 일본어로 된 고문서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고 합니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에도 시대의 의학 중 외과, 해부학 분야의 역사를 집중 조명 한 듯하지만, 정작 저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에도 문화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체로서 살아 있는 것’을 그대로 인식하려는 일본의 전통적 지식과 ‘열어서 안을 드러내고 구석구석까지 빛을 비추려는’ 유럽의 근대 지식의 만남이 ‘해부’라는 과정을 통해서 전개됩니다. 일종의 급변기적 상황에서 서양의학 중 특히 난학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많은 사진, 삽화와 함께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달의 사락 s******5 2012.02.21. 신고 공감 3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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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몸을 열고 근대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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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먼 스키리치는 이 책을 통해 일본의 근대 초기에 몸을 여는(opening)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수많은 그림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몸을 여는 행위는 기존의 관찰에 그치고 상상에 그치던 몸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했으며, 가치관 자체를 바꿨다. 그런 가치관의 변화가 바로 일본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쓰고 있다(어느 것이 먼저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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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먼 스키리치는 책을 통해 일본의 근대 초기에 몸을 여는(opening)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수많은 그림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몸을 여는 행위는 기존의 관찰에 그치고 상상에 그치던 몸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했으며, 가치관 자체를 바꿨다. 그런 가치관의 변화가 바로 일본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쓰고 있다(어느 것이 먼저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없다).

 

해부(解剖) 자체가 지니는 의미뿐만 아니라, 그것이 다른 학문과 연결되는 지점들을 낱낱이 파헤친 면에서 책은 단순히 『해체신서』를 중심으로 해부학만을 다루고, 해부학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난학(蘭學)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저자는 『해체신서』 등의 여는 지식 자체가 일본에서는 힘이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절개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능성이지 필수 요소는 아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절개해 보는 것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일본에서는 여러 접근 수단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많은 일시적 진리 하나에 이르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까. 네덜란드에서는 내부를 향한 응시가 필시 실재(reality) 향한 눈길이었던 비해 일본에서는 기껏해야 뭔가 일시적인 상태를 파헤쳐 보는 지나지 않았다. 내부를 본다고 해도 궁극적 진리가 아니라 내부에 있는 하나의 적층을 뿐이라는, 마치 양파 껍질과 같은 감각이 강했다.” (341)

 

그렇다면 해부는, 몸을 여는 행위를 중요했을까?

그것은 그것으로 정신, 혹은 체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의학을 훨씬 초월하여 애당초 상관없어 보이던 여러 분야로 외삽(外揷)’되는 사고 체계를 세웠기 때문이다. 시대에 내부로 침입하는 외과술이 출현했다.” (355)

 

, 일본의 해부학에서 비롯된 난학은 의학에서 나아가 넓은 사상의 지평에 영향을 쳤다고 보는 것이다. 책은 양상을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많은 그림으로 재미있고,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것으로 일본과 일본의 근대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일본과 일본의 근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임에는 분명할 같다.

그들은 몸을 열고, 근대를 열었다.

 

*두번째 읽었다. 처음 읽을 때보다 의미들이 선명해진 분명 『난학의 세계사』 덕분이다. 『난학의 세계사』가 그나마 이해되었던 이유는 전에 『에도의 몸을 열다』를 읽었기 때문이다.



(2015. 1)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n*****m 2015.11.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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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개방의 역사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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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이런 책을 읽나 싶었다.온통 해부도로 가득 차 있는 책. 해부학이라고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는데 과연 이 책을 읽는 행위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자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렴풋이 잡히기 시작하자 책은 내게 다가와 주었다. 묘한 책이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18세기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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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이런 책을 읽나 싶었다.

온통 해부도로 가득 차 있는 책.

해부학이라고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는데 과연 이 책을 읽는 행위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자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렴풋이 잡히기 시작하자 책은 내게 다가와 주었다.

묘한 책이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18세기를 다룬 역사서이다.

난학(蘭學)과 일본의 18세기의 관계야 다룬 책들이 많을 듯싶다.

그만큼 일본의 역사, 그 중에서도 지식사에서 네덜란드와의 관계,

즉 네덜란드 서적의 번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해부학’을 들이밀고 있다.

해부학이 일본에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통해 일본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에도의 몸을 열다>라는 제목은,

해부학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개방’을 얘기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저자도 인정하듯이 18세기 일본인들은 해부학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또한 해부학 만으로 일본의 개방을 설명할 수도 없다.

(그게 결과인지, 원인인지도 불분명하니 말이다)

하지만, 하나의 특수한 학문에 대한 수용을 통해

격변하던 사회의 모습을 간파해내려 한 저자의 시각이 꽤나 설득력이 있다.

그건 그 이후의 역사를 우리가 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일본은 그 제한적인 개방을 통해 서양 학문을 받아들였고,

수많은 개념어들을 만들어냈으며,

비록 총포의 힘에 밀리긴 했지만 전면적인 개방의 역사로 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


(덧붙여)

오늘 아침 출근하는데 내 바로 앞에 우리 학교 해부학 교수님이 계셨다.

이 책을 소개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권할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내 방으로 들어와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이게 해부학 책인가? 역사서인가?

해부학 역사서는 아닌데…

과연 이 책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까?

해부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까?

아니면 일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까?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아직 권하지를 못하고 있다.



(2012. 2)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n*****m 2015.11.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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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을 통해 본 일본의 근대성의 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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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 중, 일 3국 중에서 가장 먼저 서양과 교류한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 이미 당시 수도였던 장안에 색목인이 가득했으며, 원나라에서는 매우 높은 등급으로 서양인을 대우하였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 세 나라 중에서 가장 먼저 서양의 문물과 정신을 받아들이고 자기화(自己化)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이를 바탕으로 부국강병을 이루어서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고 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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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 중, 일 3국 중에서 가장 먼저 서양과 교류한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 이미 당시 수도였던 장안에 색목인이 가득했으며, 원나라에서는 매우 높은 등급으로 서양인을 대우하였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 세 나라 중에서 가장 먼저 서양의 문물과 정신을 받아들이고 자기화(自己化)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이를 바탕으로 부국강병을 이루어서 조선과 중국을 침략하고 종국에는 2차 세계대전까지 도발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또 짐작이지만 아마도 사물을 분석하여 간략화하고 소형화, 정밀화 하는 일본인들의 특징과 제조업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 등도 여기에서 기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18세기 일본이 네덜란드와 교류하면서 네덜란드로부터 근대 서양의 과학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해부학’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서술하고 있다.

당시 네덜란드로부터 들어온 학문을 난학(蘭學)이라고 하였으며, 그 중 의술을 난방(蘭方)이라고 했다. 아마도 난방이라 고래의 한방(漢方)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말일 것이다.


본디 일본인은 개체는 온전한 그 자체를 유지하면서 전체와 조화를 이룰 때 의미를 갖는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즉 ‘사물은 전체성에 의해서만 의미를 가지므로 통일성을 깨뜨린다면 균형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짓’(p.16)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동양의 전체주의적 사고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난학은 사물을 열어서 내부를 드러내고 그 안을 탐구하는 방법을 일본에게 제시하였다. ‘난학이란 사물을 엶으로써 ‘내부’를 보고 ‘내부’에 있는 것에 대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는 지적인 주장’(p.11)이었다. 일본은 이에 대해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난방 이전에 한방은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인체관에 의거하여 사람의 몸은 오장육부(五臟六腑)를 담고 있는 주머니에 불과하며, 그 오장육부도 원시적인 해부학에 근원했을지라도 매우 사변적(思辨的)인 개념일 뿐이었다. 또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서 침구와 안마 등 이른바 외과(外科)가 비록 있었지만, 거개가 약물을 구강을 통해 투여하는 방법, 즉 내과(內科)가 대부분이었다.


이때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인체를 가르고 잘라내는 난방이라는 외과술이 들어와 선보였다. 이것은 일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이때부터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인체 해부학 책들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내부에 대한 지향과 분석, 그리고 그것에 대한 탐미는 인체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로 점차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새로운 ‘패턴’, ‘패러다임’이 일본인의 의식에 생겨난 것이다.


예를 들어 이전의 그림은 대부분이 실제 경치를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화가의 상상과 느낌으로 그려졌었다. 그러던 것이 이때부터는 실경을 보고 묘사하기 시작하였다.

또 이전의 지도는 지배 영역이나 지역을 분할하는 경계선을 위주로 그려졌지만, 이때부터는 도로를 위주로 한 지도가 출현하게 되었다.

또 여행안내서가 나오고 여행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보급되고, 고고학 등의 과학적 탐구가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이것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해부라는 수사학이 의학에서 나아가 더 넓은 사상의 지평에 영향을 끼친 양상을 그리려는 바가 이 책의 요점이다.”(p.356)


결론적으로 역자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저자의 에도 문화론은 ‘전체로서 살아 있는 것’을 그대로 인식하려는 일본의 전통적 지식과 ‘열어서 안을 드러내고 구석구석까지 빛을 비추려는’ 유럽의 근대 지식의 만남, 즉 ‘해부’를 통해 전개된다.”(p.370)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많은 도판이 곁들어 있다는 점이다. 당시 서양의 해부학적 수준과 그것을 본받으려는 일본의 애타는 노력이 그림만 보더라도 절실히 느껴질 것이다. 또한 그림들은 해부학적인 것 외에도 여타 문화사적 증거로서도 기능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k****n 2008.12.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