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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적 개인
"경계선적 개인" 내용보기
박노자의 신간이 나왔다. <만감일기>란다.   일기란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그러한 일기를 공개한다는 것은 자신을 벗고 다른이들 앞에 알몸을 그대로 노출한다는 것이다. 왜 박노자는 자신의 사담을 공개적으로 책이란 형식으로 풀어냈을까? 이렇게 생각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일 수 있다고 말이다. 박노자는 한국에 귀화한 '귀화 한국인'이다.(다소 위험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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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신간이 나왔다. <만감일기>란다.
 
일기란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그러한 일기를 공개한다는 것은 자신을 벗고 다른이들 앞에 알몸을 그대로 노출한다는 것이다. 왜 박노자는 자신의 사담을 공개적으로 책이란 형식으로 풀어냈을까? 이렇게 생각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일 수 있다고 말이다. 박노자는 한국에 귀화한 '귀화 한국인'이다.(다소 위험한 말일 수도 있으나) 한국의 사회적 문화는 주변인(내지는 경계인)에 대하여 관대하지않다. 여성, 외국인 노동자, 귀화자, 어린이, 노인 등등... 가면 갈수록 심화되는 주변인에 대한 무관심과 차별은 우리 사회의 성격을 축약적으로 보여준다. 박노자는 이런 주변인의 위치에서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보여준다. 기존 박노자의 책들이 일종의 '거대담론'적 성격을 보여주었다면 <만감일기>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거기서 담론을 뽑아낸다. 이것이 <만감일기>의 미덕이다.
 
박노자의 담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m******i 2008.01.18.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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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다양한 시선
"세상을 향한 다양한 시선 " 내용보기
나는 '똘레랑스'를 믿지 않는다. 많은 노동운동가와 좌파 정치인들이 경험했던 프랑스의 똘레랑스 문화를 찬양하면서 우리 사회의 반노조 성향을 비판하지만, 프랑스의 그 모습이 진정한 똘레랑스라고 믿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프랑스의 모습은 차별받았던 이민자들의 불만이 폭발한 소요사태였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똘레랑스라고 말하지만 내부에서 피부색깔로 서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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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똘레랑스' 믿지 않는다. 많은 노동운동가와 좌파 정치인들이 경험했던 프랑스의 똘레랑스 문화를 찬양하면서 우리 사회의 반노조 성향을 비판하지만, 프랑스의 모습이 진정한 똘레랑스라고 믿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프랑스의 모습은 차별받았던 이민자들의 불만이 폭발한 소요사태였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똘레랑스라고 말하지만 내부에서 피부색깔로 서로를 구분 지어 차별하며, 프랑스 백인들만의 기득권과 특권을 지키려고 안달하는 모습이 바로 본질이다. 인권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강력한 법과 사회적 합의에 따라서 피부색에 따른 인종차별을 드러내고 수는 없을지 몰라도, 한계선을 넘지 않을 만큼의 지능적이고 비열한 술수로 차이를 차별로 표현한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그른지를 알고 있더라도,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감정이 우선시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노자도 똘레랑스를 좋게만 보지 않는 듯하다. 그는 책에서 "화려한 똘레랑스의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 대한 거의 무한한 불신, 공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기중심적 무관심이다."라고 했다. 박노자의 말대로라면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로 관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무관심이 관용으로 보인 것일 뿐이다. 점점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우리사회도 똘레랑스가 널리 퍼질 사회가 날은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우리사회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많은 문제점으로 우리를 우민화 해왔듯이, 개인주의화도 나름의 단점이 있으니, 어떤 사회가 인간다운 사회일까 

 

 "한국전쟁은 통일전쟁이다"라는 발언으로 마녀사냥 당한 강정구 교수의 문제를 보면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을 있었다. 한국이나 북한이라는 국가적 체계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체계를 떠나서, 학자로써 중립적인 입장으로 객관적으로 한국전쟁을 본다면 분명히 한국전쟁은 통일 전쟁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다양한 관점이나 시선을 인정하지 않고 북한과 대치하는 관점에서 "통일전쟁"이라는 발언은 그를 사회의 적이나 암적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그럼 "통일전쟁"이라는 말보다 "침략전쟁"이라는 말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 "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했는지 했는지 진위논란이 있는 이승복 사건 같은 반공사상의 고양시킬 것이 많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미 반공 사상에 대한 교육은 거의 사라져가고 남북화해와 교류라는 말로 대결로 인한 갈등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많은 다수는 서로의 마음을 준비가 아직은 안되어 있다. 겉으로는 화해와 교류를 속으로는 상대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칼날을 갈고 있으니. 물론 북한의 핵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적대감이나 위기의식을 가질 있을지 몰라도, 학자가 연구를 통해서 발표한 내용에 대해서 학문적 잣대가 아니라 법의 잣대와 여론몰이로 매장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한 교사를 두고 온라인 토론을 적이 있다. 태극기가 국가라고 생각하는 맹목적인 애국주의자들을 보면서 불쌍한 생각이 앞선다. 2002 월드컵 당시에도 신성한 태극기를 패션으로 만들고 즐겼던 현상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패션이나 즐거움의 도구가 되면서 때만큼 태극기가 대접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태극기에 국가가 강제로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서 모두 그런 의미로 인식하고 신성시하는 것이 아니다. 강제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강요하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태극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기 것으로 만드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은가? 당시에 천조각에 불과한 것에 대해서 애국과 신성함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했었다. 천조각이라는 말에 발끈하며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태극기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천조각일 뿐이다. 부모님이 나에게 이름을 붙여주시고, 다른 누군가가 나를 이름으로 부르기에 나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태극기에 이름과 의미를 붙여주기 전에는 분명 태극기도 천조각이었을 뿐이다. 천조각을 신성시 하던 하던 개인의 자유일 뿐인데 극우주의자들은 이분법적 시각으로 함부로 재단해 버린다. 뒤에 일본에서 기미가요를 제창할 일어서지 않았던 교사를 처벌했다는 뉴스가 들려올 때에 일본의 극우주의부활을 염려했으면서, 우리의 모습은 바로 보지 못할까? 글로벌 사회에서 국적을 마음대로 바꾸기도 하고, 나라 나라 옮겨가면서 사는데 태극기가 가지는 애국의 의미와 신성함을 강요할 있을까 

 

 지금까지는 박노자의 만감일기 중에서 내가 그와 쉽게 소통할 있었던 생각과 이야기, 그리고 생각들이다. 나도 처럼 사회적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박노자 만큼 많은 지식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뛰어난 솜씨와 논리를 가진 것도 아니라 중간에 포기했던 이야기들이다. 박노자의 글을 통해서 용기를 얻었는지 모르겠다. 만큼의 뛰어난 글은 아니지만, 사회에 대해서 과감 없이 말하는 모습이 나를 많이 자극한다.

 

 박노자가 세상을 보는 시선과 잣대 모두가 나와 같을 수는 없지만 "이런 시각도 있구나" 기발함이랄까? 또는 내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이랄까? 처음에 거부감이 들었던 그의 시선도 이제는 점점 적응이 되어간다. 그가 풀어 놓은 많은 이야기들을 보면서 내가 과거에 가졌던 시선이 아직도 우리사회에 만연함에 더욱더 안타깝다. 국가에 충성하고 애국을 강요하는 국가주의가 바탕이 되어 만들어낸 충견들이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까닭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사회의 다양성을 외치며 강조하지만, 애국과 충성이라는 이름 앞에서 다양성이 차별의 대상이 되는 대한민국이, 언젠가는 변화하리라는 희망으로 박노자의 일기를 읽어본다.

h*******k 2008.02.10.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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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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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는 나에게 고유명사에 가깝다. 그러니까 그의 글에 대한 느낌은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신께 자신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겠지만 나는 박노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를 반성하고,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려고 노력 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너무 충분하다.   며칠전 운동센타에 등록을 했다. 그런데 생각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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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는 나에게 고유명사에 가깝다. 그러니까 그의 글에 대한 느낌은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신께 자신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겠지만 나는 박노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를 반성하고,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려고 노력 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너무 충분하다.

 

며칠전 운동센타에 등록을 했다. 그런데 생각 보다 강사분이 친절하지 못한 느낌을 받아 마음 속으로만 꿍 하고 있었다.

 

저자의 글에 서비스에 관한 글이 소개 되어진 걸 읽으면서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해 보았다. 운동강사가 운동에 관해서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나에게 웃음까지 제공 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물론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긴 하지만 강사가 웃지 않았다고 해서, 나에게 불친절 한 것 같지도 않았다.

 

내 무의식 속에선 이미 돈을 지불했으니 온갖 대접을 다 받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음날 운동센타에 들어 설 때 내가 먼저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활짝 웃었다...

그 다음 부터는 너무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나에게 웃어 보이는 거였다.

 

훨씬 전 부터 선생님은 웃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단지 내 마음에 흡족 하지 않았을지도...

 

박노자의 책을 열어 보게 되면 나에게 있는 부끄러움들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 보며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끝없이 자극을 받을 수 있어 좋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지려고 하는 나에게...

 

끝임없이 추파를 보내 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어김없이 나는 그의 글을 찾아가며 읽는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나의 눈이 조금더 커지길 바라면서

 

 

w*******i 2008.01.2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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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감동이나 충격은 없었다.
"특별한 감동이나 충격은 없었다." 내용보기
박노자의 만감일기는 그야말로 일기이다. 다만, 자기 혼자 적어놓은 일기장 속의 일기가 아니라,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놓은 그의 글인 것이다.   일기를 왜 쓰느냐에 관한 문제는 뭐 제각각 다를 것이다. (참..나 역시 한참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하지만, 일종의 '정리' - 일상생활이든 생각이든...-를 위한 기록임에는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저자는 이러한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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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만감일기는 그야말로 일기이다.

다만, 자기 혼자 적어놓은 일기장 속의 일기가 아니라,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놓은 그의 글인 것이다.

 

일기를 왜 쓰느냐에 관한 문제는 뭐 제각각 다를 것이다.

(참..나 역시 한참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하지만, 일종의 '정리' - 일상생활이든 생각이든...-를 위한 기록임에는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저자는 이러한 본인의 기록(사회현상과 사건을 통한 본인의 주장과 생각)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공개함으로써, 흔히들 우리가 '일기장'이라는 곳에

남 모르게 적어놓은 일기와는 조금은 다른(즉, 숨김이라기 보다는 적나라한

표현 등이 다소 제한된) 측면의 글이며, 다시 말하자면 '자기와의 대화' 임과

동시에 의도적인 '남과의 대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내면정리'에서 벗어나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사회와의 소통'을

의미한다.

 

언제나 일관되고 변치않는 그의 사고와 해박한 지식은 항상 그의 글 속에 묻어나

내게 소중한 배움을 주고 있으며, 끊임없는 자기실천과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은

그저 나몰라라 할 사항들은 분명이 아니다.

 

나는 그가 왜 한국에 귀화했는지는 알 수 없다.

궁금하긴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

하지만, 정말 그와 같은 학자가 한국국적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된 사실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d*****3 2008.05.2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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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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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왠만한 저작은 출간되면 바로 구입해서 읽지만 이 책은 그렇지 못했다. 블로그에 있는 글을 편집한 책이라면 그의 평소 생각을 담은 책일텐데 그가 지향하는 바나 주장은 이미 다른 신문이나 저작을 통해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나의 예상대로 이 책에서 박노자의 독창적인 주장이나 생각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저 박노자의 주장을 긍정하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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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왠만한 저작은 출간되면 바로 구입해서 읽지만 이 책은 그렇지 못했다. 블로그에 있는 글을 편집한 책이라면 그의 평소 생각을 담은 책일텐데 그가 지향하는 바나 주장은 이미 다른 신문이나 저작을 통해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나의 예상대로 이 책에서 박노자의 독창적인 주장이나 생각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저 박노자의 주장을 긍정하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글들이 많이 실려있을 따름이다. 민족주의, 애국주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경제체제에 대한 단상들은 평소 그의 생각을 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의 주장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다. '지식인은 죽었다'라는 서평에서도 거론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이란 세상의 모든 일을 자신의 일로 인식하고 사고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박노자의 글은 그가 지식인이라고 할만한 사람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디에 있던 어느 사건을 접했던 그는 자신의 생각과 소신으로 그 사건을 해석하고 바라본다. 그에게 있어 자신과 상관없는 사건은 하나도 없는 듯 하다. 모든일은 자신과 관련되어 있기에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가 강의를 하는 노르웨이에서의 삶에 대한 글도 관심이 간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복지국가, 선진국, 살기 좋은 곳으로 알고 있는 그곳에 대해서는 그는 비판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물론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한국에 비해 분명 인간의 삶이 보장되는 곳이라는 것은 그도 부정하지 않지만 그곳도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곳이고 한국과는 또 다른 인종문제 등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무조건 동격해야할 곳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박노자는 책중에서 왜 귀화한 한국인은 언제나 한국이 왜 좋은가를 대답해야 하느냐고 비판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박노자라는 한국인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한국이 박노자라는 사람을 얻은 것이 올마나 큰 행운이지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잘 아는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박노자는 우리에게 정말 없어서는 안될 진정한 '지식인'이다.  

c******3 2008.05.0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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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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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유명한 박노자 교수의 신작이다.이 책은 일기다.서문에서 그는 일기를 정의하며 이렇게 적었다."일기쓰기가 자기 주체성 확립의 장이라면 인터넷일기쓰기는 그 주체성에 '대타성'을 부여한다. '내면'전체를 '남'에게 다 '개방'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일부를 '열어놓아' 토론 대상이 될 만한 민감한 문제들을 놓고 과감히 '소통'하는 것이 바로 인터넷 일기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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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유명한 박노자 교수의 신작이다.
이 책은 일기다.
서문에서 그는 일기를 정의하며 이렇게 적었다.
"일기쓰기가 자기 주체성 확립의 장이라면 인터넷일기쓰기는 그 주체성에 '대타성'을 부여한다. '내면'전체를 '남'에게 다 '개방'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일부를 '열어놓아' 토론 대상이 될 만한 민감한 문제들을 놓고 과감히 '소통'하는 것이 바로 인터넷 일기쓰기의 묘미다. 그렇게 해서 '나 홀로'의 폐쇄성을 벗어나 '남'과의 '의미의 공유'가 가능한, '열린 주체성'으로 가는 것이다. '남'의 의견이 '나'의 내면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 동시에 '나'의 일기가 또 누군가의 '내면'에 가 닿아 수많은 주체즐이 하나의 망을 이루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터넷 즉, '타자들 사이의 거미줄'이 지닌 진정한 의미가 아닌가?
박노자는
골수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알고 한국어를 알고 한국역사를 아는 귀화 한국인이다.
외모에서부터 한민족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탓에 한국을 사랑해 귀하했으면서도 한국에 있지 않은 모순된 삶을 구가하고 있다.
그에 대한 관심은 내가 이 책을 사기에 주저하지 않은 것으로  표시되고 또 나와 같은 독자들의 행동이 이어진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그러나
1년 넘게 '미수다'를 보면서 식상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박노자 개인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그의 주장의 신선함도 이젠 빛을 다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독특함에서 기인한 것일까?
사회주의자. 동성애도 인정하는 진보주의자. 비폭력주의자. 불교신자....이젠 나와 대척점에 선 게 많아서
신선함보다는 논리적 대항마로 여겨지는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2년치 일기를 책 한권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08.01.2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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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자신, 우리 사회, 우리 나라, 세계에 대한 생각을 담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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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박노자 씨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주의는 아닙니다. 팬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통을 시도하려고 다가오는 그의 저서는 반갑습니다.   좌파와 우파를 불문하고, 그처럼 도발적이면서도 진정성까지 갖춘 지식인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주류에의 거리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매기고 패배자를 소회시키는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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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박노자 씨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주의는 아닙니다.

팬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통을 시도하려고 다가오는 그의 저서는 반갑습니다.

 

좌파와 우파를 불문하고, 그처럼 도발적이면서도 진정성까지 갖춘 지식인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주류에의 거리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매기고 패배자를 소회시키는 한국 사회,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여 노르웨이에서 교수로 일하는 그는 '더부살이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인이지만 토종이 아니고 한국인이지만 외국에 직장을 가진' 그의 시선은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 동화되어가거나 낙오되어가는 우리 '토종 한국인'이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문제의식을 가져보지 못한 부분까지 깊숙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다수의 좌파 지식인들은 미 제국주의를 규탄하는 반미주의자이며, 신자유주의의 반대파이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조중동 3대언론사, 삼성과 같은 재벌의 지배체제를 비판적으로 봅니다. 박노자씨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니, 문맥적으로 순화하였을 뿐이지 엔간한 좌파 지식인보다 더욱 신랄하고 도발적입니다. 자신의 일상생활에서의 경험과 역사학자로서의 지식을 버무린 조목조목한 문제제기가 다른 사람의 선동적인 문체로 덧칠된 글보다 더욱 감명깊게 와 닿으며. 한국 사회의 구조와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게 이 불교 노장신봉자의 필법입니다.

 

학업성적을 매기면서 입시경쟁에 뛰어들고, 학교에서나 군에서나 일상적으로 구타당하고, 사회의 물로 들어서면 '모나지 않게 둥글게 사이좋게 원만하게' 사는 법부터 배우면서 윗사람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아랫사람 잡으면서 자기 밥그릇 챙기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우리의 반대편에는, 다른 양상의 세상이 있다는 것(물론 더 못한 사회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연줄 없으면 유사시에 오도가도 못하는 우리와는 달리,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세금을 많이 걷는 대신 국민 개개인의 낙오를 최소화시켜준다는 그의 글을 보면서 그런 사실(북유럽의 평등 복지 우선주의)을 모르는 것은 아닌 입장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원래 그런 거'라고 체념했던 부분을 되짚을 수 있어 좋았고,

 

강정구 교수 유죄판결, 2006년 고려대 교수감금사건 출교학생 소식, KTX 여승무원 부당해고 사건, 한미 FTA, 전교조 징계 같은 당시 사회 이슈에 관한 기억들을 환기시키는 한편으로, '성매매는 경제력에 의한 강간이다' '카톨릭 신부나 불교 승려들이 엄한 곳에서 성욕을 해소하지 않도록 대체결혼을 생각하는 게 어떠한가' '노동자가 미소를 항상 짓도록 유도하는 기업풍토가 비인간적이다' 같은 도발적인 이슈에 머리 싸매게 하는 한편으로,

 

"화가 샤갈은 평생을 국외에서 떠돈 이방인이었구나"

"발트 3국 중 리투아니아는 구소련의 지배에 항거해 10년간 독립투쟁을 했구나"

"초등학교 출신의 러시아 혁명가 슬라프나코프는 트로츠키보다 3년 먼저 1당 독재의 위험성을 경고했구나"

"트로츠키는 혁명전쟁의 승리를 위해 구 제정러시아의 장교들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그들을 백러시아군과의 싸움에 내몰았구나, 이런 짓도 했구나"

"일본 공산당은 이러저러한 역사를 지녔구나"

하는,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지식을 덤으로 알게 되어 즐겁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반가웠습니다)

 

편안한 것을 찾는 사람에게는(심지어 언행일치를 못 시키는 일반적인 좌파에게도) 불편한 책입니다. 그러나 그 무겁고 불편한 화두를 던지는 이 사람이 보기 드문  언행일치의 좌파로써, 진실성을 담보한 사람으로 한국 지식계에 버티고 있다는 건, 말만이 판치는 이 세상에 좋은 청량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h***5 2010.02.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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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공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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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너,우리,그리고 경계를 넘어"란 부제가 붙어있는 책이다.   박노자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은 한국인 한국 사회를 보는 것이 객관적이고 민족이라는 개념을 배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다. 그래서 매번 읽을 때마다 민족주의에 둘러 쌓여있는 나를 정화시켜준다.   책을 내 나름대로 다시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우리 나라를 보는 모습이다. 우선 정치적으로 우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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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너,우리,그리고 경계를 넘어"란 부제가 붙어있는 책이다.

 

박노자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은 한국인 한국 사회를 보는 것이 객관적이고 민족이라는 개념을 배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다. 그래서 매번 읽을 때마다 민족주의에 둘러 쌓여있는 나를 정화시켜준다.

 

책을 내 나름대로 다시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우리 나라를 보는 모습이다. 우선 정치적으로 우파정권에 대한 비판, 권위주의 적이고 이윤을 추구하는 학벌 사회의 표본인 대학, 그리고 종교, 군문제 등이다.

 

두번째는 북한을 보는 눈이다. 한국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레닌주의자와 반미의 반대현상으로 나타난 NL계열에 대한 비판이다. 또 북한 권력자는 민중을 생각하지 않는 또 하나의 독재 정권이며, 이들은 결국 또 다른 세력인 미국에게 손을 흔들고, 결국 북한 민중은 지배층만 바뀐채로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세번째는 그의 고향인 러시아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러시아는 푸틴 정권이 강화되고 인권이 퇴보하고 있으며, 양극화 등의 영향으로 스킨헤드 족들이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에 대한 인상과(거의 체류기간은 짧고 피상적이여서 기존 인식의 반영이지 일본에 대한 인식은 아니라고 본다.) 그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잘 된면과 잘못된 면, 프랑스도 예외일 수 없다.

 

보수가 표를 얻는 비결편에서 ,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왜 서민들은 부유층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에게 투표하는가에서 체험을 한 적이 없어, 학습으로 지식을 얻기때문이라고 한다. 글쎄,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 박노자 입장에서는 같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열린우리당) 양쪽을 체험해본 우리 민중의 입장에서 체험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새정부 이후 영어에 대한 논란이 가속되고 있다. 책에서는 영어를 못하는 유럽이라고 하는데, 내 경험은 그렇다. 네델란드는 누구나 다 영어를 잘하고, 스페인은 정말 안 통한다. 새정부가 이야기하는 미친 짓거리는 분명 잘못되었다. 정말 대학 입시에 영어를 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대외무역에 경제를 걸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결국 외국어가 불가피한 것 아닌가 한다. 일본이나 중국만 되도 안하고 살아도 될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네이티브 한국인을 보아 왔지만, 대부분이 직장 생활에서 실패했다. 한국 직장의 문화에 적용 못한것이 제일 크지만, 영어는 한국에서는 2번째 언어이고 첫번째는 당연히 한국어이다. 유학을 보내던 돈을 쓰던 본질은 한국어인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책은 저자가 서문에서도 이야기하듯이, 공개일기 형태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래서 한 챕터의 분량이 2페이지에서 4페이지이다.이러한 것이 300페이지가 넘으리 어름잡아 100편 이상의 글이다. 즉 100일 이상의 분량으로 박노자의 사상과 그의 세상에 대한 인식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고 샤갈을 알아야하겠다는 강렬한 욕구가 생겼다.

z******g 2008.03.22.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사회주의자의 만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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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란 책에대해  리뷰를 쓴 적이 있다.책이 출판된지 십년이 넘어갔기 때문에박노자의 글을 좋아하고 최근의 사건들에 대한글을 읽고 싶다면 박노자의 만감일기를 추천한다.박노자의 한겨레 블로그에 썼던 일부 글들을 발췌한 것이다.박노자씨는 댓글을 통해 독자들과 교류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이례적으로 샘물교회 사건에 대한 블로그의 글에 반
"사회주의자의 만감일기" 내용보기

일전에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란 책에대해  리뷰를 쓴 적이 있다.

책이 출판된지 십년이 넘어갔기 때문에

박노자의 글을 좋아하고 최근의 사건들에 대한

글을 읽고 싶다면 박노자의 만감일기를 추천한다.


박노자의 한겨레 블로그에 썼던 일부 글들을 발췌한 것이다.

박노자씨는 댓글을 통해 독자들과 교류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례적으로 샘물교회 사건에 대한 블로그의 글에 반대의견을 제시한 네티즌에게

재반박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려놓기도 했는데

이 글이 또 박노자의 만감일기에 올라가 있다.


그의 사회주의적 성향의 기본은 역시 인간에 대한 동정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핍박받는 민중들에 대한 그것이다.

뭐, 이런 의견이 다소 진부하고, 상상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의견은 우리에게 귀감할 만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박노자씨는 인물비평에 대한 것도 동시에 하는듯이 보이는데,

황석영씨나 최열씨에 대한 인물비평이 인상깊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인식했던 것에대해, 좀 더 다른 사실을 제공해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그의 블로그 글이 지나치게 좌경화되어서

상식인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모든 사태에 대해 자본주의 모순을 언급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데,

전혀 분석이 수반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조금 더 상식인과의 접점을 늘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항상 건필하기를.



y******4 2012.02.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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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박노자라는 존재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귀화’한 사회학자이면서 대부분의 귀화인들에 비해서 극히 한국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에 대해서 불편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불만스럽다면 어째서 귀화를 했느냐고 물으려고 하겠지만, 아마도 그는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 문
"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내용보기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박노자라는 존재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귀화’한 사회학자이면서 대부분의 귀화인들에 비해서 극히 한국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에 대해서 불편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불만스럽다면 어째서 귀화를 했느냐고 물으려고 하겠지만, 아마도 그는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처럼 ‘지적절’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국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만감일기’라는 제목처럼 내용은 학문적이기 보다 개인적인 생각들을 최대한 정돈된 형태의 글로 남겼다. 하지만 나와 같이 ‘일기’라는 것이 그저 간단히 하루의 기분이나 감정을 몇 줄짜리 글로 남기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박노자의 일기는 일기라고 말하기 보다는 자신의 연구들을 혹은 사회에 대한 시각들을 학문적으로 말하는 도중에 조금은 자신의 입장을 보다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적어냈다고 보는 것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내용은 노르웨이의 생활을 토대로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북유럽의 복지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과 함께 여전히 개선되지 못한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또한 노르웨이에서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여전히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발언과 시선을 갖고 있는 사회와 미디어 그리고 정치 집단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 그의 기존의 글들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그의 생각과 의견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런 시각들은 이전에도 이미 접했기 때문에 특별히 새롭게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추억을 토대로 변해버린 사회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들과 외부에서 삶을 살아간 사람만이 찾아낼 수 있는 우리들이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부분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은 (여전히) 의미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생각들을 따라가게 된다면 그동안 내가 갖고 있는 부족한 생각과 시각들을 다시 되짚어 보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그는 어떤 사회에서도 이방인으로 남겠지만 그로 인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생각보다 크다.

y*******o 2009.09.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