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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우리에게 무엇일까라는 단순한 물음과 의문을 겉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한다. 그것은 곧 얼굴 붉히는 단방향의 토론이나 비난으로 이어지기 쉽고 인간적 매도로 결론나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각각의 종교가 설파하는 교리나 현상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용기를 넘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흉흉한 분위기가 은연중 느껴지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의심하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믿기만 하라는 이 폭력적 주장은 어느새 종교의 당연한 주장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그에 반하는 모든 의문이나 반박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위협으로 비난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존재가 세상에 이익이 되는 현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로지 성전건축과 헌금착취에 몰두하고, 협박적 포교활동에 전념하는 교회들과 권력투쟁과 재산권주장을 목숨처럼 수호하려는 절들의 행동, 그리고 세상을 온통 피흘리는 복수의 장으로 만들고 있는 이슬람의 존재는 과연 세상과 사람에게 종교가 유익한가라는 질문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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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일으킨 이성적 무신론의 확산의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책으로서 히친스의 책이 선택된 것은 시기적절하다. 칼세이건이나 마이클셔머등과 같은 당대의 이성적 지식인들의 종교 비판이, 역사적으로 인류에 많은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지만 히친스 특유의 많은 예증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의도했든 하지 않았던 종교에 바라는 부분이 극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현대 사회라는 배경도 이런 분위기를 이어나가는 하나의 추진력이라 할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난투극이 벌어졌다고 하자. 중요한 경기였다면, 대부분의 언론에서 선수들이 이성을 잃었다는니, 이성적으로 행동하였어야 한다 등의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고, 이는 교인이건 아니건간에 모두 동의하는 내용일 될 것이다. 즉, 이성적인 행동이라는 것이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우리 인간을 구분하는 좋은 예중에 하나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자명하게 옳은 판단이라고 거의 대부분이 생각하고 있다. 헌데, 인류와 함께 한 여러 분야중에 유독 종교만이 이성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무 이유없는 믿음, 그리고 비판없는 믿음을 강요하고 있다. 위의 예와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의 난투극을 보면, 분명 독실한 일신교(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카톨릭등) 신자들도 "왜 이리 선수들이 이성적이지 못하냐?" 하며 혀를 찰 것이다. 하지만 죽은자가 부활하였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당연히 거짓말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이성적 판단은 단죄받고, 얼마전까지는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등의 일화를 믿어가며 종교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곰과 호랑이의 단군신화, 알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 신화도 믿어 주어야 하는데, 그들의 이성은 오직 자신의 종교 단 한군데에만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이러니 얼마나 쉬운가? 종교 비판이라는 것이. 고등학교 수준의 지식과 약간의 이성적 추론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허구로 점철되어 있는 종교를 금새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십일조라는 아이디어는 기독교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전, 유지시키는 상당히 효과적인 도구중 하나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단계 판매를 위한 허울좋은 여러 아이디어와 같이 십일조라는 도구의 효과는 정말이지 극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 부를 위해 신학을 전공해서 교회를 어떻해서든 하나 장만 하려 하고 있으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나 기독교가 발전하겠는가? 밤에 주위를 둘러 보라, 교회를 표시하는 빨간색 십자가가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리처드 도킨스까지 나서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 보통 고등학생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 누구나가 이성적으로 접근만 한다면, 우스꽝스럽고 말도 되지 않는 부분들이 손쉽게 보이는 것이 종교이다. 이렇게 비판하기 쉬운 종교에 히친스라는 당대의 말꾼이 펜을 들었으니 얼마나 할 말이 많을까? 예상대로 책은 400여 페이지에 달하고, 히친스가 제시하는 수많은 사례들과 역사적 고증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종교 비판을 더욱 더 세련되고 신뢰가 가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다.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종교쪽에서 가능한 거의 모든 반론에 이성적으로 비판을 가했다면, 히친스는 이 책에서 특유의 독설을 수많은 예증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끌어 간다. 깊이는 도킨스에 비해 조금 얕은 면이 있지만 제시되는 예시들이 나름대로 흥미롭고 설득력있다. 아직도 이런 글에 대해, 일부 교인들은 선한 종교인들도 많다는니, 이성을 믿는 것도 일종의 종교가 아니냐 등의 반응을 보인다. 사실, 이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분들은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지 않고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도 엄청난 피를 흘렸다.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성경에 대한 비유적 해석은 종교가 인류의 일반 상식의 발전에 어쩔수 없이 후퇴한 결과라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받아들여 과학적으로는 진화론을 믿는 대다수의 교인들일 것이다.
단지 이런 논리가 가능할 것 같다. 세상에 선을 추구한다는 분야중에 역사상 가장 많이 사람을 죽인 분야는? 정답은 압도적으로 종교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나치라는 조직에도 약한 사람들을 돕고 일상에서 선한일을 행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또한 강도 살인등의 1급 범죄로 미국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중에 교인의 비율은, 일반 대중에서의 교인 비율과 거의 같거나 약간 높다. 즉, 종교라는 분야를 전체적인 비판하는데, "교인들중에 좋은 사람 많다" 등의 논리로 대응하는 것은 사실을 오해하고 있는 초등학생 수준의 (사실 초등 4학년인 우리집 둘째는 지난번에 학교에서 떠들었다고 선생님에세 꾸중을 들은 것을, 내가 이야기하니 나만 떠든게 아니라고 자신을 방어했다) 반응이다. 두번째, 과학이나 이성도 하나의 믿음이 아니냐는 대응은 조금 고급스럽지만 감히 종교를 이성과 과학에 동참시키려는 헛된 노력이다. 과학이나 이성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면 바로 수정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 에테르의 존재 여부가 증명되어 폐기된 것은 좋은 예이다). 하지만, 노예제도, 인종 차별과 여성 차별등에 대해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잘못 된 것이라고 인정하기까지는, 일반 대중이 같은 사실을 인식한 시점 대비 대략 30년 정도가 더 걸린다. 참으로 자신의 잘못에 관대한 분야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누구나 잠시만 노력을 기울여도 할 수 있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정당한 사고이다. 단지, 도킨스가 주어준 이성적 무장과 히친스가 이 책에서 제시한 많은 예증과 함께 한다면 더욱 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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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자비를 팔다’를 원망하는 글을 썼는데,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다르다. 이 책만큼은 감히 강력추천한다는 말을 붙이고 싶다. 왜 그러는가 하면 강력한 내공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율! 전율!
종교를 비판하는데 이렇게 날카로운 말로 무장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감히 반박할 수 있을까? 히친스는 그 반박이라고 할 것들까지 먼저 끄집어내서 완벽히 묵사발을 만들어버린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등 히친스는 ‘아작’을 내버린다. 허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만큼 간결하고도 분명한 말들. 무자비하게 은근히 비꼬는 실력도 뛰어나다. 배우고 싶을 정도로 거의 완벽함!
종교가 사람을 어떻게 꼬득이고 어떻게 후려치는지를 알려준다. 파시즘 정권과 빌붙었던 그 행태들도 까발린다. 사람을 위한 종교라고? 신은 원래 존재했다? 후후후.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결국, 신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또한 누군가는 권력과 자본을 얻는다는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되니,
종교의 종말. 자존심이 무참히 깨진 그들의 저주 때문에 히친스는 지옥에 갈지도 모르지만, 냉철한 그의 논리로 사람들은 이성을 회복할 것이다. 좋은 책을 봤다. 소중한 책을 건졌다. 신은 위대하지 않지만 히친스는 위대했다.
“용이 진짜로 있어요?” 아이가 물었다. 나는 없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있었어요?” 나는 모든 증거가 그렇지 않다는 쪽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이라는 말이 있다는 건, 옛날에 틀림없이 용이 있었다는 얘기잖아요.”아이가 말했다.(p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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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토론을 하면서 가장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으로 흐르는 것이 있다면 아마 종교에 관한 논쟁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때, 종교에 대해서, 그리고 신(神)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조금은 생각해 본적이 있다. 결과론적으로 보아서 별로 유익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한때는 타의(?)에 의해 교회라는 곳도 다녔고, 구약이나 신약, 불교 경전을 시험공부를 위해서 읽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를 제외한 가족들 모두가 신앙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 자신은 종교라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또한 아이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때, 그들 자의에 의해 종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는데, 어려서부터 비이성적으로 종교를 가지게 했다는 자책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 책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나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구매해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이라는 생각이다. 다만 오늘, 내일 하다가 이제까지 읽을 기회를 가지지 못했고, 이제서야 히친스의 책을 먼저 읽게 되었을 뿐이다. 사실 신(神)이 있다, 없다 하는 논쟁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다거나, 그리스의 반(半)신인 페르세우스는 제우스가 황금 소나기로 변신해서 처녀인 다나에를 찾아가 임신시켜 태어났다거나, 부처는 어머니 옆구리에 난 구멍을 통해 태어났다거나, 어느 몽골왕의 딸은 어느날 밤 자다가 환한 빛이 자신을 감싸고 있어 놀라서 깨어보니 임신을 하여 징기스칸을 낳았다는 말들이, 전설이나 신화로써 얘기하면 몰라도,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으라는 것은 어째 좀 거시기할 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각각의 종교가 가지고 있는 경전, 계시의 가르침, 종교의 역사등에 대해서 하나하나 파고든다.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부도덕하며, 일관성마저 없는지에 대해 수많은 논증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지금의 종교들이 내세우는 신들과 함께라면 우리 인간은 평화와 행복을 찾을수 없다고 말한다. 종교는 항상 복종과 감사와 두려움을 강요하고, 현재의 삶은 한심한 것이며, 내세를 준비하기 위한 막간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상 종교라는 이름을 감추고 행해진 수많은 전쟁들과, 그런 전쟁을 신의 이름으로 부추긴 종교지도자들이 과연 우리 인간의 평화와 행복을 바란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렇다고 그가 이 책에서 역사상 종교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범죄들을 폭로하거나, 그들의 부도덕성을 규탄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근본조건들을 생각할 때, 종교, 아니 신(神) 그 자체가 문제의 핵심임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어떤 종교든지 간에 예배의 절차는 공동의 축제와 찬양을 부추길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종교는 언제나 신자가 아닌 사람, 즉 이단자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삶에 끼여 들려고 한다. 그것은 황홀하기 짝이 없는 내세 이야기를 앞세워, 이승에서 권력을 잡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종교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신의 속성에서 찾는다. 인간은 신과 종교를 창조했고, 그 종교는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지와 미신이 필요했으며, 결국은 수많은 증오와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현대에 가까워올수록 기적은 사라지고 또한 있다 해도 천박해지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무지에서 깨어나 자연현상에 대해 이해하고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 그 옛날 종교가 가한 위협들이, 그리고 그들이 가한 고통스러운 처벌들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종교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아니 있더라도 동호회 수준에 머물렀을 것 이라고 말한다. 믿음이란 개인의 선택문제이다. 그들이 무엇을 믿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강제적인 방식으로 종교를 주입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쓸데없이 공적인 일에 종교를 내세우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음을 흔히 발견하곤 한다. 2006년 미국 뉴올리언스의 홍수는 도시가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과 부시행정부의 직무 태만이 빚어낸 참사이었음에도 종교지도자들의 신의 처벌 운운하는 것이 과연 이성적인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정치가가 했던 말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나는 유신론자는 아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 각기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보고 성찰을 하기 위한 도구라면, 그 옛날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이나 우리조상들이 믿어온 수많은 신들처럼 종교가 말하는 신을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말도 되지 않는 율법과 교리에 얽매이고, 역사적,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고 무지와 미신을 강요한다면 그냥 무신론자로 남고 싶다. 그러기에 이제는 우리의 역사와 삶에서 신을 떨쳐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인류의 역사를 평화와 행복으로 다시 설계하자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아니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너무나 비대해진 이 땅의 종교들을 보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이성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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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본주의는 잘못을 사과하고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불변의 신념체계를 뒤흔들거나
거기에 도전할 필요까지는 없다.
1. 줄거리 。。。。。。。
저자 자신이 왜 종교를 증오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은 책이다. 별다른 이유의 제시 없이 그저 종교는 악하다고 주장한 저자는(1장), 종교인들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한 피해들(2-4장)을 그 이유로 제시하는 듯하다. 5장에서 종교의 형이상학적 주장에 대한 ‘형이하학적’ 분석을 하며 종교의 무가치성에 대해 열변을 토한 후에는, 우주에 대한 ‘지적설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폭언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6장) 7장부터 10장에서 구약과 신약, 코란 등 유력 종교의 경전들을 현대적 기준으로 비난한 저자는, 11-12장에서는 현대의 사이비종교의 탄생을 예로 들며 모든 종교의 시작은 그와 같다는 식의 비논리적인 유비추리를 전개한다. 13장은 2장의 내용과 같으며, 14장에서는 자신의 동양종교에 대한 몰이해를 여지없이 보여주며 그것들을 비난한다. 15장은 7-10장의 내용의 반복이고, 16장은 다시 2장과 유사한 내용인데, 이 장들의 가장 큰 특색은 특별한 ‘증명’ 없이 그저 자신이 경험한(어쩌면 경험하지도 못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욕설을 퍼붓고 있다는 점이다. 17장에서는 ‘저자 자신이 정한’ 종교인들의 ‘최후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아닌) 경멸이 등장하며, 18장에서는 역사상의 ‘위대한 무신론자들’의 예를 열거하며 낯간지러운 무신론 찬양을 외친다. 결론부인 19장은 비록 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을지라도 무신론은 인간을 진정한 유토피아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으로 마친다.
2. 감상평 。。。。。。。
무신론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책이다. 여기서 백과사전이란 폭넓고 깊은 진리들의 모음집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전후 내용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채 잡다하게 늘어 놓여 있는 상태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거기에 필요 이상의 반복적인 내용으로 책의 두께가 두꺼워졌다는 의미도 추가할 수 있겠다. 이 과격하고 자극적인 욕설로 도배가 되어 있는 두꺼운 책의 표지에 어째서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같은 종류의 책 가운데 단연 최고’라는 찬사가 인쇄되어 있는 지 쉽게 추측할 수 없다. 사실 책 표지에 인쇄된 찬사들은 책에 대한 지배적 의견이라기보다는 출판사 관계자의 구미에 맞는 노골적이고 낯간지러운 원초적 찬양일색인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말이다. 차라리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생물학’이라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기라도 했지만, 이 책의 경우는 그런 부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역시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원색적인 욕설과 조롱이다. 예컨대 “하지만 종교는 나 같은 행동을 할 능력이 없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리고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종교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러분과 나를 파멸시킬 계획, 인류가 힘들게 얻은 모든 성과를 파괴할 계획을 짜고 있을 것이다. 종교는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29쪽)와 같은 문장들에서는 저자가 피해망상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저자는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야만적인 반응을 보이는’ 종교인들을 비난하지만(49쪽)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야만적인 반응을 보이는 ‘무신론자들’은 보지 못했나보다. 저자의 사회적 차원에서의 교양 없음은 130쪽에도 등장한다. 저자는 단지 ‘이론’이라는 말에 자신과 다른 정의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상대를 ‘멍청한’이라고 조롱한다. 누군가 공식석상에서 이런 말을 했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왜 책에서는 이러한 조롱이 허용되어야 하는가? 이 책이 삼류 포르노 잡지도 아닌데 말이다. 그 뿐 아니라 저자는 단지 소설 내용을 근거로 종교를 비난하는가 하면(317쪽) 저질 스포츠 신문에서 스크랩 한 듯한 종교에 관한 온갖 가십꺼리들을 모든 종교에 해당되는 양 제시하기도 한다.(87쪽) 사실 도킨스의 책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노골적인 비난과 조롱, 경멸은 ‘고상하신 무신론자님들’의 특성인 듯싶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결국 이 책에 가득한 종교에 대한 경멸과 욕설은, 단지 저자가 선한 종교인들을 ‘경험’해 보지 못해봤다는 이유일 뿐인 것 같다.(276-77쪽)
이와는 반대급부로 무신론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도 문제다. 저자는 세상을 참 간편하게 이해하는데, 모든 악은 종교로, 모든 선은 이성으로라는 이분법적 구도이다.(cf. 45쪽) 무신론에 대해 거의 반사적인 칭송을 하려다 보니 약간은 혼란하지만 자생적인 문화적 발전보다는 ‘식민지 시대의 장엄한 건물들’을 찬양하기도 하고(38쪽,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던 대학교수가 있었지 않던가? 일제시대는 우리민족 발전의 전기였다고.) 만약 종교인이 그랬다면 당장에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을 만한 윤리적 문제도 무신론자가 그랬다면 관대하게 넘어간다.(274쪽) 종교를 비난하기 위해서라면 자료의 인용도 제멋대로다. 마이모니데스라는 중세의 철학자를 예로 들면, 저자는 이 한 명의 인물이 남긴 저작의 신뢰도를 한편에서는 부정하고(100쪽), 다른 한편에서는 그대로 인정한다.(325쪽) 하지만 둘 다 결론은 ‘그러니까 종교는 나쁘다’는 것이다. 정확한 연구 없이 단지 기분에 따라 악평을 써 내려가기도 하고,(283쪽) ‘남아프리카 사회가 야만성과 내부 붕괴로부터 구원될 수 있었던 것은 호전적 불가지론자들과 무신론자들 때문’이라는 낯간지러운 찬양도 보인다.(365-66쪽) 아마도 저자는 ‘상징적인 행위’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이 거의 틀림없는데, 간디의 물레를 단순히 ‘문명에 대한 비이성적인 종교적 거부’로 비아냥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271쪽) 저자는 그야말로 굉장한 문자적 해석을 하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라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한 나라의 독립운동가를 편협한 전통주의자로 비난하는 꼴이다.(아마도 윤봉길 의사가 어떤 종교신자임을 알게 된다면 당장에 종교적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지 않았을까?)
만약 시간만 주어진다면 나는 이 책의 정확한 반대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쓸 수도 있다.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이 저지른 역사상의 만행과 오류에 대한 사례들을 잔뜩 수집해서 아무렇게나 늘어놓으면 되니까 말이다. 물론 이 때 양을 필요 이상으로 늘리거나, 그렇지 않다면 두꺼운 종이로 출판을 해 ‘권위’가 있는 척 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종교인들의 조심성 없는 말과 행동에 실망한다. 때때로 자신의 욕심을 위해 고의적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모습에는 히친스의 편에 서서 함께 공격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도덕하고 비인간적이며 악질적인 과학자를 본다고 하더라도 과학을 경멸하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이성적인 관점’은 이런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과학’과 ‘과학주의’를 적절하게 구별하지 못한 채 이 편의 것은 무조건 옳다는 오류에 빠져있고, 이는 그다지 ‘이성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과학은 ‘현상을 설명하는 기술적 도구’이고, 과학주의는 ‘모든 것은 과학으로만 설명해야 한다는 신념체계’이다. 저자의 엄격한 ‘과학주의(혹은 증거주의나 기초주의)’를 택한다면 우리는 이 책의 내용을 하나도 믿을 수 없어야 한다.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저자 자신의 문장 이외에는 전혀 얻을 수 없으니까. 물론 책에 등장한 사례들을 일일이 조사해 본 후에는 이 책의 내용을 믿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그런 시도가 성공할 지는 미지수다) 저자는 ‘하지만 인본주의는 잘못을 사과하고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불변의 신념체계를 뒤흔들거나 거기에 도전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단언하는데(363쪽), 이러한 단언이야말로 인본주의의 신앙으로서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이토록 극렬한 분노를 터뜨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는 듯하다.(70쪽) 이해 비해 저자의 철학에 대한 몰이해(‘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말을 그럼 신이 언젠가는 존재했었다는 뜻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으로 보아, 104쪽)나 신학적 진술에 대한 몰이해(주로 할례의 대상과 범위에 관한, 328쪽)는 오히려 작은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같은 종류의 책 가운데 단연 최고’라는 소개글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유사한 책인 『만들어진 신』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과 상당부분이 겹치고 있으며(서평까지도 거의 같아야 할 정도다. 그냥 앞선 서평을 읽어보면 될 것 같다), 그나마 독창적인 점이라고는 좀 더 원색적인 욕설과 조롱이 등장한다는 점과 좀 더 많은 모순적 문장들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책 표지가 내가 좋아하는 밝은 노란색으로 되어 있다는 것 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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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 오해했던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 때의 기쁨, 이런것도 있구나 하는 감탄 등 소소한 것에서 부터 인생관을 바꿀만큼의 충격 까지...
이 책을 읽는 내내 통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무신론자인 내 입장에서 종교, 신학, 철학 등 나름대로 여러권의 책을 읽은 중에 이 책 만큼 내 생각을 대변한 책은 없었다. 내가 직설적이고 좀 감정적인 것은 인정하지만, 저자는 어쩌면 이리도 나와 생각이 같으면서도 깊이가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나보다 아는 것이 많고 깊은 고민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왜 무신론자들은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당당히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가? 유신론자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고 무신론자의 생각이 올바른 것임을 증명하는 수많은 사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신론자인 것이 무슨 죄인인양, 비도덕적인양, 겸허하지 못한사람인양 취급되는 것에 분노할 때가 많았다. 현재의 미국사회에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자가 자신이 철저한 무신론자임을 천명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당연히 낙선할 것이고. 이것이 문제의 실태를 적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어떠한가? 왜 우리나라의 대통령 후보자들(심지어 이미 당선되어 취임한 현직 대통령들)은 자신이 믿지도 않는 종교단체의 수장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가? 한마디로 웃기는 짓이다. 마이클 셔머, 리처드 도킨스 이 사람들은 무신론자 진영의 대표선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꽤나 영향력이 있는 학자들이기도 하다. 무신론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훌륭한 저작들을 남기기도 했고 아직도 현역 선수이기도 하다. 나는 그들의 대표저작들을 읽어보았다. 한국어 번역판이라서 그들의 생각을 100% 이해 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 책들을 보면서 아! 우리편에도 훌륭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특히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는 동안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는 무신론자들의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주장들을 반박하거나 또는 예상되는 그 말도 안되는 비판에 대비해서 장황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실 내가 보기에 '그건 말도 안돼' 또는 '웃기도 있네' 라고 한마디만 하면 될 것 같은 그들의 주장에 대하여 정말로 친절하게도 세세한 설명을 학 있다. 이런 대목을 읽을 때 도킨스가 불쌍하고 유신론자들에 대하여 화가 치밀어 오르기 까지 한다. 하지만, 이 책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저자는 그러지 않는다. 말 같지도 않은 주장들은 한마디로 무질러 버린다. 그러니 어찌 통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래서 이 책이 좋다. 그렇다고 이책의 깊이가 없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또한 저자는 종교의 병폐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고수한다. 이점 또한 내맘에 꼭 든다. 이 책의 본문중에 인상적인 구절이 있어서 조금 옮겨본다. "종교가 유용했던건 과거지사이며 종교의 근간이 된 책들이 사실은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가득하고, 종교는 인간이 꾸며낸 사기극이며, 과학과 탐구의 적이고, 주로 거짓말과 공포에 의존해 목숨을 부지해 왔고, 노예제도 인종학살, 인종차별, 폭정은 물론 무지와 죄책감의 공범이었다는 사실을 내가 결정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한다 해도, 종교가 이런 비판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고는 분명히 주장할 수 있다" 정말 통쾌한 구절이기는 한데... 두가지 지적하고 싶다. 첫째, 저자는 이 책에서 이미 증명하고 있다. 둘째, 종교가 이런 비판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고 했지만 대한민국의 종교계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한민국의 종교계가 확실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이모양 이꼴이라면, 정말이지 대한민국의 어찌할 수 없는 나라일지도 모른다. 이민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 책 이거 물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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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종교에 관한 문제는 워낙 민감하기에 되도록이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땅의 주인이 되어있지만 어찌보면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현실에서의 불안감과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종교라는 존재를 등장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등장한 종교는 인간의 역사에서 커다란 부문을 차지해 왔다. 종교는 인간이 생겨날 때부터 그리고 인간이 군집을 이루어 사회를 형성할때 부터 있어왔으며 지금 현재도 인간이 살아가고 인간이 이룬 사회라는 집단이 유지되고 변화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종교가 주는 가치와 규범들이 인간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의식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증거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종교는 그 순수성을 넘어 종교 때문에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살육하기도 하고 또한 반대세력에 대해서는 거침없는 탄압을 주저하지 않았다. 종교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커다란 수단이기도 했으나 나머지 일부에겐 부담스런 자신들의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었을까.
모든 종교는 각자의 신을 받들고 있다. 그리고 그 신들은 각자의 종교내에서 절대적인 권위와 함께 종교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미 지난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무신론자들의 주장을 마음껏 펼쳐낸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만들어진 신>을 통해 그 신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일뿐이며 갖가지 논리를 동원하여 종교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환각의 세계를 타파하여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리처드 도킨스가 진화 생물학이라는 현대의 과학에 비추어 기독교를 비판했다면 이 책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실제로 일어난 인간의 역사적인 사건들과 현재에도 세계의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종교 분쟁과 전쟁 그리고 그만의 철학적 논증을 통해 종교의 부당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리처드 도킨스와는 이 민감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약간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예상대로 책은 상당히 공격적이다. 일단 신이 위대하지 않다고 대전제를 했기 때문에 평범한 신의 모습을 그려낼것인가 아니면 종교라는 존재 자체의 필요 유무를 역설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물론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 종교를 만들어낸 인간조차도 각자의 예언자나 구세주가 실제로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내놓지 못한다. 저자는 기독교에 대해 너무나도 다른 각 복음서의 차이가 있음을 증명해 해낸다. 복음서는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누군가가 구전으로 전해오던 이야기를 엮어낸 책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인 산상수훈, 유다의 배신,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것등에 관해 서로 엄청난 견해 차이를 보인다. 무엇보다 저자가 짚고 넘어가는 문제는 십자가 처형이나 부활에 대해서 까지도 일치된 설명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저자는 그 연원 자체부터 독자적인 종교인지를 의심하고 있다. 코란 자체가 필요할 때마다 예전의 경전과 전통을 베낀 표절이며 심지어는 그것마저도 제대로 배치하지 못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종교의 범죄상 폭로에만 그 관심을 한정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신 자체가 문제의 핵심임을 내내 강조한다. '신은 존재하는가' 라는 가장 원론적인 질문에 저자는 단호하게 답한다. '신의 자기모순을 보라. 묻기 전에 무효다' 또한 '신 없는 인간의 삶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도 '가능할 뿐 아니라 그 편이 훨씬 낫다'고 답한다. 원래 부터 우리가 누려야 할 평화와 행복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다고 답변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 히친스는 신의 자기모순에 파고든다는 뚜렷한 특징과 개성을 보여준다. 사실 과학이나 논리 자체를 부정하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과학의 성과를 들이대며 논쟁을 하는 것 자체가 허무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과학과 종교가 다르다거나 신앙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는 모호한 논리는 애초부터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다. 그것보다 히친스는 차라리 신의 세계에 곧바로 뛰어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은 인류 역사의 시원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과 함께, 신의 섭리에 따라 서로 죽이고 짓밟는 한편 간신히 이룩한 문명의 성과를 파괴하며 살아왔다. 파괴와 반생명주의는 신의 속성이며 종교의 태생적인 조건이다. 이제까지 서로 부수고 짓밟고 살아온 인간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내일을 꿈꾸기 위해 신에 엮인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인간에게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불가능하다."
종교는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종교는 문명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난 9·11은 피해 당사자인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 '과연 신은 있는가'에 대한 물음부터 종교의 배타성과 폭력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회의가 대두되고 있다. 청교도의 나라임을 자처하는 미국에서는 실제 무신론자대회가 열리기까지 했다는 뉴스를 우리들은 접하기도 한다. 대선투표에 있어서 무신론자보다는 차라리 흑인, 카톨릭, 여성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미국에서... 그것은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종교의 폭력성과 호전성 그리고 반인간성과 반문명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신과 종교를 비판하는 근본적인 회의와 항의가 아닐까.
이 책은 인간의 가장 오랜 논란거리 중의 하나인 종교와 신을 다루었지만 이 책의 저자 역시도 집필기간 내내 집필을 중단하고 논쟁에 참여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것은 실제 저자에게 위험적인 요소로 다가오기도 했고 많은 종교 관계자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보다 분명해지는 것은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역사에서 많은 악행들이 신의 이름으로 저질러 졌다는 것, 그리고 신을 만들어낸 것이 인간일 가능성, 세상에 피해를 덜 끼치는 대안적인 믿음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히친스의 이 책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기독교 등 유일신교의 문제점을 비판한 무신론에 관한 책이다. 신자들의 일부는 이 책을 읽고 분노하고 이를 비판하는 책을 출간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위협을 받았던 것 처럼... 하지만 하지만 히친스는 신자들에게 그들의 신을 버리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의 이성에 기댈 때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며 인간의 역사와 우리의 삶에서 신을 떨쳐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인류의 역사를 평화와 행복으로 다시 설계하자는 메세지를 던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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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으로만 생각 하고 있던 말을 누군가 이렇게 세상밖으로 던져내면 너무 반갑다.일종의 나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 그리고 동료의식 같은...나는 아직도 끝임없이 주변의 지인들로 부터 종교를 가져야 하는 이유 그 가운데서도 기독교에 대한 전도를 끊임없이 받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있다. 그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주지 않는다. 다만 언제가는 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적어도 그런 눈빛으로 나를 대한다.
나 역시 신을 처음 부터 부정한것은 아니었다.모태신앙은 아니었어도 유치부시절부터 고등시절까지 일요일이면 교회를 가야 하는 줄 알았고,무슨무슨 대회와 크리스마스는 아주 큰 행사였었다.고등학교까지 다니면서도 속으로 갈등은 이미 존재했었다 사춘기시절 감성이 예민한 탓도 있었겠지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속에 적어도 사기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남을 헐뜯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아주 고루한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을 사춘기시절 내내 보면서 종교라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시간 외면을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고 주변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에게 매달렸다, 처음엔 하나님의 힘으로 병이 고쳐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러다 그 희망이 무너지면서는 하나님이 편안한 곳으로 데리고 갈 수 있게 하는 안도의 기도를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기도를 했던 기억이 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되었던 그 과정들은 그래서 나의 과거형에 불과하다.
나는 옛날에 인도가 좋았다,정말 갠지스강에서 도를 닦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감동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에 자꾸만 반기가 들린다. 얼마전 뉴스에서 세계 갑부 톱텐안에 인도의 부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 가난한 나라에서 그리고 누구보다 종교를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비움에 대해 수양한다는 나라에서 그러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 종교 가진 이중성이 그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마치 나이지리아에서 소아마비 백신이 이슬람신앙을 파괴하려는 미국의 음모라는 주장 이라든가,수혈을 받지 않고 수술을 거부 하는 그들에게 신이란 어떤 존재인지 물어 보고 싶다.그러면 사람들은 그렇게 죄를 짓지만 그 죄를 주일에 사함 받기때문에 신을 믿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나는 종교를 갖지 않고 있지만 오히려 나는 신의 존재는 믿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 부터 나의 불안함에 위로가 될 수 있는 마음의 의지가 될 수 있는 그런 존재로서의 신을 말이다. 대부분 괘변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저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단락 하나하나 던지는 화두가 내가 생각했던 신에 대해 가졌던 고민과 갈등에 대해 때로는 난해하게 혹은 나와 생각이 같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며 스스로 신에 대해 가졌던 저자와 비슷한 생각들에 대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행복감을 느끼며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마음이 기우였음을 알게 해 준 고마운 책이 되었다. 제목은 다소 과격하고 선정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대리만족이 충분히 되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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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영미 언론이 선정한 '100인의 지식인' 가운데 5위에 오른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글이다. 적나라하되 천박하지 않고 불편하되 무시할 수 없는 신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라고 표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종교의 시작과 소멸, 폐해와 허구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기독교 중학교를 다녔다. 매주 전교생이 모이는 예배 시간과 각 반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예배 시간이 있었고, 성경 수업이 1주일에 2회, 일요일(주일)에는 학교 재단 소속의 교회에 가서 선생님께 눈도장을 찍고 주보를 가져다 제출해야 했다. 딱히 종교가 없었던 터라 그다지 반발감이 없이 따라가긴 했으나, 나름대로 다른 종교를 믿는 아이들은 획일적인 기독교관에 많이 힘들어했다. 또하나 떠오르는 기억은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으로 과학부를 했었는데, '창조론을 믿는 과학자들'의 모임에서 강연을 왔던 것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으로 모든 현상은 발전하는데, 점점 더 정교한 모습으로 진화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영장류와 사람 사이의 중간 역할을 하는 화석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거로 삼았던 듯하다.
그가 다루는 것은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 모르몬교 등 다양하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들이 많기 때문에, 그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라는 말로 책 제목을 삼았나 보다. 신이라는 존재는 모두 사람이 만든 것으로서, 종교가 해롭다는 이유를 여러 가지 근거를 통해 이야기한다. 우선 신의 글이라 일컬어지는 온갖 경전들이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과정에서 모순과 허구와 아집과 독선을 찾아내었고, 유수한 종교학자들의 저서와 발언 등을 조목조목 반박함으로써 사상의 일체감이 없음을 증명했다. 이야기는 사회적인 문제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같은 과학적인 문제로, 또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분쟁 같이 종교의 가면을 쓴 인종 문제로 거침없이 이어진다. 정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그의 이력에 걸맞게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자세와 다양한 경험들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차라리 종교보다는 인류애를 믿는 편이 세상이 더 따뜻해지는 것이 될까. 1800년대 중반이라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모르몬교의 설립 과정을 보면서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도 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태어났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어딘가에 매달리고자 하는 연약함은 많은 사람에게 있겠지만,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동질의식을 느낌으로써 군중심리 또는 다수의 폭력으로 이어지는 종교의 문제까지로는 비화되지 않으면 좋겠다. 저자는 결론으로 새로운 계몽을 제안한다. 아무런 제한 없이 과학적 탐구를 하고, 손쉬운 전자기기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하고, 성생활과 두려움, 성생활과 질병, 성생활과 폭정 사이의 연관성을 끊어버릴 수 있으며, 이는 담론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모조리 없애버린다는 조건 하에서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나라들에서 종교와 정치는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다. 신의 나라라는 미국의 전쟁광적인 행동, 신정 국가인 이란의 민생 붕괴와 핵개발, 교황이 다스리는 바티칸의 인종 차별과 테러리스트 지지, 유대인의 이스라엘 강제 건국과 팔레스타인인 학살 등 종교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는 비인륜적인 사항들은 종교에 대한 회의를 부추긴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비교적 다양한 종교가 혼재함으로써 다수 종교의 억압을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고 있으나, 이는 내가 사회와 종교에 무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에 의해 사람이 억압받는 현상, 이제는 사라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