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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913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남. 90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랜 투병 끝에 95년에 별세하셨단다. 그의 묘비 뒷면에 친구였던 서정주 시인의 '김동리찬(讚)'이란 글이 새겨졌단다. "무슨 일에서건 지고는 못 견디던 한국 문인 가운데 가장 큰 욕심꾸러기, 어여쁜 것 앞에서는 매양 몸살을 앓던 탐미파 가운데 탐미파, 신라 망한 뒤의 폐도(廢都)에 떠오른 기묘하게 아름다운 무지개여." 이만큼 김동리는 <한국문학>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작가였단다. (170~173쪽, 본문 가운데에서 발췌)
배경지식을 쌓아야 겨우.. 문학엔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잘 못 느끼겠다. 김동리 작품의 대단함을 말이다. 어떻게 읽어야 할 지도, 무엇에 그리 감탐해야 할 지도 가닥을 잡기도 힘들었다. 작품만 읽어서는 말이다. <인물, 사건, 배경> 가운데 작품만 읽어서는 <인물과 사건>만을 보기 십상이다. 두루 섭렵한 뒤에야 쌓이는 <배경>, 즉, 작가가 작품을 썼던 <시대적 배경>과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삶을 엿보는 <민담>이나 <설화> 따위를 <배경지식>으로 삼고 나서야 겨우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도 <전통과의 단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요즘 아이들이 <한국단편문학>을 어려워하는 까닭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닐런지..헤아려보면 겨우 100여 년 남짓 지났을 뿐이데, 우리네 삶은 이다지도 달라져서 서로 바라보면서 낯설어 해야 하는 지 안타깝다.
이 책엔 네 작품이 실렸다. <화랑의 후예>, <바위>, <황토기>, <까치소리> 차례다.
<화랑의 후예> '조선의 심볼'이라 불리는 황진사. 명망 높은 가문의 후손으로 이름은 자자하지만, 실로 하는 짓은 거들먹거리는 시정잡배와 다를 바 없고 비럭질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감히 '조선의 심볼'이라니..부끄럽지만 구한말 나라를 잃은 조선의 지배층의 모습이 이와 같았을 것이다.
김동리는 일제식민지 시기에 스러져 가는 조선의 모습을 이런 인물을 앞세워 그려낸 모양이다. 이 작품이 김동리를 소설가로 등단시킨 데뷔작이라고 한다. 적절한 비유로 당대의 암울한 현실을 잘도 그려내었다고 여겨진다.
<바위> <복바위 전설>과 같은 우리의 <기복신앙>을 알고 있어야 깊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살던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들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아내의 병환. 아내가 <문둥병>에 걸린 것이다.
그동안 아들이 모아둔 돈은 병든 아내의 약값으로 탕진하고 아들은 궁핍한 삶이 싫었던지, 아님 어머니의 병을 고칠 큰 돈을 벌려는 것인지 집을 나가고, 남편은 생활고를 감당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비상이 든 떡을 건네며 죽기를 바란다. 남편의 뜻이 무엇인지 안 아내는 독이 든 줄도 알고 받아 먹었지만 모진 고통 끝에도 죽지 않았다.
그 길로 집을 나선 아내. 복을 빌면 들어준다는 영험한 바위로 가서,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게 해주십사 빌고 또 빈다. 복바위의 영험 때문이었을까? 얼마 뒤, 진짜로 아들을 만나게 되는데..아들은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며 어머니 병을 고치겠다고 굳은 결심을 한다. 그러나 다시 떠난 아들은 돌아오지 않고...큰 돈을 마련할 요량이었는지 어디선가 수감생활을 한다는 소문 뿐이다.
아내는 정성이 부족해서 더이상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지, 병든 몸을 감춰주는 밤 뿐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낮에도 한갓진 틈을 타서 정성을 들인다. 그러다 사람들에게 쫓겨나길 여러 번...어느 날인가 아내는 복바위 위에 주검을 놓이고 저승으로 가고 만다.
뒤늦게 아내의 주검을 발견한 사람들은 더럽다는 둥, 바위를 망쳤다는 둥 싸늘한 시선만 주고 피해버린다. 정작 복이 필요한 사람에게 접근조차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기적인 마음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소외가 여전하다. 진짜 복지혜택이 절실한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복지정책, 또 지역주민을 모두 내쫓고 나서야 시행되는 지역재개발 같은 일들 말이다.
<황토기> 일제시대 사회상과 <아기장수설화> 같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작품이해가 쉽다.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 힘이 장사이면서도 그 힘을 나라를 위해 쓰기는커녕 자기 자신을 위해서조차 쓰지 못하게 하는 암울한 환경을 이해해야 주인공들의 행동과 이들이 벌이는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일단 황토골에서 난 인물은 나라를 망치는 역적이 되거나 큰 불행을 가져온다는 예언 때문에 억수는 잘 난 재주를 지녔는데도 감추고 억눌러야만 했다. 그래야 집안이 멸문의 화를 당하지 않는다고 믿는 어르신들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 <아기장수설화>에서는 날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으나 무능하고 부패한 지배층(임금)이 오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기장수의 날개를 꺾어 버렸다고 전해진다. 이와 같이 득보도 누구보다도 힘이 세지만 그 힘을 쓸 마당을 빼았겨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날 때부터 지닌 재능을 억누른다고 감춰지고, 쓰지 못하게 한다고 써지지 않을 수 없으니.. 둘은 서로 만나자마자 서로의 처지를 한 눈에 간파한다. 그리고 동병상련인듯 서로 만나기만 하면 싸우기만 하니 용호상박, 난형난제란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렇지만 그뿐이다. 더이상 쓸 데가 없다. 차라리 그 힘으로 나라를 세우라면 세울 것이요, 나라의 동량이 되라면 될 테지만, 어느 하나 써먹으려고도 쓰려고도 하지 않고..저처럼 하늘도 놀래고 땅도 놀랠 정도로 싸움박질만 해댄다. 참 허무하고 또 허무한 일이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현실이 그러했으리라. 조선인으로 태어난 죄로 그 재능을 썩힐 수밖에 없는 암울한 현실말이다. 또 지배층의 무능함을 비꼬는 것일 수도 있으렸다. 이러니 나라를 어의없게 빼앗기고 말았지..라는. 오늘날에도 피할 수 없는 비판이렸다.
<까치소리> 해방 뒤, 60년에 쓰인 작품이라 한국전쟁이 배경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둘로 갈라놓은 것은 <전쟁>이었다. 아니 <운명>일런지도. 그렇게 남자는 전쟁터에서도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죽을 수 없었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 둘을 훼방놓은 사람은 남자와도 알고 지내는 가까운 사내였다. 이 사내는 일편단심인 여자를 굴복시키기 위해 <거짓 사망통지서>를 만들어 여자와 결혼한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남자는 나라를 배신하고, 전우를 기만하는 자해(自害)를 하여 불구가 된다. 오직 여자를 위해서 한 일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선 꼭 살아서 돌아가야 했기에..
결국 제대한 남자는 뒤늦게 여자의 결혼 소식에 망연자실한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돌아왔더란 말이냐. 나라를 위해서도 아니고, 병든 어머니와 고생하는 여동생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너만을 위해서 다시 돌아왔건만..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자해를 하지도 않았고, 전우와 나라를 배신하지도 않았을 것을..
남자는 여자를 찾아간다. 원망해서가 아니다. 복수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사랑했기 때문에 돌아왔노라고 그러니 우리 사랑하자고 말하려 찾아간다. 여자는 미안하다고 죽일년이라고 자책한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변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둘은 함께 떠나자고 약속까지 하건만..여자는 시댁과 남편의 감시 때문에 감행하기가 힘드니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언제가 되었든 꼭 갈테니 기다려달라고 한다. 남자는 생각한다. 여자를 믿지만 여자에겐 강철같은 굳은 결단력이 없음을...
이것만 가지곤 <까치소리>를 제대로 해석할 순 없다. 그래도 김동리의 <탐미주의>를 한껏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서 나름 풀어보았다. 김동리의 작품 가운데 비교적 오늘날의 정서로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기에...
문학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아야.. 문학은 그 속에서 교훈을 배울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즐거워야 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문학을 음미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길 기다리기보다는 접근가능한 <징검다리>를 놓아주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EBS수능강의가 해주긴 하지만..그닥 재미는 없다. 재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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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의없는 전설 때문에 희생당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났지만 계속 화목하게 지내지는 못하고... 전설이 어의없는것도 이런것이있나 이런 전설땜에 피해보는 사람들도 있잖아. 가끔 살다보면 어의없는 믿음 때문에 쓸데없이 죄없는 사람들이 희생되는 경우를 볼수 있다 그거의 대표적 경우가 이소설의 덕보이다..완전 전설 맘에 안들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