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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6~7년 전 쯤 이었을 것이다. 공중파 다큐멘터리 방송중에 흐르던 화면, 분명 우리말을 하고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이들인데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그때 그 느낌,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왜 저들이 타국에서 저런 생활을 하고 있는지, 같은 민족임은 맞는 것 같은데 왜 저곳에 있는 건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을뿐더러, 내가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아주 막연한 궁금증만 갖고 있던 때였다. 호기심을 가진 건 그저 가끔 티비에 그들이 나올 때 뿐이었고, 적극적으로 ‘우리 민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리란 생각도 하지 못했던, 매우 철없던 시절이었다.
자이니치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단순히 일본에 거주중인 한국인을 말하는 줄 알았기에, 그 속에 어떤 민족의 비극과 동포애가 담겨있는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민을 가서 1세로 살든, 2세 혹은 3세가 되어 한국 사람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일본인과 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사실 국적에 대한 일말의 따뜻한 고민을 기대하는 것도 우스웠다. 한민족으로서 그들을 보듬어주기 이전에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역사적인 냉대가 한 몫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나는 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조국’이라는 개념에 대해 지나치게 무심했던 게 아닐까.
‘우리 학교’는 지극히 다큐멘터리다운 방법으로 접근해와 자칫하면 거부감마저 가질 수 있는 위기를 유머스럽게 넘어간다. 만약 상업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영화였다면 그저 몇 주간 그곳에 머물며 필요한 자료를 뽑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감독이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동고동락했다는 것을 안 이상, 여타 다른 영화들과 차마 동급 평가할 수가 없었다. 감히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르지만. 러닝타임만 2시간이 넘고 군데군데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 가운데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결국 집중력이 조금 흐트러지긴 했지만 이 투박함이 다큐멘터리 영화다운 매력이기에, 평소 자주 접할 수 없던 만큼 꽤 참신했다.
혹가이도 우리학교의 아이들은 참으로 순수하고 해맑았다. 비슷한 또래의 우리나라 아이들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딱 그 나이다운 밝은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었다. 어찌 이 아이들을 보고 일본인의 대 반조선 테러와 조국의 극한 무관심에 노출된 ‘위험지대’에 살고 있다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서툰 발음으로 우리말을 또박또박하려는 노력과 추운 겨울에도 치마저고리를 입는 것(블레이저를 입는 남학생과 비교할 때 여자인 나로서는 성차별이라고 여겨지기도 함) 등은 ‘아, 굳이 저렇게까지...’ 라는 의아함과 동시에 ‘정말 대단하다’라는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했다. 호적에 표기된 바로 그 국적에서 그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는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하지 않을 마음가짐(?)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들의 모습과 행동에 의문을 품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즐겁게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의문을 가질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다. 내 민족을 지키는 일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초등학생 수학문제로 몇 시간동안 낑낑대다가 답을 알았을 때의 그 허무하고 공허한 느낌이었다.
감독이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을 그들과 함께 하며 생생한 기록을 남겼기에 학교의 아주 큰 행사, 예를 들면 운동회라든가 졸업식은 물론이고 평소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가정생활까지 엿볼 수 있었는데 이런 다큐멘터리다운 디테일함이 나에게는 더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북한의 영향을 더 받을 수밖에 없기에 그쪽에 좀 더 경도된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그들이 안타깝기도 했다. 왜 우리나라는 저들을 외면하는걸까? 북한만이 지원해주는 상황에서 한편으론 남조선(이렇게 나뉘어 불리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을 향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뭐 큰 기대를 하진 않는다. 해준 것이 없기 때문에.
혹가이도 우리학교 학사생활 중에서 낯설면서 좋아보였던 점은, 이르면 유치부에서 졸업때까지 입학과 동시에 학교에서 모든 일정을 보내면서 그야말로 학교가 가정의 역할도 해주는, 그런 환경이었다. 일본 내에 조선인학교가 많지 않은 관계로 통학거리가 멀어 설립 초기때부터 기숙사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특수상황 덕에 결코 많지 않은 수의 학생들은 나이와 학년을 불문하고 친구가 되고 서로의 멘토가 되어준다. 평범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이런 점이 신선했고, 부러웠다. 어쩔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겠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무척이나 사상이 건강하고 올바르다.
영화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김명준 감독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는데 예전엔 미처 몰랐던 사실, ‘우리학교’를 졸업해도 학위 인정이 안된다는 것은 다소 충격이었다. 더구나 꽤 많은 학생들은 일본대학보다 역시 학위 인정이 안되는 조선대학교로 진학해 재일조선인사회를 위해 힘쓴다. ‘우리학교’의 연장선인 셈이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이들의 우리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보통이 아니구나, 누구 알아주는 이 없고 외부의 따뜻한 시선조차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실로 대단하구나 느꼈다. 먹먹해졌다.
감독의 의도였는지도 모르지만 충분히 짐작 가능한 주제와 내용의 다큐멘터리치고 사상적 대립이나 일본 우익들의 구체적인 억압을 비교적 옅게 표현한 것 같아서 의외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일것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우리학교에 대한 협박메세지와 함께 잠시동안 등교를 금지시킨 일을 빼고는 특별히 기억남는게 없다. 또 다른 영화 <GO>와는 다르게 보여주려는 의도였을까. 속으로는 ‘어떡해’를 연발했지만, 그들에겐 가끔 있을법한 일처럼 다소 태연하게 반응한 것이 놀라웠다. 오히려 이러한 점이 부끄러운 관객들로 하여금 마음의 큰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작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관객이 느낄 심각성까지도 영화 내용에서 차지한 부분만큼 작지는 않을거라 생각한다. 보는 내내 억울했고, 안타까웠고 화가 났는데 이유없는 반감으로 가득찬 일본 우익들의 협박 방송을 생생하게 들으니까 더욱더 화가 치솟았다.
한 나라의 교육은 어린 아이들의 사상부터 무섭게 주입시킨다. 자기만의 뚜렷한 신념이 없는 백지상태와 같으니, 아주 사소한 개념은 물론이고 국가적 정체성은 말 할 것도 없이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어릴적 교육 받아오던 반공 이데올로기가 그렇고 비인간적인 독재체제에도 입다물 수밖에 없는 그 불가항력이 그렇다. 다행히 나의 어린시절은 극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느낄 수는 없던 때라 상상으로나마 겪어볼 뿐이지만, 정말 상상만으로도 그 시절은 끔찍했을게다. 티비에서 보여지는 북한 어린이들의 낯설고 이질적인 말투와 행동들, 그들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뚜렷한 이유 없이 그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만다. 다만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우리학교 학생들의 겉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이들이 ‘자주’나 ‘평화’라는 단어를 거리낌없이 말하며 북한사상을 거부감 없이 내재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때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왜 여전히 낯설어 하는 것일까?
우리학교의 큰 행사 중 하나인 운동회. 학교 운동장에는 만국기 대신 인공기가 가득 펄럭인다. 아이들은 인공기를 가리키며 ‘우리나라 깃발’이라고 한다. 조금 충격받았으며, 많이 안타까웠다. 인공기가 아닌 통일기였다면 보기 좋았을걸. 하지만 원망하기에 앞서, 북한이 비용과 교과서 등을 지원하며 조선학교건립을 도울 때 남한은 나몰라라, 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직 어린 3,4세들은 덜하겠지만 1,2세들은 남한을 얼마나 미워했을까 생각하니 미안하고 답답해온다.
나는 결코 많지 않은 21년을 살아오면서 내 조국, 내 민족,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 국적으로 억압하는 누군가도 없었고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모르는 테러의 위협같은것도 상상조차 해본적 없다. 새삼 나는 얼마나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고, 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을 누군가는 이토록 바라고 있다는걸 머리가 멍해지도록 깨달았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아이들. 역사적인 슬픔을 따뜻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바꿔보겠다는 아이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솔한 얘기에 뜨거운 눈물이 연신 흘렀음은 물론이다.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다른 우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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