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엔 시집이 몇 권 꽃여 있다. 읽어 보지도 않은 시집이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혹은 제목에 끌려
구입하긴 했지만 미처 읽어보지 못한 시집들이다. 아마 그곳에 꽃여 있는 시집들은 시를 읽는다는 것이
마음이 먼저여야 하는 까닭에 그 마음이 돌아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시집을 바라볼 때마다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언제까지 기다리는지 두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누가 보든 말든 시집과 실갱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시집을 바라보다가 또 제목에 끌려 꺼내
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안도현 시인의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그의 시집을 읽는 것은 처음이란 생각이 든다. 시인의 산문집은 몇 권 읽었는데.. 그래봤자 [잡문]하고
[발견] 두 권이다. 그러고보니
어찌되었든 시인과 나는 시가 아니라 산문으로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절필도 이젠 기한이 지났으니
새로운 산문집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걸 보면 나에게 그는 시인이 아니라 영낙없이 작가로 인식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를 한편한편 읽어 나가다 보니 조금은
이상하단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2부 전체가 음식을 소재로
한 시들이다. 그런 시들을 읽으며 내 머리는 과거의 기억들을 재빠르게 소환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시인이 느꼈던 것처럼 음식을 보며 같은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생전 이 음식을 처음
받아본 타지 사람들은 고춧가루에서 우러난
블그죽죽한, 그 뭐라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이 야릇한 식혜의
빛깔 앞에서 그만 어이없어
‘아니, 이 집 여인의 속곳 헹군 강물을
동이로 퍼내 손님을
대접하겠다는 건가?’ 생각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 '안동식혜' 중에서 -
처음 안동식혜를 보던 날 내 생각 역시
시인의 시처럼 그러했다. 멀고 먼 골짝까지 지인의 집을 찾아갔건만 귀한 손님 왔다고 내놓은 것이 식혜였다. 목은 말랐지만 선뜻 마시지 못하고 어물거리는 나에게 지인은 보는 것하고 맛 하고는 다르니 눈감고 마셔보라 했다. 지금도 간혹 그를 만나면 그 때 얘기로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군산 째보선창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켰더니
병어회가 안주로 나왔다
그 꼬순 것을 깻잎에
싸서 먹으려는데 주모가 손사래
치며 달려왔다
병어회 먹을 때는 꼭
깻잎을 뒤집어 싸 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입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고 - '병어회와 깻잎' -
군산 째보선창은 아니었지만 그 근처 선술집에서
병어회로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친구들과 운동을 끝내고 뒤풀이를 하는 자리였다. 서울까지 먼 길을 가야 하는지라 간단하게 한다는 것이 병어회의 꼬순 맛에 취해 마냥 길어졌다. 깻잎을 뒤집어서 싸 먹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입안이 까끌거리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아마 술이 취한 탓 일 게다. 시를 읽고 나니 갑자기 군산 선술집에
막걸리와 병어회를 먹으러 가고 싶다. 헌데 병어가 나는 철도 아닌 지금, 그걸 먹고 싶어하는 나는 철이 없는 걸까?
알밤이 막 빠져나간
둥근 방은
빈 해안처럼
깊고
고요하였다 - '둥근 방' 중에서 –
시인은 어느 책에선가 ‘시인이란 아이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해 안달하는 어른이거나, 펜을 들고 겨우 아이의 흉내를 내보는 자’라고 했다. 그 말은 아마 우리들 일상 속에서, 기억 속에서, 사람 속에서, 그리고 맛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찾아내는 사람이란 뜻 일 게다. 그가 찾아낸 음식의 맛들을 읽어가며 어릴 적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했던 음식들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이 가을에 시를 읽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느껴본다.
|
|
그냥 ‘연탄’의 시인,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시인 정도로만 시인을 알고 있다가 언젠가 우연히 만나게 된 시 ‘스며드는 것’ 한편이 가슴을 울렸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더 절절이 내 감성에 스며들었던 그 시 한편으로 이 시집을 구입하게 되었답니다. 먹는 행위, 오랫동안 먹어왔던 음식들과 관련한 시인의 따뜻하고 서글프기도 한 시들이 현학적이지 않고 쉬운 말로 씌여져 있어 더욱 좋았어요 |
|
이 시집은 간장 게장이 아니고...스며드는 것을 보려고 샀습니다. 간장 게장 시 읽은 뒤에 전 게장 못먹는데 작가님은 드신다고 하니...^^; 그 외에도 음식에 관한 시가 많아서 맛있게, 재미있게 읽게 됩니다. 작가님 고향에 대한 추억이 음식과 연관되어 찬란하게 펼쳐집니다. 시인분들은 당연하지만 일반인과 다른 감수성 소유자이십니다. 그 분들의 감수성을 이렇게 시로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